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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월룡(Пен Варлен) 1916~1990

  • 2016-03-03 ~ 2016-05-08
  • 덕수궁 제 1,2,3,4전시실
  • 조회수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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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변월룡(Пен Варлен) 1916~1990
변월룡, <식민주의의 족쇄를 끊어버려라!>, 1945, 134×101.5cm, 종이에 과슈
변월룡, <식민주의의 족쇄를 끊어버려라!>, 1945, 134×101.5cm, 종이에 과슈
변월룡, <조선의 모내기>, 1955, 116.2x201.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조선의 모내기>, 1955, 116.2x201.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레닌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다>, 1964, 49.3x91.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레닌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다>, 1964, 49.3x91.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사회주의 노동영웅 어부 A.S. 한슈라의 초상>, 1969, 200x11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사회주의 노동영웅 어부 A.S. 한슈라의 초상>, 1969, 200x11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자화상>, 1963, 75x60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자화상>, 1963, 75x60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 1947, 70x144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 1947, 70x144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화가 알렉산드르 푸쉬닌의 초상>, 1962, 80x67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화가 알렉산드르 푸쉬닌의 초상>, 1962, 80x67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화가 올레그 예레메예프의 초상>, 1983, 80x70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화가 올레그 예레메예프의 초상>, 1983, 80x70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근원 김용준 초상>, 1953, 51x70.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근원 김용준 초상>, 1953, 51x70.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판문점에서의 북한포로송환>, 1953, 51x71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판문점에서의 북한포로송환>, 1953, 51x71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금강산 (만물상)>, 1959, 49.3x64.7cm, 에칭
변월룡, <금강산 (만물상)>, 1959, 49.3x64.7cm, 에칭
변월룡, <바람>, 1959, 40x63.8cm, 에칭
변월룡, <바람>, 1959, 40x63.8cm, 에칭
변월룡, <네브카 강에서>, 1983, 66.5x133.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네브카 강에서>, 1983, 66.5x133.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미하일로브스코예 마을의 시축제>, 1975, 65x49.5cm, 에칭
변월룡, <미하일로브스코예 마을의 시축제>, 1975, 65x49.5cm, 에칭
변월룡, <쉬코토프스키>, 1964, 49x91.4cm, 에칭
변월룡, <쉬코토프스키>, 1964, 49x91.4cm, 에칭
변월룡, <금강산 소나무>, 1987, 72x129.5cm, 캔버스에 유채
변월룡, <금강산 소나무>, 1987, 72x129.5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근대거장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백년의 신화’라는 제목 아래 국민화가 이중섭(1916~56),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과 함께 지금까지 우리가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변월룡(1916~90)의 삶과 예술을 소개한다. 변월룡은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舊레닌그라드)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그 곳에서 화가이자 교육자로 일생을 보낸 고려인이다. 그의 삶과 예술은 식민, 분단, 전쟁, 이념대립 등 한국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 제2차 세계대전, 전체주의, 냉전, 개혁과 개방을 겪은 러시아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그는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국경 밖에서 태어나 이주의 땅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자였지만, 인간의 존엄에 대한 믿음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운명은 인간의 의지와 상반되게 삶을 밀고 가는 불가항력적인 힘이지만, 변월룡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역사의 증인이자 경계에 선 자로서 세상과 자기 내면을 향한 시선을 화폭에 담았다.

변월룡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지금 여기에 변월룡이란 낯선 화가를 소환하는 일은 서양과 서양을 지향한 근대일본을 기준 삼아 한국근대미술의 후진성을 비난하거나, 혹은 디아스포라를 포용하여 서양의 기준에 부합하는 선진성을 우리 속에서 발견해 내려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변월룡의 첫 회고전인 이번 전시가 작가의 삶과 예술은 물론 한국근현대미술에 내포된 다층의 컨텍스트를 발견하고 또 새로이 생성하는 장(場)이 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북한미술이 토대를 구축하는 데 귀한 자양분이 되었던 그의 존재는, 통일을 실현해야 하는 현세대에 역사적 상상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것이다.


연 보

연보

1916

9월 29일 연해주 쉬코토프스키의 유랑촌에서 태어남.

1936

블라디보스토크에 중등교육을 마치고, 우랄산맥 부근의 스베르들로프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 미술학교에 편입.

1940

일리야 레핀 레닌그라드 회화 조각 건축학교 회화과에 입학. 전공공부와 함께 그래픽과 워크샵에서 동판화와 석판화 연구에도 매진.

1942-44

독·소전쟁으로 인해 레핀예술대학 교직원, 학생들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로 피난. 타슈켄트 국립출판국에서 정치포스터를 제작.

1944

동급생 제르비조바와 결혼

1947

A.A. 오스묘르킨 교수 지도하에 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함. 소련 미술가 연맹 회원으로 발탁됨.

1950

B.V. 이오간손 교수 지도 하에 대학원을 마침. 전시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시작.

1951  

레핀 예술아카데미의 데생과 조교수직을 맡고 데생을 가르치기 시작.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

1953

데생과 부교수가 됨. 1953년 6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소련 문화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을 방문, 그곳에서 평양미술대학 학장 및 고문 역임.

1954

북한에서 돌아온 후 예술아카데미에서 강의를 이어감과 동시에 여러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 전개.

1961

유럽과 극동지방 여행하기 시작.

1977

예술아카데미 데생과 정교수로 승진.

1985

예술아카데미 퇴직.

1990

5월 25일 레닌그라드에서 뇌졸중으로 사망.

  • 작가
    변월룡
  • 작품수
    유화, 에칭, 석판화, 드로잉 등 200여점

전시인쇄물

IE/2010PM/0298
IE/2010PM/0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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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2010PM/0299
IE/2010PM/0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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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2010PM/0300
IE/2010PM/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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