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의지와 기술 이상 - 20세기말 제3의 모더니즘에 관한 소고 -

임 석 재


     Ⅰ. 서론 - 현대건축개관
     Ⅱ. 존재의지와 기술이상, 모더니즘의 영원한 미제
     Ⅲ. 구조 미학과 후기 모더니즘, 그리고 하이테크 건축
     Ⅳ. 반(反)기계미학 운동
     V. 제3의모더니즘-존재의지와기술이상을 통합하는 새로운 제 3 력

   Ⅰ. 서 론 - 현대건축개관
1920년대에 본격화된 서구 건축에서의 아방가르드 논쟁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아방가르드 진영의 승릴 결판이 났다. 아방가르드 건축은 '구조 생산성에 의한 효율'이라는 부의 미덕을 가져다주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새로운 가치를 이전까지 본 적이 없는 혁명적 이미지로 번안 해내며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을 창출했다.

이제 아방가르드 건축은 투쟁의 단계 를 넘어서 항시적 가치를 획득하며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개념으로 동의되었다. 그러나 아 방가르드 건축이 보여준 비정상적인 투쟁 양상은 이미 그 초창기부터 알은 선각자들에 의해 지적되었듯이 또다른 절대주의적 폐해를 낳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은 모든 분야 에서 그러하듯이 모더니즘 건축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기부터 포스 트모던 논쟁이 시작된 1960년대 말까지의 기간을 전환기(Transitional Period) 혹은 제3세대 (The Third Generation) 건축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전환기 건축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며 포스트모던 건축의 도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첫째는, 전쟁 후의 복구 문제 및 세계경제 재편기와 맞물리면서 국제주의 양식의 박스건물 이 부의 축적 수단으로 차용되기 시작하였다. 국제주의 양식이 추구했던 미니멀리즘(minima- lism)적 세계관은 묻혀진 채 '가장 낮은 가격에 가장 많은 바닥 면적을 제공'하는 물리적 가능성만이 극단적으로 차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전후 복구를 빨 리 마쳐야 하는 전쟁 당사국들, 상업 자본주의하에서의 부동산 개발을 본격화한 미국의 대도 시들, 그리고 뒤늦게 독립하여 근대화가 절실한 제3세계의 수도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국제주의 양식은 심하게 왜곡, 변형된 형태로 물리적 부를 축적하는 첨병역할을 수행하면서 그 대가로 건축 환경의 파괴 및 도시문제 등과 같은 인문적 가치의 손실을 치루었다. 둘째는, 이와같이 왜곡된 형태로 구체적인 폐해를 낳기 시작한 국제주의 양식에 대한 반발 로서 탈 모더니즘의 실험 운동들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 예를 들어보면, 먼저 국제주의 양식의 폐해를 박스형태가 갖는 시각적 단조로움으로 보고 그 대안을 건물의 조형성에서 찾으려는 형태 운동과 뉴 브루틸리즘(New Brutalism)등을 들 수 있다.

그 다음 으로는 국제주의 양의의 폐해를 지역간 문화적, 환경적 차이를 지우려는 보편적 절대주의로 보고 그 대안을 지역적 특성에서 찾으려는 지역주의(Regionalism) 건축이다. 마지막으로 국제 주의 양식의 폐해를 도심의 무차별 개발과 역사적 단절로 보고 그 대안을 도심 보존과 역사 어휘의 부활에서 찾으려는 도시운동(Urbanism), 맥락주의(Contextualism), 리바이벌리즘 (Revivalism) 등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탈 모더니즘 운동들 중 일부는 구체적 운동으로 발전 하기도 하고 또다른 일부는 아직 실험적 개념만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기도 하면서 포스트 모던 운동의 밑바탕을 닦는 역할을 하였다.

셋째는, 왜곡되어 잘못 추구되고 있는 모더니즘 건축의 기술 이상을 올바로 계승하여 응용 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경향은 국제주의 양의의 폐해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그 대안을 모더니즘 전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이것의 수정, 재정의 및 변형적 각색에서 찾으려는 시도들 이다.

대표적 예로 구조미학 운동, 구조주의(Structuralism), 후기 모더니즘(Late-Modernis- m)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모더니즘을 재정의하려한 점에서 역시 포스트모던 건 축의 기본 개념을 일정 부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경향들은 1950∼60년대의 전환기 건축을 특징짓는 건축적 고민들로서 그 기본 개념들에 있어서는 사실상 포스트모던기 이후의 현대 건축의 틀을 이미 일정 부분 완성시킨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이 시기에 전성기를 보낸 알바 아알토(Alvar Aalto) 와 루이 칸(Louis Kahn)이라는 2명의 거장은 이러한 전환기의 역사적 의미를 배가시켜 준다. 이 두 명의 건축가는 위에 나열한 전환기의 경향들에 의해서는 분류하기 힘든 특징을 나타낸다.

이런 가운데 아알토는 지역의 정서를 모더니즘의 보편적 어휘와 통합시켜낸 점에서(도판 1), 그리고 칸은 건축에서의 가장 보편적인 '쌓는다'는 가치를 인간의 감성 해석의 문제로 환 원해 내며 민주 시대에 알맞는 새로운 기념비적 상을 제시한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갖는다.

(도판 2) 아알토와 칸은 완성도 높은 구체적 결과물을 제시하면서 자칫 논쟁의 흥분으로만 끝나 기 쉬운 전환기의 위험성을 극복하였다. 아알토와 칸은 완결된 작품은 그 어떤 논쟁보다도 우 위에 선다는 예술적 상식을 확인시켜 주며 전환기의 건축적 수준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 였다.

이런 가운데 전환기의 건축 기간에 포스트모던의 시작을 예견해 주는 역사적 사건들이 진 행되었는데 다음의 세가지가그 대표적 예에 해당된다. 첫재는, 1959년의 <국제 모더니즘 건 축가 회의(CIAM)>에서의 논쟁들이다.

이 회의는 이때까지 건축가 개인별로 시도되던 전환 기적 고민들이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국제 회의에서 처음으로 집단화된 양상으로 제시된 중 요성을 갖는다. 그 내용은 위에서 소개한 탈 모더니즘 운동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둘째는 1966년에 미국과 유럽에서 출판된 알도 로시(Aldo Rossi)의 『도시 건축론(L'Architecttura della Citta)』과 미국의 뉴욕에서 출판된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의 『건축에서의 복 합성과 대림(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이 그것이다. 이중 전자는 유 럽의 오랜 건축과 전통인 고전주의가 지니는 절대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는 '시어리 어시즘(Seriousism)'을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반면 후자는 상업 자본주 의하어서의 소비 문화를 둘러싼 일상 생활적 가치를 삭막한 국제주의 양식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이 두 권의 책은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각각 유럽과 미국에서의 포스트모던 운동 에 대한 효시가 되었다.

셋째는, 1973년 미국의 세인트 루이스(Saint-Louis)시에서 있은 프로 이트-이고에(Pruit-Igoe)란 아파트 철거 사전이다. 폭파 공법으로 철거된 이 아파트는 전형적 인 국제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국제주의 양식은 밝고 균질한 공간이라는 더 나은 건축 환경을 이상으로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내 슬럼과 공동화 현상과 범죄를 더욱 증가시키는 모순을 낳아왔다. 프루이트-이고에 아파트 철거는 국제주의 양식의 실패를 상징하 는 사건으로 이후 포스트모던 운동 하에서의 인본적 건축 가치를 되찾는 작업을 가속화시켰 다.

이러한 과정을 거적 1970년대부터 포스트모던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포스트모던 운동 하에 서는 전환기에 시도된 실험적 고민들이 본격화되며 구체적인 양식운동들로 발전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운동들이 더욱 다양한 양태로 전개되면서 이제 '포스트모던'이라는 한 가지 개념으로 분류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 시기의 건축운동들은 통칭하는 시대 이 름을 아직 갖지 못한 채 신다원주의(New Pluralism)경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포스트모던 이 후의 건축은 수많은 새로운 건축개념들을 바탕으로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것을 나타내 는 양식이나 학파의 명칭만도 수십개에 달하고 있다.

또한 지역적으로 보더라도 이 시기의 건 축은 주도적 중심국가 없이 각 국가별로 처한 상황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 다. 포스트모던 이후의 건축은 건축가들에게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부여하며 좀 더 새로우면 서도 이상적인 건축 모델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백가쟁명의 수많은 포스 트 모던의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 내용들을 모두 거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포스트모던 이후의 건축적 상황을 이해하는 한 가지 시각은 추구되는 이상적 가치에 따 른 건축 주제별로 분류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기준이 되는 건축 주제들로 '역사 적 연속성과 고전 건축', '시각적 서비스에 의한 건축적 다의성과 의미 전달 기능', '기본 단위 개념과 근원(origin)적 가치', '도시의 보존과 건축적 환경', '형태주의와 기하 미학', '새로운 구조미학의 탐구', '문화 비평과 팝건축' 등을 제시하교 싶다. 이 글에서는 이중 인간의 존재 문제와 기술 이상을 다룬 건축 운동들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