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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한국 근대기 최초로 서양화를 전공했던 여성 화가이다. 수원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913년 도쿄 조시미술학교(女子美術学校, 현재 조시비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 유학생들이 자수를 전공한 데 비해, 나혜석은 과감하게 서양화를 선택하여, 고희동, 김관호 등과 함께 한국에 서양화를 도입한 1세대 화가가 되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당시 유행했던 여성 운동에 큰 관심을 갖고 김일엽 등과 함께 『신여자』 등 여성 잡지를 만드는 선구적 활동에 가담했고, 「경희」, 「현숙」을 비롯한 다수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였다. 나혜석은 변호사 김우영과 1920년에 결혼한 후 1927-1929년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여 세계의 문물을 직접 목도한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리 체류 당시 최린과의 불륜설로 이혼을 당했고, 1934년 최린이 점차 친일행적을 드러낼 즈음 잡지 『삼천리』에 ‘이혼고백서’를 발표하여 사회적 파란을 일으켰다. 나혜석의 여러 행적은 당시 통념을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파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미술가를 양성하기 위한 사설 학원을 개설했으나 실패하고, 대부분의 작품을 화재로 잃게 되면서 엄청난 실의에 빠졌다. 여러 개인적 불행과 건강상의 문제가 겹쳐 1930년대 후반 이후 공식적인 활동에서 거의 사라졌다. 1948년 사망할 때까지도 꾸준히 미술과 문학 양쪽 방면에서 창작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존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화령전작약(華寧殿芍藥)>은 나혜석이 1934년 ‘이혼고백서’를 발표한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이혼 후 고향인 수원에 내려와 있으면서, 정조의 사당인 화령전(華寧殿)과 작약을 화폭에 담았다. 화령전의 지붕과 그 앞의 빨간 문, 그리고 화면의 반을 차지하는 활짝 핀 작약이 날아갈 듯 활달한 필치로 묘사되었다. 빨간색과 초록색의 강렬한 대비, 속도감 있는 필체는 전체적으로 화면에 생기를 부여하며 강렬한 인상을 준다. 묘사에 충실했던 작가의 초기 작품에 비해, 거칠고 주관적인 표현이 강조된 점이 특징적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된 나혜석의 많은 작품들이 도판으로 전해지지만, 실제로 확실한 진작(眞作)은 소수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나혜석 연구의 기준이 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