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 리잘디, ‹Notes from Gog Magog›(2022)
영상, 스틸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창동레지던시는 작가들의 작업 공간이자 한시적 보금자리이기에 일반에 쉽게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매년 연말이면 입주 작가들의 색깔로 꾸민 ‘오픈스튜디오’와 ‘입주보고서’ 전시를 열고
레지던시의 비밀스러운 문을 개방해 관객들을 초대하곤 한다.
더욱이 올해는 코로나19로 멀어졌던 일상을 되찾으며 이전보다 다채로운 연계 행사를 진행해
더 많은 이들과 예술의 기쁨을 나누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한해를 갈무리하는 이 시점, 고양과 창동에서 열린 예술의 향연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보자.
고양레지던시 2022 오픈스튜디오 18 «모두 다른 빛깔»
고양레지던시는 18기 입주 작가 오픈스튜디오 «모두 다른 빛깔»을 지난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개최했다. 오픈스튜디오에는 김신애, 김신욱, 문서진, 비고, 서소형, 손혜경, 신미정, 신제현, 안가영, 오묘초, 요한한, 이반지하, 이은희, 장진승 등 국내 작가 14명과 기욤 시모뉴(캐나다), 다비드 할 브로크(독일), 렉시 젠(대만) 등 3명의 해외 작가가 참가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단체 기획전과 작가들이 개인 작업실을 관람객에게 개방하는 이벤트 외에도 야외프로젝트, 관객 참여 퍼포먼스, 공연, 토크 프로그램, VR, 증강현실 등 다양한 연계 프로젝트가 함께 진행되었다. 특히 올해는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협력 기획으로 11월 12일과 13일 주말동안 양측 레지던시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 오픈스튜디오 일정은 끝이 났지만 뮤클리에서 출품작들을 감상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보길 바란다.
김신애, ‹1001 1010 1011›(2022)
혼합매체를 이용한 공간 설치, 가변크기.
김신애는 10월 1일, 10월 10일, 10월 11일에 수집된 날씨 정보를 외부공간 테라스와 작업실에서 실내외를 오가는 공간설치로 보여주었다. 디지털 물질이 가지는 물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기보다는 과정에서 드러난 질문과 답변에 집중한 공간 포트폴리오의 형식을 취한다. 프로그램의 수학적 공간에만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점, 선, 면의 디지털 물성, 디지털 물질의 무게 개념에 존재하는 시간성, 정보들이 만들어내는 형태와 주변 공간과의 관계, 수집된 사운드와 외부 정보의 개입으로 인한 변형 등에 집중하며 드로잉과 디지털 이미지, 설치, 디지털 조각과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로 풀어냈다.
신제현, ‹물의 모양-섬의 소리›(2022)
영상 설치 퍼포먼스, 15분.
‹물의 모양-섬의 소리›는 신제현이 2000년 1월 1일부터 시작한 작곡 프로젝트의 22번째 마디이다. 그는 지난 2년간 아자도, 사도 등 곧 무인도가 될 작은 섬 10곳을 리서치해서 섬이 무인도가 될 때까지 아카이브하는 작곡 연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섬 주민의 감소율과 해산물 생산량, 기후변화로 인한 어업한계선 변화, 주민 이탈 등의 데이터로 작곡을 하고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다. 이 연주는 섬이 사라져가는 소리임과 동시에 기후변화에 대한 청각적 아카이브로의 거대한 알람 장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버려진 물건들로 악기나 배를 만들기도 하고, 인터뷰 리서치 등을 통해 ‘사람이 사라지는 섬’과 ‘사람이 떠나간 후의 생태 복구를 통한 섬의 재생’이라는 아이러니한 지점을 다룬다.
문서진, ‹꼬리›(2022)
잉크젯 프린트, 120x160 cm.
‹꼬리›는 해프닝적 성격의 퍼포먼스 작업으로, 서울의 붐비는 도시를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cv(자신의 이력)가 적힌 휴지를 달고 도시를 활보하며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화장실을 나온 상황’을 연출한다. 나의 삶이 얼마나 공정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작가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성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해프닝은 블랙코미디 형태의 영화적인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창동레지던시 «창동레지던시 입주보고서 2022: 김 홀리 첸»
김영글, ‹빵과 장미와 숫자 0에 대한 생각›(2022)
설치, 가변크기.
로베르타스 나르쿠스, ‹Dopamine Eyes›(2022)
철재 조각.
이슨 창 카 와이, ‹Burn›(2022)
6k 영상, 21분 54초.
창동레지던시는 «창동레지던시 입주보고서 2022: 김 홀리 첸»을 오는 11월 25일부터 12월 4일까지 10일간 개최한다. 올해는 창동레지던시 20기를 맞이하여 입주 작가들이 입주 기간 동안 제작한 신작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 작가 3인 김영글, 김인배, 현아를 비롯하여 해외 작가 6인 리아 리잘디(인도네시아), 로베르타스 나르쿠스(리투아니아), 모건 베츠(네덜란드), 뱅크 앤 라우(덴마크), 아나스타샤 포템키나(러시아), 이슨 창 카 와이(홍콩) 등 총 7개국 9팀의 작가가 참여한다.
전시 형식은 매우 이색적이다. 전시에서는 ‘김 홀리 첸’이라는 가상의 작가를 설정해 한 해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를 거쳐 간 작가들을 호출한다. 일반적인 전시는 하나의 맥락을 가지고 당대의 화두를 던지곤 한다. 반면 레지던시 전시는 다양한 입주 작가들이 함께하는 자리이기에 단일 주제를 도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이번 «창동레지던시 입주보고서 2022: 김 홀리 첸»에서는 ‘레지던시 전시’라는 제한된 형식을 ‘한 명의 예술가’로 산정하여, 레지던시 전시가 어떻게 자신의 고유성을 가시화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11월 25일에는 입주 작가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2»의 최종 선발팀 로스트에어와 크립톤을 비롯하여 2022년 문화동반자 연수 프로그램 참여 연구자인 리티카 비스와스(인도), 양 지앙(홍콩)이 함께하는 오픈스튜디오 행사도 함께 진행된다. 또한 입주 작가가 기획한 퍼포먼스 및 NFT 워크숍 등 다채로운 연계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연말이 다가올 때마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대부분 무언가 이뤄내지 못한 채 또 한 해를 보내야 한다는 아쉬움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아쉬움에 가려져 그간 착실히 쌓아온 성과를 보지 못하는 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때에 열정 넘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또 행사를 통해 함께 어우러지며 내가 2022년에 만들어낸 빛나는 무언가를 상기해보면 어떨까. 고양과 창동레지던시에서의 시간을 통해 다가올 2023년을 설렘만으로 맞이할 수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