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가장 타오르는 시선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는 말 그대로 지금 여기에 개인으로서, 그리고 동시대 청년으로서 마주한 시대의 감각과 고민을 재현하며 예술적 실천을 모색하는 전시다. 참여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삶에 스며든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뮤클리는 총 4편에 걸쳐 고유한 창작 방식으로 예술을 탐색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1편에서는 디지털 작업을 통해 확장된 표현 방식을 보여주는 김을지로, 송예환, 상희, 이은희 작가를 만나봤다.
“생물이 성장하는 방식과 닮은 3D 그래픽의 작동 방식, 그 관계에 대한 탐구” 김을지로 작가
김을지로 작가
Q. 기존 작업에서부터 균류의 증식, 식물의 성장처럼 생물이 생성되고 소비되는 구조를 3D 그래픽의 작동 방식과 유사하다고 보셨는데요. 어떤 점에서 구체적으로 비슷하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하며, 그 작동 방식을 3D 애니메이션, 증강현실(AR) 등 미디어 작업과 어떻게 연결지어 제작하고 계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식물이라는 범주를 들여다보는 작가이자, 다양한 식물들을 돌보는 실내 정원의 정원사로서, 저에게 식물은 그 크기와 규모와 상관없이 예측 불가능하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형태와 기관이 유지되는 동물과 달리, 필요에 따라 기관을 형성하고 탈락시키기도 하면서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빠르게 적응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시세계의 이미지와 식물의 성장 매커니즘은 수식을 기반으로 한 패턴과 알고리즘을 닮았습니다. 지극히 야생적인 동시에 기계처럼 냉철한 식물의 세계가 디지털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설계된 세계로 보이지만 동시에 한없이 유약한 것, 혹은 유약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몸을 획득한 존재. 그리고 인간은 대상과 맞닿은 순간, 피상적인 일부를 보고 관계를 형성하죠. 저는 이러한 구도가 식물과 디지털 그리고 인간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디지털 이미징기술의 문법을 매개로 비틀어 타자의 관점을 사변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김을지로, ‹시밀리아 시밀리부스 쿠란투르›(2025)
다채널 LED 패널, 컬러, 사운드, 240.5×258×100cm
Q. 난초를 중심으로 제작된 ‹시밀리아 시밀리부스 쿠란투르›를 비롯해서 신작들 또한 기존의 작업처럼 식물의 생물학적 특징을 디지털 미디어에 빗대어 표현하셨습니다. 이번 작품에 대한 더욱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2023년 개인전 «옮겨심기»에서는 ‘실내식물’을 주제로 다루며 그들이 편집되고 소비되는 양상을 디지털미디어의 표현적 특징에 은유하는 방식으로 전개했는데요, 이번 작업에서 난초라는 식물군은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언뜻 마술적 주문으로 느껴지는 작품명 ‘시밀리아 시밀리부스 쿠란투르’는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치유한다’라는 의미로, 과학과 상식이 지금처럼 견고한 위상을 차지하기 이전인 16세기, 의사이자 연금술사인 ‘파라켈수스’가 말했던 라틴어 구문입니다. 이는 인류가 맨 처음 식물을 약재로써 인간사회에 포섭시키려고 하였을 때, 형태를 통해 효과를 유추했던 태도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저는 ‹시밀리아 시밀리부스 쿠란투르›를 통해 ‘우리가 보고, 믿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난초는 번식이라는 삶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수분매개자와 닮은 모습으로 진화하며 지금의 화려한 외형을 갖출 수 있게 됐는데, 인류는 오랜 역사 동안 그들을 채취해 본래의 목적과는 관계없는 화려한 무늬들을 합성해 왔습니다. 그들의 번식전략은 실패한 것일까요? 혹 난초의 기만적 전략 아래 인류도 결국 난초의 번식 수단이며, 수많은 수분매개 종 중 하나일 뿐이지 않을까요? 실패와 성공의 이분법으로 나누기보다 그들의 관계를 다르게 위치시켜 보고자 했습니다.
작품 ‹복안의 정령›에서 ‘프로그램 속 카메라’는 덫과 같이 작동하는 난초꽃에 갇혀버린 곤충의 시점이 되고, ‹포복하는 맥박›에서는 인간이 지각하는 시간의 흐름보다 빠른 속도감으로 식물의 운동성을 보여줍니다. 이번 젊은 모색에서는 세 가지 작품을 통해 동시대 미디어 환경에 대한 감상을, 낙관적 아름다움보다는 낯설고 두려운 난초의 이미지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김을지로 작가 전시 전경
사진: CJY ART STUDIO_조준용
Q. 현실의 대상을 디지털 환경에서 재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실제의 삶과 디지털 기술의 관계 속 새롭게 생겨나는 공간을 고민하시는 것 같은데요.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어떠한 감상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3D 그래픽은 보통 현실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것을 예측-시뮬레이션하거나, 판타지적이거나, 이상적인 현실을 구현하는 기술로 사용돼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술의 완성도 기준이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할 수 있다고 믿고, 때로는 치열하기까지 한 비생산적인 작업방식에 오히려 애착을 느낍니다. 제가 사용하는 기술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객관적 진리를 표방하는 과학으로부터 유연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기질적인 반항심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되는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3D 그래픽과 특수효과 등 현실을 초과한 묘사들은 광고와 파사드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능청스럽게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효과의 농도가 이미지의 위상을 부여하는 듯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저는 현실과 3D그래픽이 단순히 원본과 대리의 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은 현실에 대한 다른 관점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고실험의 장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당연시했던 감각들을 다시 조정하거나, 타자를 포용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인터넷의 이면” 송예환 작가
송예환 작가
Q. ‹인터넷 지도›는 제한되고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거대 플랫폼에서, 사용자가 어떻게 탐색의 권리를 잃고 수동적인 존재로 변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품 전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리며, 제목을 ‹인터넷 지도›로 지은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구조적 변화를 거시적인 시선으로 보여주고자 했기에, 작품 제목을 ‹인터넷 지도›로 정하게 됐습니다. 이 작업은 관람객이 스크린 앞 바닥에 표시된 경로를 따라 원형으로 반복해 걷는 동안, 스크린 속 바다 위에 탑이 하나씩 쌓여가는 구조입니다. 한 걸음이 하나의 블록이 되는 셈이죠. 사용자가 반복적이고 수동적인 행동을 지속할수록 탑은 높아지고, 바다의 흐름은 점차 제한되며 중앙에는 회오리가 형성됩니다. 바다 위를 자유롭게 서핑하던 서퍼들은 회오리에 휘말려 중심부로 빨려 들어가고, 결국 바다는 한가운데로 모인 웅덩이로 변합니다.
여기서 ‘바다’는 곧 정보의 바다, 즉 인터넷을 상징합니다. 인터넷을 서핑하는 ‘서퍼들’은 사용자들을 의미하며, 바닥에 표시된 경로는 마치 소셜미디어나 템플릿 기반 플랫폼이 사용자 행동을 제한하는 제스처와 유사합니다. 이를 따라 걷는 관람객은 플랫폼에 의존하는 대다수의 사용자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반복적 행위 속에서 쌓이는 탑은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상징함과 동시에, 대중의 소비를 기반으로 성장한 통제 불가능한 거대 플랫폼 기업의 형상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의존 속에서 사용자는 점차 자율성을 잃고, 고립돼 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송예환, ‹인터넷 지도›(2025)
2채널 인터랙티브 웹사이트, 카메라, 시트지, 가변크기
Q. ‘필터 버블’을 비롯한 인터넷 환경을 거시적 관점에서 시각화한 지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관련해서 웹사이트,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어떻게 드러내며, 작품 안에서 녹여내기 위해 노력한 부분을 알려주신다면요?
제 작업은 인터넷과 온라인 환경을 다루고 있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단순히 웹사이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설치 작업이나 물리적 조형물과 웹사이트 스크린이 나란히 배치되도록 구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상 물리적 환경과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작업에서도 이러한 연결고리를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바닥에 부착된 시트지는 특정한 사용자 행동을 유도하며, 그 행동은 다시 온라인 공간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를 본 사용자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이처럼 상호작용이 순환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 양쪽 모두에서 정보 왜곡, 플랫폼 의존, 필터 버블 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인터넷이라는 공간만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사용자의 과거 활동이나 선호도를 분석해 그에 맞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다양한 관점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
송예환 작가 전시 전경
사진: CJY ART STUDIO_조준용
Q. 우리 사회에 디지털 기술이 깊숙하게 자리하면서 웹에서 제한된 언어와 문자,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성의 한계 등 다양한 디지털 환경을 고민하고 계십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대안적인 인터넷 환경’이란 무엇인가요?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주권이 부여된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처음 부흥하던 시기, 특히 미국에서는 인터넷이 불가능했던 장거리 통신과 정보 교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모두의 의견을 공평하게 수렴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거대 기업과 정부 기관들이 인터넷을 개인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도구로 활용하게 됐죠. 동시에 사용자들에게는 그들이 마치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는 환상을 다양한 장치를 통해 심어주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의 ‘Explore’ 버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다시 사용자들이 자율성과 주권을 되찾을 수 있는 환경을 상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인터넷에서 보이는 자율성이 사실은 ‘통제된 자율성’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작업들을 지속해 오고 있으며, 이번 «젊은 모색 2025»의 신작 또한 그 흐름 위에 놓여 있습니다.
“작품과 관람객이 조우하면서 일어나는 새로운 사건” 상희 작가
상희 작가
Q. 세대나 시대의 공동의 감각과 연루된 이야기를 인터랙티브 미디어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 작업 방식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람객이 인터랙티브 미디어와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관람객은 인터페이스의 키, 조이스틱, 버튼을 조작합니다. 또한 관람객은 이 조작 행위가 작업을 전개시키고 아바타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전환되는 것을 지켜봅니다. 관람객의 아바타-캐릭터는 완전히 관람객과 일치되지 않습니다. 관람객은 자신의 행위에 연원하는 이야기 전개를 볼 수 있는데, 이때 관람객은 주인공 캐릭터와 동일시할 수도 있고 레코드를 감고 있을 따름인 관찰자적 시선을 견지할 수도 있습니다. 둘 사이를 오고 갈 수도 있고요. 세대나 시대의 공동 감각을 이야기할 때 저는 그 감각이 아주 보편적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어떤 위치에 놓인 사람들의 직관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움직임을 나의 행위와 연동돼 있으나 나 자신은 아닌, 인터랙티브한 시점, 캐릭터, 아바타가 이런 감각적 드나듦과 중첩을 전달하는데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상희, ‹유랑의 발맞춤›(2025)
인터랙티브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로컬 네트워크를 기반한 플레이, 구조물과 컨트롤러, 가변크기
Q. 신작 ‹유랑의 발맞춤›을 비롯해서 작품마다 VR부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의 관람객 참여를 통해서 완성되는 작품들을 선보여오셨는데요. 작업에 있어서 관람객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혹은 어떤 이유로 관람객 참여형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요? 그리고 관람객과 함께 작업을 완성해 가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게임과 VR의 형식이 작품에서 활용될 때 일회적인 체험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이 매체들의 관람이 아주 개인적이고 어떤 면에서 폐쇄적인 인상을 주는 일대일의 상호작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회적인 체험을 넘어서고 이어가면서 시작되는 경험의 공동을 상상해 보고 싶었습니다. 관람객이 만들어 내는 플레이 데이터가 휘발하는 게 아니라, 전시실에서 계속해서 지층처럼 쌓여가는 형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관람객이 명료히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계속해서 다중의 경험에 연루되고,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함께하는 구조 자체가 제가 표현하려는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제작 과정에서는 저는 작품과 매우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 속에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은 제 손을 떠나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제가 그리고자 한 구조를 따라가는 관람객들에게 달린 거죠. 작품이 관람객과 조우할 때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런 소중한 경험을 기꺼이 자신의 언어로 설명해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항상 그런 순간들이 남아 다음 작업의 연장선으로 이어집니다.
상희 작가 전시 전경
사진: CJY ART STUDIO_조준용
Q. ‹유랑의 발맞춤›은 워킹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구성돼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재미있기도 하고 함께 걷는다는 점에서 독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작업 구상은 사람들과 함께 걷거나 이동하거나 계획할 때 생기는 불편함, 거북함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타인과 함께하면서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제 속도를 조절하고 제 목소리를 신경 쓰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타인과 속도를 맞추어 걸어야만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나로서만 있을 수 없는 불편함과 거북함은 게임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정서입니다. 게임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직접적인 보상이 없어도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 불편의 감수 역시 게임 내적인 보상의 논리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되지만, 때론 불편함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관람객분들께 주어지는 보상은 계속해서 조율해야 하는 대화 그 자체입니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함께 발을 맞추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함께 바라본다는 감각이 관람객들의 마음속에서 특별한 은유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기술과 노동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균형” 이은희 작가
이은희 작가
Q. ‹섬섬옥수›는 산업혁명 시기의 직업병 문제가 오늘날의 전자 기술 산업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조명합니다. ‹섬섬옥수› 작품의 전반적인 소개와 이러한 주제의식을 포착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섬섬옥수›는 바로 이전 작품인 ‹무색무취›와 주제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기술 산업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반도체 산업 환경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에 의한 직업병이 어떻게 과거 산업혁명 시기의 직업병과 유사하게 발생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기술 산업과 개인의 신체, 그리고 노동 가치의 관계망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는 영상 작품을 만들어 왔었고, ‹무색무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기기 생산 환경에서의 산업재해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동시대의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무색무취›와 달리, ‹섬섬옥수›는 보다 먼 과거의 사건까지 함께 매핑(Mapping)하기를 시도한 작품입니다.
이은희, ‹섬섬옥수›(2025)
2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32분
Q. 릴링 룸(Reeling Room), 클린 룸(Clean Room), 히스테리, 섬섬옥수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산업 재해 사건들을 교차시켰습니다. 특별히 이 장면들을 골라 교차시킨 이유는 무엇이며, 각 키워드마다 뜻하는 바도 알고 싶습니다.
산업혁명 시기에 발생한 직업병이 현재 전자기술 산업의 직업병의 양상과 다르지 않다는 지점은 사실 새로운 발견은 아닙니다. 수많은 과거의 자료와 기록물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릴링 룸’은 과거에 섬유를 생산하던 공장인데요. 이곳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위생도를 유지해야 했던 공간이지만 이황화탄소를 포함한 다양한 유해 물질이 발생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역사가 있습니다. 비슷한 어감의 ‘클린 룸’ 또한 반도체 공정을 위해 먼지 한 톨 용납하지 않는 청정한 공간이지만 이곳에서도 많은 암과 백혈병, 희귀병을 앓는 노동자가 생겨납니다. 시공간이 다른 두 장소에서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생산직으로 일했고, 기업은 이들의 민첩하고도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의 노동력을 칭송하며 고되고 값싼 노동을 감추어오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발병한 직업병은 쉽게 진단되지도, 직업병으로 증명되기도 어려웠고, 종종 사적이거나 생리학적인 문제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또한 이를 여성의 ‘히스테리’로 오해하기도 했죠.
이은희 작가 전시 전경
사진: CJY ART STUDIO_조준용
Q. 산업 재해 피해자들의 발화와 행위를 기록한 퍼포먼스도 구성된 만큼, 작품을 제작하며 여러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작품을 제작하며 생긴 일화를 들려주신다면요?
작품에 낭독자로 출연한 두 여성은 모두 반도체 공정에 실제로 근무했거나 근무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유산과 난임을 포함해 거대세포종이라는 희귀병을 앓았거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손가락이 굽고, 직장 내 방사선 피폭 사고 이후 공황장애를 앓고 있죠. 이들은 자신의 몸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그간의 많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자각한 뒤 더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를 가시화하고 기업에 맞서 투쟁하는 사회운동가로서 거듭나고 있습니다. 작품은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과거 노동자들의 시와 글을 읽으며 피해자를 애도하는 동시에 연대하고, 반복되어 왔던 문제를 현재로 소환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분과 함께 낭독할 자료를 찾고, 카페에 둘러앉아 조금은 어색하고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봤던 그때의 장면이 저에게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