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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최초의 가족도 ‹가족›, 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시정보

장욱진, ‹가족›(1955) 장욱진, ‹가족›(1955)
캔버스에 유화물감, 6.5x16.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술관 플러스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 ‹가족›, 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장욱진이 무척이나 아껴 머리맡에 두었다는 그림 ‹가족›(1955)이 6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간 행방이 묘연하여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던 이 작품이 작고한 일본인 소장가의
아틀리에 벽장에서 극적으로 발견되어 우여곡절 끝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된 것이다.
오는 9월 14일에 개최되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서 작품을 공개하기 전,
한국 미술 거장의 주요 작품을 수집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먼저 들어보자.

장욱진의 ‹가족›에 얽힌 60년간의 이야기

장욱진, ‹가족›(1955)
캔버스에 유화물감, 6.5x16.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55년작 ‹가족›을 떠올리며 다시 그린 ‹가족도›
장욱진, ‹가족도›(1972)
캔버스에 유화물감, 7.5x14.8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오늘 소개하는 장욱진의 ‹가족›(1955)은 생전 30여 점 이상의 가족을 그린 장욱진이 큰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자 일본인 시오자와 사다오(塩澤定雄, 1911~2003)에게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1964년 반도화랑에서 개최되었던 장욱진의 첫 번째 개인전에 출품되었는데, 당시에는 그림을 사고파는 게 흔하지 않았고 화가 본인도 무척 아끼는 작품이었기에 팔 생각이 없었지만, 그림 애호가인 사다오 씨의 진심에 감동해 전시 마지막 날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가족›은 장욱진이 작품에 대한 아쉬움으로 1972년 ‹가족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를 다시 그렸다는 것과 작품의 정확한 행방을 알 길 없다는 점이 알려지며 연구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가족›(1955)을 두고 화가의 부인 고(故) 이순경 여사는 “조그마한 가족도였는데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언급했고, 장녀 장경수 씨 역시 이 작품을 장욱진의 대표작으로 꼽았던 바 있다. 생전 장욱진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던 김형국 전 서울대 교수가 1991년 이 그림의 행방을 찾으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작품의 현존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처럼 지난 60년간 오직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 몇몇의 기억 속에만 남아 구전(口傳)으로 전해오던 장욱진의 ‹가족›은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기획을 계기로 세상에 재등장하게 되었다.

장욱진 ‹가족› 발견 현장 장욱진 ‹가족› 발견 현장 장욱진 ‹가족› 발견 현장
배원정 학예연구사와 소장가 시오자와 슌이치 부부 배원정 학예연구사와 소장가 시오자와 슌이치 부부

물론 ‹가족›을 다시 만나기까지 순탄한 과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시 기획을 맡은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작품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작품의 존재를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소장가 시오자와 사다오의 아들인 시오자와 슌이치(塩澤俊一)부부에게 곧바로 연락을 취하기보다, 일본 예술원 회원 서화가인 다카키 세이우(高木聖雨)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를 통해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장욱진 회고전에 ‹가족›을 출품해 줄 것’을 정중히 부탁한 것이다. 이후 몇 차례 서신이 오간 끝에 슌이치 부부를 찾아가 일본 오사카 근교에 소재한 소장가의 오래된 아틀리에를 방문할 수 있었다.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아틀리에는 전기가 끊길 만큼 오래 방치되어 있었기에 그곳을 방문한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과 일본 미술품운송회사 담당자들은 휴대폰 조명등을 켜고 작품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중 다락방 구석의 낡은 벽장에 눈길이 갔고, 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벽장 속에서 먼지 쌓인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끄집어낸 작은 액자에는 1955년이란 작품의 제작연도와 함께 장욱진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60년 동안 이야기로만 전해져 온 그림이 다시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작품의 행방을 몰랐던 시오자와 부부뿐 아니라 주일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의 하성환 팀장과 일본미술품운송회사 직원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는 후문이다.

장욱진의 ‘최초의 정식 가족도’ ‹가족›에 대하여

한국으로 작품이 운송되는 모습 한국으로 작품이 운송되는 모습 한국으로 작품이 운송되는 모습

여러 과정을 거쳐 미술관에 수집된 ‹가족›은 평생 가족 이미지를 그린 장욱진 가족도의 전범(典範)이 되는 그림이자, ‘최초의 정식 가족도’라는 측면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화면 한가운데 자리한 집 안에는 4명의 가족이 앞을 내다보고 있으며 집 좌우로는 나무가 있고, 두 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다. 대상이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장욱진의 조형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의 가족도 중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이 함께 그려진 유일한 사례라는 점도 의미 깊다. 또한 장욱진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작품의 액자 틀을 월북 조각가 박승구(1919~1995)가 조각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화가의 장남 장정순 씨는 “대학생 시절, 반도화랑에서 시오자와 사다오 씨가 작품을 구매할 때 현장에 있었다. 그가 준 명함의 생김새도 기억이 난다”며, “그분의 아들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을 구매해왔고,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며 소회를 언급했다. 장녀 장경수 씨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그리신 나무의 우둘투둘한 질감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만나니 눈물이 난다”고 언급했고, 막내딸 장윤미 씨는 “당시 10살이었는데, 그 무렵 혜화국민학교 합주단에서 활동을 했었다. 아버지가 사준 그 바이올린으로 여러 곳에서 연주한 기억도 생생하다. 너무나 새롭고 감격스럽게 다가온다”고 소감을 전했다.

‹가족›은 오는 9월 14일부터 개최되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 출품되어 관람객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드라마틱한 여정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장욱진의 작품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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