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스스로 진화하며 메시지를 전하는 예술” 김치앤칩스
김치앤칩스는 디지털 예술가 손미미와 물리학자 엘리엇 우즈가 2009년에 결성한 독창적인 예술 팀이다. 이들은 다양한 재료와 기술, 자연현상을 탐구하며,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우발적이고 복잡한 현상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 ‘Drawing in the air’(허공에 그리기)라는 실천적 개념을 통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이들은, 다원예술 2024 «우주 엘리베이터»에 참여하여 국립현대미술관의 허공에 ‹또 다른 달›을 그려 넣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김치앤칩스가 도달하고자 하는 예술 세계, 그리고 그들의 철학에 대하여 직접 들어보았다.
‹또 다른 달›은 특수 제작된 레이저 프로젝터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여 밤하늘에 또 다른 달을 띄우는 대형 야외 설치 작업이다. 달의 모양이 태양 빛의 반사로 만들어진다면, ‹또 다른 달›은 낮에 저장된 태양 에너지로 만들어진다. 낮 동안 태양 에너지로 충전된 33개의 레이저 프로젝터 모듈은 일몰 후 밤하늘의 한 지점으로 원뿔 형태의 레이저를 쏘아 올리고, 허공에서 중첩된 레이저 빔은 구 형태의 달을 그린다. 현실과 가상이 불완전하게 섞였던 팬데믹 시기, 작가는 치밀하게 계산된 기술과 통제 불가능한 자연을 엮어 인공의 푸른 달을 처음 띄웠다.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 작품은 그날의 날씨에 따라 구동 시간이 결정되며, 레이저 모듈 각각의 태양 에너지가 소진되는 깊은 새벽, 하나씩 자연스럽게 스스로 소등된다.
Q. ‘Drawing in the air (허공에 그리기)’라는 개념을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와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다른 달› 전경
손미미: 뚜렷한 계기와 메시지를 위해 ‘Drawing in the air’ 개념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저와 엘리엇,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 바라볼 어떤 장치가 필요했는데, 그 장치가 되도록 유연하고 추상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와 비실제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이미지’로 그려내는 작업을 하면서 찰나적이고 불확정적인 순간에 자주 봉착하곤 하는데요. 그럴 때 이것을 하나로 정의 내리기보다는 다발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두리뭉실하고, 실패해도 좋을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엇: 김치앤칩스는 이미지를 상상의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작품은 새로운 유형의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한 실험이기도 하죠. 또한 공간에 이미지를 그리는 대체 기술을 구현함으로써 상상의 세계와 물리적 세계 사이의 새로운 경로를 만들기도 합니다. 상상 속의 것이 물리적으로 구현되면 그것은 불완전해지고, 이상적이지 않으며, 어딘가 타협된 상태가 됩니다. 이러한 물리적 불완전성은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며, 우주의 아름다움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줍니다.
Q. 재료, 기술, 빛, 시공간 등 물질과 비물질을 혼합한 작업에서 이 요소들이 작품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작업 과정에서 마주하는 도전의 기회, 작가님들의 예술적 동력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치앤칩스(엘리엇 우즈, 손미미)
손미미: 김치앤칩스의 작품에서 사용되는 재료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친숙한 것들입니다. 물론 디자인과 가공, 특수 제작을 통해서 재료의 물성적 특성을 극대화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재료를 그 자체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함께 사용된 다른 재료, 여러 기술, 공간적 특성, 자연적 변수 등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미시적으로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거시적으로는 하나의 큰 그림을 함께 그려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도 같습니다. 저희의 역할은 각각의 재료와 기술이 정교하게 튜닝되고 조화를 이루도록,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이미지를 그리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실험의 순간마다 늘 예상하지 못한 과제와 마주치게 됩니다. 완성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패’ 또는 ‘리스크’라는 두려움을 다스리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이 수행, 또는 수련 같은 반복이 결국은 가장 중요한 예술적 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재료와 기술, 개념은 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반복을 거듭하는 습관, 그때 마주치는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작업을 지속하는데 가장 큰 동력이 되어 줍니다.
엘리엇: ‹또 다른 달›이라는 작품은 낮 동안 햇빛을 모아 밤이 되면 하늘에 다시 빛을 비추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만약 낮에 햇빛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된다면 밤에는 우리의 작품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날씨가 계속 흐리다면, 작품 속에서 ‘달’이라는 것은 ‘매우 드물게만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날씨가 허락한다면, 하늘에는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빛으로 만들어진 물체’가 떠오르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우리의 작품은 예술, 관객, 자연, 에너지, 그리고 신비 사이의 능동적인 관계를 이끌기도 합니다. 이런 작업을 할 때에는 특히, 예술가라고 할지라도 이 관계를 지배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작품을 통해 펼쳐지는 장관은 허구나 마술, 혹은 사전에 준비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물리적 세계에 순응함으로써 그 진정한 본질을 마주할 기회를 제공할 뿐입니다.
Q. 불교철학에 평소 관심이 많으시다고 하던데 존재, 실체, 관계에 대한 불교 철학이 김치앤칩스의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손미미: 불교철학을 의도적으로 우리 작품에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단, 작품을 완성한 후 우리 또한 작품이 어떤 메시지를 말하고자 하는지 들으려고 합니다. 작가가 작업을 시작하고 이끌긴 하지만 작품 또한 스스로 진화하여 메시지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작품을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재료나 기술, 자연적 요소들이 만드는 결과들은 불확정적이고, 일시적이며 또 매번 다릅니다. 모든 요소가 협력하여 동일한 반복을 수행하지만, 관계에 따라 결과는 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에 비추어 해석해 보기도 합니다. 불변하는 실체는 없다는 것, 관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매 순간 동일한 것이 없다는 공(空)사상을 작품 제작 과정에서 (겨우) 깨닫기도 합니다.
Q. 손미미 작가님은 디자인, 엘리엇 우즈 작가님은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하셨는데, 두 분의 다양한 경험과 전공이 작품에서 어떻게 융합되며, 이를 통해 어떤 시너지가 발생하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손미미: 제가 최근 읽은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에서 설명하는 ‘협력’의 의미를 빌려오려고 합니다. 이 책은 ‘모든 존재는 개별적으로 생존할 수 없고 타 존재(인간 또는 비인간)와 협력이 불가피한데, 이때 서로가 서로에게 불확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국 모두가 변형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것을 ‘오염’이라고 표현합니다. 협력은 각자의 순수성을 버리고 다양성을 찾는 오염의 과정이고, 이 다양성이 모두의 생존을 위한 궁극적인 대책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 원칙을 버리고 새로운 다종의 세계-만들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저와 엘리엇의 작업 과정을 여러 번 되돌아봤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개별적 순수성 또는 능력과 특권에 집착하고 서로를 위해서 오염되지 않으려 했다면, ‘다종의 세계 만들기’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을 긍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을까요?
엘리엇: 김치앤칩스 작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서로에게 놀라움을 준다는 점입니다. 서로의 기술을 도구화하려 하지 않고, 대신 각자의 접근 방식 사이에서 관대한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타협은 서로의 목소리 안에서는 불가능하며, 개개인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것들입니다. 특히 우리가 다루는 매체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작업을 진행하면서 규칙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작품은 항상 두 사람과 물리적 세계 사이의 타협의 산물입니다. 이를 위해서 언제나 현실적인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며, 현실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Q.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4: 우주 엘리베이터»에 참여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특히, ‘우주 엘리베이터’라는 독특한 주제를 다루면서 느낀 감정과 생각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또 다른 달› 설치 작업 중인 모습
손미미: 아서 클라크의 책 『낙원의 샘』의 등장인물인 바니바 모건은 건축 공학자이자 ‘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한 인물입니다. 이 책은 인류 최대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한 한 인간의 무모함과 욕망, 인간적 두려움, 그리고 그 주변에 촘촘하게 얽혀있는 온갖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룹니다. 이 서사에 빠져 독자인 우리가 상상의 우주 세계에 젖어 들기도 하지만, 저자는 돈, 안전, 암투, 권력, 건설 등의 현실적 문제를 다루며 독자들을 다시 지구에 묶어둡니다.
‹또 다른 달›은 밤하늘에 커다란 달을 그리는 상상에서 실제 구현에 이르기까지 7년이 걸린 작품입니다. 제작 예산이나 공간적 지원, 공공의 허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커다란 모험의 배에 함께 탈 협력자들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태양 에너지만으로 구동되기 때문에 비가 온 날 밤에는 어쩌면 달이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고, 공공의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도 있습니다. 진짜 달 옆에 뭐 하러 푸른 달을 굳이 그리냐는 의견도 있을 테고 말이죠. 저희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일을 합니다만, 돌아오는 반응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멈출 수 없으니 그냥 계속 가는 거고요.
Q. 관람객들이 ‹또 다른 달›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또 다른 달› 전경
손미미: 실재와 가상이 거의 하나처럼 포개진 이 시대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이야기, 주장, 조작, 사건을 접합니다. 그런 정보들은 근거와 실체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생산되고 사라지면서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킵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우리에게서 사유의 힘을 뺏는 것이죠. 이 ‘생각하는 힘’을 잃으면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한 뒤에 곧바로 판단하기 시작하고, 판단을 생각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좋고 나쁨으로, 진짜와 가짜로, 예쁘고 못난 것으로, 착하고 못된 것으로, 진보와 보수로 모든 것을 그냥 쉽게 반으로 뚝 잘라버립니다.
매일 밤하늘에 뜨는 ‘진짜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고, 사실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위성입니다. 태양이 없다면 우리는 ‘진짜 달’을 볼 수가 없지요. 반면, 저희는 낮 동안 저장한 태양 에너지와 직접 제작한 레이저를 이용해 밤하늘에 ‘가짜 달’을 그립니다. 태양을 반사한 달을 우리가 ‘진짜 달’이라고 부른다면, 태양 에너지로 그린 김치앤칩스의 달을 ‘가짜 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두 달 모두 태양의 존재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면 이 두 달은 모두 진짜일 수도 가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다른 달›은 우리가 믿고 있는 사실들이 합의된 왜곡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무수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 작품이 2021년 독일 에센, 2022년 아테네와 바르셀로나에서 그려지고 드디어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될 수 있어서 너무나 뜻깊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간 정리해 보지 못한 여러 생각, 감정, 개념을 ‘우주 엘리베이터’라는 큰 우산 아래에서 다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관람객 여러분들이 ‹또 다른 달›을 감상하며 잠시 잃어버렸던,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되찾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