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반(反)기계미학 운동
그러나 하이테크 건축이 제시하는 인공적인 꽃장식과 영롱한 유리의 이미지가 인류의 미래
에 대한 진정한 건축모텔이 될 수 있는가 국제주의 양식의 기술이상을 이어 받아 엘리트 건
축가들이 첨단감각을 뽐내는 경연장이 되어 버린 하이테크 건축, 이런 하이테크 건축은 일년
에도 수십만 수백만명의 영롱한 실루엣을 전세계의 도시에 걸쳐 세워 놓는다.
그러나 하이테
크 건축은 정작 국제주의 양식이 낳은 도시환경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현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가 모더니즘 기계 문명의 폐해를 치료하는 것임을 볼 때 이러한
하이테크 건축이 과연 현대 건축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가.
모더니즘이 신봉하던 물리적 효
율과 발전의 미신은 세계 각국의 오래된 도시들에 남아있던 '살만한 도시공간'들을 차례로 파
괴하며 엄청난 건축 환경의 문제들을 낳아왔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고층재개발에 따른
고밀도와 공동화의 문제, 외부공간과 휴먼스케일의 상실, 이웃의 붕괴,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
려는 중립공간의 양산, 에너지 문제, 지역적 특성의 상실, 전통적 도시구조의 붕괴 및 문화재
파손 등등과 같은 엄청난 폐해를 물리적 효율과 발전의 미신을 믿는 데 대한 댓가로 치러야
했다.
신문지면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우리의 환경문제 그 자체가 바로 현대건축의 심장 한복
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생생한 역사인 것이다. 국제주의 양식은 밝고 균질한 공간을 이상
적 원형으로 선보이며 이것이 건축환경의 향상을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상하게도 사
람들은 밝고 균질한 공간에서 살수록 난폭해지고 마음의 병을 앓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의 기술이상론이 운용된 지난 1세기에 있어서 인류는 기계문명의 한편에서 인류의
존재의미를 확인시켜주는 반기계건축운동을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하
이테크 건축에 위해 모더니즘의 기술이상이 기계미학 운동으로 둔갑할 즈음 반기계건축운동
역시 분명한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며 21세기의 인류주거문화를 책임질 이상적 모델은 '자
연의 품안으로 인류를 되돌려 보낼 수 있는 건축'이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건축
물을 땅의 일부로 해석하려는 자연 회귀적 경향과 신화 해석을 통한 근원형태 찾기 작업 등
이 현대건축의 세기말적 반기계미학운동의 핵심내용이 되고 있다.
현대건축에서의 반기계미학운동온 1959년의 CIAM회의에서 '살만한 공간'의 문제가 토의된
후 본격화되어 1960년대에 몇몇 건축가들에 의해 이미 상당히 구체적인 운동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시기적으로 보아서는 피아노와 포스터 등이 철물공장을 드나들며 하이테크 건축을 준비
하던 같은 때에 다른 한편에서 일단의 건축가들이 반기계미학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1970년대를 거치며 이런 운동들은 여러 이름의 건축경향들을 낳으며 현대건축의 커다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반기계미학은동의 가장 큰 흐름은 건물을 도시의 일부분으로 파악하며 주된
환경에 순응하는 건축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은 주변환경의 범위에 따라 도시해석 운
동(Urbanism)과 지역주의 건축(Regionalism)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도시해석 운동은 건
물의 역할을 오래된 도시가 주는 전통적인 다양한 체험들을 이어나가는 데에서 찾으며 이를 위
하여 각 도시들이 간직하고 있는 특징적 건축공간들을 재해석해내는 기본전략을 추구한다. 건축
운동별로는 신 합리주의(Neo-Rationalism), 장소이론(Place Theory), 환경심리운동(Environ-
mental Psychology), 구조주의에서의 도시해석운동 등이 여기에 속하며 좀 더 일반적인 의미
에서의 도시복원운동에 속하는 여러 건축운동들도 이 경향으로 분류될 수 있다.
지역주의 건축은 도시보다 좀더 넓은 범위인 지역적 특징을 디자인 모티브로 삼아 이것을
건축적으로 표현해내며 궁극적으로는 이것에 순응하려는 건축운동이다. 여기서의 지역적 특징
이란 주로 기후, 지형 등과 같은 자연적 환경을 일컫는다. 따라서 지역주의 건축은 독특한 자
연환정을 갖는 지역에서 특히 성행한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과 많은 눈, 그리고 원시침엽수
림이라는 독특한 자연환경을 갖는 북구라파는 아알토(Aalto), 어스킨(Erskine), 웃쫀(Utzon)
등과 같은 빼어난 지역주의 건축가들을 낳아왔다. (도판 11) 회색의 바위산을 자연적 특징으로
갖는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지방에서는 보필(Bofill)의 지역주의 건축이 탄생했다.
자연환경이
지니는 물리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건축환경의 향상을 도모하는 운동은 생태학
(Ecology)적 접근 경향을 나타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적 특징을 자연환경이 아닌 문화
역사적 전통으로 해석하려는 건축운동도 있는데 이것은 앞의 지역주의 건축과 구분되어 맥락
주의건축(Contexturalism)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반기계미학운동들 중에는 이상과 같이 건물을 주변환경의 일부분으로 보려는 운동들보다
좀 더 과격한 어조로 기계문명의 페해를 질타하는 건축가들도 있다. 쿠바 건축가 리카르도 포
로(Ricardo Porro)는 자본주의 기계문명 하에서의 첨단 경쟁이 본격화되던 1960년대에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땅위를 기어다니는 동물형태를 다듬어 건축적 모티브로 삼았다.
포로의 건물은 땅에 뿌리박은 자연유기형태를 기본개념으로 제시한다. (도판 12) 기계 문명의 메카인 미
국에 반대하는 선두주자 중의 한 나라인 쿠바인이라는 사실은 포로의 반기계미학운동에 상징
적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포로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벽돌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러
한 과정을 통해 포로는 자칫 목소리만 높은 냉소적 문명비판으로 끝나버리기 쉬운 반기계미
학운동을 한단계 끌어올려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에 반해 엔릭 미랄래
스(Enric Miralles)의 <명상의 파빌리온(Pavillion des Meditation)>은 바로 냉소적 문명비
판의 좋은 예에 해당된다. 이 건축물은 땅위를 기어다니는 환형동물을 기본 모티브로 삼은 조
형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조형물은 땅에 뿌리박지 못한 채 뒤엉킨 복잡한 형태로 공중
에 떠 있으며 차가운 금속재료는 이러한 불안감을 배가시킨다.
미랄fp스의 조형물은 기계문명
이 자연질서를 파괴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외마디 비명에 가까울 뿐 인간이 여기에 대항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도판 13)
기계문명의 삭막함에 대한 경고를 기본개념으로 삼는 건축가들 중에는 다다이즘(Dadaism)
적 접근을 보여주는 사이트(SITE, Sculpture in the Environment의 약자)란 환경디자인 그
룹이 있다.
이들은 부서진 건물 모양, 폐허의 이미지, 기계문명의 종말, 화산재 등과 같은 주
재들을 조형언어로 차용하고 있다. 그 결과 나타나는 사이트의 건물모습은 조화롭고 안정적인
기존의 조형질서를 뒤엎는 반(反)조형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이트는 이러한 건물들을 통
해 현대 기계문명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의 불안심리를 상징화해내고 있다.
사이트의
궁극적 목표는 현대도시는 언제라도 자신의 건물에 나타난 모습처럼 될 수 있다는, 혹은 지금
의 현대도시가 바로 그러한 상태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있다. (도판 14) 다다이
즘적 문명비판 경향을 보이는 일부 건축가들 중에는 실제 지어지는 건물보다 의견표현이 훨
씬 용이한 그림을 통해 기계문명의 폐해를 경고하기도 한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고철더미와 흡사한 이들의 그림배경에는 종종 모더니즘의 대표적 건물
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면서 상징성을 더해주고 있다.
반기계문명운동의 기본방향을 비판적 경고보다 해결책 제시에서 찾으려는 운동들 중에는
서구건축의 가장 근원적 건물형태를 찾는 일종의 뿌리찾기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신이 인간
을 땅에 보내 세상을 다스림을 허락했을 때 최초로 땅위에 지어진 가장 근원적 형태를 제시 함으로써 기계문명에 거든 온갖 무질서를 일거에 씻어내고 인류문화의 뿌리부터 다시 시작하
자는 다분히 개념적인 운동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건축운동은 서구 건축사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혼란스럽고 위기에 처한 전환기에는 자주 시도되곤 하였다. 이것은 바꿔 생각하면 지
금의 시기가 그러한 전환기의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8세기에 로지에(Laug-
ier)와 19세기에 젬퍼(Semper)는 산업혁명과 계몽주의가 몰고온 전통가치의 붕괴와 이에 따
른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원시사회에 아직 남아있던 움막(Primitive hut)을 서구건축의 근원형태로 제시한 적이 있었다. (도판 15) 다분히 또 하나의 계몽적 제시이기도 한 이러한 움막
이론을 통해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건축원리로부터 미래건축에 대한 지혜를 빌릴 것을 주장
하였다.
현대건축에서의 근원형태찾기 작업은 다양한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타이거만(Tigerm-
an)은 글로 전해오는 성경과 신화를 그림으로 해석한 후 여기에 등장하는 근원형태를 사각형
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단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도판 16) 혹은 지혜를 상징하는 솔로몬
(Solomon)왕이 지었다는 전설 속의 솔로몬 신전형태를 찾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스콜라리
(Scolari)는 세상의 혼돈스러운 모습을 몇가지의 기본 기하형태 및 건축어휘의 조합으로 재구
성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스콜라리는 현대건축이 기하학적 정돈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명하고 있다. 아그fp스트(Agrest)는 로지에와 젬퍼의 원시움막을 연상시키는 형태와 기본 구
조물을 농가로부터 추출하여 땅과 조화시킴으로써 인류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자연 친화적 가
치로 제시해내고 있다.
이니구에즈(Iniguez) 역시 4각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단을 근원형
태로 제시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한 뱀을 상징물로 더해놓고 있다. 또다른 일부 건
축가들은 근원형태를 신화보다는 고고학적 기원에서 찾기도 한다. 이들은 원시 석기시대의 거
석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잃어버린 낙원을 복원시키는 현대판 제단의 이미지로 제시하
기도 한다. (도판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