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시대 미술의 오늘과 내일 《젊은 모색 2021》 인터뷰 3편

(위) 윤지영, 이윤희, 최윤
(아래) 현우민, 현정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 중인 《젊은 모색 2021》은
동시대 미술계에서 생동하고 있는 청년 작가 15인을 만날 수 있는 전시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사진, 영화,
도예 등의 매체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시대를 향유하며 각각의 독창적인 세계를 쌓아 올리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
총 3회에 걸쳐 인터뷰의 대미를 장식한 다섯 작가의 이야기를 끝으로 그 막을 내린다.

윤지영 작가 “감정과 감각의 변화를 공간적으로 조각하다”
윤지영 작가는 개념적인 조각을 설치 작업으로 풀어내며, 사회의 구조와 그 이면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그 의미들을 시각화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에게 다가온 위기를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윤지영 작가
윤지영 작가 전시실 전경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사를 작업에 반영해오고 있으신데요. 이러한 문제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중에 더 관심이 가고, 그에 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작업을 구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2019년에는 ‘버닝썬 게이트’라는 대형 범죄 사건과 여성 연예인이 잇따라 세상을 등진 일 등으로 인해 여성의 성적 대상화 문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여성 시각 예술인으로서 입장을 드러내고 싶어 그리스 신화 속 ‘레다와 백조’ 이야기를 전복하는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제우스가 백조로 변하여 레다를 겁탈한 이야기는 서구 미술 안에서 남성 작가들에 의해 여러 차례 변주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신체가 오히려 성적 대상화 되는 경우가 많았던 해석과는 달리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가(저)의 투명한 손은 백조의 목을 비틀어 꽉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 조각을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구 조각은 제가 ‘몸’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었던 조각을 세 명의 여성 타투이스트에게 나눠주고 타투를 의뢰한 것입니다. 타투이스트들은 그리스 신화 속에서 피해자가 부당한 처벌을 받은 이야기를 골라 재해석한 뒤 가해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각자의 해석으로 조각에 새겼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건이나 생각에서 작품 구상을 시작하더라도 제 작품인 <레다와 백조>처럼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은 형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형태로 만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젊은 모색 2021》에 참여하면서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이 고립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 명으로서 개인화 및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 과잉 상태를 다양한 모습의 조각으로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이번 출품작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개개인이 마주하는 현실을 작품으로 구현했는데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만나서 소통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팬데믹이 우리의 소통 방식이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외부 활동이 통제되고 각자 격리되는 상황에서 당연시되었던 시공간에 대한 경험을 재인식해야 하는 상황은 인식의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도록 했기 때문에 스스로 매몰된 개인이 자기의식 과잉의 상태를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이 상황을 함께 겪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 상태를 시각화하고 싶었습니다.
자기의식 과잉이나 개인화는 요즘의 ‘언택트’라는 용어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에서 주인공 조앤은 딸의 집을 방문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상치 못하게 외딴곳에 발에 묶이면서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우아하며 완벽에 가깝다고 ‘믿었던’ 삶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걷는 것밖에 없는 허허벌판에서 그녀는 과거에 자기방어적으로 넘겼던 상황들을 곱씹게 되죠. 그 과정에서 자기의식 과잉 및 개인화 상태가 되어 며칠 만에 자기혐오에 빠지고 신경쇠약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면서 자기 고백적인 상태가 됩니다.
우리는 ‘아 그때(내가 혹은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하는 생각들만으로도 긴 시간을 괴로워하며 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외적 사건과 자신을 끊임없이 연관시키고 자신의 상태에 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인지나 기억이 왜곡되거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한 사람의 감정과 감각이 변해가는 과정 자체를 공간적으로 드러내는 다양한 상태의 조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윤희 작가 “도자만이 가지고 있는 진실함, 그 감정의 승화”
이윤희 작가는 정교한 형태의 백자와 화려한 색채의 페인팅이 들어간 섬세한 도자 조각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구축해왔다. 문학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도자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거나 자신만의 새로운 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윤희 작가
이윤희 작가 전시실 전경
작가님의 도자 조형 작업에는 고대와 중세, 동양과 서양의 신화와 설화 속 다양한 도상들이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게 응축돼 있습니다. 이러한 도상을 제작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도자 작업은 한계가 뚜렷한 재료이기 때문에 다루기 어렵지만, 그만큼 ‘속임수’가 없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매일 들여다보고, 살펴보고, 재료를 이해하며 기술을 익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자만이 가지고 있는 그 진실함이 좋았습니다. 흙이나 몰드를 만들고, 성형한 후 갈라짐은 없는지 계속 살펴보는 부수적인 과정들이 계속됩니다. 단순하고 간결해 보이는 하나의 도자이지만, 이 하나의 작업을 완성하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이 곱절로 숨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상을 제작할 때의 과정은 수행이나 명상과 비슷합니다. 미술치료에서는 뜨개질과 바느질 등 신체 동작의 반복을 통해 안정감을 갖게 한다고 들었는데요. 저 역시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이라 불리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승화가 이루어지고 자신과 마주함으로써 어떤 치유가 이루어짐을 느끼곤 합니다. 또한 즉흥적인 작업 역시 마음속 깊이 내재해 있는 추상적이고 다양한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조형화함으로써 치유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도자 조각들을 선보였는데요. 이 작품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먼 과거에는 중세 종교화가 비유나 상징을 통해 성서의 메시지를 전달했듯이, 저는 이번 출품작을 통해 생명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해골, 치유를 상징하는 붕대, 안식처를 상징하는 샘물 등 다양한 알레고리(allegory)의 집합체로 『신곡』의 장면 장면을 재현하려고 했으며, 그중 ‘피안의 밤’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단테의 『신곡』 중에서도 ‘지옥 편’을 중점적으로 다뤘는데요. 아홉 가지 유형의 죄인이 각자의 죄에 따라 형벌을 받는 ‘지옥 편’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는 지옥, 연옥, 천국 3부로 이루어진 단테의 『신곡』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화가 윌리엄 브레이크 역시 그의 말년에 이 ‘지옥 편’에 심취해 98개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인데요.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것처럼 저의 상상력도 자극한 모양입니다.
단테는 지옥에서 불바다와 무거운 돌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분열 및 불화를 조장한 영혼들이 벌을 받는 곳에서 베어진 자신의 목을 들고 다니는 베르트랑을 묘사했습니다. 지옥을 말 그대로 ‘지옥’으로 표현한 것이죠. 반면 저는 상징적인 기호들로 지옥이나 죽음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중세 무덤 건축 양식을 연상시키는 작업들의 경우, 죽음 자체의 슬픔이나 두려움보다는 죽음 이후의 고요함이나 평안함 등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현세에서 저 세계로 건너가는 과정, 즉 욕망과 불안으로부터 시작한 여정이지만 어떠한 깨달음을 통해 자아의 치유를 이뤄낸, ‘영혼이 안식으로 향하는 과정’을 이 작품에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최윤 작가 “한국 사회, 그리고 오늘날의 풍경과 찌꺼기들”
최윤 작가의 작업은 한국 사회의 진부하고 상투적인 이미지, 그 이미지가 만드는 집단의 습관과 믿음을 다룬다. 이번 전시에는 지나간 전시에서 일어난 가상의 상황을 담아낸 작업을 통해 늙음에 대한 미감과 통념을 비튼다.
최윤 작가
최윤 작가 전시실 전경
출품작 <마음이 가는 길>에 대해 ‘복잡기괴한 난제들이 만든 너무나 한국다운 풍경에서 속된 마음이 가는 길은 어디인지 묻고 싶다’는 말을 작가 노트에 적어두었는데요.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보다 자세히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2020년 서울에서 개최한 개인전 《마음이 가는 길》에서 저는 사무실 파티션,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 변형된 캐릭터 조형물, 오래된 주택의 전형적인 인테리어, 관공서의 게시판 등을 참조한 작업물과 여러 산업 자재들, 그리고 인간과 동식물의 형상이 뒤엉켜 붙은 몸체들이 난무하는 전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관객들은 “너무 한국”이라는 반응을 보였는데요. 저는 작업에서 ‘무엇이 (너무) 한국적이다’를 말하기보다, ‘너무 한국’이라고 느끼는 것들을 향한 집단의 태도와 감정을 다루고자 합니다. 그것은 주로 웃음과 공포를 주며, 아련하고 초라하지만 마음이 가게 합니다.
이 전시와 같은 제목의 출품작 <마음이 가는 길>은 《마음이 가는 길》(2020) 전시와 전시가 끝난 후에 작업을 보관하는 창고를 번갈아 이동하며 전개됩니다. 과거의 작업은 여러 명의 할머니가 되어 등장하고 할머니들은 전시실에 적혀있던 ‘마음’, ‘게시’, ‘공포’, ‘바닥’, ‘동물’이라는 제목의 시를 낭독하며 배회합니다. 사실 이 할머니들은 노인 분장을 한 젊은이들 인데요. 이들을 통해 ‘끝없이 다시 고쳐 새로이 내보이는 세상’에서 우리의 ‘좋아요’는 어딜 향하고 있는지 질문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할머니라는 인물이나 대상, 진짜 할머니처럼 보이는 가짜 할머니, 나이 든 사람이나 오래된 사물이라기보다는 할머니로 부를 수 있는 이미지, 할머니이기도 하고 할머니가 아니기도 한 것, 진위를 떠나 할머니로 발현된 기괴함입니다.
<마음이 가는 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끈질기게 잔존하는 찌꺼기 같은 감정을 꺼내어 살펴볼 수 있길 바랍니다. 찌꺼기는 생산과 소비에 딸려 나와 남은 것이지만, 버리기 힘들고 버려도 다시 생기며, 점점 불어나기에 난감한 존재입니다. 날이 갈수록 찌꺼기와 찌꺼기가 아닌 것의 구분조차 희미해지고요. 제가 다루는 이상하게 변이된 동시대 풍경은 사람들 마음에 이와 같은 감정의 찌꺼기가 쌓여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막다른 길 걷기>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일상을 더는 마주할 수 없게 됐을 때 방향을 잃고 멈춰버린 우리의 현 위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임을 암시하는 듯 보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2020년 뉴욕에서의 개인전 《막다른 길 걷기》는 합판으로 막힌 도시의 상점과 간판, 계속되는 대형 화재나 태풍과 같은 이상 기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붙어 있는 발자국 스티커, 신화와 괴담에 등장하는 아귀와 빅풋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전시였습니다. 여러 상황으로 인해 관객이 거의 없었고, 저는 전시에 오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 SNS에 ‘Walking digital flyers’라고 이름 붙인 전시 관련 게시물 시리즈를 올렸습니다. 이번 전시 출품작 <막다른 길 걷기>는 이 게시물들의 일부를 선별하여 엮은 작업입니다.
팬데믹 시대의 비대면 전시는 360도 카메라를 통해 전시실을 촬영하고 이를 웹으로 송출합니다. 저는 전시를 온전히 본뜬 360도 콘텐츠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는 대신, 이와 같은 조건과 한계 상황을 일종의 시나리오로 이용하였습니다. 높은 천장과 직사각형 형태의 《막다른 길 걷기》(2020) 전시실은 무인도와 같았습니다. 길이 조정이 가능한 장대에 360도 카메라를 장착한 촬영자는 카메라를 통해 무인도의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동시에 모바일 기기 화면으로 이를 확인했으며, 모든 시점과 과정을 담은 데이터를 저장했습니다. 이후 편집을 할 때 360도 렌즈가 만들어내는 구멍과 어긋남, 그리고 입력과 출력의 이질적인 거리감을 잘라내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작업에 사용된 또 다른 게시물은 흔히 전시 홍보용으로 나오는 전시 전경이나 설치 전경과 같은 사진을 이용한 것입니다. ‘올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동물들이 전시에 방문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막다른 길 걷기》(2020)의 전시 전경이라고 공개한 사진에는 전시실을 어슬렁거리는 야생동물이 보입니다. 이 사진은 모바일 기기의 구글 AR 서비스를 이용해 관객이 없는 전시실에 동물들을 불러오고, 이 화면을 캡쳐해 SNS에 올린 것입니다. 최근 팬데믹으로 인해 텅 빈 각국의 도시에 출몰한 동물을 다룬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요. 그렇기에 이 전시 전경이 더 묘한 층위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현우민 작가 “개개인의 이야기를 모아 만드는 서사”
현우민 작가는 일본의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교포 3세로, 영화 매체를 통해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영상과 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우민 작가
현우민 작가 전시실 전경
초기작 <돌-아-가>는 일본으로 이주한 조부모님에 관한 자전적인 이야기이자, 작가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기도 한데요. 이 작품을 통해 찾은 작가님의 디아스포라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감회를 느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돌-아-가>라는 작품을 만들기 전까지 저는 제가 재일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정면으로 바라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되돌아보니 무의식적으로 ‘재일한국인이라는 이름표가 붙는 것이 불편했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결국 재일한국인, 혹은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 가지는 기호성에 반발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돌-아-가>에서는 할머니의 개인적인 삶을 다루려고 했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들도 처음부터 대단한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이야기가 모였을 때 더 잘 보이는 것들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커다란 서사에 묻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제가 작가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도도기>는 이전 작품처럼 ‘섬을 떠나는 탈출’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제주뿐 아니라 홍콩의 펑차우까지 내러티브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담긴 의미를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도도기>는 2017년 홍콩의 펑차우라는 낙도를 방문하고 매력적으로 느낀 이후 시작한 프로젝트로, 2020년까지 이에 대한 두 개의 영상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도도기는 ‘섬으로부터 도망간, 혹은 섬으로 도망간 기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정치 상황의 과격한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홍콩의 과거, 미래, 현재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방향을 바꿔 신작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돌-아-가>에 출연하셨던 할머니가 2019년에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의 유골을 제주도로 가져가는 영상에서부터 시작해 우란분(백중맞이)에 홍콩의 낙도에서 열리는 축제 의식을 담은 영상으로 끝납니다. 작품은 여행, 죽음, 공포, 밀항과 같은 개념들을 암시하고 있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시대인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부터 두 개의 다른 섬에서 촬영한 영상을 함께 보여주면서 우화적인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는데, 그게 처음으로 실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완곡한 방법을 택한 것은 제가 홍콩 사람도, 제주도 사람도 아닌 외부인이라는 거리감을 부정하지 않은 채 충실히 서사를 풀어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작품의 주제, 저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몇 년간의 생각을 관객들과 공유하기 위해, 제작 기록과 가상의 여행기를 담은 책도 제작했습니다. 전시실에서는 그중 일부인 일기와 스테이트먼트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돌-아-가>와 <도도기> 사이에는 10년 이상의 시차가 있고, <돌-아-가>에 나왔던 할머니가 <도도기> 때는 안 계시지만, 이런 개인적인 사실과 사회, 픽션을 포함하는 실험을 관객 여러분들께서 어떻게 봐주실지 기대됩니다.

현정윤 작가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에서 파생한 상상들”
현정윤 작가는 삶의 다양한 권력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은유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현재 사회구조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존재 양태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주목하고, 이를 전시실에 펼쳐진 조각 오브제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현정윤 작가
현정윤 작가 전시실 전경
평소 작가님의 작업에는 신도시 거주와 영국 유학 시절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오브제들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지, 이 조각 작품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작업에 따라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지만 최근에는 주로 특정한 태도나 캐릭터가 있는 조각을 만들고 그것들이 주어진 공간과 어떠한 연계를 가지고 배치되는지에 따라 발생하는 상황을 전시로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제 고향은 신도시였고, 신도시에서 신도시로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공간에 쓰여 있는 미리 주어진 시스템을 인식하거나, 어떤 것이 생기고 없어졌는지, 무엇이 작동하고 작동하지 않는지를 감각하는 과정이었고 그 경험에서 파생된 것이 작업 전반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가 개인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어떻게 유의미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재료들의 조합이나 형태, 색 등의 재료 사용 방식을 통해 조각이 어떠한 태도를 갖게 하거나, 조각이 공간에 어떻게 위치하는지에 따라 조각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조각의 시선과 역할을 설정하면서 조각을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조각들이 어떠한 태도나 상태로 공간에 존재하거나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지, 그래서 그 조각들은 어떠한 공동체를 그리고 있는지를 통해서 현재 사회구조와 시스템 속에 일상을 영위하는 존재들의 양태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관객들이 조각에게 일어났거나 일어날 법한 앞뒤 상황을 상상하거나, 조각이 할 수 있거나 하지 못 하는 일 등을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비록 고정된 상태의 조각이지만 말입니다. (웃음)
《젊은 모색 2021》에서 선보인 작품들이 이전 조각 작품들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전 조각 작업에서는 파이프 클램프, 벽, 체인, 철망 등 공간의 구조나 조각에 결부되었던 구조물들은 조각의 의지나 행위를 방해하는 듯 보이거나, 조각이 가지는 신체의 의지와 신체를 억압하는 구조물들의 힘의 방향이 어긋남으로써 조각이 무력하게 보이는 상태로 전시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조각의 신체는 그런 구조물들을 마치 자신의 뼈나 살인 양 편안하게 장착하고 있거나 스스로 결박하는 듯 보이는 등 자의성이 강화된 채 등장합니다. 시스템의 의지를 곧 자신의 의지인 양 몸에 체득한 조각들의 군상을 통해 타개할 대상 혹은 새로운 미래의 도래가 더 아득히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된 상황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포함된 조각들 가운데 운동성이 느껴지거나 움직임이 잠재된 조각들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요. 그 운동성의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도 제 전시실에서 그 지점을 눈여겨 봐주시면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