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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축제’의 피날레 «백남준 효과»

전시정보

«백남준 효과» 전시 전경

«백남준 효과» 전시 전경

백남준의 발자취를 한눈에 훑을 수 있는 «백남준 효과»는 작가의 예술적 성취와 더불어
1990년대 한국 미술의 상황을 새롭게 살펴보는 전시이다.
또한 백남준의 작업뿐만 아니라 그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박이소, 이불 등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함께 병치하며
‘새 시대의 다음 장’을 준비했던 예술가들의 복잡다단한 고민의 역사를 소환한다.
근대적 희망과 세기말적 불안이 함께 타올랐던 1990년대를 현재로 호출하여
동시대의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전시를 소개한다.

한국 시각 문화 정체성 형성에 한 획을 그은 그 이름, 백남준

“비디오 아트는 텔레비전을 단순히 오락적 기능에 국한시키지 않고 형이상학 수준으로 끌어올린 예술이다.
21세기는 자연과 인류가 전자매체를 매개로 공생하는 세기가 될 것이다.”

-백남준
«백남준 효과» 전시 전경 «백남준 효과» 전시 전경
«백남준 효과» 전시 전경 «백남준 효과» 전시 전경
«백남준 효과»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한 ‘백남준 축제’의 일환으로, 대규모 기획전시 «백남준 효과»를 11월 10일부터 2023년 2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하고 있다. 앞서 9월 15일에는 백남준의 최대 규모 비디오 아트 작품인 ‹다다익선›을 성공적으로 재가동하였고, 아카이브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을 선보였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백남준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한국과 세계를 잇는 문화 기획자이자 문화 번역자로서 전략적인 행보를 펼친 기념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1986년 제10회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1993년 대전 엑스포가 열렸던 한국의 시대적인 상황을 이용하여 정·재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활동을 펼쳤다. 그는 전시와 행사, 상업 광고를 기획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연결해 1995년 광주 비엔날레 출범 및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립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며, 미술계를 넘어선 전 국민의 스타로 떠올랐다.

«백남준 효과»는 백남준이 1984년, 35년 만에 귀국한 후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끼친 영향을 조명한다. 또한 그가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기획했던 역사적인 전시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1992)과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1993)의 주요 주제들을 통하여 1990년대 한국 미술의 상황을 새롭게 살펴본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세계화와 정보사회 도래라는 급격한 정세변화 속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새로이 발굴하고, 과학과 접목한 ‘예술매체의 확장’을 고민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담긴 1990년대 한국 시각 문화의 정체성을 백남준과 당시 활동한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1990년대 국내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하여 동시대 미술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백남준이 꿈꿨던 비전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총 103점으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백남준의 주요 작품 43점과 한국 동시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작가 25명의 90년대 회화·설치·사진 대표작 60점을 포함한다. 백남준이 걸어온 예술의 행보를 작품을 통해 만나보자.

백남준을 통해 살펴보는 1990년대 한국 미술

백남준, ‹칭기즈 칸의 복권›(1993)
CRT TV 모니터 1대, 철제 TV 케이스 10대, 네온관, 자전거, 잠수 헬멧,
주유기, 플라스틱관, 망토, 밧줄,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217×110×211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칭기즈 칸의 복권›(1993)
CRT TV 모니터 1대, 철제 TV 케이스 10대, 네온관, 자전거, 잠수 헬멧,
주유기, 플라스틱관, 망토, 밧줄,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217×110×211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칭기즈 칸의 복권›(1993)은 백남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 출품한 작품이다. 백남준의 칭기즈 칸은 잠수 헬멧을 쓰고 망토를 두른 채 여러 대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가득 싣고 말 대신 자전거를 탄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가 광대역 전자 고속도로로 대체된 것을 표현한 작품으로, 네온으로 된 문자와 기호들은 전자 고속도로를 통해 정보들이 빠르게 압축되어 전달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암시한다. 백남준은 칭기즈 칸이라는 상징을 통해, 기마병의 빠른 속도를 기반으로 유럽을 휩쓸고 세계를 재패했던 아시아의 과거와 미래의 전자 고속도로를 연결했다. 인터넷이 가져올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를 보여주는 이 비디오 조각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수상과 함께 한국관의 설립이라는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백남준, ‹김유신›(1992) 
나무, TV, 유채, 149x114x90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백남준, ‹김유신›(1992)
나무, TV, 유채, 149x114x90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1992)에서 백남준은 한국 관람객들을 위해 선덕여왕, 바보온달, 김유신을 비롯한 한국 전통설화의 인물들과 위인들을 주제로 한 로봇 시리즈를 제작했다. ‹김유신›(1992)은 말을 타고 있는 김유신 장군의 모습을 구형 TV 모니터, 전화기, 라디오 등의 통신매체로 형상화한 작품이며, 기술과 인간, 문명의 조화를 상징한다. 백남준은 아직 비디오 조각에 익숙하지 않던 1990년대 한국의 관람객들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무르며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적인 인물들의 초상을 효과적으로 차용했다.

백남준,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1984)
종이에 에칭, 29.7×37.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백남준,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1984)
종이에 에칭, 29.7×37.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1984)은 백남준이 가족사진에 직접 인물을 식별하여 쓴 매우 독특한 작업이다. 파격적인 예술 실험을 거듭하였던 작가, 그 가족들의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으며, 작가가 이러한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가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으로, 여성 구성원끼리 모여 동네의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 단체 사진이다. 그중 남성복을 입은 인물들이 눈에 띄는데, 백남준의 어머니도 남성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장 사진은 그의 어머니가 제안한 것으로, 유교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백남준 집안의 멋스러운 가풍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당시 50대에 접어들었던 작가는 가족들이 전한 일화를 담아 사진 속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주석을 달아 두었다.


백남준은 일찍이 볼 수 없던 글로벌한 활동 영역을 바탕으로 비디오라는 새로운 형식 및 장르를 도입하고, 세계 속의 한국을 강조하며 한국적인 정체성을 국내외적으로 새롭게 발굴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세계화, 근대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1990년대 한국 미술계 전체를 관통하여 동시대 미술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백남준 효과»를 통해 백남준과 한국 미술에 대한 시각을 더 넓게 확장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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