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산수화의 현대적 계승과 그 계보에 관하여 - 한국전통산수화전을 중심으로 -

장 영 준

      Ⅰ. 서 언
      Ⅱ. 한국전통산수화의 전개
      Ⅲ. 한국전통산수회전의 개최에 따른 6대가 계보
      Ⅳ. 결언

   Ⅱ. 한국전통산수화의 전개
한국에서 먹이나 채색안료, 붓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그린 넓은 의미에서의 산수화가 그려 지기 시작한 때는 초기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는데 불교의 인간사상이나 토속신앙과 병행하여 발달한 산수화는 수세기 동안 주변국들과의 교류를 통하 여 발전하여 왔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한국적 표현양식을 지니고 있다.

5-7세기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그림들 중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위치한 덕흥리 고분벽화와 무용총의 수렴도 배경에는 원시적 형태의 산과 나무를 그린 그림이 등장하지만 그후 6세기말과 7세기초로 추정되는 강서대묘의 산악도에는 중심이 되는 산과 보조산의 좌우 균형감각을 조절하는 훨씬 발전되고 세련된 양상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고대삼국 중 부드럽고 온화한 예술문화를 자랑했던 백제 역시 고구려에 이어 산수 화를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것은 옛 도읍터의 한 곳이었던 부여의 규암면에서 발굴된 일 곱개의 문양전들과 함께 출토된 <산경문전(山景紋塼)>을 통해 이 시기의 산수화의 발달사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산수문전에서 볼 수 있는 산수문양은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회화형식보다 오히려 발전된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백제 산수화의 발달사를 엿볼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 다. 화면의 중앙에 소나무가 우거진 삼각형의 주산을 배치하고 좌우로는 바위산을, 하부의 근경에는 물의 형상을 묘사하고 그림의 상단에는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표현함으로써 고아한 대자연의 정관을 부드럽게 표현한 한 폭의 산수화라 할 수 있다.

이를 미루어 볼때 백제의 순 수한 산수화는 더욱 발달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편 신라의 산수화는 고신라에 이어 통일신라에서도 산수화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사료되 지만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다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신라는 고대삼국 중 중국과의 문물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나라로 같은 시대에 중국 당나라에 서 청록산수화가 유행하였고 일본에서는 중국회화의 영향을 받은 야마또에(大和繪)가 풍미 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신라시대 역시 같은 계통의 채색산수 계열의 회화가 유행하였을 것으 로 여겨지는 것이다.

또한 신라의 벽돌(塼)에서 볼 수 있는 누각산수문양은 지극히 도식적인 형태의 산과 정자가 배열되어 있어 신라산수화의 한 흔적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런 산들의 형상은 고구려 강서대묘 산악도에 그려진 산의 형태와 내리 1호분 천 정의 월상도 주변에 묘사된 원거리의 산들이 서로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삼국시대 산 수화의 전통이 통일신라시대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산수화가 기록을 위한 문양이나 배경화로서가 아닌 본격적인 감상용 회화로써 등장하게 된 시기는 11세기 고려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주로 화공들에 의한 실용적인 목적의 그림이 그려져 왔던 통일신라시대 이전과는 달리 고 려시대에 들어와서는 회화가 화원들 이외에도 왕족 사대부나 숭려들에 의해 자주 그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산수화는 이 시대부터 유행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는 중국의 북송과 남송, 그리고 금·원·명나라 등과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 많은 자극과 영향으로 활발한 산수화가 발달하게 되었는데 전기에는 주로 북송과 남송의 영향을 받았고 후반기에는 원대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무렵부터 산수화는 우리나라의 산천을 대상 으로 그린 실경산수화와 중국의 산천을 이념적으로 조형화시킨 관념산수화의 두 갈래로 분리 되어 전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실경산수화는 12세기전반 유명한 화원이었던 이녕(李寧)이 <예성강도(禮成江圖)>와 <천수사 남문도(天壽寺南門圖)>를 그려 기록을 남김으로써 이미 한국적 실경산수화가 그려졌음을 보여 주고 있는데 고려시대의 실경산수화가 초기의 실용적, 기록적 기능에서 점차 감상을 위한 방 향으로 이행되며 우리 자연의 형상과 본질미를 추구하였다면 이 무렵의 관념산수화(중국의 회화를 모방한 정형산수화)는 중국의 산천이나 명승고적들을 이념적으로 고전화시킨 이상적
자연미를 표방하였다.

고려시대 유행한 산수화풍은 북송의 이곽(李郭)파 화풍이나 남송의 미법(米法)산수화풍, 원 나라의 원채화풍 등으로 믿어지는데 특히 이곽파 화풍은 11세기 초엽 고려시대때 수용되어 한국회화사에 큰 조류를 형성하였던 것이며 그후 조선시대로 이행되어 한국의 전통산수화풍 형성에 중대한 토대가 된것으로 보인다.

14세기 말엽부터 시작되는 조선시대는 개국 초기부터 황족이나 사대부들의 고고한 기상과 유교와 문치주의를 표방한 시대정신이 일치되어 우리 전통산수화는 한층 더 발전하게 되었다.

국가정책상 명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한 조선시대는 명의 원체화풍(院體畵風)과 절파화 풍(浙波畵風) 등이 수용되었음을 짐작케 하는데 특히 이미 고려시대때 전파된 것으로 짐작되 는 이곽파 화풍, 남송 원체화풍, 미법산수화풍과 개국 초기부터 수용된 명의 원채화풍과 절파 화풍중 이곽파 화풍은 조선시대 초기의 최대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안견에 의해 이 시기의 대 표적 화풍으로 유행하게 되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안견은 그의 진작(眞作)으로 여겨지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와 <사시팔경도(四時八景 圖)>서 이곽파 화풍을 토대로 마하(馬夏)파 화풍을 혼용하는 특유의 화풍으로 한국 산수화의 거대한 한 줄기를 형성하였다. 북송의 이곽파 화풍에 남송의 마하파 화풍이 가미된 복합적이 고 절충적인 안견의 화풍은 <몽유도원도>에서 보는 것처럼 강력하고 거친 형태와 이곽파 특 유의 높고 험한 산형의 대비적 구성변화가 심하고 강한 묵색의 효과 등을 통해 자연의 신비 한 본성과 이치를 역동적으로 잘 표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특징들은 그후 그의 작품들과 안견의 추종세력들이 남겨 놓은 산수화의 구도나 묵필 법, 준법, 공간처리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에서 전래된 남종산수화풍은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면을 추구한 나머지 자연현 상에서 느껴지는 실제적 느낌을 도외시하여 점차 장식화되고 형식화에 빠져들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안견의 산수화풍만이 조선화단을 풍미하고 있었던 것만은 아 니었다. 안견이 이룩했던 세계와는 또다른 경향의 화풍이 전개되고 있었으며 그것은 선비이자 문인화가인 강희안(姜囍顔)에 의해 이룩되고 있었다.

강희안은 그의 대표작인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에서 명대의 절파와 관련된 화풍을 보여 주었는데 선비적 기운이 흠씬 배어있는 그의 묵필법은 비록 폭넓은 호응을 받지 못하였으나 조선시대 중기부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초기에 도입되었던 화풍을 그대로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화풍을 받아
들여 발전시켰는데 명대의 미법 산수화풍과 남종화풍의 수용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송 원채화풍이나 절파화풍 등의 어느 한 가지만을 따르지 않고 두세가지 화풍 을 절충하여 보여주는 특징을 지녔는데 김식(金植)의 <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 이정근(李正 根)의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이흥효(李興孝)의 <설정산수도(雪景山水圖)>, 이징(李澄)의 <니금산수도(泥金山水圖)>등이 중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는 우리나라 회화에서 가장 활발하게 문화예술이 꽃을 피우는 시기다. 전시대 에 유행하였던 이곽파 화풍을 비롯한 전통화풍이 쇠퇴하고 중기때 수용되기 시작한 남종산수 화풍과 진경산수화풍이 현저하게 발달하였다.

이때의 남종산수화풍은 원대와 명대의 화풍 이외에 청대의 화풍이 가미되어 그 전개 영역 이 더욱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선시대 후기의 회화적 의의는 동국 진경산수화풍(東國眞景山水畵風)이 등장한 점이라 할 것이다.

이 동국진경산수화풍은 겸재, 정선에 의해 창안된 화풍으로 우리나라의 자연산천을 실제적 으로 파악하여 그 본질을 표현한 것이며 조선시대 후기 화단을 비롯한 그 이후 한국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금강전도(金剛全圖)>, (인왕제색도(人王霽色圖)> 등 명문이 표시된 그의 대표작들은 암산과 토산의 내외경을 특유의 묵필법과 수직준법을 사용하여 묘사하였으며 그의 진경산수화풍은 후기화단의 강희언, 김유겸, 김응환, 이인문, 김석신 등의 많은 추종자를 남기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많은 문인화가와 전문적인 화원들에 의해 남종화풍이 구사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강세황, 이인상, 신위 등은 대표적 작가라 할 수 있다.

특히 <영통동구도(靈通洞口圖)> 그린 강세황은 당대의 대표적 선비화가로서 심사정, 신위, 김홍도 등 후대 작가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믿어진다. 그리고 <무이귀탁도(武夷歸倬圖)> 등을 그린 김홍도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를 그린 이 인문 등도 정선에 이어 조선후기 화단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들은 이에까지의 다양한 화풍을 섭렵하여 그 자신들의 양식으로 재창조하였으며 우리자연이 지니고 있는 신비한 형상과 무궁 무진한 변화감을 자유스럽게 표현해 냄으로써 조선후기 화단에 또 하나의 중요한 회화양식을 창시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산수화는 조선중기를 거쳐 후기(영·정조)에 들어와 정선에 의한 동국진 정산수화풍을, 심사정에 의한 조선 남종화풍을 대성시킴으로써 본격적인 한국회화의 꽃을 피 우게 되었던 것이다.

공재(恭齎) 윤두서(尹斗緖)를 필두로 한 조선 남종화풍의 사의적(思意的) 산수는 조선조 중 기에 서서히 수용되기 시작하여 조선후기 심사정에 의해 조선풍으로 완성되었으며 최북과 이 인문 등을 거쳐 이 시기의 정형산수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부드럽고 사의적인 남종화풍은 현실의 자연산천을 배경으로 한 실험정신과 조형의 식이 빈약하여 결국에는 형식화의 길을 걷게 되고 한국의 산천의 독특한 기상과 색채를 반영 하지 못하게 된다. 그후 조선시대 말엽은 한국근대화기와 연결된 시기로 다양한 양식이 혼재 하게 되나 크게 동국진경산수화풍과 남종산수화풍이 그대로 이어져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관 념적인 남종실수화풍은 중국에서 전래된 화풍을 수용하여 우리 것으로 소화함으로써 광주 화 단의 의재(毅齎) 허백련(許百鍊)과 목포의 남농(南農) 허건(許建)에 의해 호남화단의 맥으로 계승되는데 주로 고전적인 산수화풍의 묘사에 주력하였다.

소치(小痴) 허유(許維) 미산(米山) 허형(許瀅) 등에 이은 허백련은 광주에 전통회화 그룹인 연진회를 창립하였으며 진도·목포의 남농 허건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법에 따라 후학들을 양성하므로써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전통남도산수화의 맥을 잇는다.

허백련과 허건은 조선시대 말엽 추사 김정희와 함께 남종문인 화의 대가로 평가받았던 소치 허유의 직·방계손들로 호남화단에 한국 전통산수화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 그리고 진경산수화풍을 계승한 실경산수화는 서양화풍의 활발한 도입에 힘입어 사경(寫景)산수화로 발전하는데 구한말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과 소림(小琳) 조석진(趙錫 晋)에게서 수학하였던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심산(心山), 노 수현(盧壽鉉) 등의 근대전통화단의 1세대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동국진경산수화풍이 변모된 사경산수화는 진경산수화가 우리 산천의 특정한 장소나 명승지의 형상미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차된 정신까지 표현하려고 했던 반면에 사경산수화는 일상적 인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을 소박한 심정으로 그려내어 현실 대상의 외관에 기초하여 좀더 세 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게 했던 점에서 양자의 구별성을 들 수 있다. 근대화단의 소정 변관 식이나 청전 이상범은 이런 사경산수화의 대표적 작가들이라 할 수 있다.

<초동> <아침> 등의 이름모를 야산의 황량한 아침풍경이나 꾸불꾸불한 논두렁의 형태를 갈 필기법과 미점준법을 이용하여 소박하게 표현하는 이상범과 한국 소나무의 우람한 자태나 농 촌풍경을 배경으로 한 우리민족 특유의 정서를 생동감있게 그려낸 소정 변관식의 작품들은 조선시대 후기 이후의 실경산수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데서 그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 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 서양근대화풍과 일본의 남화풍이 수용되면서 우리의 정형산수화는 한 때 고비를 맞기도 하였으나 1950년대 이후 우리의 전통회화가 민족의 가슴속에 내재되어 있 는 민족우화의 뿌리라는 자주적 시대정신이 대두되면서 전통회화는 부활되기 시작하였고 2- 3세대의 원로·중견 작가들에 의해서 활발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특히 서울대와 홍익대에 동 양화과가 설립된 이래 그 예술적 성과를 이룬 전통산수화단은 임송희, 하태진, 이인실, 김원, 정승섭 등의 화단의 중견 작가들에 의해 조선후기 화단의 진경산수화풍과 그 이후의 실경산 수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독자적 양식의 정립을 통한 한국적 산수화풍을 창출하였으며 조선 남종산수화의 전통을 계승시키고 있는 호남학단의 화맥과 더불어 현재 우리 전통회화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