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브란트의 자화상에 나타난
자아개념의 이해

I. 서 론
II. 램브라트의 생애와 작품
III. 램브란트의 자화상 연구

IV. 램브란트 광선과 상징성
V. 결 론


I. 서 론

작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아개념(自我槪念, Self-Concept)을 지각, 실현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확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가치관을 형성한 토대 위에 주관적이며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가의 목표가 된다. 이같은 자기지각의 자아(The Self of Self-Conception)을 인지하는 것은 모든 작가의 숙명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현상적 자아(Phenomenal-Self)1)'는 곧 작품에 표현되어지는 사물이나 형상을 통해서 승화(Sublimation)되어지며, 예술가는 끊임없이 그러한 주제를 발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최근의 심리학에서도 자아의 최고목표를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으로 보고 있으며 예술적인 창조야말로 지고의 자기실현인 것이다.

우리는 자아 정체감을 확립시킨 고금의 예술가들을 주목한다. 그러한 예술가는 항상 자기를 응시했으며 자기를 신뢰했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서 한 인간의 삶에 대한 끝없고 처절한 투쟁을 발견하게 되고 시대와 이념을 초월한 '인간적'인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의미에서 한 작가의 자화상을 연구해 보았다.

자화상은 작가 스스로 선택한, 그리고 스스로가 제작한 자신의 모습이며 가장 자기를 현상적으로 직시한 작품이다. 그것은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붓끝의 조작이거나 표현과정의 딜레마(dilemma)2)에 빠지지 않는 자아의 순수한 표현이라 믿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여기에서 자화상은 바로 자아개념의 확립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는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17세기의 위대한 화가인 램브란트는 이러한 뜻에서 가장 규범적인 예에 속한다. 램브란트는 생애를 보내면서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이상을 자화상에 기록했다. 그의 자화상은 현실에 대한 자기의 인간적인 사상을 반영한 전형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본고는 램브란트의 자화상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램브란트의 정신세계를 투영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자 한다. 이같은 목표를 위해서 그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기타 인물상이나 정물화도 연구대상에 포함시켰는데 이는 램브란트의 작품세계를 더욱 깊게 조명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II. 램브란트의 생애와 작품

램브란트 반 린(Rembrandt Van Rijn)은 1606년 7월 15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남서쪽의 라이덴에서 태어났다. 캘빈주의자인 부친과 그리스도교인인 모친 사이에 9명의 형제 가운데 여덟 번째로 태어났으며, 유년기를 성서적인 이야기와 가르침을 들으면서 성장했다. 이러한 환경은 램브란트가 그의 작품에서 종교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게 한 중요한 배경이 됐음을 알 수 있다. 1621∼23년(15∼17세)에 라이덴의 화가 야곱 판 스와넨부르흐의 제자가 됐으며, 1625년(19세)때 성 스테파누스의 석형(石形)을 제작하였다.

1626년(20세)에 구약성서의 외전(外典) 『토비트 書』를 주제로 택한 <토비트와 새끼염소를 안고 있는 안나>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 걸작 중의 하나이며 성서의 설화적인 감동이 조그맣고 예리하게 빛나며 또한 극도로 사실적(Reality)3)으로 표현한 것은 주제에 대한 종교적인 감수성의 표출이라고 보여진다. 라이덴 시대(1628∼1631)에서 그의 작품은 빛에 대한 서정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화가이며 무대감독가4)인 램브란트는 <사원 내의 시메온>(1631)에서 빛을 스포트라이트처럼 중심인물에게 집중시켜 그 여광이 장대한 사원 안에 울려 퍼지게 하여 일종의 환상적인 명암의 리듬을 보여준다.5) 이러한 것은 그가 에칭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둠 속으로 몇 가닥의 빛을 흘려 넣으며(running) 화면 전체에 걸쳐 변화있는 표면을 연장하기 위해 굴절 있는 어둠의 강도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꾸몄고 그것을 거대한 직물(garments) 속에 잘 소화시킨 동시에 신전의 음울한 깊이(depth) 속으로 매끄럽게 처리했다.6) 초기의 그의 작품에서는 자기 자신의 성찰을 종교적인 테마에 결부시켜서 설명하고 있으며 신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자연스럽게 소화시키고 있다. 작품은 종교적 은총을 받은 가슴에서 넘쳐 나와 그 내면적인 반영을 그 미 속에 나타낼 따름이다. 종교적 양식(style)으로 말미암아 종교적 예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내용으로만이 종교예술로 이루어진다.7)

1632년 단체 초상화인 <투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성공적으로 완성되어 램브란트는 초상화가로서의 기량을 인정받았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미묘한 대응감을 표현한 것 이상으로 우리들에게 충격적인 면을 던져주고 있다.8) 1655년에 제작된 <도살된 소>에서처럼 잔혹하게 해부되어 밝은 광선 아래 드러나 있는 사체(死 )를 통해 램브란트의 인간적인 울림과 죽음에 대한 연계적인, 고통스런 암시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1633년에 제작된 <십자가 수립(樹立)>은 그 당시 작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연작 중의 하나인 이 작품은 그의 신앙에 대한 거짓없는 고백을 말해준다. 화면 중앙의 베레모를 쓴 인물은 바로 램브란트 자신이라고 보여지는데 이는 바로 그 당시 생활주변의 현장성과의 결합인 것이다.9) 반 고흐는 "램브란트는 무슨 하나의 발명을 한 것도 아니다. 천사에도, 저 기묘한 그리스도에게도 실제로 그가 알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즉 눈 앞에 느껴지는 것이다"라고 했듯이10) 램브란트는 그의 일상에서 종교적인 영적 체험을 겪기 위해 고통했던 흔적이 보이는 것이다.

1634년 사스키아(Saskia)와 결혼했으나 그녀의 병약으로 평탄하지 못했다. 이것은 두 아들 딸을 계속 잃음에 원인이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눈을 뽑히는 삼손>(1636), <삼손의 결혼식>, <토비트 곁을 떠나는 천사>(1637), <하갈의 추방>(1640), <마노아의 희생>(1640) 등 거의 불행과 공포, 불안 등의 정서적인 불안정이 작품의 드라마적인 표현을 낳게 한 것이다. 램브란트가 현실세계에서의 자기형성을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성서내용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주지된 바 있다. 이 당시의 작품에서 램브란트는 부르조아적인 무미건조한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화가로서의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며,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은 주제의 내용도 이별과 애정, 반성 등 각기 다르다. 그러나 모두 바닥엔 일말의 애수를 띠었으며 자기 내면속에 속삭이는 생명의 목소리11)인 것이다.

<야경(野警)>(1642)은 램브란트에게 새로운 국면을 갖게 해준 작품이다. 작가는 통상적인 단체 초상화 구성을 멀리하고 여러 대원의 모습을 그려 어수선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대원 각자의 자세와 표정으로 매우 극적이고 동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그 생동감은 어둠과 빛의 대조적인 색채 효과로 서로 특이한 동작과 심리적인 동요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근엄한 자세와 관례적인 정형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현실감 있는 인물화를 제작한 것은 바로 램브란트의 창조성이며, 그의 미술의 사실성인 것이다.12) 그러나 <야경>으로 인해 램브란트는 대중의 지지를 얻기는 커녕 도리어 외면 당했던 것은 관례적인 초상화를 고집한 주위의 몰이해였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서 램브란트는 재정적인 곤란과 함께 주위와 결별된 고독한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램브란트 예술이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한 가장 알맞는 해석이 있다면 고독을 통해 진실한 자아에 도달하는 것이다. 램브란트가 고독을 발견하고 그의 동시대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며 두려워 했을지도 모르는 것은 바로 자신의 독특한 내밀된 기질 속에서 인지된 진실에 만족한다는 가혹한 기쁨인 것으로 보여진다.13) 1642년 이후는 찬란한 명성과 부와는 종지부를 찍고 그의 예술에 커다란 전환기를 갖게 된다. 램브란트는 내면세계의 탐구와 인기 초상화가로서의 사회적인 지위와의 사이에 갈등이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순수한 예술을 향한 그의 정신력은 과감한 시도와 변화를 요구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회적 명성과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정신은 깨끗해졌다.14)

1650년대 이후 그의 작품은 한층 다감(多感)해졌다. 이 시기의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엠마오의 그리스도>(1648)이다. 이 작품에서는 적색 계통의 차분한 색조로 극적인 명암의 대립이 없는 전통적인 이탈리아의 고전회화를 연상케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인물들을 교화시키고 있으며 부드럽고 온화한 실내분위기가 화면을 통해 밖으로 넘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시기에 그의 사생활은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는 때이다. 가정부 헤르티에와의 불화로 소송을 당하고 헨드리케와의 내연의 관계로 교회로부터 소환을 받는 등(1654), 재정상의 어려움이 나날이 악화될 때이다.

램브란트는 이 때의 수도사나 성자, 그리스도를 자주 그렸는데 이는 그의 인간적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서 고결하거나 초월적인 절대자를 흠모하는 신앙심의 의지라고 보여진다. 자신의 힘이 나약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궁지에서는 절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회귀를 하는 것으로 위안을 받곤 하는 인간의 모습을 램브란트에게서도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1660년대 가난한 유태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이 생활의 소용돌이와도 비슷한 그 지역의 주민 속에서 오히려 순수한 생명의 모습을 찾아냈다.15) 이 시기의 램브란트는 모든 복잡한 일들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세계를 탐닉하는데 정열을 바쳤다. 1660년대 이후 만년의 작품으로는 <탕아의 돌아옴>(1665)이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성서 속의 이야기를 작가 자신의 세계에 투영시킨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탕아, 그것은 바로 램브란트 자신이며 그를 어루만지고 있는 사람은 그의 종교적인 신앙의 대상이 될 것이다. 죽기 얼마전에 그린 이 작품은 바로 그 일생을 긋는 회상이며 자기확인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의 작품중에서 가장 정밀하며, 영원으로 내뻗치는 한 순간의 작품이다.16)

1669년(63세) 램브란트가 암스테르담에서 임종했을 때까지 그의 삶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파산과 인기절하(1662) 등으로 시련을 겪고 있을 때도 시인 얀 포스는 그를 암스테르담 제 1의 화가라고 찬양했는데 이는 한 인간이 걸어온 올바른 인간적인 미의 가치관을 예술로 승화시킨 자에 대한 마지막 찬사였다.

III. 램브란트의 자화상 연구

램브란트가 남긴 작품 가운데 가장 진실된 인간성을 표현한 것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수많은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추구하려는 목표에 대한 과정 등을 반영한 자화상은 기법상의 과정 이상으로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 된다.

램브란트의 생애에서 그의 자화상은 스스로의 끊임없는 물음을 표현했으며 자기분석적 관찰을 생생히 기록됐다고 볼 수 있으며 램브란트만큼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는 없을 것이다.

연구자에 따라서 다소 다르지만, 오늘날 일반적으로 하나의 기준으로 되어 있는 쿠루트 바우흐의 판단에 의하면, 단독상으로는 유화만 56점이나 된다. 여기에 사스키아(Saskia)와의 이인상, 성서 이야기속의 자화상을 그려 넣은 것으로, 예를 들면 뮌헨의 <십자가 수립>, <십자가 하강>등을 합치고 또 에칭, 소묘 등을 합치면 100점 가까운 많은 자화상이 현재 남아 있다.(램브란트의 진작(眞作) 추정에 가장 신중한 태도를 보인 홀스트 헤르손 같은 사람은 모두 70여 점을 들고 있다.)17)

램브란트의 자화상(유화)을 일단 바우후의 추정에 입각해서 56점으로 치고 그것을 제작연대순으로 나누면, 1628년경에 그리기 시작해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1631년까지의 라이덴 시대 이른바 그의 습작 시대에 15점, 인기화가로서 암스테르담 화단에서 각광을 받은 1630년대에 15점, 그의 예술의 성숙기라는 40년대에 5점, 원숙기인 50년대에 14점(그중 10점이 1657∼60년에 집중되어 있다) 나머지 7점은 만년인 60년대의 것이다. 새삼 말할 나위도 없이 초기의 3, 4년 동안과 원숙기 후반의 3, 4년 동안에 특히 자화상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18)

17세기 네덜란드 예술은 부유하고 활동적인 중류계급의, 신교를 믿는 사회의 수요에 따라서 꽃이 피었다. 순수한 선주의(線主義)에서부터 17세기의 회화적 시야의 변천이 개별적으로 완성될 경우 이러한 증명은 초상화에서 나타난다.

또한 명암의 더욱 강한 일치는 회화적인 이해의 방법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17세기 회화는 빛과 어둠의 강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각 화가를 고찰해 보면 창작시대의 초기의 특징이 일반적으로 다르기 마련인데, 역시 램브란트도 초기 초상화는 램브란트의 대표적인 초상화에 비해서 비교적 조형적이며 선적으로 보인다.19) 1629년에 제작된 <자화상>은 그의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주목된다. 화법에서는 그의 스승 라스토망이나 친구가 된 카라밧조 투의 명암법이다.20)

그의 빛을 이용한 묘사방법으로 얼굴 상반부에 나타난 흐트러져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그늘은 명쾌한 명암의 대조를 이루며, 순간적인 표정이나 동작의 상태를 뚜렷한 필적과 발랄한 색채로써 화면에 정착시키고 있다. 램브란트의 이러한 광선은 극히 순간적인 감정의 움직임을 포착하는데 성공하고 있으며 극적인 낭만조차 간직하고 있다.

램브란트에 관한 첫 번째의 글이 <화가들의 생애>라는 제목하에 1699년 로제 드 필드에 의해 발표되었다. 램브란트를 두고 "작가 스스로가 말하는 바와 같이 살아 있는 것을 살아 있는 듯이 묘사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자화상은 이러한 점에서 현실의 직사이면서, 명확하게 자기를 상징의 세계에까지 끌어올려 놓았다.21)

1633년에 제작된 <자화상>은 작가가 27, 8세 때의 모습이다. 초기에 보여지는 자화상과는 달리 필치가 상당히 세련되어 있으며 과격한 명암의 대조가 약화되었다. 광선은 모든 부분에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어 극적인 화면처리는 상당히 억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물에 나타난 표정은 근엄하며 여유 있는 분위기조차 풍기고 있다. 이 때는 그의 생활이 안정되어 있으며 명성도 높았던 때이다. 품위 있는 외투에다 금속성의 장신구는 당시 램브란트의 사회적 지위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작가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거의 사실에 가까운 묘사로 생생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장신구 등은 질감조차 지각할 수 있을 정도이다.

램브란트는 단독 자화상뿐만 아니라 인물화나 풍경화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물론, <십자가 수립>(163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얼굴을 직접 그려 넣은 것도 있지만 <탕아의 돌아옴>(1665)같은 램브란트 자신의 정신적인 감정을 화면의 인물에 투사시킨 것도 있다. <램브란트와 사스키아(Rembrandt and Saskia)>(1635∼36년경)는 이인상으로서 작가가 결혼 2∼3년 후의 신혼시절의 모습이다. 사스키아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웃음을 가득 담은 그의 모습은 더할 나위없이 행복해 보인다. 이 때 광선은 옷무늬의 주름과 함께 순간적인 포즈를 날카롭게 직사하고 있다. 거슨(H. Gerson)은 이를 단순한 인물상이 아니라 성서의 탕자 이야기와 연관을 시키고 있으나 인간적인 환희의 램브란트 모습은 화면의 분위기가 안정됐음을 볼 때 거슨의 주장은 단지 추정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1640년대에 제작된 <자화상>은 34세 때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초기의 <자화상>과는 상당히 다른 면을 보여 준다. 암스테르담에서 1630년경의 그의 작품은 시대정신22)에 있었으며, 램브란트 역시 부르조아 근성의 후원자들의 기대에 호응했었다. 초상화 (1632)에서는 독특한 인상의 우연성보다 의상의 세부 묘사에서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는데, 그것과 1640년에 그린 그의 자화상과 비교해 볼 때 램브란트의 미술가적 개성이 대단히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초상화와 사납고 흥분된 주제인 그림에서부터 표현에 있어서 더욱 조용하며 더욱 심리적으로 암시된 형식으로 변천했다.23)

명암의 상대적인 대비는 광선이 약해짐으로써 시각상의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로써 극히 조절된 명암으로 분위기를 중후하게 해 주고 있으며 얼굴의 표정은 한층 근엄하게 응시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내적 발달의 한 과정으로 보여지며 솔직하고 위엄있는 인생 중반기의 성숙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러나 램브란트는 그의 그림으로써 사생활의 난맥상을 발견해 내려는 우리들의 의도를 실망시키곤 한다. 다시 말해서 그의 예술의 경로가 생애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24) 그가 비탄에 빠지거나 불운한 때에도 그의 예술은 동요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오히려 담담하고 굳게 다문 근엄한 그의 모습에서 절정기의 램브란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1658년에 제작된 <자화상>은 여러 의미에서 우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끈다. 우선 그 당시(52세) 램브란트는 연이은 재정상의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을 때이다. 그해 2월에 집과 동산, 9월에 데상과 판화가 경매에 붙여졌지만, 평가의 3분의 1 이하의 값밖에 받지 못해 부채의 상환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이다. 그러나 <자화상>에서는 그러한 어려움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여유만만한 얼굴표정과 부의 상징인 금빛 지팡이, 그리고 찬란한 장신구의 광채는 늙은 화가의 모습을 치장시켜 주고 있다.

이것은 재정적인 어려움과 자기표현과는 일치하지 않는 묘한 의미를 불러 일으켜 주기에 충분하다. 전면에는 터질 것같은 빛의 팽창으로 조금도 그러한 어려움을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똑바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굳게 다문 입술은 자기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깃들여져 있으며 의연한 태도로 모든 일들을 관조하려는 의지가 굳게 보인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함으로써 내부의 고통을 절감하려는 적응기제(adjustment mechanism)로써의 반동형식(Reaction- formation)25)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면보다는 만족과 자유를 <자화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1660년에 제작된 <노화가의 자화상>에서는 작가가 겪어온 인생노정을 모두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전히 광선은 독립적이기보다는 보완적이며 격렬한 색채의 움직임도 사라졌다. 그 대신에 차분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배경과 의복의 색을 한 데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가능했다. 초기나 중기의 자화상과는 달리 평범하면서도 온화한 의복이 작가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노년을 괴롭힌 비애와 운명의 흔적을 자신의 얼굴에 나타내고 있다. 이 자화상은 허식도 없고 야심도 없는 노화가의 담담한 일면과 거센 세파를 헤쳐온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이다.26) 인간적인 고뇌와 번민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작가의 진실성은 그의 의지와 신념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1661년의 <성 바울로풍의 자화상>은 불과 1년전의 자화상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흑갈색 계통의 배경에 그대로 침전된 채 의복의 형태는 거의 무시되고 있고 비교적 강한 광선만이 두부(頭部)와 책을 비춰주고 있다. 강한 명암은 얼굴의 굴곡을 양분시켜 놓고 있으며 이마의 주름살을 더 강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이것은 빈곤한 생활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감수하고 용인하는 초월적인 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1660년경의 <둥근 원이 있는 자화상>은 이제까지의 자화상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고뇌에 찬 표정으로 팔레트를 잡고 있는 모습은 일종의 성스러운 신비감마저 들 정도이며 가슴에서 울려오는 정신세계의 고결한 울림인 것이다. 인간 본래의 따뜻한 심성으로서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을 철저히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램브란트는 그의 인간성의 암시를 성공적으로 노출시킨 것이다.27) 그에 있어서 예술은 바로 그 자신의 주관적 표현수단이었으며 전부였던 것이며 자화상은 그러한 의미에서 최대의 가치를 갖는다. 작가 자신의 사상과 본질을 숨김없이 표현하는데 성공한 램브란트는 이러한 관점에서 영원히 내재된 정신을 우리들에게 전해줄 것이다.

IV. 램브란트 광선과 상징성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광선, 빛의 개념은 다분히 종교적인 신비성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그에 있어서 빛이란 2차원적인 회화작품에 공간의 깊이나 변화를 부여한다는 것보다 그 자신의 독특한 미학적인 의미를 내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밝고 어둡다는 것은 몇가지의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밝은 부분에서는 생명의 환희와 진실, 희망과 같은 정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고, 어두운 부분에서는 불안과 공포, 파멸, 조절, 그리고 죽음 등의 부정의 개념을 갖고 있다. 빛의 마술사 램브란트는 태양광원에서부터 오는 직접적인 빛을 화면에 그리기 보다는 '인공적'인 빛을 그 작품에 비추었다. 그의 정신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인공적'인 빛(특히 태양광선)은 우선 사물의 표면에 충돌되고 그 반사로 우리 시각상에 잡히게 된다.

중세 고딕 성당의 창문에 나타난 스테인드 글라스는 태양광선이 유리를 통해서 우리들의 시각에 전달되게 했다. 그러나 램브란트의 회화 작품에서 나타난 빛은 화면 밑바닥에서 나오고 있는 듯한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빛의 개념은 비의적이고 종교적인 주제에서 근거를 두는 것이다. 우리는 램브란트에게서 밝고 어두운 극적인 조명에 대한 바로크 실험의 가장 감동적인 종합을 보게 된다. 밝은 부분에서의 형태의 단순화, 어두운 부분에서의 신비감의 증대, 엘 그레코에서와 같은 스포트라이트 효과의 사용, 그리고 많은 기법적 구조적인 독특한 방법 등이 모두 그의 재량에 따라 자유자재로 다루어졌으며, 최대의 효과와 식별력을 가지고 구사하고 있다. 램브란트의 작품 속에 있는 명암의 대조는 당시 유행했던 이탈리아의 카라밧지오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램브란트 자신의 고뇌의 생활과 엄격한 프로테스탄트 신앙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자기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빈욕의 우상에 맞서 불사의 본체를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인간자세를 읽을 수 있어 더욱 감명을 받게 된다.28)

램브란트는 밑칠을 하고 반사 부분의 표현을 위해 덧칠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투명한 부분 위에 불투명하게 분방한 필치로 칠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의 중간 톤들은 면밀한 연구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의 작품들로 하여금 단순히 기술적인 회화적 구성체29)를 넘게 하는 '인간적'인 조건에 대한 뚜렷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요지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30)

루돌프 아른하임이 언급했듯이 램브란트는 빛처리의 사실주의적인 정당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이러한 해석방식을 일관성 있게 사상적이며 관념적인 방법으로 구사했다. 이러한 빛을 통한 심리적 통찰력을 보여주는 작가는 램브란트 외에도 루벤스나 벨라스케스, 무릴료 같은 화가가 있지만 램브란트만큼 시적, 문예적인 감성을 완벽하게 구사하지는 못하였다.

계몽기(Enlightment)의 합리적인 철학자들은 '이성의 빛(The light of reason)'을 강조했을 때의 빛의 개념상 성격은 지혜와 진실을 나타낸다. 어둠은 그 반대적인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인본주의적인 빛의 성질은 진리의 표현과 무지에 대한 깨우침을 의미한다. 시지각상의 빛은 본질적으로 양성적인 현상을, 어두움은 음성적인 질료를 뜻한다.31) 밝음과 어둠의 상징은 대부분 그 특징에 있어서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시각예술에서의 밝은데서 어두운데 이르는 변화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는데, 그림의 형상들도 그렇듯이 이것도 또한 독특한 미학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32) 다시 말해서 질료적인 공간지각 요소33)가 아니라 잠재된 빛의 역동적 이행단계의 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둠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은 빛이 갖는 램브란트의 추상적이고 서정적인 서술성에 의해 기인하는 것이다. 성스러운 빛은 이제는 하나의 장식이 아니라 사방으로 퍼지는 에너지에 대한 실재적 경험이었고, 하일라이트와 같은 그림자의 감각적인 경관은 하나의 계시로 전환되었다.34) 램브란트의 광선은 종교적인 상징성과 인간적인 고뇌를 업고 있는 '능동적'인 빛이다.

<도살된 소>(1655)에서 우리는 램브란트의 새로운 추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정물화 5점중 3점은 죽은 대상물을 그렸다.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미와 경탄이 아닌, 처절할 정도로 비참하게 죽은 대상을 작가는 사랑했던 모양이다. 생명의 영광을 빛으로 표현한 램브란트에게서 우리는 새로운 면을 그에게서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인간'으로서 숨길 수 없는 아픔을 나타낸 것이라 보여지고 있다. 이 작품이 그려진 무렵의 램브란트는 그의 일생에서 가장 고난받는 때였다. 1654년에 헨드리케와의 내연의 관계로 교회의 호출을 받게 되고 그의 당시 작품도 격화된 작풍으로 인해 고객들의 외면으로 재정상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 때였다. 그런 배경에서 <도살된 소>는 분명히 일종의 자화상적 요소를 가진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자기 분석적인 정신의 청증하고 처참한 직관을 소재를 통해서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명암의 대조를 위한 주위의 어두운 배경에 비해 섬찟할 정도로 갈라 헤쳐진 죽은 소의 모습에 강렬한 빛이 내뿜고 있는 듯한 모습은 우리들에게 그의 고통을 짐작케 한다.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그리고 우리들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듯한 사체를 명확하게 분석해 버린 빛은 어떤 상징적인 면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가 비관주의자이거나 허무주의자라고는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처절한 현실을 역으로 승화시켜서 '빛'이 갖는 그의 독특한 생명의 '외경'으로 봐야 한다. 즉 종교적 영혼성과 램브란트 생활 주변의 현장성과의 결합인 것이다.35) 1639년에 제작한 <죽은 공작>도 같은 정신적 복선을 갖고 있는 것이다.

램브란트의 빛은 고결한 순수성의 정신적인 상징이다. 따라서 그의 종교에 대한 신앙도 소박한 생활에서 해석을 찾고 있다. 그것은 유년기의 가정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기도 했기 때문인데 정적인 조화의 세계가 그의 감성에 굳게 자리잡고 있음은 <성가족>(1644)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안락하고 포용성이 최대한으로 강조된 구도와 절제되어지고 서정적인 광선은 흡사 시골의 평범한 가정을 묘사한 듯 하나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성가족이 보여주는 광경은 너무도 인간적이 아닐 수 없다. 빛의 개념은 어둠과의 상대적인 대조에서 생겨났다. 상대방의 소멸에 의해서 각기 존재하는 두 부분을 원시적인 상상력을 자극하여 흑과 백, 낮과 밤, 생과 사라는 본능적인 상징체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정신적인 차원으로 옮겨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빛과 사물을 현상적인 무(無)속으로 빠뜨리는 이 교차는 인간을 종교적인 신앙의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36)

이리하여 빛과 어둠은 그의 예술성에서 가장 중요한 보조개념을 형성했던 것이다. 폰 보데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램브란트에 의하여 성서의 정신을 배웠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종교적인 명암법이 현실에 현현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V. 결 론

한 작가의 초상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작가의 모든 것을 이해해야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삶을 영위하면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심성을 끊임없이 응시하면서 심화시키는 것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램브란트의 초상화는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어릴 때부터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지만 인간 모두가 공통으로 갖는 현실에 대한 욕망과 비애, 환희,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버릴 수 없었던 그는 그러한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기록해 놓았던 것이다. 그의 빛은 종교적인 신비성을 간직했으나 인간 영혼의 깊은 밀도를 영원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그의 자화상에 나타나는 빛은 색채 그 자체가 아니라 어둠을 몰아내고 작가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시키려는 확고한 의지의 발화인 것이다. 그의 자화상에서 보여준 모습은 순수한 자기고백적인 인간의 얼굴이었다. 야심이 있고 패기가 넘치던 청년기에서부터 모든 이해를 득달한 듯한 노년기의 모습에서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숙명적인 현실을 숨김없이 기록한 몇 점의 초상화는 인생 본연의 모습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이다. 고도의 감성적 직시의 세계가 그 특유의 빛을 창출했고 이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램브란트의 해답인 것이다.

램브란트의 이러한 감성적 직시가 바로크적인 종교관념 형태와 결합하여 주정적이고 서술적인 연극적 환상(theatrical illusion)을 창조한 과정에서 램브란트 자신의 이상아(ideal self)37)가 끊임없이 자기평가를 반성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관심 대상으로서의 자아38), 즉 램브란트 자신에게 어떻게 보였는가는 그의 자화상만으로도 충분히 감지할 수가 있다.

예술가는 그가 존재하는 실재적인 이해관계와 현세적인 시각을 어떤 형식을 통해서 투영(Injection)시키며, 그것은 순수하고 독창적인 표현성(Expressiveness)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요소들은 작가 자신의 감각과 직관으로 완성되어지는데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유한 자아개념을 습득함으로써만이 가능해지는 절대적인 존엄성인 것이다.

램브란트는 그의 자화상에서 생명에 대한 숭고한 외경과 함께 자기 자신에 대한 부단한 내적 성찰의 요구는 영혼이 깃든 빛과 어둠을 창조했으며, 그것은 내밀된 예술성으로 시공을 초월한 '인간성의 상징'을 표현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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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거슨, 『램브란트의 야경순찰』, 열화당, 1978

주석

1) '현상적 자아'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행동자가 의식, 지각하는 자아를 뜻한다.

2) 여기서는 의식적인 가식행위.

3) H.W.젠슨,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78. p. 480.

4) David Rosand, Art News, 1980. April. p. 136.

5) 박래경, 『램브란트』, 금성출판사, 1980. p. 4.

6) David Rosand, 앞의 책, p. 136.

7) Carl Michalson, "Christianity and the Existentialists", p. 74. (Paul Tillich, Existentialist Aspects of Modern Art, 1956).

8) 박래경, 위의 책. p. 5.

9) 한기주, "램브란트 연구", 『청년미술』 제 5권, 한국미술청년작가회, 1980, p. 20.

10) 뵐프린, 『예술작품의 해명』, 1961, pp. 35∼45.

11) 한기주, 앞의 책, p. 20.

12) 이경성, 『세계의 명화 Ⅲ』, 삼성출판사, 1981, p. 222.

13) 한기주, 앞의 책, p. 20.

14) 한기주, 위의 책, p. 20.

15) 박래경., 앞의 책, p. 84.

16) 잰슨, 앞의 책, p. 483.

17) 박래경, 앞의 책, p. 73.

18) 박래경, 앞의 책\, p. 74.

19) W lfflin, 앞의 책, pp. 35∼45.

20) 박래경, 위의 책, p. 2.

21) 박래경, 위의 책,p2

22) '시대정신'이란 17C 네덜란드 회화가 빛과 어둠의 강한 대조를 이루는 바로크적인 성격을 뜻한다.

23) W lfflin, 앞의 책, pp. 35∼45.

24) W lfflin, 앞의 책, pp. 35∼45.

25) 자기의 욕구, 충동, 감정이 너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에 그와는 정반대의 강한 욕구나 감정을 표현하는 심리기제이다.

26) 이경성, 앞의 책, p. 223.

27) 이경성, 앞의 책, p. 223.

28) 조요한, 『예술철학』, 경문사, 1982, pp. 90-91.

29) 외광파(Pleinarism)인 인상파와 신인상파를 뜻하며 그들의 기술적인 구성체는 고유색을 부정하고 빛을 태양광선에 의해 변화나 보색작용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변모해 가는 일종의 물질적, 과학적인 개념을 말한다. 따라서 문학적인 성격을 띤 고전주의의 빛과 광선에 대한 개념과는 구별된다.

30) 펠트만, 『미술의 구조적 이해』, 열화당, 1979, pp. 56-57.

31) 루돌프 아른하임이 어둠(Darkness)은 빛의 결여상태가 아니라 양성적인 상태로 보인다고 말한 반면, E.B. 펠트만은 자연현상에서 어둠이 양성적인 현상이 아닌, 빛의 결여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펠트만은 인간(미술가)이 어둠을 양성적 도구로 사용한다는데 동의했다.

32) 펠트만, 앞의 책, p. 52.

33) 어둡거나 밝은 배경으로 공간(사물과 사물사이)의 구별을 위한 의미를 뜻한다.

34) 루돌프 아른하임, 『미술과 시지각』, 홍성사, 1981, p. 421.

35) 한기주, 앞의 책, p. 23.

36) 한기주, 앞의 책, p. 23.

37) '이상아'란 자아를 개인의 항차적이고 이상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삼은 자기지각.

38)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을 '소중한' 존재 또는 '경멸'할 만한 것으로 보는 경우의 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