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의지와 기술 이상 - 20세기말 제3의 모더니즘에 관한 소고 -

임 석 재


     Ⅰ. 서론 - 현대건축개관
     Ⅱ. 존재의지와 기술이상, 모더니즘의 영원한 미제
     Ⅲ. 구조 미학과 후기 모더니즘, 그리고 하이테크 건축
     Ⅳ. 반(反)기계미학 운동
     V. 제3의모더니즘-존재의지와기술이상을 통합하는 새로운 제 3 력

   V. 제 3의 모더니즘 - 존재의지와 기술이상을 통합하는 새로운 제 3 력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건축의 의무를 존재의지의 확인에서 찾으려는 반기계미학 운동과 기술상의 실현에서 찾으려는 기계미학운동은 서로 상반되는 건축적 가치를 추구하 는 양극화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계몽주의부터 본격화된 서구문명에서의 양극화현상은 문명 이 발전할수록 그 양상만 변해갔을 뿐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현대 건축에도 똑같 은 과제를 던져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미하긴 하지만 일부 현대건축가들 사이에서 존재의 지와 기술이상을 통합하는 제 3 력(The Third Power)의 개념을 추구하는 경향이 발견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경향을 국제주의 양식과 하이테크 건축에 이은 제3의 모더니즘(The Third Modernism)이라 부르고 싶다.

이러한 경향은 기계문명시대 하에서 인간의 존재적 의 미를 땅과 기술이 일체가 되는 이미지로 번안해 내고 있다. 내재적 생명력과 외재적 효율성 사이의 통합적 제 3력을 자연의 교훈으로 제시했던 셀링(Schelling)의 지혜가 20세기말에 새로운 건축적 이미지로 구체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페이 존스(Fay Jones)는 목재 접합기술을 이용하여 숲의 이미지를 건물로 번안해내고 있 다. 페이 존스는 다양한 구조기술을 차용하고 있지만 결코 이것을 가지고 자연을 재단하려는 거만한 의도는 느껴지지 않는다. (도판 18) 페이 존스는 기술의 범위를 자연과의 조화 안에 묶 어두는 분명한 한자를 설정하고 있다. 기계문명의 첨병인 미국에는 의외로 페이 존스의 이 러한 건축관에 대한 역사적 선례가 많이 있었다.

모더니즘의 이상을 땅에 안기려는 수평선의 이미지로 상정한 반(反)기계문명운동은 재미있 게도 근대기계문명을 이끈 영국과 미국의 앵글로-섹슨 문화권에서 가장 강하게 전개되었다. 이것은 건축사의 아이러니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가장 확실한 역사의 교훈일 수도 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영국에서는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상당히 강도 높은 산업화의 폐해로 진통을 겪기 시작했으며, 이런 현상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즐기며 살 아 온 영국사람들에게 더없이 큰 문명의 충격이었다.

영국의 많은 선각적 건축가들은 이미 이 시기부터 모더니즘의 이상을 기계문명의 향유가 아닌 기계문명이 낳은 병의 치유로 정의했고, 그 해답을 다시 한번 자연에서 찾았다. 그 결과 영국의 모더니즘 건축도 기계문명의 발전에 비례하여 반 기계문명 운동도 함께 커져가는 양면성의 특징이 영국의 모더니즘 건축에서 강 하게 느껴진다.

엔지니어링 건축의 상징물로 영국이 자랑하는 수정궁(Crystal Palace)의 옆에 는 항상 이 건물의 삭막함을 걱정하며 그 대안을 땅에 뿌리박는 인간의 존재방식에서 찾으려 했던 모던 휴머니스트들이 함께 있어왔다는 사실을 근대건축은 가장 중요한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

이런 고민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초 중서부지방의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기차문명이 가져다준 혜택과 폐해라는 두가지 결과를 동시에 안으면서 영국과 똑같은 고민을 겪게 되었다.

이 시기 미국의 건축가들에게는 미합중국을 상징하는 근대건축의 이미지를 놓고, 대도시의 마천루가 던져주는 수직선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중서부 초원이 던져주는 수평선으 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매우 어려운 숙제가 주어져 있었다. 우리가 흔히 미국은 허허벌 판에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고층건물 밖에 내세울 것이 없을 것이라고 알고 있는 잘못된 상 식 뒤에는 바로 그 허허벌판의 수평선 이미지를 미합중국의 건축적 상징으로 삼으려는 또 한 종류의 심사숙고한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가장 중요한 근대 건축사적 의미도 바로 그가 미합중국 내에서의 반기계문 명 운동인 프레리(Prairie, 미국 중서부의 초원이란 뜻) 스풀을 이끌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페이 존스는 이러한 미국의 초원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현대건축의 이상적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페이 존스의 건물은 주변 자연환경 속에서 유기적 성장을 하는 또 하나의 자연생명체처 럼 보인다.

페이 존스는 기술을 자연의 이미지작업에 봉사하는 부차적 요소로 활용할 뿐이다. 스치스츠코비츠(Szyszkowits)는 위에 소개한 리카르도 포로의 건물과 비슷한 자연유기형태를 건물의 기본윤곽으로 차용한다. (도판 19) 스치스츠코비츠의 건물은 땅에 단단히 뿌리박으며 자연지형의 등고선에 순응하여 땅에 안기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곤충의 이미지가 느껴지 기도한다.

그런데 스치스츠코비츠는 개구부에 하이테크 건축의 디테일을 차용함으로써 존재 의지와 기술이상을 하나로 묶어내는 제 3 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스치스츠코비츠 의 건물은 비슷한 조형윤곽을 가졌음에도 기술이미지의 사용을 자제한 포로의 건물과는 분명 히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하이테크 건축을 이끌었던 포스터 등이 보여주는 최근의 변화된 모 습도 넓게는 위와 같은 제 3 력의 개념 속에 포함될 수 있다. 일부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들은 1990년대 들어 도시의 맥락에 자신들의 기술이상을 맞추려는 분명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주변의 건축환경을 제압하며 보석 같은 단일 오브제(objet)로 빛나고 싶어하던 그 이전의 오만함과는 완전히 다른 경향이다.

모더니즘의 영원한 미제였던 존재의지와 기술이 상 사이의 간극이 메워지는 제 3의 모더니즘기를 거친 후 우리는 새로운 천년왕국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모더니즘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