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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

  • 2021-12-11 ~ 2022-04-17
  • 서울 6, 7전시실, 미술관 마당
  • 조회수8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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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아이 웨이웨이
〈한대 도자기 떨어뜨리기〉, 2016, 레고 블록, 230x192cm (3).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갤러리 제공
〈한대 도자기 떨어뜨리기〉, 2016, 레고 블록, 230x192cm (3).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갤러리 제공
〈대리석 팔〉, 2007, 대리석, 30x65x23cm.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갤러리 제공
〈대리석 팔〉, 2007, 대리석, 30x65x23cm.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갤러리 제공
〈여의〉, 2012, 자기, 10x41x16cm.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갤러리 제공
〈여의〉, 2012, 자기, 10x41x16cm.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리손갤러리,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갤러리 제공
〈2003년 베이징〉, 200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0시간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제공
〈2003년 베이징〉, 200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0시간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제공
〈부유〉, 201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비디오 3부작 : #1: 4분 8초 #2: 3분 44초 #3: 9분 40초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제공
〈부유〉, 201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비디오 3부작 : #1: 4분 8초 #2: 3분 44초 #3: 9분 40초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 제공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회화, 사진에서부터 영화, 설치, 건축, 공공미술, 전시기획, 출판 등 전 방위적으로 활동하는 아이 웨이웨이(1957–)의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인 아이 칭과 가오 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문화혁명기에 아버지가 반우파 운동으로 인해 ‘하방’(下放, 중국 문화혁명기에 도시 청년과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민과 지내게한 정치 운동) 되면서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복권된 후 1975년 베이징으로 돌아왔고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 1979년 현대미술 그룹 '성성화회'에서 활동했다.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확립해 나갔다. 1993년 베이징으로 귀국 이후, 베이징 동쪽 지역 차오창디 예술촌 형성에 참여했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인 ‘베이징 국가 체육장’ (종종 ‘새의 둥지’로도 불린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2008년 쓰촨 대지진 발생 시 온라인으로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고 '시민 조사 단'을 구성하여 총 사상자 수와 희생자 이름을 기록했다. 작가는 중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나 2015년부터 유럽에 체재하면서, 주로 ‘난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그는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소통하는 선구적 예술가라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를 비롯하여 <색을 입힌 화병들>(2015),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 <난민 모티프의 도자기 기둥>(2017) 등의 도자 작품, <유리를 이용한 원근법 연구>(2018), <검은 샹들리에>(2017–2021) 등의 무라노 유리 작품, <구명조끼 뱀>(2019), <빨래방>(2016), <나무>(2015) 등의 대형 설치작품, <살아 있는 자>(2020), <로힝야>(2021) 등 11편의 영상 등 총 126점을 소개한다.


전시 제목 '인간미래'는 그의 예술적 화두인 '인간'과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결합한 것이다.

아이 웨이웨이의 삶과 예술은 존엄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기쁨과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삶을 누려야 하며 또 그런 삶을 지금부터 앞으로 올 미래 세대까지 모든 타인들이 함께 누리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권을 다룬 인류사의 중요 발언들을 모은 작품 <인용문>(2019)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테네인도 아니요, 그리스인도 아니다.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고 말했다. 징더전의 도자마을부터 베니스 무라노 섬의 유리 공방 등에서 찬란했던 과거의 문화적 유산을 현재로 연결하고, 쓰촨 대지진 현장과 그리스 이도메니 섬에서 타자와 나/우리 사이를 연결하여 공감과 연대의 공동체를 확장시켜 왔다. 대화하며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분노하는 것, 그것이 아이 웨이웨이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이자 예술의 성취이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을 만나는 이번 전시가 그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함께 걷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 작가
    아이 웨이웨이
  • 작품수
    126점

전시이미지

오디오가이드

#1. 전시 인사말 관람객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전시에 앞서 아이 웨이웨이에 대해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시인 아이칭과 가오잉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문화혁명 시기 강제 이주 되어, 중국 북서부에 위치한 신장 지역에서 성장하게 되죠. 이후 아버지가 복권되면서, 1975년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온 아이 웨이웨이는 베이징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뉴욕에 정착해 예술가이자 큐레이터, 출판인이자 건축가로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그는, 특히 2008년 열린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주경기장인 ‹새의 둥지›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베이징 시절의 사진 작품에서부터 2021년 제작한 최신 영화까지, 다양한 매체로 제작된 작품들이 소개됩니다. 전 지구를 무대로 하며, 수천 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그의 작품들은, 아이 웨이웨이가 거쳐온 기나긴 예술의 여정을 경험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아이 웨이웨이의 여정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죠.
전시 인사말

601.전시 인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