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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한국 건축계의 모던보이 <김중업 다이얼로그>

김중업, <건국대 도서관(現 건국대학교 언어교육원)>(1956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 <건국대 도서관(現 건국대학교 언어교육원)>(1956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전시정보<김중업 다이얼로그>, MMCA과천 2전시실·중앙홀, 2018.08.30.~2018.12.16.

<김중업 다이얼로그>는 한국 현대 건축의 거장 김중업(1922~1988)
사후 30주기를 기념하며 사상 최초의 대규모 기획전으로 마련되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카이브, 김중업건축박물관의 소장품과 더불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촬영한 사진과 영상 신작 등 3,000여 점의
방대한 자료를 선보인다. 또한 김중업이 30여 년간 설계한
건축물 관련 자료와 당대 예술가·지식인과의 협업 및 교우 관계를
조명하며 김중업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김중업이 보여주는 건축에 대한 상상력, 현대 도시 풍경의 고찰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은 1922년 평양 출생이다. 김중업은 한국 전쟁 때 부산에 머무르다 1952년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에 참석하였다. 이것이 김중업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는데, 세계예술가회의에서 명예 위원으로 온 프랑스 파리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 것이다. 귀국을 하는 대신 파리로 건너가 르 코르뷔지에를 찾아간 김중업은 그의 아틀리에에서 약 3년간 일하며 모던건축에 대한 시야를 키웠다. 이후 1956년 귀국하여 서울 종로구에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한 뒤 르 코르뷔지에에게 배운 내용을 한국에 맞게 풀어냈다. 김중업은 귀국 첫 해에 <부산대학교본관>, <명보극장>, <건국대학교 도서관>을 설계하였으며, <인천해무청사> 등의 계획안을 진행했다. 그는 한국전쟁 후 부족한 물질적 기반 위에 세워진 한국 건축계의 한계를 넘어 모더니즘과 한국의 전통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김중업건축연구소 당시 사진들 김중업건축연구소 당시 사진들 1957년 서울의 공보실 공보관에서 열린 김중업의 건축 전시회 풍경 1957년 서울의 공보실 공보관에서 열린 김중업의 건축 전시회 풍경

특히 김중업은 예술가로서의 건축가를 추구하였다. 건축가로서는 최초의 개인전이었던 <김중업 건축 작품전>을 개최했으며,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건축가의 작가적 입지를 알리는 데 힘썼다. <김중업 건축 작품전>은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한 후 1년가량이 지난 시점인 1957년 4월에 열렸으며 그동안 진행한 작업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당시 건축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전시 감상이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또한 사회를 위한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1971년에는 광주대단지 필화사건을 비판하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 추방돼 프랑스 파리로 떠나게 된다. 추방 직전 발표했던 <삼일빌딩>은 후기 대표작 중 하나로 빠르게 개발되는 서울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197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김중업의 건축은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미래주의적 면모를 띄게 된다. 그러나 유토피아적 이상을 꿈꾸었던 그의 말년 계획안들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고,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이 유작으로 남게 되었다. 서울 잠실 올림픽 공원에 설치된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은 올림픽 정신을 구상적으로 표현하고 대회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한국의 전통적인 문의 개념을 도입했으며 문 앞쪽 마당에는 괴면 두상 조각을 얹은 열주가 길게 나열되어 있다. 이는 미술작가 이승택이 제작하였는데, 예술가와의 협업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 광주대단지 필화사건 : 1969년부터 서울시는 광주대단지로 철거민들을 이주시켰으나, 열악한 환경에 불만을 품은 철거민들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김중업은 당시 이 사건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동아일보에 기고한 후, 1971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추방을 당한다.

김중업, <삼일빌딩>(1969년 설계) 김중업, <삼일빌딩>(1969년 설계) 김중업,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1986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1986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 다이얼로그>는 작가의 연대기를 역순으로 배치해서 작가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것들을 살펴본다. 더욱이 이번 전시를 위해 김태동, 김익현 사진가가 김중업의 작품을 새롭게 찍은 건축 사진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김중업의 건축을 지금의 사회문화적 풍경 속에서 재해석한다. 또한, 1971년 프랑스 영화감독과 함께 주한프랑스대사관과 삼일빌딩 등을 배경으로 만든 건축영화 ‘건축가 김중업’도 볼 수 있다. 이처럼 김중업의 다채로운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함께 살펴보자.

김중업, <태양의 집(現 썬프라자)>(1979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 <삼일빌딩>(1969년 설계)
 
 
사진작가 김태동이 2018년에 다시 찍은 <태양의 집>. 지어진 지 약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과거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여전히 쇼핑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작가 김태동이 2018년에 다시 찍은 <태양의 집>.
지어진 지 약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과거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여전히 쇼핑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던 김중업, 그가 세상에 남긴 작품

#세계성과 지역성- 한국적 모더니즘의 실현

김중업은 해외에서 유학하며 ‘현대 건축’을 자연스레 접하였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문화재보존위원회 위원, 국립경주박물관 계획 등을 진행하며 한국 전통을 탐구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의 작업 세계 안에는 ‘세계성과 지역성’이라는 두 가지의 가치가 공존하였다. 김중업은 1950년대에 부산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도서관, 서강대학교 본관 세 개의 대학건물을 설계하였다. 부산대학교 본관은 그 중 첫 번째로 설계한 건물이다. 규칙적인 모듈에 의한 평면구성과 높은 층고, 넓은 유리를 통한 파노라마 경관, 후면부의 모자이크 창 구성 등은 르 코르뷔지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산대학교 본관(1956년 설계) 앞 기념사진을 찍은 김중업 부산대학교 본관(1956년 설계) 앞 기념사진을 찍은 김중업 현 부산대학교 인문관 촬영: 김익현(2018). 이 건물은 2012년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되었으며, 지어진 지 약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부산대학교 인문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 부산대학교 인문관 촬영: 김익현(2018).
이 건물은 2012년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되었으며,
지어진 지 약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부산대학교 인문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예술적 사유와 실천- 예술가로서의 건축가

건축가의 작가적 입지를 알리는 데 힘을 썼던 김중업은 평소 교류했던 예술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작가들의 전시나 작품을 후원하는 등 문화예술계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그는 예술가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했으며 <주한프랑스대사관>,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 등에서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건축에 접목하며 건축을 매개로 한 총체 예술을 구축하고자 했다.

김중업, <주한프랑스대사관>(1960년 설계) 김중업, <주한프랑스대사관>(1960년 설계)
김중업, <주한프랑스대사관>(1960년 설계)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한국 현대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관저와 대사관 건물의 지붕은 한식 기와지붕처럼 하늘로 치켜 올려져 콘크리트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관저 외벽을 장식한 모자이크는 옛 기와조각과 자기를 부숴 제작한 것인데, 이 벽화 제작에는 윤명로, 김종학 작가가 참여했다. 이 벽화는 토속적인 재료를 추상미술의 형식과 기념비적 스케일로 재구성하여 국제주의 건축에 한국성을 도입했다.

# ‘도시와 욕망’- 급변하는 도시 속에 쉽게 변하지 않을 이상적인 공동체 공간

김중업의 복잡하고 다양한 후기 작업을 읽기 위해서는 빠르게 성장했던 한국 도시의 발전 조건들과 연관 지어 볼 필요가 있다. 김중업은 도심 안에 당대 기술과 자본을 응집시켜 <도큐호텔>, <삼일빙딩> 등 많은 빌딩을 지었다. 또한 변화하는 사회 구조에 따라 산부인과, 쇼핑센터 등 새로운 시설과 독특한 개인 주택들을 선보였다. <서병준 산부인과의원>은 김중업 건축 모티브의 하나인 증식하는 원의 구성방식으로 지어진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조형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가 가능한 곡선을 사용하여 독특하면서도 기능적으로 설계되었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조형성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김중업, <도큐호텔(現 단암빌딩)>(1968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 <도큐호텔(現 단암빌딩)>(1968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 <서병준 산부인과의원(現 아리움 사옥)>(1965년 설계), 김중업박물관 소장 김중업, <서병준 산부인과의원(現 아리움 사옥)>(1965년 설계), 김중업박물관 소장

# 기억과 재생 - 남겨지고 사라지는 건축물의 시간성에 대하여

제주대학교 본관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표현한 건물이자 김중업이 “길이 남겨 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할 정도로 그에게 소중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1984년에는 보수공사를 통해 창틀이 아치형에서 장방형으로, 건물 외벽은 미색으로 바뀌었다. 이후 건물 기둥의 부식 정도가 심해 1996년 결국 철거되었다. 현재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김중업의 건축물은 기념비가 되거나 사라지거나, 혹은 현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역할을 하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건축의 수명·도시 재생·현대적 문화유산의 보존과 제도 등 건축을 둘러싼 기억의 여러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김중업, <제주대학교 본관 스케치>(1965),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 <도큐호텔(現 단암빌딩)>(1968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 <제주대학교 본관>(1965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 <제주대학교 본관>(1965년 설계),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김중업은 한국 건축사적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사적 맥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은 그에 대한 총체적 연구가 부족한 현실에서 건축과 예술의 만남을 보다 두텁게 쌓아 후속 연구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전시이다. 아울러 김중업 건축 작업의 목록을 지형도로 만들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그가 남긴 건축의 흔적들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김중업이 위대한 유산처럼 남긴 작품들을 만나며 획일화되어가는 우리 도시 풍경을 고찰하고, 건축에 대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딱딱한 시선을 잠시 거두고 김중업이 관객에게 전하는 말, 그의 ‘다이얼로그’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