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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1907

한국의 역사 위에 예술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5팀’을 만나다

<덕수궁-서울 야외 프로젝트 : 기억된 미래> 참여 건축가 5팀

<덕수궁-서울 야외 프로젝트 : 기억된 미래> 참여 건축가 5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과 서울에서 개최 중인
<덕수궁-서울 야외 프로젝트 : 기억된 미래> 전은
덕수궁,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과 조화를 이루는
현대 건축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재해석하고
미래의 도시를 상상해 보는 건축전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아시아 지역과 세계무대를 오가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쌓아 올리고 있다.
동시대 건축가들이 ‘궁궐’과 ‘미술관’이라는 도면에
어떤 설계도를 그려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했는지 확인해보자.

OBBA, 대한제국의 역사적 슬픔을 기쁨으로 재탄생시키다

OBBA(이소정, 곽상준)OBBA(이소정, 곽상준)

Q. 이번 전시의 참여 소감이 궁금합니다.

궁궐 안에 무언가를 설치해 보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번 전시가 더욱 흥미롭고 값지게 느껴졌고, 우리 작품과 문화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건축 전시의 특성상 그동안은 많은 대중에게 저희 작품을 선보이기가 어려웠는데, 덕수궁은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외국인들까지 많이 찾는 곳이라 작품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OBBA, <대한연향(大韓宴享)>(2019) OBBA, <대한연향(大韓宴享)>(2019) 작품을 설명하는 OBBA 작품을 설명하는 OBBA

Q.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에 기록된 연향 속 가리개 만인산과 천인산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이것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작품의 표면이 굉장히 독특한데 재료를 고를 때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작품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전에 덕수궁의 역사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조사하던 중, 1902년 중화전 앞마당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전통 연회가 열렸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에 기록되기도 한 연향인데, 황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 고종의 의지를 추측할 수 있죠. 하지만, 강대국에 의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길지 모르는 가슴 아픈 시대 상황에서 열린 축제였습니다. 이 병풍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난 후 가슴이 먹먹했는데, 저희가 이 슬픔의 공간을 즐거움과 환희의 공간으로, 또 더 이상 슬퍼만 하는 공간이 아닌 즐거움도 도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병풍에는 천인산 만인산이라는 가림막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쓰임새에 따라 공간을 창출하거나 해 또는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렇듯 ‘전환하는’ 특성에 주목했죠. 가림막 구성 재료로 오색 반사 필름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복합적이에요. 이번 작품은 외부에 일정 기간 동안 설치되기 때문에 배경 역할을 하는 계절 풍경과 어우러지기도 해야 했지만, 별개로 화려함도 주고 싶었습니다. 또 외부의 오염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내구성을 지녀야 해서 투과성과 반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람과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산란’을 잘 구현해낼 수 있는 반사 필름이 필요했죠. 그래서 오랜 시간 물에 담가두거나 냉동고에 넣어보기도 했어요. 저희의 작품은 거울 같기도 하고, 유리처럼 빛을 투영하기도 해요. 바람이 불면 고정된 풍경을 파편화시키기도 하고요. 관람객들이 이 모습을 보며 끊임없이 역사의 기억을 환기시키고, 대한민국의 안녕을 염원하기를 바라며 제작했습니다.

CL3, 가구를 통해 대한제국 왕실의 삶을 상상하다

홍콩 건축가 CL3(윌리엄 림)홍콩 건축가 CL3(윌리엄 림)

Q. 이 작품은 대한제국의 과도기 시절 ‘중첩된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작품 제목처럼 ‘전환기의 황제를 위해’ 바퀴 달린 가구를 디자인했고, 이를 통해 이동성과 변위라는 개념을 탐구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전통문화를 밑바탕에 두고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도시 안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매체나 소셜 미디어가 등장한 뒤로 문화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데다 국내에서의 이주, 국외로의 이민이 빈번하게 일어나죠. 한곳에 오래 정착하는 사람보다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임시적인 삶의 형태가 많아지고 있는 것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역사를 잊는다면 우리에게는 그 어떤 문화적 기준도 남지 않고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가구라는 매체로 전통을 다시 한 번 해석하고, 그 안에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녹여보고자 했습니다. 작품이 위치한 함녕전은 주로 황제의 침전으로 쓰이던 곳인데, 그중에서도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안뜰’은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중첩의 공간이기도 해요. 이 함녕전의 안뜰에 이동성이 있는 가구를 만듦으로써 변위와 변화 등으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의 요람을 만들고 싶었죠.

작품을 살피고 있는 윌리엄 림 작품을 살피고 있는 윌리엄 림 CL3, <전환기의 황제를 위한 가구>(2019) CL3, <전환기의 황제를 위한 가구>(2019)

Q. 보통 미술관의 작품은 관람 선 안에 보호되기 마련인데, 그런 것 없이 마당에 배치하여 관람객들이 직접 가구에
앉아 볼 수 있도록 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작품을 단순히 눈으로 관람하는 것뿐 아니라 즐기는 것이 중요해요. 예술과 관람객이 교감을 하는 게 핵심이고, 이를 위해 내구성 있게 설계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관람객을 존중하는 만큼 그들도 제 작품을 존중해준다면 망가지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을 거라고 믿어요. 특히 가구를 전시하는 것이잖아요? 가구는 원래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졌어요. 제작 의도 중 하나가 ‘전환기 황족들의 삶을 상상 해보는 것’인데 직접 사용해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아시아 지역에 공통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디자인의 영역은 미적인 부분만큼 실용성 또한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죠. 황제의 침실로 향하는 안뜰에서, 이동하는 가구들을 접하며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중첩과 변위’라는 개념에 대해 관람객들이 생각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겠습니다.

스페이스 파퓰러, 덕수궁의 광명문 너머 가상의 공간을 바라보다

스페이스 파퓰러(라라 레스메스, 프레드리크 헬베리)
태국에서 처음 디자인 회사를 설립한 이들은 세계 여러 곳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스페이스 파퓰러(라라 레스메스, 프레드리크 헬베리)
태국에서 처음 디자인 회사를 설립한 이들은 세계 여러 곳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Q. <밝은 빛들의 문>은 ‘광명문’이라는 이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작업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작품이 설치된 광명문은 국왕이 기거했던 내전으로 향하는 입구라고 들었어요. 이 문을 액자로 삼아 관람객을 가상의 공간으로 인도하고 싶었고, 건축적인 부분과 미디어 간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또한 문이라는 것은 내부로도 들어갈 수 있고 외부와 연결되는 상징인데요, 현대인들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도 마치 문과 같다는 생각했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더 넓은 세상, 다른 세상으로 접근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광명문에 미디어 작품을 설치해 ‘문을 지나고 나면 그 뒤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은유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미디어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의 삶의 변화가 인터넷과 만나 이전보다 훨씬 빨리 변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이를 건축적인 방식으로 나타내고자, 광명문에 마치 핸드폰 액정과도 같은 <밝은 빛들의 문>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스페이스 파퓰러, <밝은 빛들의 문>(2019) 스페이스 파퓰러, <밝은 빛들의 문>(2019) 작품을 설명하는 스페이스 파퓰러 작품을 설명하는 스페이스 파퓰러

Q. 한국의 단청 보수 전문가와 워크숍 등을 하며 단청 패턴에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단청에 대해 알아가며 느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단청이라는 것에 많은 영감을 받아 단청보수전문가와 워크숍을 함께 진행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는 전 세계에서 ‘장식의 요소’로서의 컬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섬세하게 쓰는 것이 바로 단청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 미묘한 조합은 단연 최고이니까요. 너무나도 독보적인 색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저희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처럼 몇 달간 단청에 대해 배우고, 그 안에서 문화적 코드를 찾아내 미디어와 건축을 이음으로써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연결고리를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뷰로 스펙타큘러, 공중에 미래를 건설해 현재를 과거로 만들다

대만계 캐나다 건축가 뷰로 스펙타큘러(히메네즈 라이)대만계 캐나다 건축가 뷰로 스펙타큘러(히메네즈 라이)

Q. <미래의 고고학자>이라는 작품은 작품 제목만큼 독특한 기획 의도를 가지고 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1년간 쌓이는 먼지는 약 3mm라고 합니다. 시간을 이런 방식으로 치환한다면, 6m 높이의 이 작품은 수천 년 동안 쌓인 대지라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작품에 설치된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순간 관람객은 수천 년 후의 미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고, 작품 위에서 바라보는 ‘2019년 현재’는 까마득히 먼 과거가 되어버려요. 원래는 궁궐 높이만큼 작품을 쌓아 올리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려워 아쉽게 됐죠. 하지만 관람객들은 이 작품에 올라가 ‘궁궐’을 아래에서 위로 우러러보는 게 아닌, 비슷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미래의 고고학자가 지금 이 순간을 발굴할 때 과연 우리가 쌓아 올린 시간의 높이는 어느 정도가 될까’ 하고 말이죠.

뷰로 스펙타큘러, <미래의 고고학자>(2019) 뷰로 스펙타큘러, <미래의 고고학자>(2019) 작품을 살피고 있는 히메네즈 라이 작품을 살피고 있는 히메네즈 라이

Q. 당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서 바라본 과거는 어떤 모습이고, 또 발굴한 미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 작품의 근본적인 목표는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더해주는 것입니다. 계단에 올라 맨 꼭대기에 서는 것은 ‘미래의 표면’에 서는 것이고 여기서 과거를 바라본다는 설정인데, 그 과거란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말하는 것이잖아요. 저는 미래가 어떤 모습이라고 예측하기 위해 작품을 제작했다기보다, 현재와 나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 내리고 싶었어요. 사실 현실을 살다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것들과 접하게 되는데요, 수천 년 후 그것들은 결국 사라지겠죠. 그렇기에 현재 나를 못살게 구는 고민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망하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결국 현재를 인지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는 플랫폼인 거죠. 우리는 지금보다 덜 걱정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오브라 아키텍츠, 공공예술을 통해 기후 문제를 논하다

뉴욕과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오브라 아키텍츠(제니퍼 리, 파블로 카스트로)뉴욕과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오브라 아키텍츠(제니퍼 리, 파블로 카스트로)

Q. <영원한 봄>은 오늘날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르는 기후변화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하고, 시민들이 추운 겨울에 이용할 수 있는 공공미술의 성격을 갖고 있는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전 지구적 차원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기후 변화라고 봅니다. 그래서 작품 안에 ‘가공된 인공 기후’를 설정해두고, 혹한의 날씨에도 대중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한 뒤 세계의 기후와 환경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는 시각적 장치를 설치했어요. 관람객들이 이 안에 들어와 기후 문제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문제 의식을 가졌으면 했거든요. 작품 표면을 제작할 때 참고한 것은 곤충의 눈이에요. 곤충의 눈은 저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각도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잖아요. 이처럼 관람객들도 기후 변화를 통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잘못된 부분들을 살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작하게 됐습니다. 인위적으로 봄의 기후를 생성하는 작품 안의 기계를 바라보며 관람객들이 인종, 성별, 국적에 상관없이 더 나은 세상을 꿈꿨으면 합니다.

오브라 아키텍츠, <영원한 봄>(2019) 오브라 아키텍츠, <영원한 봄>(2019) 오브라 아키텍츠, <영원한 봄>(2019)

Q. 현재 당신들은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일반 예술 활동을 할 때와 ‘공공 예술가’로 활동을 할 때 차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전시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인 개념에서 미술관이 지닌 공간을 확정하는 것에서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작품 활동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예술은 종종 삶의 도피처나 탈출구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예술이란 현실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작품 설치중의 오브라 아키텍츠작품 설치중의 오브라 아키텍츠

이처럼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건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관람객들에게 전한다. 방안에만 있기 아쉬운 가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과 서울에 방문해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확인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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