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 전시실 전경
해마다 많은 관람객들이 손꼽아 기대하는 전시 중 하나인 ‘MMCA 현대차 시리즈’가
최우람이 던지는 질문이 담긴 ‘작은 방주’를 타고 유유히 돌아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첫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으로, 그는 이 자리를 통해
기후 변화와 코로나19 대유행 등 전 지구적 위기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했다.
작품을 통해 끝없는 인간 욕망과 방향 감각 상실의 시대를 바라보고, 실존과 생명의 순환을 성찰하며
일상의 소재에 최첨단 기술을 융합하여 양극화된 동시대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선사하는 최우람의 전시를 감상해보자.

최우람의 세계에서 동시대 모순의 바다를 유영하다
최우람 작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 전시실 전경
국립현대미술관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를 2022년 9월 9일부터 2023년 2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최우람 작가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개관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로 1년간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 Opertus Lunula Umbra›를 선보인 이후 약 10년 만에 돌아온 전시이자, 2017년 국립대만미술관에서의 마지막 개인전 이후 5년 만의 전시이기도 하며, 첫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이다.
최우람은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정교한 설계를 바탕으로 움직임과 서사를 가진 ‘기계생명체(anima-machine)’를 제작해왔다. 작가는 세밀한 표현으로 살아 숨 쉬는 듯한 기계생명체를 만들고 이야기를 곁들여 고유의 세계관을 창조해왔다.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 움직임에 있다는 점과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른 기계문명 속에 인간 사회의 욕망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은 작가가 키네틱 작업을 구상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그의 작업은 인공적 기계 매커니즘이 생명체처럼 완결된 아름다움을 자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생명의 의미와 살아있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기술 발전과 진화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에 주목해 온 작가의 관점은 지난 30여 년간 사회적 맥락, 철학, 종교 등의 영역을 아우르며 인간 실존과 공생의 의미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작가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를 통해 기존 작업에 내재해 있던 질문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재구성해 하나의 공연 형식으로 기획했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과 같이 전에 없는 위기를 겪으며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은 최우람에게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의문을 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더불어 기후 변화, 사회‧정치‧경제적 위기로 인한 불안감과 양극화의 심화는 방향이 상실된 시대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보았다. 이에 방주라는 주제의 전시를 만들고 동시대를 구성하는 모순된 욕망을 병치시켜 관람객들과 ‘오늘, 우리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고 질문하는 장을 마련했다. 특히 작가는 작품을 제작할 때 폐종이박스, 지푸라기, 방호복 천, 폐자동차의 부품 등 일상의 흔한 소재에 최첨단 기술을 융합했다. 이는 삶의 조화와 균형에 대한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최우람은 전시를 통해 시대의 격랑을 헤쳐 나가야하는 우리의 모습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위로를 건네며, 진정한 공생을 위해 자신만의 항해를 설계하고 조금씩 나아가기를 응원하는 진심을 담았다. 그의 메시지 담겨 있는 작품을 함께 감상해보자.

우리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작은 방주’의 여정
최우람, ‹원탁›(2022)
알루미늄, 인조 밀짚, 기계 장치, 동작 인식 카메라,
전자 장치, 110x450x450cm.
최우람, ‹검은 새›(2022)
폐 종이 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가변설치(3).
서울박스 상부에서 세 마리의 ‹검은 새›가 천천히 회전하며 아래의 움직이는 ‹원탁›을 응시한다. 기울기가 계속 변하는 상판 위로는 둥근 머리의 형상이 굴러다닌다. 상판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아래에 위치한 18개의 지푸라기 몸체들이다. 머리가 없는 이들이 등으로 힘겹게 원탁을 밀어 올리는 모습은 마치 머리를 차지하기 위한 행동 같아 보이지만 머리를 더 멀리 밀어내 버리는 역설적인 상황을 가져올 뿐이다.
최우람, ‹하나›(2020)
금속 재료, 타이벡에 아크릴릭, 모터, 전자 장치 (커스텀 CPU 보드, LED), 250x250x180cm.
최우람, ‹빨강›(2021)
금속 재료, 타이벡에 아크릴릭, 모터, 전자 장치 (커스텀 CPU 보드, LED), 223x220x110cm.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하나›는 팬데믹의 상황 속 최우람이 이 시대에 바치는 헌화이다. 꽃잎의 소재로는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진료하는 현장에서 의료진들이 착용한 방호복의 재질과 같은 타이벡을 사용했다. 5전시실 뒤쪽의 붉은 꽃 ‹빨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자 생명의 순환을 의미한다.

최우람, ‹작은 방주›(2022)
폐 종이 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CPU 보드, 모터), 210 x 230 x 1272 cm.
‹작은 방주›는 세로축 12미터, 닫힌 상태에서의 높이가 2.1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궤櫃 혹은 직사각형 모양을 유지하다가 흰 벽처럼 접어 둔 노를 높이 들어 올리면서 다양한 움직임을 시작하는데, 최대 폭이 7.2미터에 이른다. 노의 장대한 군무를 통해 항해의 추진력과 웅장한 위엄을 드러내는 ‹작은 방주›는 선체 위와 주변에 위치한 다양한 조각설치물과 어우러져 하나의 공연을 펼친다.
‘작품 설계 드로잉’ 설치 전경
최우람은 자신의 주변 세상을 관찰하고 영감 받아 특정 작업을 구상하면, 상상 속 움직임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하는 재료의 형태와 무게, 결합과 구동 방식이 표기된 설계 도면을 직접 작성한다. 이 기술도면을 바탕으로 작은 나사에서부터 방주의 거대한 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이 실현되었다. ‘하나의 움직임이 완성되기까지 거쳐야하는 여러 과정의 지도’와도 같은 드로잉 작품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작가는 전시 출품작의 설계 드로잉 일부를 캔버스 위에 전사한 후 아크릴 물감으로 선 하나하나를 그렸으며, 그 안에는 분석하고 재해석하고 제안하는 의도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물질세계가 인간의 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듯 최우람의 ‘작은 방주’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재구성한 오늘날의 초상과 같다. 작가가 생각한 방주란 우주를 표류하고 있는 지구이고, 인류는 이미 그 지구라는 방주에 타 있는 운명공동체이다. 게다가 우리의 다음 순간을 설계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자신의 항로를 설계해야 하며, 구원자는 결국 우리 자신임을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순간이다.
‘곧 닥칠지도 모를 수많은 재앙 앞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혼돈의 시대에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나의 욕망은 진정 내가 욕망하는 것일까?’, ‘이 욕망에는 끝이 있을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덕분에 원하던 원치 않던 저마다의 답을 구하기 위한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 여행의 목적은 우리가 어떤 배를 타고 어느 바다를 건너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가 될 것이다. 기계생명체의 창조주에서 항해의 설계자가 된 최우람의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는 어쩌면 우리가 항로를 탐색할 때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줄 지도 모른다.
MMCA 현대차 시리즈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 간 매년 국내 중진 작가 1인을 지원하는 연례전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태도와 가능성을 제시하는 중진 작가 층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마련되었다. 2014년 이불, 2015년 안규철, 2016년 김수자, 2017년 임흥순, 2018년 최정화, 2019년 박찬경, 2020년 양혜규, 2021년 문경원&전준호에 이어 2022년에는 최우람이 아홉 번째 작가로 선정되었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문화예술과 기업이 만나 상생효과를 창출한 대표적인 기업후원 사례로 자리매김하며 한국 미술계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