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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파리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공부하며 외젠 부댕(Eugène Boudin)에게서 외광파 회화(plein-air painting)를 접했는데 이는 이후 인상주의의 등장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리 등과 교류했으며, 1873년에는 이들과 함께 무명예술가협회(Société Anonyme Coopérative des Artistes Peintres, Sculpteurs, Graveurs)를 결성했다. 1874년 협회의 첫 번째 전시에 출품했던 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1872)를 두고 비평가 루이 르로이(Louis Leroy)가 조롱의 의미를 담아 사용한 ‘인상주의’라는 단어가 그룹과 화풍의 이름이 되었다. 1886년까지 총 5회에 걸쳐 인상파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1890년대부터는 ‘건초더미(Les Meules)’, ‘루앙 대성당(La Cathédrale de Rouen)’, ‘수련(Nymphéas)’ 등의 연작을 제작했으며 이 연작들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표현했다. 작가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게 되었으나 끝까지 인상주의 원칙을 고수하며 작업을 지속했다.
모네는 지베르니 시기로 일컬어지는 1883년부터 사망하는 1926년까지 파리 근교 작은 마을인 지베르니의 자택에서 연못에 핀 수련을 주제로 250여 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수련이 있는 연못>은 이 연작 중 하나이다. 지베르니 시기 초기에 모네는 일본풍 다리, 연못 주변의 버드나무 등과 함께 수련을 그리며 정원의 구조를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1910년대를 기점으로 작품이 변화하는데 그 계기로는 백내장으로 인한 시력 저하, 1911년 아내 알리스(Alice)와 1914년 아들 장(Jean)의 사망 등을 꼽을 수 있다. 모네는 1916년 새로운 스튜디오를 열고 2m 이상의 큰 대형 캔버스를 사용하였다. 물의 표면에 비치는 수련의 꽃과 잎, 수초 등으로 화면을 채우고 연못 주변의 대상들은 생략하여 추상화된 경향을 보인다. 이 작품은 가로로 긴 화폭에 흰색, 초록색, 보라색을 겹쳐 바르는 방식으로 화면 가득 연못의 수면과 수련을 묘사한 것이다. 수평선을 드러내지 않은 평면적 구성을 통해 수면에 반사된 빛만을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