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작품을 불후의 명작이라고 부른다. 이때 불후(不朽)는 썩지 아니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훌륭한 작품이란 곧 변하지 않을 혹은 변해서는 안 될 작품이라면, 굳이 변하고 사라질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언젠가 썩어갈 운명을 시인하는 작품, 차라리 무엇도 남기지 않기로 마음먹은 작품, 자신의 분해를 공연히 상연하는 작품을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소개한다. 오늘날 폭발적으로 분출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첨단의 자본주의, 기술만능주의에 대한 반발과 함께 변화하고 있는 작품의 양상을 살펴보고, 그로부터 당면한 위기를 헤쳐갈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다.
'삭다'라는 우리말에는 '썩은 것처럼 되다', '생기를 잃다'와 더불어 '소화되다', '발효되어 맛이 들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단어는 오늘날 작품의 변화를 해석하는 데 유효한 통로를 제공한다. 썩는다는 표현에 담긴 부정적 함의를 넘어 에너지의 하강과 상승을 모두 포괄하고, 발효와 같이 인간이 아닌 존재와 협력하여 이루는 질적 고양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창조하는 인간의 증거로서 '작품'이 삭아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작품'이 허물어진 곳에 풀이 자라고 바람이 불고 보이지 않는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을 다시 '작품'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때 그 '작품'은 누구의 것일까?
불후의 명작들의 수장고로서 미술관은 위대한 작품들의 가치를 변함없이 지키는 데 헌신해왔다. 삭는 미술은 묻는다. 인간을 넘어 다양한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삭히기로 마음먹은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수상한 계절이 이어지는 오늘, 더 잘 보존하기보다 더 잘 분해하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임을 인정할 수 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