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의 판화작품에 대한 도상해석학적 이해

임 영 방

      Ⅰ. 뒤러의 생애와 북유럽 르네상스
      Ⅱ. 뒤러 판화에 있어서 미의 원리
      Ⅲ. 뒤러 판화의 도상해석학적 고찰

   Ⅰ. 뒤러의 생애와 북유럽 르네상스
종교개혁운동과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끌어낸 요인 중의 하나인 인본주의의 강한 영향권 안에 있었던 16세기초의 독일은 유럽에 큰 소용돌이를 예감케 하는 태풍의 눈과 같았다. 특 히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1471-1528)가 태어나고 활동하였으며, 또한 그곳에서 사망한 뉘른베르크(Nurenberg)는 여전히 중세적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던 도시이자 신성로마 제국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며 종교개혁 운동에 앞장섰던 마르틴 루 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중심적인 활동무대였다.

헝가리로부터 이주하여 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금은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난 뒤러는 17세기 네델란드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1606-1640), 그리고 20세기의 피카소(Pablo Picasso:1881-l973)와 더불어 판화의 역사를 통해본 세 거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역사상 위대한 화가로 남게 된 것은 그의 이러한 판화가로서의 뛰어난 자질이 뒷받침 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예술가이자 이론가이기도 했던 뒤러가 차지하고 있는 미술사적 중요성을 알아보기 위해 그의 생애와 당시 독일미술과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과 그 특징을 먼저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금은세공사의 아들이었던 뒤러는 아버지로부터 금속세공에 있어서 장인적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는데, 뒤러가 1448년 불과 13세란 어린 나이로 그린 <자화상>은 그의 천재성을 드러내 는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 소묘의 우측상단부에 적혀있는 "이것은 1484년 아직 소년이 었을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그린 것이다.

알브레히트 뒤러"(De hart ich aus ein Spigell nach mir selbs kunsterfeit im 1484 Jor do ich nach ein hint was. Albrech Durer)라는 글을 통해 미루어 보건대, 그는 이미 어릴 때부터 예술가로서 자신의 미래에 대 한 강한 비전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그가 훗날에야 어린 시절에 그렸던 자화상 위 에 이러한 글을 기록하였을 것이지만, 작품 위에 서명을 남기는 행위는 중세적 장인의 위치로 부터 독립된 예술가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시도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특히 뒤 러는 거의 모든 작품에 AD란 자신의 서명을 남기고 있는 바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창조성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자 한 예술가의 독립선언이자 자존심의 표현인 것이다.

이 자화상을 그 린 뒤 2년 후에 뒤러는 하르트만 쉐델(Hartmann Schedel)이 쓴 「뉘른베르크 연대기」의 삽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뛰어난 목판화가이자 많은 제단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뉘른베르크의 거장 볼게무트(Michael Wolgemut: 1434-1519)의 공방에 들어가 3년간 수업하였다. 볼게무트 공방에서의 수업기간은 뒤러가 훗날 목판 위에 형태를 창출함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그후 그는 다시 라인강 상류에 있는 알사스 지방의 콜마르(Colmar)에서 활 동하고 있던 마르틴 숀가우어(Martin Schongouer:1445-1491)의 작업실을 방문하였으나, 그 가 숀가우어를 찾아갔을 때 뒤러가 어려서부터 흠모했던 이 거장은 이미 수개월 전에 사망하 였다. 숀가우어는 15세기 독일 예술가 중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이자 판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 다.

그의 대표적인 동판화라고 할 수 있는 <갈보리산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1475-80), <예수의 체포>(1480) 등은 뛰어난 기술과 성서에 대한 이해로 그때까지 지배적이 던 중세 독일적 취향인 비극과 고통의 수사(修辭)를 극복하고 독자적 예술성을 구현한 작품으 로 알려지고 있다.

뒤러는 작업실을 지키고 있던 숀가우어의 형제와 함께 상당한 기간 숀가우 어 작업실에서 지냈으며, 이 시기에 학문과 서적교역의 중심지였던 바젤과 스트라부르 등을 돌아다니기도 했던 그는 1494년과 1505년 두 차례에 걸쳐 알프스를 넘어 북부 이탈리아를 방 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북구인들에게 르네상스가 무르익고 있던 이탈리아 여행은 선진문물을 배울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특히 1505년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매는 1507년 까지 3년간 베네치아에 체류하며, 전성기 르네상스의 완숙한 이탈리아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 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거장들이 이룩한 업적 중에서 뒤러와 같이 알프스 북쪽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과학적인 원근법의 발견과 인체의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는 해부학적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인문학적 분위기였다.

두 차례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뒤러는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 폴라이우올로(Pollaiuolo :1404-1498), 만테 냐(Andrea Mantegna: 1431-1506), 알베르티(Leone Battista Alberti :1404-1472) 그밖의 많 은 이탈리아 거장들의 예술과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첫 번째 여행을 통해 그는 만테냐 의 판화 대해 깊은 감화를 받았는데 그 증거를 1493년에 만테냐가 제작한 동판화 <해신의 전투>를 그 이듬해 이탈리아를 방문한 뒤러가 펜으로 충실하게 묘사한 소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두 번째로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는 이미 고령이었던 벨리니로부터 극진한 대 접과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었다. 그러나 뒤러가 이탈리아의 명망있는 예술가들로부터 영향받 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전적으로 그의 세계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부분에서 그는 북 유럽 르네상스의 창시자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의 예술적 세계를 형성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 친 고딕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뒤러는 종교개혁운동과 농민전쟁, 흑사병과 점증하 는 종말론적 위기의식 등에 의해 사회동요가 극심하던 시기에 자신의 독자적 시각으로 북유 럽에 르네상스적 기풍을 정립한 위대한 예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