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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이 세계에 던지는 질문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전시실 전경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전시실 전경

전시정보<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MMCA서울 6·7전시실·미디어랩, 2018.10.27.~2019.04.07.

“내 작품들은 영화와 텔레비전에 대항해 만들어졌다”
-하룬 파로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비평가인 하룬 파로키는 영화 외에
비디오 및 설치 작업으로 작품 활동의 스펙트럼을 확장한 예술가이다.
노동, 전쟁, 테크놀로지의 이면과 함께 이미지의 실체를 추적해온
그의 작품들은 이미지를 담아내는 모든 매체에 대한 사유이자 실천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5년부터 현대 영화사의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올해는 세계를 지배하는 이미지의 작용 방식과 함께
미디어와 산업 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폭력성에 대해
비판적 해체의 목소리를 냈던 하룬 파로키를 불러온다.

하룬 파로키, 그는 누구인가?

국립현대미술관은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전을 2018년 10월 27일부터 2019년 4월 7일까지 MMCA 서울 6, 7전시실, 미디어랩에서 개최한다. 아시아에서 하룬 파로키를 소개한 전시로는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다.

하룬 파로키
하룬 파로키

하룬 파로키(1944~2014)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그리고 비디오 및 설치 작가로 활약한 예술가이다. 그는 1966년 베를린영화아카데미 1기로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꿈을 키웠는데,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고 기존의 관찰자적인 다큐멘터리 방식을 거부했다. 영화를 통해 이미지가 갖는 정치·사회적 맥락을 지속적으로 분석했고, 세계를 지배하는 힘에 편승한 이미지의 실체를 추적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행보를 펼쳐나간 하룬 파로키는 생전 뉴욕현대미술관(2011), 런던 테이트모던(2009·2015), 파리 퐁피두센터(2017) 등에 소개될 정도로 인정받는 작가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하룬 파로키’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미술, 예술, 영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하룬 파로키는 이렇게 생각했다. ‘영화를 통해 통념에 의해 구축된 세계의 이미지를 조합하고 해체하여 우리가 간과한 낯선 세계를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의 현재가 역사가 되는 과정을 담을 수 있다’고 말이다. 현대 예술이 반이성으로 뒤덮인 시대에서 이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길 바랐던 하룬 파로키. 그의 작품을 만나보자.

파로키의 작품,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번 전시에서는 하룬 파로키의 주요 작품 9점을 선보인다. 그는 1990년대부터 미술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독일 독립영화계에 닥친 불황으로 인해 영화의 배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파로키는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는데, 좌절에 굴복하기보다 시야를 키워 미술관 전시라는 돌파구를 찾았다.

하룬 파로키, <인터페이스>(1995) 하룬 파로키, <인터페이스>(1995)
하룬 파로키, <인터페이스>(1995)

그 첫 작품이 바로 두 개의 채널로 구성된 <인터페이스>(1995)이다. 이 작품은 그의 에세이 다큐멘터리들을 2채널 모니터로 재생시켜 두 이미지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분석한다. 두 대의 모니터에서 각기 다른 노동 현장의 기록을 보여주며 당시의 지정학적 맥락과 함께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말해준다.

하룬 파로키,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2006)
하룬 파로키,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2006)

2000년대부터 하룬 파로키는 보다 본격적으로 전시를 목적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기 시작한다.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2006)에서는 노동의 이미지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고고학적 시각으로 추적한다. 이 작품에서는 110년간 제작된 수많은 영화 속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은 그들의 근로 조건을 상상하게 한다. 또한 군중의 모습으로 규합된 단체 이미지와 이내 흩어지게 되는 개인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하룬 파로키, <평행 I>(2012) 하룬 파로키, <평행 I>(2012) 하룬 파로키, <평행II >(2014) 하룬 파로키, <평행II>(2014)

<평행 I – IV>(2012~14) 시리즈는 컴퓨터 그래픽이미지를 분석하여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를 조명한다. 작가는 게임 속 아바타를 ‘인간과 배경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매개적 존재’라 부른다. <평행>시리즈에서 게임 속 아바타는 개발자가 만들어 놓은 가상세계에서 선택의 한계에 부딪치며 완벽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한다.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노동의 싱글 숏>(2011)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노동의 싱글 숏>(2011)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노동의 싱글 숏>(2012) 안체 에만, 하룬 파로키, <노동의 싱글 숏>(2012)

하룬 파로키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아내이자 작가 겸 큐레이터인 안체 에만과 함께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노동의 싱글 숏>(2011~2017)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작품은 ‘워크샵 프로젝트’로 세계 곳곳의 노동 현장을 단일 숏으로 촬영·제작하였다. 이후 2017년부터 안체 에만에 의해 다시 촬영하여 3개의 도시가 추가되었는데, 이번 전시에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추가로 제작된 영상이 전시된다.

인위적인 편집이 배제된 <노동의 싱글 숏>은 픽션이나 다큐멘터리로 분류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노동 자체를 바라보게 한다. 관람객은 전시실 천장에 매달린 16개의 다중채널로 영상을 받아들이며, 극장에서 한 화면을 쭉 이어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지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한편, 전시와 연계하여 세계적인 영화학자인 레이몽 벨루(프랑스)를 비롯해 에리카 발솜(영국), 톰 홀러트(독일), 크리스타 블륌링거(오스트리아) 등의 강연이 진행된다. 11월 14일부터는 하룬 파로키의 영화 48편이 MMCA 서울 필름앤비디오 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삶의 조건들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하룬 파로키가 작품을 통해 던진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명제는 지금의 우리가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이자 또 누군가에게 건넬 질문으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