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2019.08.011439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70년 화업 인생을 말하다

박서보 작가

박서보 작가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수많은 전시 중
해당 작가에게 직접 작품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예술 세계에 대해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녹음이 짙게 우거졌던 여름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흔을 목전에 둔 노(老)화가와 그를 사랑하는 관람객들이 함께
70년 화업 여정을 되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박서보를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을 함께해보자.

박서보, 지나온 삶을 반추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지난 7월 5일, ‘전시를 말하다-<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토크 I-박서보 작가와의 만남’이 열렸다. 행사장은 한국 단색화의 거장을 만나기 위한 참가자들로 가득 찼고, 현장에서 관심을 보이는 관람객들까지 더해져 인산인해를 이뤘다. 모두의 기대감 속에서 등장한 박서보 작가는 사람들의 환호에 밝은 미소로 화답하며 본격적으로 대담을 시작했다.

‘전시를 말하다-<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토크 I-박서보 작가와의 만남’ 현장 모습 ‘전시를 말하다-<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토크 I-박서보 작가와의 만남’ 현장 모습
‘전시를 말하다-<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토크 I-박서보 작가와의 만남’ 현장 모습

마치 전래동화를 들려주듯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그는 “아버지가 사주를 볼 때 ‘두 번째 맞이한 부인이 낳은 셋째 아들이 세계적 인물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여러 번 들으셨는데, 그게 바로 나”라며, “법률가였던 아버지는 공부 머리가 좋던 나에게 많은 기대를 거셨지만 나는 청개구리처럼 노는 것을 좋아하고 모험심도 강해 딴 짓을 많이 했다”며 웃었다. 특히 “중학교 시절 포스터 공모전에 나가 전국 1등 상을 받았고 이후 홍익대 동양학과에 덜컥 합격하자 아버지가 몸져눕기도 했다”며 미술에 발을 들인 계기를 설명했다.

그러나 1학년 첫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학교가 통째 부산으로 피란을 갔고, 동양학과 내부 사정마저 여의치 않아 서양화과로 이적을 해야 했는데, 바로 그곳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작가를 스승으로 만났다. 김환기 작가는 동양화만 접해왔던 제자가 학교 과제로 처음 유화작품을 그리자 이를 알아보고 ‘이 친구가 대가로군’이라며 칭찬을 했다. 박서보 작가는 “스승님께서 그 그림을 절대 팔지도, 잃어버리지도 말라고 했지만 이사를 다니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는데, 아직도 생각이 난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대가에게 듣는 예술의 철학, 박서보가 말하는 변화란?

박서보 작가는 토크 사이사이에 관객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한 남성 관객이 ‘꾸준히 멈추지 않고 화법을 바꿀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 묻자 박서보 작가는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변하려다가 추락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남의 것을 곁눈질로 베껴 제 것처럼 세상에 공표했을 때 그렇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변화의 한 중심에 서 있었다. 작가는 1950년대에 국내 최초의 앵포르멜 작가로 평가 받았으며 한국 전쟁의 참혹함을 캔버스에 담기도 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 1960년대 중후반에는 인체의 구상성을 확연히 드러내고, 추상과 사실이 함께 어우러진 몽타주 형식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 유전질 시기에는 인공위성, 살인범, 유괴범 등이 나오는 뉴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대중문화와 현대인의 모습을 화려한 색채를 이용해 풀어내며 예술가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변화한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변화가 나를 찾아왔을 때, 바로 세상에 공표하지 말고 4~5년간 정진해야 한다. 그 변화와 기법이 내 신체처럼 당연해질 때까지 숙성시키고, 실험의 기간을 보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관람객이 박서보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관람객이 박서보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박서보, <유전질 No.15-70>(1970) 박서보, <유전질 No.15-70>(1970) 박서보, <묘법(描法) No.6-67>(1967) 박서보, <묘법(描法) No.6-67>(1967)

마치 인생 선배처럼, 때론 아버지처럼 관람객에게 전한 조언

한편, 박서보 작가는 예술에 관한 주제를 넘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귀 기울일만한 깨달음도 전해줬다. 그는 일기장에 소소한 것까지 적어 놓고 스크랩을 철저히 하는 자신의 생활습관을 예로 들며 “진리란 책 속이나 하늘 높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를 관리하는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며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자녀를 둔 관람객들에게는 “자기 자녀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하거나 채근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그저 기다리다 보면 그들이 또 다른 ‘박서보’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작가의 화업 인생을 돌아보는 자리가 끝난 후에는 기념촬영의 시간이 있었다. 마치 스타와 만나는 열혈 팬처럼 작가와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관람객이 많았고, 이에 박서보 작가는 길게 늘어선 줄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시종 웃는 얼굴로 진심을 담아 사인을 하고, 덕담을 건넸다.

홍세림 씨 홍세림 씨 행사가 끝난 후 박서보 작가와 기념 촬영을 한 관람객들 행사가 끝난 후 박서보 작가와 기념 촬영을 한 관람객들

이날 행사가 끝나고 만난 관람객들. 오늘 박서보 작가와의 토크를 어떤 마음으로 참관했을까. 작가의 후배이자 미술 전공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홍세림 씨는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동안 배웠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 좋았고, 작가님을 실제로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평소 미술관을 즐겨 찾는다는 우수완 씨는 “박서보 작가의 묘법 작품 앞에 섰을 때 굉장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며 “오늘 강조하신 말씀처럼 비움에서 비롯된 작품이기 때문에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이날 대담에서 질문을 던지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조용모 씨는 “최근 단색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평생 예술에 매진해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자리에 오른 박서보 작가님을 만나 뵐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우수완 씨 우수완 씨 조용모 씨 조용모 씨

박서보 작가와 함께 그의 예술 인생 70년을 되돌아보고, 작가로부터 작품과 예술 철학, 그리고 생활 속 깨달음과 실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던 시간. 이번 행사는 누군가에게 평생 기억할만한 추억이 되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깨우침을 얻은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비록 토크는 끝났지만, 박서보 작가의 작품은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미술관을 방문해 ‘예술은 관람객에게 쉼터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온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짧지만 강렬한’ 휴식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MMCA 뉴스레터 구독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