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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에서 시작된 여정,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전시정보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2007) 캔버스에 수채, 112x145.5x(1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2007)
도자기 파편, 에폭시, 24K 금박, 120x120x9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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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에서 시작된 여정,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나와 타자가 공생하는 세계로의 여행

‹번역된 도자기›(2007) 세부 ‹번역된 도자기›(2007) 세부

‹번역된 도자기›(2007)는 이수경(1963~ ) 작가가 2001년부터 제작해 온 동명의 연작 중 하나로, 작가의 작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이 연작은 2001년 이탈리아 알비솔라 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처음 제작되었다. 이수경은 알비솔라 지역의 도예가에게 김상옥 시인이 백자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자 썼던 시 「백자부」를 들려주고 상상으로 조선백자를 재현하도록 했다. 이것이 ‹번역된 도자기›의 시작이었다. 비엔날레 참가 이후 작가는 조선 백자를 제작하는 명장 도예가의 작업 과정을 직접 볼 기회를 얻게 된다. 백자 명장들은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에서 조금이라도 흠이 보이면 가차 없이 연장으로 깨버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수경은 깨진 백자의 파편을 모아 퍼즐처럼 재조립한 뒤 에폭시 접착제로 붙이고 틈 사이에 금박을 입히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번역된 도자기› 연작을 만들어 냈다.

이 연작의 첫 작품은 조선시대의 백자, 1947년에 쓰여진 김상옥의 시 「백자부」, 2001년의 알비솔라 비엔날레와 같이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후의 ‹번역된 도자기› 연작은 도자기 파편을 금박으로 장식해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시켜 만들었는데, 흠이 있어 버려진 것을 되살리는 작업의 과정은 어떤 면에서는 보살핌이나 치유의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 연작에 나타난 여행이나 여정이라는 요소, 그리고 치유나 제의와 같은 키워드는 이수경의 작업 전반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오늘은 이 두 가지 지점에서 이수경의 작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수경, ‹묘기여인›(2005) (부분) 이수경, ‹묘기여인›(2005) (부분)
장지에 석채, 100x100x(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가는 1997년 긴 여행의 여정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험을 하는 주인공 ‘먼길’의 여행담이자 성장기를 다룬 동화 「먼길 이야기」를 썼다. 2년 후에는 이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했고, 2021년에는 다시 동명의 제목으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여행과 여정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는 이처럼 작가의 작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묘기 여인›(2005)은 부모님을 위해 불로장생의 명약을 구하고자 저승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바리공주의 설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2014년 이후 현재까지 제작되고 있는 ‹전생 역행 그림› 또한 작가가 최면을 통해 전생으로 회귀하는 즉,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통해 경험한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이수경의 작업 속에 나타난 여행의 공통점은 주체가 여정에서 만난 ‘타자’들을 통해 ‘나’를 새롭게 인식하는 경험을 한다는 점이다. 즉, 이수경의 작업에 나타난 여행은 타자를 만나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한 여정인 것이다. 그의 작업에 ‘한 쌍’ ‘쌍둥이’ 혹은 ‘대칭’처럼 두 개의 대상이 짝을 이루어 존재하거나 ‘거울’처럼 똑같은 대상을 또 하나 만들어 내는 장치가 자주 등장하는 것 역시 주체와 타자가 이루어내는 공존의 상태로 볼 수 있다. ‹묘기 여인›에서도 좌우 대칭의 인물이 번식하듯이 증가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수경은 간혹 과거의 역사 속 타자들을 위한 작업을 제작하기도 했다. ‹눈물›(2010)은 덕수궁 석어당에 감금되었던 인목대비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2012년에는 호주 시드니에 존재했던 여성 전용 감옥 내부에 뼈로 된 눈물을 흘리는 여성 조각과 과거의 수감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손 모양 조각으로 구성된 작업 ‹뼈 눈물›을 전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인목대비로부터 감옥에 수감되었던 시드니의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실존 인물들과 연관된 작품들은 모두 역사 속의 타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한 제의적인 작업들이다.

이처럼 이수경의 작업에는 작가 자신의 지리적인 이동이나 설화와 동화, 또는 본인의 전생을 되돌아보는 가상적 이야기 속으로의 여정, 그리고 역사 속의 타자들과 만나는 과거로의 여행 등 다양한 종류의 이동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작가 자신은 물론이고 관객들 역시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타자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의 삶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 여정의 끝에서 이수경은 내면적 혹은 종교적 성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수경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시공간을 넘나들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그 경험 속에서 나와 타자, 몸과 마음이 한 쌍으로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고 그 경험을 타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백자에서 시작된 이 여정의 끝은 나와 타자가 공생하는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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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디오에는 클로바더빙(CLOVA Dubbing)의 AI 보이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전유신 학예연구사 미술사학 박사 «젊은 모색 2021»(2021),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2021),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2022) 등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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