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 제 8 집

마르셀 뒤샹의 이해에 있어서의 두번째 단계 세계는 독신자의 자아에대한 표현(represntation)이다.

-쇼펜하우어-

유 진 상

Ⅰ. 서 언
Ⅱ. 본 론
Ⅲ. 결 론

마르셀 뒤샹은 실질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이다. 그러면서도 현대미술에 관한 대부분의 설명과 저술들 속에서 그의 이름은 빠지는 적이 없다. 아마도 현대미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은 바가 있는 사람들은 '마르셀 뒤상'이 다다와초현실주의와 관련된 작가라는 사실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는지 모른다. 실제로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소변기'는 여전히 대중들에게 현대미술(Modern Art)이 얼마나 기괴하며 현학적인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물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탓인지 우리나라에는 뒤샹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이나 소개서가 전혀 없다시피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사에서 뒤샹은 파격적인 형식을 통해 기존미술에 도전하는 '실험미술'의 창시자로서 이해되고 있다. '동시대의 미술 (Contemporary Art)이란 무엇인가', 또는 '예술에 있어서의 개념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주어질 때 예술가들은 쉽게 뒤샹을 우회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방법론적 형식들을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방법론적 형식들은 그 범위와 내용에 있어 놀랄만치 다양한 폭과 파급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레디메이드' (Ready-made) 와 '말장난' 또는 '단어게임' (불어로는 jeu de mots 이며 영어로는 pun이다)이며, 설치작업과 신체미술 (body art),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장치를 이용하는 옵티컬 아트 (op-art), 연극과 영화, 출판물 등을 통한 다양한 형식적 실험들이 그에 의해 처음으로 예술작품이라는 범주 속에서 시도되었다.

특히 레디메이드로부터 출발한 '오브제' (objet)의 사용은 향후 현대미술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범주를 구성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지난 반세기 남짓하는 동안 미술비평은 '따블로'(tableau)에서 '오브제' (objet)라는 개념으로 그 논의의 중심을 옮겼다. '오브제'란 '대상' 또는 '물(物)' 이란 말로 번역되는 불어단어이다.

'오브제' 가 이토록 중요한 중심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데는 물론 하이데거와 같은 사상가들로부터 파생된 현상 학적 실존주의 및 사물에 대한 지시행위와 연관된 언어기호학의 영향이 컸다고 할수 있으나, 무엇보다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뒤샹의 '레디메이드'로부터 출발한 '비예술적 대상'의 일관된 '예술적 전용'(artistic transposition)이었다.

회화적 요소는 그에게 있어 '망막적 전율' (retinal shudder)1)을 일으키는 끔찍한 재료였던 만큼 그는 회화성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이 몰고 오는 정서적 반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상을 바라보고자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시작한 '오브제'의 사용은 상대적으로 따블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형성되는 미술사의 새로운 전통을 이루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오브제의 등장은 뒤샹의 이후에 나타난 예술가들로 하여금 따블로까지도 역시 하나의 오브제로 보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에 있어 '오브제'란 하나의 존재론적 상징, 다시 말해 물신 (fetish)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동시대 미술 (contemporary art)에서 미적 대상을 '오브제'로 바라보는 일은 거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마르셀 뒤샹의 예술세계를 그의 방법론적 형식언어에만 의거하여 이해하는 일은 빙산의 일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20세기 초에 뒤샹은 미술에 있어서의 형식론적 변혁을 몰고 왔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작품세계가 함축하는 격동의 잠재적 진원 (震原)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뒤샹의 작품세계가 서양미술의 또 다른 전통, 즉 관념적 사유의 시각화를 추구하고 또 완성시켰다는 점이다.

실제로 뒤샹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경우, 누구든 그것을 관통하는 엄격한 일관성에 놀라게 된다. 뒤샹에 대한 많은 연구가들은 그의 작품세계 전체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 어떤 하나의 사유를 둘러싸고 구축된 것으로 이해한다. 20세기 현대미술에 있어 한 작가가 작품을 통해 평생 동안 일관된 하나의 시각적 사유체계를 구성하려고 노력한 예는 적지 않다.

칸딘스키와 클레, 피카소와 마티스가 그런 작가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작가도 사유체계 자체를 궁극적인 미적 범주로 간주하지는 않았으며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전체적 작품세계가 형성되어 있지도 않다. 뒤샹의 작품들은 과거의 종교미술이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던 , 그리고 15세기 이후 형식주의적 조형성의 지배 하에서 중단된 형이상학적 사유의기술을 놀라운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다.

이는 1911년 그가 처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로부터 1968년 그가 파리 근교의 뇌이이(Neuilly)에서 사망할 때까지 창작을 포함한 그의 모든 행위와 그 흔적들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뒤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러한 사유의 흐름을 먼저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바로 전위 (前衛), 즉 아방가르드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 뒤샹의 회화성에 대한 부정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가 낭만주의 이후 부정의 역사로 점철하는 '현대성' (modernity)도 함께 극복하려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아방가르드의 제반 노력들을 그 극단에까지몰고간 뒤 그것을 '긍정의 아이러니' (irony of affirmation)로 전도시켜 놓았다.

누구나 뒤샹을 아방가르드로 분류하지만 그가 1913년 이후 회화를 그만두었을 때 당대의 가장 첨예한 아방가르드였던 앙드레 브르통 (Andre Breton)은 그에게 신랄한 비난을 퍼부은 바 있었다. '에탕 돈네'를 만들기 시작한 1946년까지의 23년간의그의 이러한 '무위'(無爲) 와 '작업의 부재'는 아직까지도 많은 비평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여하튼 뒤샹은 부인할 수 없는 당대의 아방가르드였던 다다와 초현실주의와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완전히 독보적인 입장을 취하였던 것이다.

뒤샹을 이해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향이 있다; 첫 번째는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서 그를 이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의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며, 그리고 세 번째는 그의 자필원고들과 대담들을 통해서 일 것이다.

첫 번째 접근방식은 수없이 많이 다루어져 왔으며 그러한 글들은 앞으로도끝없이 쓰여질 테지만, 뒤샹에 대한 이해의 궁극적 단계는 뒤샹 자신의 사유체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그의 자필원고들과 작품과의 비교, 유추를 통해서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뒤샹의 이해에 있어 가장 기본적 단서들이 되어줄 수 있는 '큰 유리'와 '에탕 돈네',그리고 이 작품들을 이해하는데필요 불가결한 뒤샹의 자필원고모음인 '녹색상자'와 '흰색상자'를 중심으로 뒤샹에 대한 이해의 두 번째 단계를 간략하게나마 시작하려 한다.

Ⅱ.본론

1912년 10월 뒤샹은 기욤 아폴리네에르, 프란시스 피카비아, 가브리엘 뷔페 등과 함께 프랑스 동부의 쥐라 (Jura) 산맥 근처에 있는 '존' (zone) 지방으로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된다. 아폴리네에르의 시 '알콜' (alcool)의 첫부분을 장식하기도했으며, 또 한편으로 '녹색상자'의 서두이기도 한 이 여행에서 그는 일련의 노트와드로잉들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 때로부터 그는 자신의 노트와 메모, 그리고 그것들에 연관된 드로잉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나중에 '녹색상자' (Bolte verte)와 '부정형으로'(a l'infinitif-'횐색상자'[Bolte blanche]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등으로 불리게 된 그의 자필원고들이다. 이 두 개의 상자는 마르셀뒤샹의 두 개의 대표작인 '심지어, 자신의 구혼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La mariee mise a nue Par ses celibataires, mene/The Bride stripped by her bachelors, even) 와 '가정: 1。 폭포, 2。 발광개스'(Etant donnes: : 1。la chute d'eau, 2。le gaz d'eclairage/ Given:1. The Waterfall, 2.The Illuminating Gas)2) 의 숨겨진은유적 의미체계에 대한 중요한 단서들이 되어주고 있다.

여기서 '숨겨진'이라고 한 것은 실제로 두 개의 작품, 즉 '큰 유리'로 알려진 전자와 '에탕 돈네'라고 알려 진 두 번째 작품이 작품의 외형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이미지들 과 상호 지시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두 개의 상자로 나뉘어 져 있는 그의 자필원고들이 명확한 단서들을 제시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원고들은 나름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함축적 단어들과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들이 지시하는 내용들은 너무도 엉뚱하고 모순에 가득 차 있어 마치암호문 (crytogramme)과도 같다. 실제로 그것들은 뒤샹에 의해 의도적으로 암호화되어 있다.

그 암호들은 2차적, 3차적 의미수준으로 재해석될 것을 요구하며 그럼으로써 흡사 제임스 (Henry James)의 '카페트 속의 그림('Figure in the Carpet) 처럼 뒤샹의 작품세계 전체를 재구성하는데 필요한 낱개의 날실과 씨실들이 된다. 또한 맡은 연구가들이 - 미셸 까루제스, 존 골딩, 쟝 쉬케, 안느 다농쿠르, 로베르 르벨, 아르투로 슈바르츠 등등 - 뒤샹의 텍스트들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원고들에 대한 궁극적인 해석의 영역은 마치 그의 작품 제목 속에 나타나는 '신부'의 상태와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미답(未踏)으로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첫 번째 상자가 '신부'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큰 유리'라는 작품의 의미구성방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두 번째 상자는 1911년 이후의 그의작품들 속에 사용되는 형이상학적인 물리학의 제개념들에 대해 글과 그림을 동원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신부'와 '구흔자들'이라는 에로틱한 은유를 통해, 그리고 후자는 기하학적인 유추(그는 이를 '측량과 시공간의 계산에 관한 형이상학적 물리학'이라고 불렀다)를 통해 그의 작품들 속에서 나타나는 도상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암시한다. 이 두 개의 상자는 특히 그의 두 개의 대작인 '큰 유리' 및 '에탕 돈네'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뒤샹의 많은 작품들-소변기로 더 잘 알려진 '샘' (Fountain), 뒤샹의 대표적 유화작품인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 (La nue descendant 1'escalier), 바퀴와 의자를 붙여놓은 레디메이드 '바퀴', 모나리자의 초상에 수염을 그려 넣은 '그녀는 엉덩이가 뜨거운 여자'등 -과는 달리 '큰 유리'와 '에탕 돈네' 는 그 난해함 때문인지 우리에겐 오히려 생소한 면이 있다. 크기가 283 cm X 189cm 에 이르는 '큰 유리'는 포개어진 투명유리판 두 장 사이에 복잡하게 그려진다양한 형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납으로 된 철사에 의해 위아래의 동일한 두 부분, 즉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어져 있어 상단은 '신부'의 영역을, 하단은 '구혼자들'의 영역을 나타낸다. 전체적으로 마치 어떤 이름 모를 기계의 설계도와 같은 이 그림은 1915년 뉴욕 브로드웨이 1947번지의 그의 스튜디오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여1923년 뒤샹이 미완성 상태로 서명할 때까지 계속 제작되었다.

1923년에 '최종적으로 미완성된 '큰 유리'는 1926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현대미술 국제전' (International Exhibition of Modern Art) 기간 동안 처음으로 대중에게 보여졌다. 이 작품은 당시 미술관에서 소유주의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깨어졌는데 이 손상이 몇 년 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로 있었으며 뒤샹도 1935년에 이르러서야 수리를 하였다. '수평선'으로, 또는 '신부의 투명한 겉옷'으로 불리기도 한 상하를 나누는 선은 완전히 박살이 났다.

지금 그것은 두 개의 금속 막대 사이에 지탱되어진 얇은 유리선으로만 남아있다. 이 상칙에 대해 뒤샹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 바 있다 : "나는 이 깨진 모습들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깨진 유리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대칭적 건축물을 떠올리는 형태가 있다.

더 훌륭한 것은 거기에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상한 의도같은 것이 숨어있어 보이는 점이다. 그것은 내가 존중할 뿐 아니라 매우 좋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레디메이드 디자인이다." 이는 우연에 대한 뒤샹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가 '큰 유리'를 완성한 1923년부터 '에탕 돈네'를 완성한 1946년까지의 23년간은 뒤샹이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은채 체스에 몰두한 기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기간 동안에 그는 '회전유리판'과 같은 몇 가지의 광학적 현상을 이용한 장치들과 '가방상자' (Bolteen-valise)5) 등의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자신과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강연 전시 조직, 간단한 비평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역시 이 시기의 뒤샹은 자신의 맡은시간을 체스와 '말장난'에 대한 연구로 보냈다. 뒤샹은 체스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였으며, 특히 1932년 8월에는 프랑스 체스 토너먼트에서 우승 까지 하였다. 그는 그 후로도 프랑스 체스협회 대표위원으로 갖가지 공식행사에 모습을 나타낸 바 있다.

'말장난' 또는 '유머 문집'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도 1939년에 그는 '르로즈 셀라비,정확성의 안과기술,털,온갖가지 발차기 (Rrose Selavy, oculisme de precision, poils, coups de pied en touts genres)' 라는 말장난 모음집을 파리에서 출판하였으며 자신의 많은 글과 여러 작품제목들에 말장난을 수시로 사용 하였다.

그의 말장난들은 '녹색상자'와 '흰색상자'의 '암호문'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되어준다. '큰 유리'를 제작한 8년여 남짓한 기간이나 그 이후에 그가 빈둥거리며 지낸 것 으로 되어있는 23년간의 공백기 말고도 그의 마지막 작품인 '에탕 돈네'의 작업기 간과 그 경과는 더 극적이다. 뒤샹은 1944년경에 이 작품에 대한 드로잉을 시작하여 1946년부터 뉴욕 14번가에 있던 그의 작업실에서 실제제작에 들어갔다.

결국 1968년 그가 사망한 뒤에 발견된 이 작품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약 22년간이나 그의 작업실 밀실에서 제작되어 왔던 것이다. '에탕 돈네' (Etant donnees: 1"la chute d'eau, 2"le gaz d'eclairage)는 뒤샹이 죽은 뒤에 그의 스튜디오 구석에 은밀하게 마련되어 있었던 밀실에서 발견되었다. 이 작품은 '큰 유리'와 동일 한 내적 서술구조를 가지면서도 그 외형은 전혀 다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심지어, 자신의 구혼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의이본(異本)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 작품은 크게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스페인 문과 벽돌담, 문에 나있는 구멍으로 보이는 내부의 광경 - 석고로만든 여체와 멀리 보이는 폭포 등-, 그리고 관객이 서있는 바깥 공간이 그것이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문 앞에 서서 그 위에 나있는 두 개의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두 개의 구멍은 '큰 유리'에표시되어 있는 '안과의사 목격자'(temoin oculiste)에 해당된다.

관객들은 이 구멍을 통해 다음과 같은 광경을 목도한다 :관객의 눈 앞에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는 여인의 나체와 그녀가 들고 있는 개스등, 그리고 멀리 점점이 구름이 떠있는 하늘을배경으로 바라보이는 풍경 속의 숲과 폭포가 그것이다.

말할 것도 얼이 스페인 문을 경계로 하여 나뉘어져 있는 두 개의 공간은 '큰 유리'에서 기술하고 있는 '신부기계'와 '구혼자 기계'이다. 다시 말하지만 1911년 이후에 만들어진 뒤샹의 모든 작품들은 이 두 작품들을 중심으로 집약된다. 심지어 '에탕 돈네'에 나타나는 문과 벽돌들, 개스램프와 숲, 폭포 등이 모두 그러하다.

또한 그의 모든 작품들은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큰 유리'는 '에탕 돈네'이며 그것은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 '샘'이기도 하고 '녹색상자'이며 '흰색상자'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뒤샹의 작품세계라고 부르는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뒤샹의 전 생애에 걸쳐 가장 중요한 전환적 시기를 따지자면 1911년 말에서 1913년 사이의 약 2년 남짓한 기간이 될 것이다.

이 당시로 말하자면 1차 세계대전 (1914-1918)이 일어나기 직전의 경제적 황금기이기도 할 뿐아니라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지적, 문화적 교류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이기도 하다. 1911년에 뒤샹은 상징주의적 흐름의 작품경향에서 그의 중요한 유화작업들로 넘어가게 된다.

이전까지 그는 야수파와 세잔느의 화풍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실주의적 유화들을 여러 살롱들에 전시해오고 있었다. 이 해 말에 그는 처음으로 그의 이후의 작풍을 결정짓는 기계적 드로잉 (mechanical drawing)인 '커피가는 기계' (Moulin a cafe)를 그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의 유화 스케치를 한다.

1912년은 피카소와 뒤샹 두 사람에게 모두 심대한 영향을 끼친 레이몽 루셀(Raymond Roussel) 의 '아프리카의 인상'(Impression d'Afrique)이 파리의 앙트완느 메칭거 극장 (Theater Antoine Metzinger)에서 공연된 해이다. 레이몽 루셀 말고도뒤샹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또 한 사람으로는 '신의 과학'(Science de Dieu)과 '인간의 기원' (Les origines humaines)이라는 책을 시리즈로 써낸 쟝-피에르 브리세 (Jean-Pierre Brisset)가 있다.8)

이 두 사람은 당시의 파리에서 가장 급진적인 이단아들처럼 여겨지던 자들로써 이들의 문학은 이후 뒤샹의 '말장난'을 포함한 모든 작품들의 방법론적 원형을 제공하였다. 이 해의 7, 8월에 있었던 뮌헨 방문은 뒤샹에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이 여행 이후 그는 '처녀에서 신부에로의 이행'(Passage from the Virgin to the Bride)과 '신부'(thy Bride) 그리고 '구혼자들에게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라는 주제의 최초의 드로잉을 하게 된다.

이 해 10월에는피카비아, 아폴리네에르 등과 함께 쥐라 지방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며 이로부터'녹색상자'의 자료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1913년에 뒤샹은 모든 관습적인 드로잉들을 그만둔다: 대신 그의 드로잉들에서는 '측량과 시공간의 계산'에 관한 주관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체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체계를 그는 물리학의법칙을 약간 늘여놓은' 것이라 불렀는데 그 한 예가 '세 개의 표준 정지기' (Trois stoppages standards)이다. 이 작품은 1m 길이의 실을 1m 높이에서 수평으로 세 번낙하시켜 고정시켜 놓은 것으로 떨어진 모양으로부터 자의적이고 새로운 길이단위를 획득한 것이다. '우연' (hasard / chance)의 개념은 이후로 그의 의사과학적방법론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1915년부터 그가 제작하게되는 작품 '심지어, 자신의 구혼자들에게 발가벗겨진 신부'의 습작들과 주석이 만들어지는 것도 이 당시부터이다. 유리 위에 그려진 습작 드로잉 '인접하는 금속들로 이루어진 물레방아를 담고 있는 활차' (Gilder Containing a Water Mill in Neighboring Metals)는 이미 '큰 유리'에 나타나게 되는 중요한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그는 재미로 부엌의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거꾸로 올려놓는다: 이것은 뒤샹의 최초의 레디메이드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시각적 효과를이용한 회전장치의 출현을 예고해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렇듯 이 3년 가량의 기간 동안에 일어난 뒤샹의 창작태도의 변화는 이후 그의 사고와 영감의 흐름을 커다랗게 결정지어 주었다.

뒤샹의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다름 아닌 '녹색상자'와 '흰색상자'의 독해이다. 이 두 개의 자료모음은 기본적으로 뒤샹의 말장난과형이상학적이며 과학적인 사변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녹색상자'가 '큰 유리'의 기본개념과 주로 연관되어 있다면 '흰색상자'는 뒤샹의 시공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계측방법에 대해 주로 언급하고 있다.

뒤샹 연구가들은 뒤샹의 이러한 자작원고들의 사상적 틀에 대해 언급할 때 공통적으로 신플라톤주의적 경향과 연금술에 대한 경도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의사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여러 가지 장치들 (원근법, 자동장치, 카메라 옵스쿠라 등)과 상징주의 (말라르메[Stephan Mallarme], 쥘 라포르그[Jules Laforgue]) 및 19세기 공상과학소설 (쥘베른느 [Jules Vsie]의 '바다 밑 2만리' 등과 가스통 드 파블로프스키 [Gaston de Pawlowski]의 '4차원 세계로의 여행')의 영향 등을 지적한다.

뒤샹은 그리스의 철학 및 신화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을 자신의 작품내용에 반영시켰다; 특히 그는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꾸준히 나타나는 에로티즘의 부각과 관련하여 그가 사용하는 각각의 개념들(물, 불, 개스, 금속 등)을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들이 내포하는 다중적 의미체계에 결부시키고 있다.

이것은 특히 그가자연, 우주, 신성과 같은 개념들을 '여성적 신격'으로 은유화하여 전개할 때 더욱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전이는 신플라톤주의적 관념들과 연관된다; 단일성과 복수성의 대응, 무한함과 잠재성의 제시, 세계의 변용 (變容), 관념과 사물의 흔재 등이 그러한 것이다.

뒤샹의 '말장난'들은 이러한 복잡한 리퍼런스들과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가브리엘 뷔페는 과학과 수학이 뒤샹 삼형제의 지속 적인 관심사였다고 증언한다. 뒤샹은 '녹색상자'에서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물리학 자였던 앙리 쁘왕꺄레 (Herni Poincare)와 '사차원 기하학'의 저자인 엘리 주프레(Elie Joufret)를 인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큰 유리'기본개념인, 즉 3차원적형상은 4차원적 형상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투영된 것이라는 명제는 주프레에게서나온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관심의 대상들, 사실들로부터 뒤샹은 신화, 역사,문명, 과학의 존재방식을 꿰뚫는 하나의 가상적 시나리오를 구축하였다. 다시 말해, 뒤샹의 형식적 방법론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예술 외적' 사실들을 기초로 한 형이상학적 서사구조인 것이다. 그것의 가장 직접적인 단서는 '녹색상자'와 '큰 유리'의 상호 지시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흰색상자'와 그의 마지막 작품인 '에탕 돈네'에서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에탕 돈네'는 '큰유리'의 연속선상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기본구조와 작동방법까지일관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우선 '큰 유리'와 '녹색상자'간의 상호지시관계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a.큰유리에 대한 '1914년의 녹색상자'에 실린 주석

그림 1.'심지어, 자신의 구흔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마르셀 뒤샹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큰 유리',즉 '심지어, 자신의 구혼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la mariee mise a nue parses celibataires,meme)는 두 장의 포개어진 유리 사이에 그려진 여러 개의 그림들로이루어져 있다. 이 그림들 가운데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으며, 각각의 그림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지닌 장치들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신부의 영역인 상반부 (신부-기계 [Mariee-machine])와 구혼자들의 영역인 하반부 (구혼자-기계[celibataires-machine])가 그것이다. 이 두 개의 영역은 가운데 부분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수평선에 의해 나뉘어져 있다. 서구의 사상적 전통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여기서도 상단은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하단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세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상단의 신부라고 짐작되는 구름 모양의 형태는 '녹색상자'에는 '살색 은하수'(Flesh coloured Milky Way)라고 표기되어 있다.

뭉게구름 모양을 한 이형태가 신부라는 설명은 아무 곳에도 없으나 왼편의 장치들과 연결된 상태로 미루어 보아 신부를 간접적으로나마 지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녹색상자'에는 신부가 시공간의 특정한 원근법적 각도에서만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이 되어있으므로 사실상 우리는 신부가 가시적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구혼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단 왼편의 아홉 개의 형태, 즉 '유니폼과 제복의 무덤' (Cimetiere des uniformes et librees)으로 표시된 것이다.

이 아홉 명의 구혼자들은 제목이 설명하듯 아홉 가지 직업을 나타내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 사제, 백화점 배달원, 헌병,흉갑기병, 경찰, 장의사 일꾼, 하인, 커피 감식가, 역장 등이다. 이들은 다같이 공동의 운명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며 신부를 향한 욕망으로 부풀어 있다. 결국신부와 이 아홉 명의 구혼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욕망과 현시의 메커니즘이그들 주위에 그려져 있는 기계들의 기능이 되는 것이다.

이 그림에 그려져 있는 두 개의 영역은 사실상 절대적으로 유리되어 있는 두 개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유리'에는 상단과 하단의 두 영 역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몇 가지 장치들이 있다. 바로 '아흡발의 포탄'(9 shots)과 '안과의사 목격자'(Oculist Witnesses),'수평선'(Horizon) 또는 '신부의 겉옷'(Bride's Clothes) 따위가 그것들이다.

'아홉발의 포탄'은 짐작할 수 있듯이 아홉명의 구혼자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것들은 두 개의 영역 사이에 나있는 '링컨-윌슨 효과의 프리즘과 9개의 구멍(Prism with the Wilson-Lincoln Effect) 을 통해 하단에서 상단으로 발사된다. 또 한편으로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는 경계를 뚫고 하단에서 상단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안과의사 목격자'통해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안과의사들이 머리에 착용하는 반사경처럼 생긴 원반으로서아홉 개의 포탄을 이것의 중앙에 난 구멍을 통해 상단의 신부를 향해 발사된다. 이 구멍은 '엿보는' 구멍으로서 앞서 '녹색상자'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신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특정한 원근법적 시점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수평선' 또는 '신부의 겉옷'이라고 불리는 두 부분 사이를 가로지르는 세 개의 선은 두부분을 연결시킴과 동시에 분리시키는 '베일'과도 같은 기능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부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 옥타비오 파즈 (Octavio Paz)는 '신부'와 '구혼자'의 사이의 '보고-보여지는'관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신부의 원형을 그리이스 신화 가운데서 다이아나(Diana)여신에게서 찾고 있다 : 미소년 악테온 (Actaeon)은 어느날 사냥개들을 데리고 숲 속에서 사냥감을 쫓다가 길을 잃는다.

오던 길을 찾던 중에 그는 숲 속의 냇물에서 목욕을 하던 다이아나를훔쳐보게 된다. 자신의 나신을 누군가가 훔쳐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신은 악테온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냥개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죽게 함으로써 자신을 훔쳐본데 대한 복수를 한다. 이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파즈가 설명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여신의 나체를 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여신 스스로 자신의 나체를 드러내야만 이 이야기의 구성은 가능하다.

여신은 자신의 몸이 보여지는 것을 금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몸이 누군가의 시선 속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이러한 서술구조는 다시금 중세의 풍경화에 대한 비유로 옮아간다 : 풍경 속에 들어있는 인물은 동시에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인물에 의해 자연은 자신을 바라볼 시선을 얻는다.

여신은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나르시스트적인 관계 속에 놓여 있다. 파즈는 뒤샹의 두 작품 '큰유리'와 '에탕 돈네'에 대한 긴 분석을 통해 이와 동일한 관계를 도출해내고 있다. 녹색상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탈의의 순간을 표현하는 이 영화적 개화는 신부의 '나무-형상'(arbor-type)에 접목되어야 한다.

이 나무-형상은 그 뿌리를 욕망-기어에 내리고 있지만, 매우 약한 실린더의 엔진으로 전달되는 전기적 탈의의 영화적 효과는 나무-형상을 휴지상태에 놓아두며 (조형적 필연성으로 인해)... 이 나무-형상을 가능케 해준 욕망-기어는‥‥ 이 나무-형상 속에서 개화에 대한 욕망이 그것에 사로잡힌 신부에 의해 상상된 의도적 탈의에로 전달되는 것을 발견한다."

여기서 '나무-형상'은 가시화된 신부의 모습이며 '욕망-기어'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러한 모든 도상의 중요성은 신부의 '영화적 개화'(epanouissement cinematique)을 위한 것이다. '영화적 개화'란 다시 말해 '신부'의 현현이 될 것이다. 이것은 훨씬 전에 그려진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를 연상시킬 뿐 아니라, 시각적 외양을 통해 떠오르는 모든 미적 순간, 나아가 신플라토니즘 과 연금술에서 다루는 '현현'(apparition)의 과정들까지로 소급한다.

여기서는 먼저 참고로 '녹색상자'에서 다루고 있는 '큰 유리'의 각 부분의 명칭과 위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림 2. 큰문유리 설명도

'녹색상자'는 위에 나열한 '큰 유리'의 부분들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설명들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개념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것에대한 또 다른 설명들을 요구한다. '녹색상자'는 그 자체로서 '큰 유리'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것이다.

'큰 유리'의 각각의 부분들은 제각기 의미를 -그것도 몇 가지씩을 -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전체의 조형적 구도를 보완해 준다. 신부의 이름은 '엔진-욕망-장수말벌'(Moteur-Desire-Guepe)이기도 하고 '매달린 암컷'(Pendu femelle)으로 불리기도한다. 이 그림은 잠자리와 기도하는 버마재비를 합쳐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로셰 H.P.Roche), mariee라는 이름은 밤나방의 이름 가운데 하나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루제스 Carouges).

아래 가운데 왼편에 있는 구혼자들의 그룹은 일단의 음산한 명칭들을 지니고 있다 ; '독신장치들' (Appareils celibataires), '아홉 개의 수컷 주형'(Neuf Moules Malic)15), '제복과 작업복들의 무덤'(Cimetieredes uniformes et livrees) 따위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처음에는 여덟 개로 이루어져있었으나 나중에 뒤샹이 하나를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컷들은 주형이며, 자신들의 생명의 호흡과 욕망으로 가득 찬 영혼인 발광개스에 의해 부풀어오른 속이 빈옷이기도 하다. 이들은 아홉 가지 유형 또는 아홉 가지 족속의 남자들을 나타낸다 : 사제, 백화점 배달원, 헌병, 흉갑기병, 경찰, 장의사 일꾼, 하인, 커피 감식가, 역장이 그것들이다. '제복과 작업복들의 묘지'는 다른 말로 '에로스의 모태' (Matrice d' Eros)'이기도 하다.

모태는 주형 (鑄型)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홉 개의 남자들은 '아홉 개의 수컷 주형'에서 찍어낸 아홉 개의 원판인 셈이다.

'큰 유리'의 상단의 왼쪽 끝 부분은 복잡한 기계부품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신부 자신의 여러 의인화 중 하나이다. 뒤샹은 '매달린 암컷'이라고 불리는 가운데의 형상에 대해 그 자신 스스로 그것을 머리라고 자의적으로 부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 덧붙여 우연히 보여지는 것은 자의적이지 않은 옆모습이라고밝히고 있다. '머리'라는 단어는 여기서 인간의 모습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그 기능을 가리키는 것 같다. '녹색상자'에는 그녀의 형태와 그녀가 기능하는 방식에 대한 거의 완벽한 설명이 들어 있다. 대개 이 노트들은 모호하거나 심지어 모순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혼돈 역시 '신부'의 본질적 부분을 이룬다. 즉 그녀의 '반투명한 베일'인 것이다. 이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녀의 각 기관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반면에 그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결국 이 모든 장치들은 '신부'의 욕망과 그것의 현현을 위한 것으로서 전체적인 작동과정은 '녹색상자'의 지문들이 지시하는 내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상자'의 주석들은 작품의 존재를 위해 불가결한 조건들인 셈이다. 이 장치들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 부분들을 위부터아래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욕망-자석 : 맨 위에는 모자와 베일을 쓴 여성의 형상처럼 보여지는 '신부'가갈고리에 매달려 있고 그녀의 왼쪽을 보면 좀 더 아래에 약간 패인 곳 아랫쪽에'욕망-자석' (magneto-desire)이 있다. 그것은 다시 금속 막대 혹은 대궁같은 것과연결된다. 이 욕망-자석은 새장같이 생긴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가는 물질'(matiere a filament)을 담고있다.

이 물질은 신부의 분비물로서 그녀의 '개화'(florissement)' 가 이루어지는 순간 형체가 나타난다. '녹색상자'에는 이것이 "단단한 불꽃과도 같으며‥‥ 이것이 '중력의 조련사'가 가진 공을 핥으면서 마음대로 그것의 위치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l6)라고 적혀 있다. 이 욕망-자석의 전기적 방전은 스파크의 형태로 '에로스의 모태'에 이르러 구혼자들을 깨우게 된다.

2.말벌 : 욕망-자석에 달린 막대는 일종의 축으로서 그 때문에 '목형' (arbre-type)으로 불리기도 한다. 목형-축 혹은 등뼈 모양의 이것은 일종의 주사기나 피침같은 것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이 '말벌'(Guepe) 이다. 이 말벌은 다음과 같은비정상적인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

a.삼투압에 의해 '사랑의 연료'(gasoline d' amour)를 분비한다; b.'중력의 마법사'의 검은 공에서 발산되는 '불균형의 파장'(ondes d'inbalance)을 감지하는 후각을 지니고 있다; c.'바늘'과 환기시스템에서발생하는 박동을 확인하게 해주는 진동기능을 지니고 있다. 결국 이것이 '매달린암컷'으로 하여금 그것의 부속들과 함께 앞뒤로 흔들리도록 만들어 준다.

3. 사랑의 연료 : 말벌 아래 있는 것은 '사랑의 연료탱크 혹은 숫기 없는 힘'이다. 이 에로틱한 연료는 "매우 연약한 실린더에 의해 모터에 분배된 후 신부의 일상적 삶 (욕망-자석)이 만들어내는 스파크에 닿아 폭발을 일으키며, 자신의 욕망을 채운 이 처녀로 하여금 활짝 피어나게 만든다."l7) 이 연료탱크는 다른 말로 '깜박임의 욕조'(baignoir d'oscillation)라고도 하며 이것 덕분에 '신부의 청결함'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보다 아래에는 '맥박 침'이 매달려 있다.

이것은 "떠돌아 다니는 끈위에 세워져 있으며, 우리에 갇힌 동물들만큼의 자유를 지니고 있다." 맥박 침은다소 위협적인 진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허공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 허공이바로 신부의 '수평선-겉옷'이다.

4.'구혼자-기계'는 "벽돌 바닥으로 된 단단한 기초에 미장으로 하부구조를 만든후 그 위에 농인 증기엔진이다."19) 이 기계는 "고통스런 기어장치"(rouage tourmente)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욕망-부속'이 생겨날 수 있게 한다. 후자 덕택에 증기엔진은 '욕망-모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터는 '투명유리 냉각균에 의해 신부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며, 이 냉각기는 '수평선-겉옷'과 뒤섞여있다. '큰 유리'에서 이 개개의 항목들은 알아보기가 어렵게 되어 있으며 '신부'의건축적 벽돌 하부도 그려져 있지 않다. '에탕 돈네'에서는 이 벽돌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벽돌 사이의 문에 나있는 구멍의 공간으로 3차원의 형태로 제시된 신부를 볼 수 있다.

그녀는 금발의 벌거벗은 상태로 나뭇가지들로 만들어진 침대 위에서 램프를 들고 누워 있다. 구혼자들은 신부의 전기적 명령에 동요되면 자신들의 마비상태에서 벗어나 잠을 깬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나는지 모를 발광개스가 그들을 부풀린다. 압력이 그들을 모세관을 통해 윗쪽으로 벗어나도록 밀어붙이고 "길이단위의 연장현상에 의해" 이들은 "가늘고 단단한 바늘들로 바뀐다"

5. 은하수 : 은하수는 이 그림 윗부분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위로부터매달려있는 회색의 구름모양으로서 오른쪽 끝이 살짝 분홍색을 띠고 있다 (뒤샹은이것을 '살색'이라고 부른다). 이 구름은 '매달린 암컷'의 머리라고 부르는 부분으로 부터 솟아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은하수의 '살색'은 고르진 않지만 높은 밀도로 '3개의 피스톤'을 둘러싸고 있다.

이 피스톤들은 위로부터 3개의 못에 각각걸려있다. 그것들의 다른 이름은 '그물'(filets)이다. 뒤샹은 열린 창문 위에 사각형의 흰색 천 조각을 걸어 놓았다:'그물'은 이 물건을 찍은 3개의 사진이다 : "환기 피스톤 (piston du courant d'air).말하자면 그것은 바람에 의해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된 천조각이다.

'그물'이나'피스톤'들은'상단 표기'(Top Inscripption)라고도 불린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기능이 구혼자들과 중력의 마술사들에게 신부가 방출하는 것들 - 그녀의 기분, 명령 따위 - 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셰는 이것을 "근원적 '비밀', '원인 중의 원인', '텅 빈 상자들의 성삼위 (聖三位)'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상단이 하단의 투사가 아니라, 하단이 상단의 투사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욕망은 상단에 대한 향수인 것이다.

6. 상단의 보이지 않는 것들 : '큰 유리'에는 중요한 기능을 지니면서도 그려져있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먼저 위쪽 왼편, 은하수 아래쪽은 구혼자들의 아홉 개의포탄에 의해 움푹 들어간 곳들이다. '아홉 개의 포탄' 아랫쪽으로 '그림자 드리우기'(Ombres Portees)가 있고 그 아래로는 '물방울 조각의 이미지' (Image de la sculpture de gouttes) 이 있다.

'아홉 발의 포탄'은 각각 다른 각도에서 세 번씩 아홉 번의 발사로 얻어지며, 이 발사는 새 화약을 적신 성냥들로 장전한 장난감 대포들로 한다. 더 오른편에는 수평선 위로 신부의 떨어뜨린, 투명한 겉옷이 있다. 더 아래쪽 구혼자들의 영역에 투명한 유리로 된 '공기(또는 물) 냉각기'가 나타난다.그것 역시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수평선 바로 위 왼편으로는 '윌슨-링컨 시스템'이 있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이것은 프리즘의 착시현상을 지시하는 것으로 하나의 얼굴이 두 개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즉 한 면에서는 윌슨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면에선 링컨처럼 보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더 왼쪽으로 가면 마찬가지로 수평선 위에 그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인물이 있는데 그것이 '중력의 마법사'이다. 만약 그려지게 된다면 그 모습은 작은 삼발이 탁자 위에 놓인 나선형의 스프링 모양으로 되어있을 것이며 그 위에 공이 굴러다니는 쟁반 같은 것이 올려져 있을 것이다 ('녹색상자'에는 그것이 검은 색 공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중력의 마법사'는 신부의 겉옷인 수평선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그는 스프링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탄성을 이용하여 늘어나 '아홉 개의 포탄'이 있는 지역에 가서 부딪히게 되며 이 때 그의 검은 공을 신부에게, 그녀의 혓바닥에서 나오는 단단한 불꽃에 바치게 된다.

7. 구혼자들 : 원래 '녹색상자'에는 '8개의 제복과 작업복'들로 표기되어 있으나뒤샹이 나중에 하나를 추가하여 9개로 만들었다. 따라서 그것들에 딸린 각각 3개씩의 모세관들 역시 '녹색상자'에는 '24개의 모세관'으로 표기되어 있다.

9라는 숫자로 바뀐 이유는 절대적 수인 3의 배수라는 점에 의미를 둔 것이라고 본다. '큰 유리'의 하반부 왼쪽에는 '아홉 개의 수컷 주형', 또는 '제복과 작업복들의 무덤', 또다른 말로는 '에로스의 모태'가 있다. 세 가지 이름이 모두 적당할 수 있는 이유는이 구혼자들에겐 아무런 진짜 개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빈 옷가지에 불과하며, 발광 개스에 의해 부풀려진 공허한 천조가리들일 뿐이다. "구혼자들은 신부의 건축학적 기초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처녀성에 대한 신격화로 화한다." 신부와 구혼자들의 세계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구혼자-기계의 기본 형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다시 말해 측량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신부의 기본형태는 다소 크거나 작으며, 그것의 방향과 관련해 본다고 해도 아무런 가측성 (可測性)도 갖지 않는다." 구혼자들의 영역은 고전적인 원근법의 법칙에의해 지배되고 있으나 신부의 영역은 '다소'라는 말이 규칙으로 적용되는 자유로운 기하학에 속한다. 그곳은 일상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이 아랫쪽의 법이나 원칙과는 다른 것들에 종속된 불확정적 영역이다.

구혼자들의 영역은 측량과 일상성의 영역이며 우리의 2차원 그리고 3차원의 기하학으로 이루어진, 그러므로 불완전한 기하학의 영역이다. 신부와 구혼자들의 차이를 말해주는 또 다른 것이 있다 : 신부에겐 생명중추 (life-center) 가 있지만 구혼자들에겐 없다. 이들은 단지 석탄이나 그 밖의 다른 원료로 살아가며, 이것도 그들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닌 그들의 그들 아닌 것 (their not them) 에서 얻어진 것이다.25)

자유로운 형태를 가진 신부는자기-충족적 존재이다; 기하학과 원근법에 종속되어 있는 구혼자들은 발광개스로채워진 텅 빈 주형들이다. 그들은 또한 제복과 작업복들이다 : "이렇게 얻어진 여러 개의 개스 주물들은 수레 옆에서 찬송과 구혼자-기계 전체로부터 울려 퍼지는 송가 (litanie)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가면' (Mask)을 넘어설 수가 없다...참회에도 아랑곳없이 마치 무엇엔가 억눌려있는 것처럼, 거의 수음과도 같은 혼미상태에 빠진 그들의 존재를 까발릴 때까지 자신들의 복잡성을 스스로에게 비추어주는 거울 옆에서·‥"

8. 체 : '아홉 개의 수컷 주형'은 '체'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위에 기술된 방법에 따라 계산된 '변덕스러운 길이 미터단위'로 되어있는 모세관 튜브 시스템이다. '체'는 "구멍이 많은 것의 뒤집은 이미지"이며 반원형으로 배열된 7개의 파라솔로 이루어져 있다.

'먼지'는 파라솔 안에서 "일종의 물감 (투명한 파스텔)"처럼 쓰인다. 뒤샹은 "각각 4개월 동안의 먼지, 6개월 동안의 먼지가 쌓인 후 완전히 밀봉할 유리 위에서 먼지를 기르는 양육의 땅" 을만들었다. 체에는 진공청소기 펌프가 부착되어 있으며 각각의 파라솔은 순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구멍들이 뚫려있다. 그것이 지닌 기능과 그것의 안 쪽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변형으로 인해 '체'는 일종의 '변형의 방' (Chamber of Metamorphosis)이 된다.

9.수레 : '아홉 개의 수컷 주형'과 '체' 사이에 '수레'가 있다. 그것은 '썰매'라고도 알려진 활차 위의 작은 객실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사상 (Emancipation) 의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의 바닥에'물레방아'의 풍경을 숨기고 있다."이 물레방아는 폭포에 의해 돌아간다.

그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수컷 주형 위로 반원을그리며 얼마 떨어진 곳으로부터 떨어지는 물줄기"라고 '녹색상자'에 설명되어 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어셈블리지 작품 (에탕 돈네)에서는 폭포가 보이는 대신 아홉 개의 수컷 주형이 보이지 않는다) 수레의 활차는 지하 레일 위로 미끌어진다.

이 수레를 만든 금속은 "수평적으로 자유로운 사상을 지니고 있다. 즉 수평면 상에서의 모든 중력으로부터 자유롭다. "30) 물레방아는 이 객차의 프로펠러이다. 다른 여러 장치들과 특히 '베네딕티언(중세의 수도회의 이름) 유리병의 추락' (또는 다른 해석으론 '상표가 붙은 유리병 모양의 4개의 추')을 포함하고 있는 기막힌 메커니즘의 덕택으로 수레는 요동치는 듯한 움직임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 "그것이 앞으로 가면 추 하나가 떨어지고 그것으로 다시 앞으로 가게된다.

오는 것은 활차의 마찰에 의해서이다..." 이 두 번째 운동이 "마찰 역전현상으로서 이것이 앞으로 가는 힘과 등가적인 돌아오는 힘으로 변형된다." 이것이 바로 이 조그만 수레가 왜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금속으로 되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앞뒤로 왔다갔다하면서 수레는 끝없이 탄원의 기도를 읊조린다. 이 탄원들은 구혼자들의 테마이며 현세의 독신생활의 중심내용이다. 이 아홉 명은 자신들의 연도를 듣고는 스스로로부터 탈피하고 싶어하며 자신들의 가면 -자신들의 제복과 작업복 - 을 벗어 던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한다. 또 다른 이상한 속성이 있다. 베네딕티언 유리병 모양의 추는 "겸손 때문에_내려갈 때가 올라갈 때보다 비중이 높다." 그것의 비중은 "영원한 운동을 하고 있으며 전혀 금속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베네딕티언 유리병의 속성을 '철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 그것의 비중은 왔다갔다하며 그럼으로써 우리가 이 수평적 관계의 세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인 '무관심의 자유'를 표현한다.

10. 초컬릿 분쇄기 :초컬릿 분쇄기는 구혼자들의 영역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의 위치와 크기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기능은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루이15세 풍의 틀과 몇 개의 롤러, '사방에 매우 뾰족한 점이 박힌' 넥타이와 '큰 가위'를 받치고 있는 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롤러의 끊임없는 회전 운동은 '자발성의 원칙'에 의한 작용으로 설명되며 그것은 다음의 공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 "구혼자들은 자신들의 초컬릿을 스스로 갈아댄다." 이 초컬릿은 "어디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며" 그것은 "분쇄가 끝나면 스스로 밀크 초컬릿이 되어 쌓인다 "35) 가위는 수레의 시소 운동에 의해 벌어졌다 닫혔다하며 그것의 노랫소리는 이 운동을 리드미컬하게 유지시켜 준다.

11. '안과의사 목격' : 초컬릿 분쇄기의 오른편에는 '안과의사의 목격'이 있다.이것은 개념들의 즉각적인 연관 작용을 통해 우리의 종교적, 법률적 간증(eyewitness)의 전통과 관련하여 또 다른 모호한 단서가 되어준다. '안과의사의 목격'은 시력검사를 할 때 사용되는 도표 위의 원반이나 도형들과 같은 모양을 한 세개의 원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다른 중요한 부분들과 기능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전체적으로 '큰 유리'는 신부가 옷을 벗은 모습에 대한 그림이며 '녹색상자'는이 예식이 그녀의 첫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암시하고 있다. 이 무척 복잡한 그림 속에는 위에 열거한 부분들 외에도 훨씬 많은 장치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그 모두는 일관된 작동의 흐름 속에 연결되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신부는 '모터'이면서 '수줍은 권력'의 저장고이다. 그녀의 본질은 바로 '욕망'이다. 전체적인 과정은 하단부의 구혼자들의 영역에서일어나는 '왕복운동',' 9발의 포탄','비산' 등과 그로 인한 액체 또는 기체의 운동에 의해 상단부의 신부가 일으키는 '탈의'와 '개화', 즉 오르가즘이다. 그녀가 살색 은하수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나 그러한 현현이 '영화적' 형태로 얻어지는 것도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이러한 '개화'는 앞서 인용한 희랍의 신화에서처럼 오로지 '신부' 자신의 나르시스트적인 과정일 뿐 구혼자들이나 옷 벗기와는 직접적 상관이 없다. 제과정들은 은유와 상징을 통한 시적 변용들로 이해할수 있다. '큰 유리'가 그러한 시적 변용의 제과정에 대한 설계도라면 '녹색상자'는 그것의 '설명서'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계의 각 부분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분명히 이해하려면 1965년에 뒤샹이 그린 스케치 ('완전한 큰 유리'[The Complete Large Glass])를 창조해야 한다. 뒤샹은 여기에다가 이 작품의 모든 부속들에 번호를 붙이고 빠진 것들에는 붉은색 잉크로 표시를 해놓았다.

리차드 해밀튼 (Richard Hamilton)은 그의 '인쇄체 철자'라는 책에서 조지 허드 해밀튼 (George Heard Hamilton) 이 준비한 '녹색상자'의 훌륭한 번역을 수록함으로써 이에 대한 확실한 안내를 제공하고 있다 (뉴욕,1960). 또한 쟝 쉬케의 책 '신부의 거울' (1974)에서 다루어진 설명방식과, '녹색상자' 및 '흰색상자' 속에 들은 노트들 역시 이 그림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b. '흰색상자'

'녹색상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흰색상자'는 '부정형으로'(A 1'infinitif)라는상자의 색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미셀 사누이에는 자신이 수집한 뒤샹의 자필원고본에서 이 원고들이 1912년에 출간된 가스통 파블로프스키의 공상과학소설 '사차원으로의 여행' (Voyage dans la quatreme dimension)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임을 뒤샹으로부터 직접 전해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상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사색들'(Speculation),'사전과 연감'(Dictionnaires et tlas),'색채'(Couleurs),'유리에 대한 새로운 참조들' (Nouvelles references au VERRE), '외양과 현현'(Apparence et apparition), '원근법'(Perspective), '면적과 연속성'(Etendue etcontinu).

뒤샹은 1913년부터 작성된 이 원고들 속에서 주로 대수와 기하학적인 방법들을 유추적으로 사용하여 색채, 길이, 면적, 차원에 대한 개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계량법들을 설정하여 이를 '큰 유리'의 제 개념들에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신부와 구혼자들이 색채에 대해서는 :

'자신의 구혼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의 주석들

(습작 : 처녀에서 신부로의 이행)

신부 : 은백색과 밝은 번트오커 (Bunt Ocher)로 얻어진 주제부의 분홍색약간의 금색 오커붉은색은 밝은 번트오커를 좀 더 많이 띤다. 어두운 원근은 검정과 시엔나 갈색, 그리고 금색 오커, 또한 사이프러스번 트엄버 갈색으로 얻어진다 (붉게 하려면 약간의 밝은 번트오커를사용한다).

왼쪽의: 녹색끼는 베로나 흑녹색 (terre verte de Verone)과 밝은 번트오커 그리고 검정으로 얻어진다.중앙의 어두운 색은 사이프러스 엄버 갈색을 많이 포함한다.

해야할 것 :

구혼자들 : 짙은색, 신부를 충분히 달구고 얻기 위해 사용한다. 또 차별화할 프러시안 블루를 얻기위해 사용한다.

등과 같은 기술적 정의를 내리고 있다. 주로 이 상자의 후반부는 거의 '4차원'의측량법들에 대해 할애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1차원과 2차원, 그리고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관계들에 대해 '유추적으로' 4차원의 속성들을 설명함으로써, 특히 '큰유리'에 나타나는 제반 현상들이 어떻게 4차원의 속성을 3차원에 투영시킨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다. 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

a) 표면으로의 현현이 있다 (초컬릿으로 만들어진 오브제처럼 공간으로 이루어진 오브제에 대해) 그것은 마치 주형처럼 이 오브제를 만드는데 쓰이는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거울-이미지와 같다. 그러나 이 형태의 주형은 그 자체로서는 오브제가 아니며 그것은 n차원의 이 오브제가 갖는 본질적 좌표들에 대해 n-1차원인 이미지이다. 3차원의 외양은 그것의 (형식적) 주형인 2차원의 현현으로부터 나온다.

b) 그 주형의 다른 부분으로서 [-?] 본래적 색들 (couleurs natives)로 이루어진 현현이 존재한다. n 차원의 외양이 그것의 주형인 n-1 차원의 현현으로부터 얻어진다는 것은 '신부'의 외양을 보기 위해 그것이 그려진 차원보다 한 차원 위의 공간을 움직이는 시점을 획득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흰색상자'의 논리전개의 핵심을 이루는 이러한 '유추방식 '(analcgisme)은 '원근법'과 '색채',그리고 '면적' 등의 지각에서 공히 적용된다.

그것은 또한 '측량법'에 있어서 4차원으로서의 '잠재성'( virtualite)의 개념은 뒤샹에게 있어 '무한성'이라는 관념과 이어진다 : "3차원상의 오브제에 대한 잠재적 이미지의 무한한 (a 1'infini) 복수화. 이 이미지들은 무한히 작으며 또한 무한히 크다." '부정형으로'(a 1'infinitif)라는 제목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큰유리'에서 궁극적 기의(signifie)로 기능하는'신부'의 현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다. 이는 또한 어째서 뒤샹이 '신부'를 '발가벗기기'위해 '투명성', 즉 유리로된 그림을 그려야 했는가를 암시한다. '큰 유리'는 이러한 '현현'의 과정에 대한 유추이다. 동시에 그것은 그 자체로서 '신부'이기도 하다.

c. 에탕 돈네

아폴리네에르는 세 번에 걸쳐 마르셀 뒤샹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가내린 판단들은 서로 모순되면서도 셋 다 진실이다. 그 하나는 다음과 같은 뒤샹의사명이다 : 예술과 인민을 화해시킬 것. 뒤샹은 산업기계의 제품목록과도 같은기계적 도상과 기념비적인 형식을 합쳐놓음으로써 아폴리네에르가 예언한 유대를구현한다.

두 번째는 당시 25세의 이 젊은 예술가가 '이교적이라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당하는 일'에 대해 겁을 먹지 않는 아주 희귀한 예술가 가운데 하나라는것이다. 세 번째 판단 역시 앞의 것들 못지 않게 단정적이며 모순에 차있다.

즉 "뒤샹은 현재 (1912년 가을) 현대적 화풍의 화가로서 스스로 누드화와 연관을 짓는 유일한 작가"라는 것이다. 뒤샹의 누드에 대한 관심은 나중에 '큰 유리'의 신부에 대한 개념으로 발전되며 그가 죽을 때까지 23년간 제작한 '에탕 돈네'에서 결정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드러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눈앞에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그림 3 '에탕 돈네'의 스페인 문에 나있는 구멍으로 들여다 본 광경

벽돌로 둘러싸인 스페인식 문 위에 나있는 두 개의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관객의눈앞에는 다음과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 : 마른 수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여자의 나신이 있고 그녀가 왼손으로 들고있는 개스램프 뒤로 왼쪽으론 숲이 보이며 오른쪽의 골짝기로는 폭포가 떨어지고 있다.

여기서 관객으로 하여금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구멍'은 바로 특정한 원근법적 시점인 '안과의사의 목격'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결국 스페인 문을 경계로 해서 안과 밖이 '큰 유리'의 두 부분에 각각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문 뒤쪽의 여자의 나신은 '큰 유리'의 윗부분, 그리고 관객이 들여다보고 있는 위치를 포함한 문 앞의 공간은 모두 '큰 유리' 아랫부분에 상응한다.

관객이 문 앞에 서서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수컷 주형' 또는 '구혼자들'의 '신부'에 대한 욕망과 관음의 구현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며, 구멍을 통해 보이는 여인의 나신은 '특정한 원근법'으로만 가시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신부'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파즈에 따르면 '에탕 돈네'는 뒤샹의 전체적 작품세계에서 일종의 음악적 '해결'(resolutio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녹색상자'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리에서의 지연'(retard en verre/delay in glass)이라는 개념을 예로 들면서 '지연' (delay)의 여러 사전적 의미 가운데 음악적 용법에 주목한다.39)

뒤샹은 이 개념을 '큰 유리'의 부제 정도로 보았다. 즉 '유리에서의 지연'은 '큰 유리' 자체를 의미한다.이는 또한 그가 이 거대한 유리그림을 왜 '경첩그림(또는 병풍그림)'(tableau decharniere /hinge picture)라고 불렀는지에 대한 설명도 된다. '경첩'이란 무엇인가? 뒤샹은 '녹색상자'의 서두에서부터 '경첩그림','경첩의 원리'(hinge principle), '경첩에 대한 묘사'등을 언급하면서 이를 '매달린 암컷' 즉 '신부'에게 적용하도록주문하고 있다.

여기서 '경첩'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나는 변주, 하나의 개념 안에서 뒤바뀌는 기능, 제반 현상과 관념들의 보편적 가역성과 순환성 등이다.

이는 '큰 유리'와 '에탕 돈네' 사이에 가로놓인 연속성과 모순의 차원을 드러내기도 하고 뒤샹의 회화에 대한 부정과 그것을 극단까지 밀어부침으로써 다시 반전시키는 부정의 연속이라는 모순된 입장을 설명해주는 것이기도하며, 또 한편으로는 '신부'로 은유화된 형이상학적 관념을 통해 서술의 중심축을 우주의 물질적, 정신적 축으로까지 환원시키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뒤샹은 '녹색상자'의 서문에서 '경첩'을 다시 '휴지'(休止, Repos / Rest)와 '가능태들의 선택'(Choix de Possibilites / Choice of Possible) 사이에 존재하는 '일치 의 기호'(signe de concordance/ Sign of accordance)라고 정의한다.

'일치'란 외양 (apparenc / appearance)와 '현현' (apparition/ apparition)사이의 일치, 즉 가능 태들로 가득차 있는 잠재적 차원의 '즉각적 휴지상태' (Repos instantane /instantaneous state of Rest)로의 '초고속 노출'(exposition extra-rapide/extra-rapide

exposure)이다. '초고속노출'은 '비유적외양'(allegorical appearance)과 등가적이다. 그것은 찰라에 모습을 드러내는 '신부' 또는 그에 상응하는 관념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스스로 보여지기를 바라는 신부의 욕망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자신을바라보는 것이다. 뒤샹은 1914년에 이미 '에탕 돈네'에까지 이르는 자신의 전체적 작품세계의 기본얼개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일치의 기호는 또 한편으로 '신부의 겉옷' 또는 '베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반투명의 막으로서 가리면서 동시에 드러내는 기능을 갖는다. 그것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항상 '다른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큰 유리'의 '윌슨-링컨 시스템과 같다: 어떻게 보면 윌슨 대통령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링컨처럼 보이기도하는 이상하게 맞물린 옆모습인 것이다. 이는 바로 '신부'를 바라보는 방법과도연관된다.

'신부'의 또 다른 이름인 '매달린 암컷'은 실제로는 특정한 소실점과 특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볼 수 있는 그녀의 진짜모습을 '평범한 원근법'으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것은 왜곡된 형태이다.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특정한 원근법은 형이상학적 원근법이라고 이름붙일만한 그 무엇일 것이다.

우리는 원근법의 변형을 통한 이러한 시점적 왜곡을 '아나모르포시스'(anamorphosis) 라고 부른다. '경첩의 원리'란 일종의 '아나모르포시스'인 것이다 ; 단지 여기서는 시점적 왜곡을 구성하는 다양한 조건들 가운데 구혼자, 즉 바라보기를 열망하는 관음증의 회생자인 관객들이 포함된다.

그림 4. 1965년 피구에라스(Figueras) 부근에서, 뒤샹과 그의 아내 티니 (Teeny)가 폭포 앞애서 찍은 사진. 드니스 헤어 (DeniseHare)는 뒤샹의 부탁으로 아무 생각없이 이사진을 찍었다.

이 외에도 '에탕 돈네'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바로 '폭포'와 '발광개스'이다. 여기서 쉽게 상기할 수 있는 것은 '물'과 '불'이라는 두가지 요소에 대한 뒤샹의 반복적인 강조이다 ; '물'과 '개스'라는 쌍은 뒤샹이 '큰 유리'를 준비하던시기로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작품들, 말장난, 여러 대담들 속에서 지속적으로나타난다.

'층층마다 물과 개스' (De 1'eau et du gaz a tous les etages / Water and Gas on every floor)는 그가 젊은 시절에 살던 파리의 신축건물 문짝에 쓰여져 있던 문장을 나중에 로베르 르벨이 그에 대한 딜러스판 전기의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녹색상자'의 서문에는 '폭포'와 '발광개스'가 말 그대로 '즉각적 휴지'를 결정 짓는다고 되어있으며, 그 아래의 '알림'에는 그것들이 '어두움'속에서 그러하다고적혀있다.

즉 '어두움'속에서 '신부'의 '유추적 외양'이 '초고속 노출'처럼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다. '큰 유리'에서 '개스'는 남성, 즉 구혼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구혼자들의 주형이 개스에 의해 부풀려져, 결국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신부의 영역으로 던져질 때까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그이유이다.

'에탕 돈네'에서도 '개스등'과 남근과의 유추는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는 또한 구혼자들이 그 비-물질적인 특성으로 인해 신부의 '투사'(projection)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맞물린다.

이는 앞서 인용한 '다이아나' 여신의 신화와도 일관된다. 반면에 '신부'에게 있어서는 '액체성',즉 '오토모빌린','액체탱크','깜빡임의 욕조' 등의 관념들이 그녀에 대한 설명을 위해 반복적으로 동원되며, 이는 '에탕 돈네'에서 호수와 폭포로 나타난다. '폭포'는 녹색상자'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반원을 그리며 수컷 주형 위를 통해 멀리서 다가오는 물줄기"로 명시되어있다.

그것은 '남성성'의 표상일 수도 있으나, 우선은 여성적 기호에 의존하는 남성성이다. 동시에 '구혼자'들과 '신부' 사이에서 '냉각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남성적 영역에 위치하는 '물레방아'를 움직이는 것도 바로 이 폭포의 역할이다. 이 밖에도 '폭포'와 '발광개스'에 대한 유추들은 사방에서 발견된다.

'큰 유리'와 마찬가지로 '에탕 돈네' 역시 숨겨진 테마를 관능성의 비유를 통해 드러내는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일관적이다. 단지 이번에는 '구멍'을 통해 들여다 보이는 풍경이 3차원의 현실적 공간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큰유리'의 투명성이 2차원적 도상과 3차원적 배경 사이에 가로놓인 관계를 드러내는것이라면 '에탕 돈네'의 그것은 시점이 고정된 3차원적 공간과 관객이 위치하는 현실세계의 자의성 사이에 가로놓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큰 유리'의 투명성이 뿜어내는 '현현'이 3차원적 배경의 주형이라면 '에탕 돈네'의 구멍을 통해 바라보이는 광경은 문 이편의 현실세계의 주형이 된다.

Ⅲ. 결론 - 독신자의 역사

뒤샹의 관념주의적 성향은 그로 하여금 신플라톤주의적 사유로부터 바로크 (Baroque)를 거쳐 산업사회의 일상성까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으로 이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무한성' 또는 '잠재성'에 대한 사고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유의 배후에는 여전히 하나의 통합적 논리, 즉 초월적 존재가 잠정적으로 부재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는다.

그것은 마치 '유일자'나 '님'으로 부를 수 있는 관념적 대상이다. 그것은 서구의 정신적 전통에서는 '자연','우주' 또는 '신'과도 등가적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심지어, 자신의 구혼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란 바로 그러한 대상의 드러남, 현현을 의미한다.

구혼자들 (lescelibataires / the bachelors)이란 원래의 사전적 의미로는 '독신자들'을 의미한다. 사실상 뒤샹은 '큰 유리'의 제목을 쥘 라포르그의 시들 가운데 하나에서 인용한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독신, 독신, 모든 것은 독신일 뿐이다' (Celibat,celibat,tout n'est que celibat).그의 또 다른 시는 '독신의 황혼에 부르는 탄식'(Complaintede creluscules celibataires)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며, 스스로 인간의 역사는 한 독신자의이야기'(histoire d'un celbataire)라고 말한다.미적관조의 대상으로서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부재하는 대상'의 외양인 셈이다.

그러므로 '큰 유리'와 '에탕돈네'는 '기계', 즉 바라보는 장치이면서 '신부' 또는 '여신'의 현현이 일어나는 공간이 된다. '부재'와 '독신'의 현실로부터 '초고속 노출'을 통해 '신부'를 포착하는 이 과정 전체는 예술의 내적 구조 그 자체이면서 그에 대한 비유가 된다.

그것은 '구멍'을 통해 바라다보는 순간 스스로 보여지는 것이며 풍경 속의 일부가 되는것이다. '신부'는 보여짐으로써 상대방의 눈을 통해 스스로를 본다. 그러나 '악테온'의 운명처럼 그것은 독신의 살을 더욱 더 고통스런 조건으로 바꾸어놓는다.

'횐색상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열대는 외적 세계의 존재를 증명한다" 진열대에 대한 검사를 당할 경우 그는 자기자신에 대해 형을 선고한다. 사실상 선택은 왕복운동이다. 진열대의 요구로부터, 진열대에 해야할 대답의 불가피성으로 부터 선택에의 판결이 도출된다.

유리를 통해 진열대의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물건들과 갖는 교미를, 부조리하게, 감추려고 고집해선 안된다. 벌은 유리를 잘라내고, 그리하여 소유가 이루어지자마자 후회로 인해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물어뜯게 되는 것이다."

■ 참고문헌

o HAMILTON, Richard <THE BRIDE STRIPPED BY HER BACHELORS, EVEN),Hansjog Mayer,1976, Stuttgart, London

o HULTEN, Pontus <Marcel Duchamp)> Thames & Hudson,1993 ,London

o LEBEL, Robert <Marcel Duchamp>, Benford,1985, Paris

o PAZ, Octavio <Marcel Duchamp>, Seaver Books, 1978, N.Y.

o SANOUILLET, Michel & PETERSON. Elmer(edite par) <Duchamp du Sgne>,

o Flammarion,1975,Paris

o SANOUILLET, Michel & PETERSON, Elmer (edited by) <The Writings of Marcel Duchamp>, Da Capo Paper Books, 1973, N.Y.

o SCHWARZ, Arturo <The Complete Works of Marcel Duchamp>, Delano Greenidge,1993, N.Y.

o THOMIHNS, Calvin <The World of Marcel Duchamp, 1887->,Time Inc.,1966, 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