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별 설명
1) 서도호
함녕전
<함녕전 프로젝트-동온돌, 덕수궁 함녕전>,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2012 (퍼포머: 정영두)
Do Ho Suh, Hamnyeongjeon project-East Ondol Room, Hamnyeongjeon, Deoksugung,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Commission, 2012 (Performer: Jung Youngdoo)
함녕전(咸寧殿)은 1897년 고종의 침전(寢殿)으로 지어졌으며, 1904년 대화재 이후 복원된 건물이다. 고종은 1907년 황제의 자리를 강제 양위 당한 후 주로 함녕전 동온돌에서 거처하시다가, 1919년 이 곳에서 승하하셨다. 고종의 ‘기운’이 가장 많이 묻어있는 이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을 무대로, 작가 서도호는 예술가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고종이 주무실 때 ‘보료 3채’를 깔았다는 궁녀들의 증언을 영감의 출발점으로 삼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고리고리를 연결해가며, 리서치, 설치 작품 제작, 퍼포먼스(정영두), 영상작업 등을 동반한다. 국가 존망의 위기 상황에서 군주의 신분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고종이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과 불안이 관심의 초점이다. 마치 고종이 살았던 그 시대의 ‘온기’ 를 되살리기라도 하듯, 함녕전을 정갈하게 청소하고 도배하며, 당대의 모습과 가장 근접한 궁궐의 일상을 찾아 고증하려는 노력 자체가 작품의 일부로 기록된다. 결과적으로 함녕전에는 이러한 노력의 ‘흔적’만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또한 함녕전을 영감의 원천으로 하여 탄생된 설치 및 영상 작품은 덕수궁미술관 내부에서 전시된다.
* 함녕전 퍼포먼스 :
10월 3일 6:10p.m.
2) 하지훈
덕홍전
<자리>,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2012, (사운드: 성기완)
Ha Jihoon, JARI,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Commission, 2012 (Sound: Sung Kiwan)
덕홍전(德弘殿)은 함녕전의 바로 옆에 자리한 일종의 편전(便殿)이다. 원래 명성황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魂殿)인 '경효전(景孝殿)'이 있던 곳을 한일병합 후인 1912년 개조하여 덕홍전으로 고쳐 부른 것이다. 원래 신성한 ‘터’였던 곳을 일본인 통치자의 접견 장소로 변형시키면서, 바닥을 입식 구조로 바꾸고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은 이토록 미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이 일종의 변형과 왜곡의 산물이었다는 아이러니에 주목했다. 바닥에 크롬 도장의 좌식 의자를 가득 설치하여, 실내의 벽면과 천정 장식이 의자의 표면에 다시 ‘반영’되도록 한다. 실내의 인공 LED 조명과 외부의 자연광은 바닥 표면의 불규칙적인 반사효과를 더욱 증폭시킨다. 관객이 이 황홀한 공간을 서성이는 가운데, 사운드 아티스트 성기완의 음악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여인의 흐느낌, 찻잔 부딪히는 소리, 과장된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여 생성되는 강렬한 에너지가 이 ‘자리’의 특별함을 더한다.
3) 최승훈+박선민
<결정 (結晶) vs. 결정 (決定)>,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2012
Choi Sunghun+Park Sunmin, Crystal vs. Decision,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Commission, 2012
가장 절정을 이룬 시기에 덕수궁은 현재의 영역보다 약 3배가 넓은 면적을 차지했고, 수많은 전각, 행각, 궐내각사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약 170동 이상의 전각을 가지고 있던 경운궁에는 현재 15동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경운궁의 짧은 영광은 무상함과 시간성, 사물이 흘러가는 궁극적인 원리에 대한 추상적 질문들을 하도록 작가를 이끈다. 최승훈과 박선민은 한 때 행각으로 빽빽하게 채워졌을 것이나 이제는 텅 비어버린 덕수궁의 한 켠에 크리스털 블록을 이리저리 펼치고 쌓아 올린다. 이 세상 모든 종류의 결정(結晶)은 오랜 동안의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경과를 거쳐 어느 순간 하나의 완벽해 보이는 형태로 결정(決定)된 것이다. 그러나 그 찰나적 순간이 지나면 이내 다시 부서지고 스러지며, 또 다른 새로운 질서를 향해 편입되어 가기도 한다. 결국 무엇이 남겨지는지 알 수 없는 우주적 조건 위에서 부단한 사물의 움직임이 진행된다. 그래서 크리스털은 찬란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4) 성기완(SSAP)
중화전 행각
<오디오라마-조선왕실소설 구술프로젝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작
Sung Kiwan(SSAP), Audiorama-Novels of Royal Ladies, Sponsored by Arts Council Korea
경운궁의 정전(正殿)인 중화전(中和殿)은 1902년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상당히 위엄 있는 건물로 건립되었다. 당시에는 중화문을 포함한 삼문(三門) 구조와 행각 128칸을 제대로 갖추었으나, 차츰 훼철된 후 현재에는 중화문의 오른쪽 코너에 약간의 행각이 남아있을 뿐이다. 시인이자 음악가, 음악평론가이며 사운드를 채집하는 예술가이기도 한 성기완은 궁궐의 ‘배후’ 공간일지도 모르는 이 행각의 주변적 위치에 주목했다. 그는 이 곳에서 창덕궁 낙선재본으로 전하는 조선왕실의 소설들 중 <낙성비룡>, <영이록>, <천수석>, <화문록>의 흥미진진한 대목을 전문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녹음하여 들려준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격조”(작가 글 인용)가 묻어나는 고전 문장들이 “비일상적 억양을 지닌”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투사된다. 마치 현대판 TV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통속적 요소와 권선징악으로 종결되는 전형적 이야기 구도를 지니고 있지만, 다양한 인간유형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은유적 화술은 상당히 뛰어난 문학성을 지닌 것이다. 소설의 구절을 듣다 보면 관객은 조선시대 왕가와 귀족의 일상적 소일거리를 훔쳐 경험하게 된다.
5) 류재하
중화전
<시간>,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2012
Lyu Jaeha, Tim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Commission, 2012
경운궁의 정전(正殿)인 중화전(中和殿)은 1902년 2층짜리 건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채 2년도 되지 않아 1904년 경운궁의 대화재로 불탔고 곧이어 1층의 현재 건물로 중건되었다. 대한제국 시대 독립 자주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건물이었지만, 이내 불어 닥친 국가의 불운을 감내하고 지켜보아야 했다. 작가 류재하는 역사의 영욕을 간직한 중화전의 전면에 미디어 영상을 쏘아 올린다. 중화전의 앞마당인 조정(朝廷)의 박석에는 교차하는 레이전 선들을 가득 깔았다. 바닥에서 2층의 월대를 거쳐 중화전 건물로 이어지는 거대한 영상 효과는, 주변을 거니는 관객으로 하여금 환상적인 공간과 초월적인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인도한다. 존재와 비존재, 생성과 소멸, 빛과 어둠이 그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을 명상적 차원으로 이끈다.
* 중화전 미디어 상영 일정 :
9월 18, 19, 20, 21, 22일 7:00p.m.
9월 29, 30일(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 연계) 7:30p.m.
10월 3일 7:00p.m.
10월 4, 5, 11, 18, 19, 20일 6:30p.m.
10월 6, 7일(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 연계) 7:30p.m.
11월 8, 9, 10, 15, 16, 17일 6:00p.m
6) 이수경
석어당
<눈물>,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2012
Yeesookyung, Tear Drop,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Commission, 2012
석어당(昔御堂)은 경운궁의 시원을 이루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으로, 1593년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신을 갔다가 이 곳에 머물게 되면서 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608년 선조가 석어당에서 승하하였고, 광해군 시대에는 인목대비가 이 곳에서 약 5년간 유폐되기도 했다. 작가 이수경은 덕수궁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소박한 건물에 ‘눈부신’ 눈물조각을 설치한다. 마치 눈물 한 방울이 응결된 것 같은 이 조각은 수 천 개의 LED 조명에 의해 굴절되고 반사되면서 정확히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슬프지만 지극히 아름답고, 빛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이 역설적인 조각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삶을 꾸려갔던 수많은 궁궐 속 여인들의 운명을 표상한다. 형언할 수도 없고, 잘 파악될 수도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는 그 어떤 세계를 비추이면서.......
7) 전통한복 김영석
석어당
<Better Days>,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2012
Traditional Korean Costume Kim Young Seok, Better Days,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Commission, 2012
석어당(昔御堂)은 임진왜란으로 피신 갔다 돌아온 선조가 거처했던 곳이고, 광해군 시대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원형을 보존하여 오다가 1904년 경운궁 대화재로 불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석어당은 즉조당과 하나의 권역을 이루며 1930년대까지도 복도각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고종 시대에는 덕혜옹주를 위한 유치원이 즉조당 일곽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복 디자이너이며 컬렉터로도 유명한 작가 김영석은 다양한 사연을 담은 석어당의 방들을 아름답고 여성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빼곡하게 방을 채운 개화기 시대의 가구와 공예품들은 모두 작가의 컬렉션이다. 마치 한때 지극히 행복했던 덕혜옹주의 한 시절을 되돌리려는 듯, 설치된 소품과 영상작품이 아련한 기억과 향수를 이끌어낸다. 꽃장식이 가득한 가운데, 석어당 앞마당에서 이정화의 퍼포먼스도 펼쳐진다. 행복과 불행은 그 경계가 없으며, 끝도 시작도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석어당의 매력은 희로애락이 뒤섞인 우리의 인생을 성찰하게 한다.
* 석어당 퍼포먼스 일정:
10월 3, 11일 4:30p.m.
8) 정서영
정관헌
Chung Seoyoung
<마음 속으로 정해라> Inwardly, Determine Yourself
<알리지 않은 휴식> A Rest without Notice
<괴도신사 뤼팽> Arsène Lupin, Gentleman Burglar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2012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Commission, 2012
정관헌(靜觀軒)은 1900년경 러시아인 건축가 세레딘 사바친(Afanasij Seredin Sabatin, 1860-1921)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구조는 한국의 정자 같기도 하고 서양의 발코니 같기도 하다. 용, 이화(李花)와 같은 대한 제국의 도상에서부터 박쥐, 복숭아, 화병 등 다양한 문양이 공존한다. 나무, 철재, 유리뿐 아니라, 기둥의 인조 콘크리트, 바닥의 타일, 지붕의 녹색 아스팔트 슁글 등 재료 또한 매우 혼성적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각양각색의 기억들이 중첩된 이 공간에 작가 정서영은 ‘현대성’의 요소를 또 한번 겹쳐 놓는다. 정관헌 내부에 기왕 존재하는 가구들 사이로 다각형의 거울조각을 끼워 넣기도 하고, 이 가구들을 덕수궁미술관 내부로 내보낸 후 빈 자리를 한 명의 퍼포머로 대신 채워 넣기도 한다. 정관헌의 뒷마당에서는 세상의 각종 소리를 음악적 요소로 불러들이는 사운드 아티스트 류한길의 공연이 짧은 모노드라마와 함께 펼쳐진다. 궁의 ‘주변’에 위치한 채 도심의 경계와 맞닿아있는 정관헌의 독특한 위치는, 어처구니 없고 예측을 불허하는 상상의 지대를 자극한다. “분절되고 지워지거나 파편적으로 호출된 기록들”(작가 글 인용)이 이 일대를 배회한다.
* 정관헌 퍼포먼스 <알리지 않은 휴식> 일정:
9월 18, 19, 22, 23, 25, 26, 27, 28, 29, 30일, 10월 1, 2, 3, 4, 9, 10, 11, 16, 17일 12:00-6:00p.m.
* 정관헌 뒷마당 공연 <괴도신사 루팽> 일정:
10월 3, 11일 5:30p.m.
9) 최승훈+박선민
Choi Sunghun+Park Sunmin
<Daystar 1>, <Daystar 2> 최승훈+박선민, 2011 Choi Sunghun+Park Sunmin, 2011
<Daystar 4-2>,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2012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Commission, 2012
덕수궁의 연못가 숲은 한 때 궁궐 안의 다양한 업무를 관장하는 궐내각사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던 공간이다. 1930년대 일제에 의한 덕수궁의 공원화 사업으로 이 일대의 행정 건물들이 대부분 사라졌고, 1960년대에는 연못 일대가 스케이트장으로 탈바꿈되기도 했다. 연못을 판 흙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둔덕 위에 오래된 나무들이 자리를 잡았다. 낮에도 우거진 나무들로 그늘이 형성되는 이 자그마한 숲 속에 작가 최승훈과 박선민은 그림자 놀이 영상을 설치한다. 창문 틈으로, 혹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사물을 만나 느린 그림자를 만든다. 사물의 움직임이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천천히 가른 것이다. 그 사소하고 평범한 사건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뜻밖에도 그 순간이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나지막한 담장 바로 너머로는 서울 중심가의 번화한 일상이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