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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인상에서 느낀 감동을 포착하다,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전시정보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The Water-Lily Pond)›(1917~1920) 
캔버스에 유채, 100x200.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The Water-Lily Pond)›(1917~1920)
캔버스에 유채, 100x200.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모네가 바라본 자연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전해주는 ‘색채의 힘’

‹수련이 있는 연못(The Water-Lily Pond)›(1917~1920)은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말년에 제작했던 수련 연작 중 하나이다. 수련이 떠 있는 연못에 비친 흰 구름과 버드나무 가지를 그린 이 작품에서는 모든 대상이 수직으로 세워진 평면 위에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련과 연못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정확하게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추상적이기도 하다. 이런 점은 수련 연작이 현대회화, 특히 추상미술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련 연작을 제작 중인 클로드 모네(1920년경)

수련 연작을 제작 중인 클로드 모네(1920년경)

이 작품을 제작하던 즈음의 모네는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작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화가로 불릴 정도로 작품 판매가 급증했다. 또한 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프랑스의 승리를 기념해 수련 연작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기증된 작품은 현재까지도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처럼 말년의 모네는 성공한 화가이자 사회적 영향력까지 지닌 작가였지만, 인상주의 미술이 시작된 초기의 상황은 무척 달랐다.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1872)
캔버스에 유채, 48x63cm,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1872)
캔버스에 유채, 48x63cm,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모네는 아카데미 쉬스(Académie Suisse)와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의 스튜디오에 다니면서 장차 인상주의 미술 운동을 함께 이끌어갈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와 피사로(Camille Pissarro) 등을 만나 친분을 쌓게 된다. 1874년에는 이들과 함께 첫 번째 인상주의 미술전인 «제1회 무명예술가협회전»을 개최했다. 총 65점의 작품이 출품된 이 전시에서 유독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작품은 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1872)였다.

이 작품을 두고 한 비평가가 해돋이 풍경의 ‘인상’만 보인다고 평했는데, 한마디로 대충 그린 그림이라는 그의 혹평에서 ‘인상주의’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된다. 모네의 작품을 포함해 성의 없이 그린 것처럼 보이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부정적인 평가도 이어졌다. 이들의 작품을 두고 논쟁을 벌이던 관람객들이 전시실 내에서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신문에는 인상주의 미술이 태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서 임산부의 전시 출입을 막는 조롱 섞인 만평이 게재될 정도였다.

인상주의 미술이 등장했던 19세기 말의 관람객들은 역사나 종교적인 내용을 주제로 다루면서 원근법에 기초한 밑그림과 명암법을 이용한 채색을 통해 인물과 풍경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그린 작품을 소위 ‘잘 그린 그림’으로 인식했다. 이에 비해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은 주변의 풍경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주제로 하다 보니, 역사화나 종교화와 비교해 ‘내용이 없는 그림’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밑그림도 없이 캔버스 위에 바로 물감을 찍어 그리는 제작법으로 인해, 인상주의 미술은 입체감 없는 평면적인 화면과 거친 붓터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그림’으로 받아들여졌다. 당대의 비평가와 관람객들이 인상주의 미술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모네와 같은 당대의 젊은 화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제나 완성도가 아니라 대상의 형태와 색채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었다. 모네는 이러한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같은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린 연작을 다수 제작했는데, 들판의 건초더미와 포플러 나무에서 루앙 대성당과 수련에 이르기까지 연작의 주제도 무척 다양했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Giverny)에 집을 마련한 1890년 이후로는 이곳을 배경으로 수련 연작을 집중적으로 제작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아르장퇴유(Argenteuil)나 베퇴유(Vétheuil) 등 파리 근교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던 모네는 인상주의 미술전이 거듭되면서 작품 판매 수입이 증가하자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지베르니에 집을 구입했다. 말년의 모네는 지베르니 집 주변의 정원은 물론이고 연못을 수상 정원처럼 가꾸는 일에 몰두했다. 평생 풍경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던 모네가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풍경을 지베르니의 정원과 연못을 통해 구현한 뒤 그것을 다시 캔버스 위에 옮긴 것이 바로 수련 연작이다.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The Water-Lily Pond)›(1899)
캔버스에 유채, 88.3x93.1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The Water-Lily Pond)›(1899)
캔버스에 유채, 88.3x93.1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클로드 모네, ‹수련-석양(The Water Lilies–Setting Sun)›(1920~26)
캔버스에 유채, 200x600cm,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클로드 모네, ‹수련-석양(The Water Lilies–Setting Sun)›(1920~26)
캔버스에 유채, 200x600cm,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이 연작은 수련을 부분적으로 클로즈업해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연못에 설치된 일본식 다리를 강조한 작품들을 거쳐 하늘과 수련이 뒤섞여 보이는 수면의 풍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점차 변화를 거듭하며 250여 점 가까이 제작되었다. 동일한 풍경을 집요할 정도로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모네는 시간과 날씨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연못과 정원의 모습을 캔버스 위에 담아냈다.

수련 연작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특징은 화면 전체가 평면적인 추상화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모네는 수평선을 기준으로 하늘과 연못을 위아래로 구분해 그리는 대신, 구름, 나무, 수련이 수직의 평면 위에 공존하는 것처럼 그렸고, 구상적인 형태가 점차 해체되면서 화면 위에는 물감의 흔적, 즉 색채만 남도록 했다. 이 연작을 그리던 시기에 모네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해 갔던 것이 작품의 변화를 불러온 주요한 요인으로 언급되지만, 그는 인상주의 미술을 통해 대상을 평면적으로 그리는 평면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갔던 작가였다. 20세기 현대회화는 캔버스가 지닌 2차원의 평면성이 회화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점과 선에 비해 부차적인 요소로 여겨졌던 색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색채와 평면성이 부각된 모네의 수련 연작이 현대회화, 특히 추상미술의 출발점으로까지 평가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수련 연작은 현대적인 화가 모네가 시도했던 추상미술에 대한 실험의 결과물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연작을 감상할 때 그의 작품이 지닌 미술사적 가치를 이해하는 것에 반드시 우선순위를 둘 필요는 없다. 모네는 화가라는 직업을 ‘가장 포착하기 힘든 자연의 인상에서 느낀 감동을 전달하고자 애쓰는 일’로 설명한 바 있다. 지베르니의 정원과 연못에서 자신이 경험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색채를 통해 전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련이 있는 연못›과 같은 수련 연작을 감상하다 보면 색채로만 뒤덮인 추상적인 회화임에도 불구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뭉클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색채가 지닌 힘이자 모네의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전유신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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