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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 2020-05-06 ~ 2020-08-23
  • 덕수궁 전관
  • 조회수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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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김환기, <항아리와 시>, 1954, 캔버스에 유채, 80.9×115.7cm, 개인소장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항아리와 시>, 1954, 캔버스에 유채, 80.9×115.7cm, 개인소장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기창, <무제>, 1950년대, 종이에 먹, 24×56cm, 운보문화재단 소장
김기창, <무제>, 1950년대, 종이에 먹, 24×56cm, 운보문화재단 소장
남관, <흑과 백의 율동>, 1981, 캔버스에 유채, 121.5×244.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남관, <흑과 백의 율동>, 1981, 캔버스에 유채, 121.5×244.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소전 손재형, <이충무공시>, 1954, 종이에 먹, 121×5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소전 손재형, <이충무공시>, 1954, 종이에 먹, 121×5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소전 손재형, <이충무공李忠武公 벽파진碧波津 전첩비戰捷碑 탁본>, 1956, 370×115cm(2), 370×57cm(2), 동성갤러리 소장
소전 손재형, <이충무공李忠武公 벽파진碧波津 전첩비戰捷碑 탁본>, 1956, 370×115cm(2), 370×57cm(2), 동성갤러리 소장
석봉 고봉주, <진한유법秦漢遺法>, 종이에 먹, 116×28.7cm, 개인소장
석봉 고봉주, <진한유법秦漢遺法>, 종이에 먹, 116×28.7cm, 개인소장
소암 현중화, <취시선醉是僊>, 1976, 종이에 먹, 194×430cm, 소암기념관 소장
소암 현중화, <취시선醉是僊>, 1976, 종이에 먹, 194×430cm, 소암기념관 소장
원곡 김기승, <로마서 12장 9-12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1975, 종이에 먹, 253×64(2)cm,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원곡 김기승, <로마서 12장 9-12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1975, 종이에 먹, 253×64(2)cm,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검여 유희강, <나무아미타불-완당정게阮堂靜偈>, 1965, 종이에 먹, 64×43cm,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
검여 유희강, <나무아미타불-완당정게阮堂靜偈>, 1965, 종이에 먹, 64×43cm,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
강암 송성용, <석죽도石竹圖-풍지로엽무진구>, 1989, 종이에 먹, 119×240cm, 개인소장
강암 송성용, <석죽도石竹圖-풍지로엽무진구>, 1989, 종이에 먹, 119×240cm, 개인소장
갈물 이철경, <한용운 「님의 침묵」>, 1983, 종이에 먹, 119×49cm, 갈물한글서회 소장
갈물 이철경, <한용운 「님의 침묵」>, 1983, 종이에 먹, 119×49cm, 갈물한글서회 소장
시암 배길기, <유우석劉禹錫 누실명陋室銘>, 1978, 종이에 먹, 140×30.4(2)cm,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시암 배길기, <유우석劉禹錫 누실명陋室銘>, 1978, 종이에 먹, 140×30.4(2)cm,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일중 김충현, <정읍사井邑詞>, 1962, 종이에 먹, 136×63.5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일중 김충현, <정읍사井邑詞>, 1962, 종이에 먹, 136×63.5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철농 이기우, <장생안락長生安樂 부귀존영富貴尊榮>, 33×75cm, 종이에 먹, 파라핀, 황창배미술관 소장
철농 이기우, <장생안락長生安樂 부귀존영富貴尊榮>, 33×75cm, 종이에 먹, 파라핀, 황창배미술관 소장
여초 김응현,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 1979, 종이에 먹, 136×62.5cm, 여초서예관 소장
여초 김응현,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 1979, 종이에 먹, 136×62.5cm, 여초서예관 소장
평보 서희환, <높이 올라 멀리 보라>, 1978, 종이에 먹, 84×6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평보 서희환, <높이 올라 멀리 보라>, 1978, 종이에 먹, 84×6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초정 권창륜, <처화處龢>, 2016, 종이에 먹, 143×69cm, 개인소장
초정 권창륜, <처화處龢>, 2016, 종이에 먹, 143×69cm, 개인소장
학정 이돈흥, <한만해선생시韓萬海先生詩>, 2019, 종이에 먹, 203.3×69cm, 학정서예연구원 소장
학정 이돈흥, <한만해선생시韓萬海先生詩>, 2019, 종이에 먹, 203.3×69cm, 학정서예연구원 소장
하석 박원규, <공정公正>, 2020, 종이에 먹, 250×120cm, 개인소장
하석 박원규, <공정公正>, 2020, 종이에 먹, 250×120cm, 개인소장
포헌 황석봉, <선상에서 1, 2>, 2018, 캔버스에 혼합먹, 130x97(2)cm, 개인소장
포헌 황석봉, <선상에서 1, 2>, 2018, 캔버스에 혼합먹, 130x97(2)cm, 개인소장
밀물 최민렬, <유산가>, 2007, 종이에 먹, 196×106cm, 개인소장
밀물 최민렬, <유산가>, 2007, 종이에 먹, 196×106cm, 개인소장
효봉 여태명, <천天·지地·인人>, 1999, 종이에 먹, 아크릴릭, 108x75cm, 개인소장
효봉 여태명, <천天·지地·인人>, 1999, 종이에 먹, 아크릴릭, 108x75cm, 개인소장
강병인, <힘센 꽃>, 2011, 종이에 먹, 69x34.5cm, 개인소장
강병인, <힘센 꽃>, 2011, 종이에 먹, 69x34.5cm, 개인소장
이상현, <해주아리랑>, 2012, 캔버스에 먹, 마스킹테이프, 116x91cm, 개인소장
이상현, <해주아리랑>, 2012, 캔버스에 먹, 마스킹테이프, 116x91cm, 개인소장
김종건, <봄날>, 2020, 인쇄용지에 붓펜, 200×50cm, 개인소장, 노래: 방탄소년단
김종건, <봄날>, 2020, 인쇄용지에 붓펜, 200×50cm, 개인소장, 노래: 방탄소년단
이일구, 〈TV 영상 캘리그라피〉, 1980-90년대, 종이에 먹, 개인소장
이일구, 〈TV 영상 캘리그라피〉, 1980-90년대, 종이에 먹, 개인소장
안상수, <문자도>, 2019, 캔버스에 실크프린트, 300×120cm, 개인소장
안상수, <문자도>, 2019, 캔버스에 실크프린트, 300×120cm, 개인소장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은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서예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과 의미가 무엇인지 모색하기 위한 전시이다. 전통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서書가 근대 이후 선전과 국전을 거치며 현대성을 띤 서예로 다양하게 진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해방 후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 12인의 작품을 비롯하여 2000년대 전후 나타난 현대서예와 디자인서예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는 서예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특히, 서예와 다른 미술 장르와의 관계를 풀어내며 미술관에서 '서書'가 전시되는 의미를 전달한다. 서예, 전각, 회화, 조각, 도자, 미디어 아트, 인쇄매체 등 총 300여점의 작품, 70여점의 자료를 선보인다.


전시는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들', '다시, 서예: 현대서예의 실험과 파격',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 4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1부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에서는 서예가 회화나 조각 등 다른 장르의 미술에 미친 영향들을 살펴봄으로써 미술관에서 ‘서書’를 조명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서예가 또 다른 형태의 미술임을 말하고자 한다. 1부에서는 3개의 소주제로 나눠 현대미술과 서예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본다. 첫 번째 <시詩·서書·화畵>에서는 전통의 시화일률詩畫一律 개념을 계승했던 근현대 화가들이 신문인화新文人畵를 창출하고, 시화전의 유행을 이끌어 갔던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문자추상>에서는 서예의 결구結構와 장법章法을 기반으로 구축된 문자적 요소가 각각의 화면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서체추상>에서는 서예의 모필毛筆이 갖고 있는 선질線質과 지속완급, 리듬, 기氣 등 재료의 특질들이 실제 작품에서 어떻게 발현, 반영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2부 "글씨가 그 사람이다: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들"에서는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 12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통서예에서 변화된 근대 이후의 서예에 나타난 근대성과 전환점, 서예 문화의 변화 양상 등을 살펴본다. 12인의 작가는 근현대 한국 서예를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대부분 오체五體(전篆·예隷·해楷·행行·초草)에 능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등 사회·문화예술의 격동기를 거치며 '서예의 현대화'에 앞장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립한 인물들이다. 각자 자신이 살아온 행보와 성정을 반영하여 자신만의 특장을 서예로 발휘해 온 이들의 작품을 통해서 글씨가 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3부 "다시, 서예: 현대서예의 실험과 파격"에서는 2부의 국전 1세대들에게서 서예 교육을 받았던 2세대들의 작품을 통해 그 다음 세대에서 일어난 현대서예의 새로운 창신과 실험을 살펴본다. 서예의 다양화와 개성화가 시작된 현대 서단에서 서예의 확장성과 예술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다시, 서예"에 주목한다. 전문가 15인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세 가지 기준, '전통의 계승과 재해석', '서예의 창신과 파격', '한글서예의 예술화’에 따라 선정된 작가와 작품을 선보인다. 전통서예가 문장과 서예의 일체를 기본으로 하는 반면, 현대서예는 문장의 내용이나 문자의 가독성보다는 서예적 이미지에 집중함으로써 '읽는 서예'가 아닌 '보는 서예'로서의 기능을 더 중시한다. 이는 오늘날의 현대미술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타 장르와 소통하고 융합하는 순수예술로서의 서예를 보여준다.



4부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는 디자인을 입은 서예의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며 일상에서의 서예 문화, 현대 사회속의 문자에 주목한다. "손 글씨를 이용하여 구현하는 감성적인 시각예술"로 최근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각인되며 일면 서예 영역의 확장이라 일컫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와 가독성을 높이거나 보기 좋게 디자인한 문자를 일컫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는 실용성과 예술성을 내포하며 상용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선별된 작품들은 서예의 다양한 역할과 범주, 그리고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주요작품

장우성, <단군일백오십대손>, 2001, 종이에 먹, 67×46cm,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선글라스와 배꼽티를 착용하고, 한 손엔 휴대폰, 다른 한 손엔 담배를 든 20대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메마른 서예적 필선은 까칠한 비백飛白 효과와 함께 대상을 충실히 재현해내지 않았으면서도 여인의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그녀를 마주했을 때 90세의 노화백이 느꼈을 충격과 정서 또한 전달된다.
월전 장우성은 화면 상단에 21세기 젊은 여성의 비주체성을 완곡하게 비판한 글을 적어놓았다. 현대 여성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는 화면이 장우성의 글을 통해 비유적이고, 역설적인 풍자화로 거듭나며 시서화가 한데 어우러진 현대 문인화가 완성되었다.



김창열, <물방울(해체)>, 1988, 캔버스에 유채, 251.4×20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창열金昌烈(1929-)은 1956년 12월에 결성된 현대미술가협회의 창립회원으로서 당시에는 급진적인 추상회화였던 앵포르멜 미술을 중심으로 화업을 전개했다. 이후 김창열은 1973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물방울 화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물방울의 영롱한 이미지에 주목한 그는 이후 40여 년에 걸쳐 물방울을 주요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트롱프뢰이유(trompe-l'oeil, 세밀한 기법으로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눈속임 기법)를 사용해 그린 것이다. 그의 물방울 그림은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1980년대에 이르러 글자에서 해체된 필획과 함께 등장했다. 기호처럼 보이기도 하는 필획은 물방울의 실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한편, 화면 전반에서 생동감 혹은 긴장감이 감도는 역할을 한다.



소전 손재형, <이충무공시>, 1954, 종이에 먹, 121×5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충무공은 1545년 음력 3월 8일 자시子時에 서울 건천동乾川洞(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나 1598년 음력 10월 18일 사경四更에 노량해전에서 서거했다. 소전 손재형이 이 시를 쓴 날이 1954년 음력 3월 7일이므로 충무공 제355회 생신제生辰祭를 맞이하여 추념한 글씨이다. 빠르고 힘찬 필력으로 자형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고 행서 기미와 마른 갈필을 더해 동세動勢를 드러낸 52세 중년의 득의작이다.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甲午之春三月初七日 錄李忠武公詩 素荃孫在馨
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꿈틀대고, 산에 맹약하니 풀과 나무가 알아주네.
갑오년(1954) 봄 3월 초7일 이충무공의 시를 적음. 소전 손재형



검여 유희강, <나무아미타불-완당정게阮堂靜偈>, 1965, 종이에 먹, 64×43cm,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


유희강이 즐겨 쓴 재호齋號는 소완재蘇阮齋인데, 이는 소식蘇軾과 완당阮堂을 흠모해서 붙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 작품에는 시대를 초월한 스승 완당의 자취를 밟고자 하는 유희강의 서예정신이 담겨있다. 우수서가 완숙할 경지에 들었을 때의 작품이다. 완당이 초의선사草衣禪師에게 써준 정게靜偈를 재창조한 이 작품은 정중앙을 종으로 흐르는 원추형 꼴의 탑신모양을 북조 서풍이 묻어나는 예서체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로 추상화하고 양 옆으로 빼곡히 완당의 시를 장식했다. 검여 유희강 특유의 회화성이 묻어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강암 송성용, <석죽도-풍지로엽무진구風枝露葉無塵垢>, 1989, 종이에 먹, 119×240cm, 개인소장


전형적인 강암의 석죽도石竹圖이다. 맑고 우직하게 뻗은 대나무 줄기에는 선비의 강인한 기상이 서려있고, 청신淸新한 잎사귀와 그 사이에 배치된 험절한 괴석怪石은 문인화의 운치를 더해준다. 화제 글씨는 행초서로 서사했는데, 일반적인 서예 작품의 행초서와 달리 바람에 흩날리는 푸른 댓잎과 구불구불한 가치처럼 필세의 흐름과 조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그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상단의 화제畵題는 대나무竹에 관한 7언 절구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배치했고, 작품을 완성한 후 좌측 하단에는 마치 기암괴석이 삐죽삐죽 솟아있는 듯 당나라 주방朱放의 시를 더하여 독특한 화면의 흐름과 구도를 형성했다. 전체적으로 농담濃淡·질삽疾澁·소밀疏密의 대비가 뚜렷하여 입체적 공간감이 두드러지며, 대나무·괴석·화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시·서·화의 혼연일체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하단의 화제는 작품을 완성한 후 좌에서 우로 화제를 쓰는 파격적인 장법을 구사하여 전체적인 화폭의 균형을 맞추었다.



소암 현중화, <취시선>, 1976, 종이에 먹, 194×430cm, 소암기념관 소장


<취시선>은 행초行草 작품이다. 서귀포에 있는 음식점 국일관에서 새로 도배된 벽을 보고 여기에 글씨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흥에 지인들에게 먹을 갈게 해 벽에 <취시선醉是僊>을 썼다. 후에 작품이 망가질 것을 염려해 변성근이 가게 주인과 협의해 도배지를 떼어내 배접했고, 변성근이 가지고 있다가 현재는 소암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취시선>을 보면 글자 속에 한 마리 학이 춤을 추는 듯 가늘고 긴 것 같으면서도 그 강인한 힘이 마치 전통무예 택견을 보는 듯하다. 택견은 언뜻 보기에는 춤을 추는 듯 유연해 보이나 순간의 절도와 타격을 가하면서도 결코 중심을 잃지 않는다. <취시선>은 정내교鄭來僑(1681-1757)가 『김명국전金明國傳』에서 말한 ‘욕취미취지간欲醉未醉之間’의 경계境界를 보여준다. 술이 너무 취하면 그릴 수 없고, 또 술을 마시지 않으면 그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취하지 않은 적절한 상태에서 명작이 나온다. 김명국을 두고 한 말이지만 소암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醉是僲 취하면 곧 신선이라.
丙辰春節 素菴書
병진년(1976) 봄날 소암이 쓰다.
철농 이기우, <장생안락 부귀존영長生安樂 富貴尊榮>, 33×75cm, 종이에 파라핀과 먹, 황창배미술관 소장


인간이 살아가며 바라는 소망을 여덟 글자로 요약한 작품이다. 흰 화선지에 파라핀으로 글씨를 쓰고 그 위에 먹을 칠하여 완성했다. 흑과 백의 전환으로 마치 탁본을 대하는 착각을 느끼게 한다. 파라핀의 번짐으로 와당瓦當의 탁본이나 전각의 칼 맛이 느껴지는 독특한 효과가 있다. 행간에 자연스러운 계선界線을 쳤으며, 인장 부분을 미리 계산하여 흰 부분으로 처리한 뒤 그 위에 붉은 인장을 찍어 완성했다. 인장은 오른쪽 상단으로부터 ‘금시작비今是昨非’ ‘철농묵경鐵農墨耕’ ‘이씨기우李氏基雨’ ‘철농둔부鐵農遁夫’를 찍었는데, 전체 화면의 생동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長生安樂 富貴尊榮
오래 살고 편안히 즐기며,
부귀롭고 높은 자리에 올라 영화로우라.
鐵農山人 철농산인




평보 서희환, <높이 올라 멀리 보라>, 1978, 종이에 먹, 84×6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78년에 쓴 이 작품에는 1970년대 초반까지 남아 있던 소전풍 국문전서의 잔흔이 사라지고 필에 금석기와 아울러 작가가 강조했던 이른바 '질김의 질감'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자형은 세로길이가 긴 장방형을 유지하면서 무리한 곡선 획을 배제하고 초성, 종성 혹은 특정 필획을 강조하는 한편 개성적인 장법을 과감하게 시도함으로써 현대인들이 향수享受할 수 있는 조형질서를 탐색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가 필획 자형 장법 등에 뚜렷이 드러나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준다.




초정 권창륜(1943-),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2009, 종이에 먹, 480×139cm, 개인소장


"선을 쌓으면 집안에 좋은 일이 가득하다."는 『명심보감』의 글귀를 행초서로 서사한 대작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예측불허의 거친 필획과 기괴험절奇怪險絶한 조형 속에서 자유로운 필세의 흐름과 일필휘지의 기운생동이 느껴진다. 일본 전위서의 대가인 이노우에 유이치(井上有一)의 퍼포먼스를 연상케 한다.




포헌 황석봉, <선상에서 1, 2>, 2018, 캔버스에 혼합먹, 130×97×(2)cm, 개인소장


일필휘지一筆揮之를 통해 필묵이 가지고 있는 기氣의 시간적 흐름과 공간의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든 현란함을 덜어내고 순수한 붓과 먹의 퍼포먼스로써 서예의 획이 지닌 원초적 생명력과 예측불허의 다양한 조형 및 역동적인 필세 등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좌) 강병인, <힘센 꽃>, 2011, 종이에 먹, 69×34.5cm, 개인소장
(우) 강병인, <힘센 봄>, 2011, 종이에 먹, 69×34.5cm, 개인소장


한글 모음과 자음, 그리고 이들을 이루고 있는 획들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강병인(1962-)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 한글 형상화 작품이 완성된다. 한글 단어가 갖는 의미에 따라, 혹은 작가가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획의 강약强弱과 장단長短, 접필接筆 등의 방식을 통해 공간과 획의 크기를 적절히 안배함으로써 한글 형상화를 완성하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글자를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미지화하여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연상 작용을 통해 그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 기간
    2020-05-06 ~ 2020-08-23
  • 주최/후원
    국립현대미술관
  • 장소
    덕수궁 전관
  • 관람료
    3,000원
  • 작가
    강병인, 고봉주, 권창륜, 김규진, 김기승, 김기창, 김돈희, 김용준, 김응현, 김종건, 김종영, 김창열, 김충현, 김태석, 김환기, 남관, 박대성, 박원규, 배길기, 서병오, 서세옥, 서희환, 석도륜, 손재형, 송성용, 안상수, 여태명, 오세창, 오수환, 유희강, 이강소, 이기우, 이돈흥, 이상현, 이우환, 이응노, 이일구, 이철경, 이한복, 장우성, 정진열, 최만린, 최민렬, 하승연, 현중화, 황석봉, 황인기, 황창배 (가나다 순)
  • 작품수
    작품 300여점, 자료 70여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