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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박철호, 박모, 박이소였던 그는 누구인가?

박이소,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1990)

박이소,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1990)

전시정보<박이소 : 기록과 기억>, 과천관 1전시실, 2018.07.26.~12.16.

박이소의 ‘경계의 미술’은 무심한 듯 거리를 두면서도
미묘한 지점에서 강렬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두드러져 보일 정도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박철호-박모-박이소로 활동한 ‘그’의 삶

본명 박철호. 미국에서는 ‘박모’라는 이름으로, 귀국 후에는 ‘박이소’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그’는 199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평가 받는 작가이자, 2004년 돌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예술계에 큰 슬픔과 아쉬움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부재하지만 이름이 바뀔 때마다 함께 변모했던 작가의 작품 세계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며 여전히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양산하고 있다.

작가 박이소의 활동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1982년과 1995년 귀국 시점을 기준으로 ‘뉴욕시기’와 ‘서울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뉴욕시기의 ‘박모’를 만나보자. 뉴욕의 프랫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작가는 본명 박철호에서 필명 박모(아무개 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펼쳤다. 뉴욕 주류 미술계에서 ‘박철호’라는 동양인의 존재는 없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였을까. 1985년 9월, 그는 뉴욕 브루클린 북부에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라는 대안공간을 설립한다. 그 목적은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소수에 속하거나 이와 연관된 관심을 작품에 반영하는 작가들’ 등 백인 주류의 뉴욕 문화계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비영리 공간 마련이었다. 그는 아울러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미국 미술계의 최신 동향과 이론적 흐름을 국내에 소개하고 한국 미술을 뉴욕에 소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박이소, <풀>(1988)
박이소, <풀>(1988)

이 당시 작품으로는 한국 민화에 기반을 둔 기발한 그림들과 선비의 묵란을 패러디 한 ‘풀’ 등이 있다. 작가는 우리 전통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컸지만 그것이 서구의 시각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자각하고 그 점을 다시 비틀어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작가의 자기 갈등이 드러나는데 <무제>라는 작품에선 “가만히 벽에 붙어있는 그림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예술에 대한 회의가 엿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어떤 유행이나 화풍이 배어 있지 않은 자기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창조한다.

박이소, <무제>(1986) 박이소, <무제>(1986) 박이소, <자본=창의력>(1986) 박이소, <자본=창의력>(1986)

본격적인 ‘서울시기’가 시작된 1995년. 신설된 SADI(삼성디자인교육원)의 교수직을 맡아 귀국한 후에는 박이소(낯설고 소박하다는 뜻)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후 새로운 방식의 미술교육을 정립하고자 애쓰는 한편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박모에서 박이소로 또 한 번의 탈피를 한 ‘그’의 작품 세계는 크게 변화했다. 썰렁하고 허허로운 공간이 점점 넓어졌고, 전시 공간에 비현실적인 조명이 비추는 알 수 없는 통로도 등장한다. 이는 ‘도대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에는 이전 작품의 주요 요소인 허망함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기보다, 그 자체를 운명으로 여기기 시작하고 그것을 자신의 미학으로 일궈나간다. 그리고 삶에 대한 커다란 사유를 하며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박이소, <정직성-2>(1996) 박이소, <정직성-2>(1996) 박이소, <드넓은 세상>(2003) 박이소, <드넓은 세상>(2003) 박이소, <우리는 행복해요>(2004) 박이소, <우리는 행복해요>(2004)

이처럼 ‘박이소’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광주비엔날레>, <타이베이 비엔날레> 참여,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초대받는 등 국내외 미술계의 주요인물로 자리매김하던 중 갑작스럽게 세상과 작별을 고한 것이다.

다각도에서 살펴보는 작가 박이소의 연대기 <박이소: 기록과 기억>

박이소 사후 15년이 흐른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7월 26일부터 12월 16일까지 작가의 유족이 대량 기증한 아카이브와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박이소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박이소: 기록과 기억> 전을 과천관에서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박이소의 첫 개인전이기에 의미가 더욱 뜻 깊다.

본 전시에서 공개하는 유족 기증 자료는 박이소가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1984년경부터 갑작스럽게 사망한 2004년까지 약 20년간 작가의 곁을 지켰던 21권의 작가노트를 포함하여 드로잉, 교육자료, 전시관련 자료, 기사들, 심지어 재즈 애호가였던 작가가 직접 녹음·편집한 재즈 라이브러리에 이르기까지 수백 점에 이른다.

박이소 작가노트 2002~2003 박이소 작가노트 2002~2003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2002)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2002)
박이소, <블랙홀 의자를 위한 드로잉>(2001) 박이소, <블랙홀 의자를 위한 드로잉>(2001) 박이소, <블랙홀 의자>(2001) 박이소, <블랙홀 의자>(2001)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 박이소라는 작가의 입체적인 초상을 그려보고, 한국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의 지형도에서 그의 위치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내 작품을 관객이 명료하게 이해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뒤죽박죽인 느낌, 애증의 양면성, 주저함이나 일관성 없는 것이 인간의 참모습에 가까우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미술작품 제작이란 이미지와 물질을 사용해 모든 것에 대한
나의 끝없는 의심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기존의 의미와 영역들 사이에 펼쳐지고 있는
광대하고도 끝없는 틈을 거꾸로 여행하려는 것과도 같다.”
- 박이소

작가가 남긴 말처럼 그의 작품 세계는 ‘전례 없는 특별한 세계관과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박이소: 기록과 기억> 전에서 박철호-박모-박이소로 이어지는 ‘그’의 궤적과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