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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 2023» 인터뷰 1편. 권병준, 이강승 작가

전시정보

(왼)권병준 작가, (오)이강승 작가 (왼)권병준 작가, (오)이강승 작가

작가 인터뷰
«올해의 작가상 2023» 인터뷰 1편. 권병준, 이강승 작가

«올해의 작가상 2023»은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의 ‘오늘’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전시이다. 올해 역시 4인의 작가가 선정되어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분야 등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통해 특색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중이다.
뮤클리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의 질문과 답을 던지며 동시다발적인 평행우주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로, 권병준 작가와 이강승 작가를 만났다.

“로봇, 사다리, 이방인의 목소리로 전하는 ‘인간성’에 대한 질문” 권병준 작가

권병준 작가 권병준 작가

Q. ‘인간사회의 소수자이자 동반자로서의 로봇’을 매개로 삼아 공연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셨는데요. 각 작품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전시에 출품된 로봇 작품들은 모두 3D 프린팅과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활용했습니다. 비교적 저렴하고 가벼운 로봇을 제작함으로써, 고가의 기술이나 특허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도 창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로봇이 단순한 기계를 넘어 예술적 표현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먼저 오체투지를 수행하는 로봇은 종교적인 행위를 기계적 동작으로 재현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만들고, 현대 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진지한 수행자의 모습을 상기시키고자 했습니다. 기계와 인간, 수행과 일상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과 생각할 거리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춤추는 사다리들›은 상승의 전통적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사다리를 활용하여 현대 사회의 경쟁적 본성과 약자의 억압에 대한 비유로 재해석한 작업입니다. 원래 자유롭게 이동하던 로봇들인데 전시실 내의 안전과 관람객 상호작용을 고려해 레일 위를 따라 움직이도록 작업했습니다. 보통 ‘사다리’라고 하면 어딘가 올라가는 이미지이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현대사회의 경쟁 체제 혹은 사회적 약자를 밟고 올라서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세상을 미래 세대에 물려줬다는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작품에서는 ‘어딘가 올라가는 도구로 쓰이는’ 사다리를 뒤집어 배치하며 그 의미를 전복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 그들이 어떠한 도구가 아닌 주체로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권병준, ‹춤추는 사다리들›(2022) 권병준, ‹춤추는 사다리들›(2022)
사다리, 모터, 레일, 가변크기. 서울문화재단 후원, 작가 소장.
권병준, ‹풍경 그리고 풍경›(2012) 권병준, ‹풍경 그리고 풍경›(2012)
알루미늄 봉, 모터, 레이저 거리 센서, 250x250x270cm, 가변설치. 작가 소장.
권병준, ‹마네킹의 유체이탈›(2011)‧‹길의 인형›(2006) 권병준, ‹마네킹의 유체이탈›(2011)‧‹길의 인형›(2006)
마네킹, 종이 프린트, 줄 인형, 가변크기. ‹여섯 개의 마네킹› 퍼포먼스 중에서. 작가 소장. /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42초. 작가 소장.
«올해의 작가상 2023» 권병준 작가 전시 전경 «올해의 작가상 2023» 권병준 작가 전시 전경

Q. 사운드를 이용하여 타인을 이해하고, 이들 간의 연대를 형성하는 방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 오셨는데요. 관객들로 하여금 사운드를 듣는 경험을 통해 ‘잠시나마 공동체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권병준, ‹오묘한 진리의 숲›(2023) 권병준, ‹오묘한 진리의 숲›(2023)
위치인식 헤드폰, 위치인식 시스템, 가변크기.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후원, 작가 소장.

사운드 작업과 퍼포먼스 연출을 통하여 공동체 속의 인간 연대와 확장 가능성에 관한 실험을 해왔습니다. 전시실 한 편에 놓인 스피커에는 이주민들의 낯선 노래들과 풍경의 향, 지나간 시대의 변화가 사운드로 담겨 있습니다. 이 청각적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의 사이에서는 잠시나마 공감과 연대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소리는 퍼져나가는 본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 공평한 매체입니다. 저는 귀가 눈보다 더 민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눈은 이 자본주의 사회, 시각의 홍수 속에서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지만 귀는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같습니다. 눈을 감고 순수하게 소리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를 알아차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전시에서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그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가 그들과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목격한 한국 사회의 일부 반응은 실망스러웠기에 작품에서는 한국 사회의 배타적인 면모와 순혈주의를 지적하고, 성찰하고자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다양성을 포용하는 열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공동체 내에서 함께하고, 같이 살아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이 언급하고 인용하신 ‘우리는 결국 모두 이방인일 뿐이며, 오로지 이방인으로서만 함께 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타자, 로봇 등에 대한 주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신 이유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 제 작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믿음직함’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주 적은 수의 인간만이 선한 심지를 지녔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돈이 주된 목적이 되어버린 사회에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돈을 쫒아가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모습이 아니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저로 하여금 사람들과의 연대보다는 로봇과의 동행을 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인간성’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섬처럼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이강승 작가

이강승 작가 이강승 작가

Q. 퀴어 역사와 미술사가 교차하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신작 ‹라자로›와 전시실 곳곳의 금사로 수놓아진 작품들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영상 작품 ‹라자로›는 ‘싱가포르 출생의 혁신적인 안무가 고추산’(1948~1987)과 ‘퀴어적 시각을 통해 바라본 사랑, 비통함에 관한 시적 작업들로 잘 알려진 브라질의 개념미술작가 호세 레오닐슨’(1957~1993)에 대한 일종의 헌정 작품입니다. 고추산은 평생 유럽과 아시아, 미국의 주요 발레 무용단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레오닐슨은 일생의 대부분을 브라질의 상파울로에서 보내며, 동성애자로서의 자신의 삶과 경험을 반영한 자전적인 작업을 창작하였습니다. 두 예술가 모두 에이즈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저는 고추산의 오리지널 발레 ‹미지의 영토›에서 영감을 받았고, 정다은 안무가와 함께 ‘퀴어적인 친밀감과 그 유산, 고통과 소속감이 교차하는 상태’를 연상시키는 절제되고 의도적인 몸짓을 만들어 보고자했습니다. ‹라자로›는 정다은 안무가 이외에도 퀴어 공동체의 작가들과 협업으로 완성된 작업입니다.

아울러 삼베에 금사로 수놓은 여러 작업들을 전시에 등장시켰는데요. 저의 지난 작업들 중 이번 전시의 주제와 닿아 있다고 생각했던 작품을 선택해 전시에 포함한 것입니다. 올해부터는 작가의 구작과 신작을 혼합하여 구성하는 것으로 전시 방식으로 변경되어, 지난 몇 년간의 작업 흐름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작업에서 개인의 생의 주기를 넘어서는 오래된 재료들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사용해오고 있는 금사 역시 1910년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런 재료들을 통해서 역사를 ‘큰 시간의 일부’로 바라보자는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가 당장 우리의 생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변화는 전체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이강승 작가 전시 전경 «올해의 작가상 2023» 이강승 작가 전시 전경 «올해의 작가상 2023» 이강승 작가 전시 전경

Q. 특히 ‹라자로›는 퀴어 역사와 역사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는데요.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는 작업이기에, 준비 또한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어떻게 시작했고, 제작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강승,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2023) 이강승,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2023)
단채널 4K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52초. ed. 5, A.P. 2. 작가와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소장.

제 작업의 특성상 더 이상 살아있지 않는 누군가의 아카이브, 그들의 흔적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 많은데요. 그 때문에 연구 조사 과정에서 그들의 유족이나 친구들을 자주 만나곤 합니다. 제가 떠난 이들의 인생을 이해하고 그들이 남긴 자취들을 공부할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그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보살펴온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신작에 주요한 역할을 한 고추산의 경우, 지금은 80대에 접어든 그의 가족, 친구들과 만나면서 그의 작업과 일생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고, 레오닐슨의 친구들과도 대화를 나누면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이들의 작업과 삶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국경을 가로지르는 퀴어 역사, 퀴어 예술의 역사 등에 대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저는 주류 역사에서 배제되어온 소수자들의 역사, 에이즈 대위기의 시기에 사라져버린 많은 작가 그리고 퀴어 커뮤니티의 공간과 역사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시각미술을 통해서 이 소수자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을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입니다. 이를 위해 스스로의 배움 역시 중요하고, 다양한 협업을 통해서 이 배움의 과정을 동료들에게 제안하는 일 역시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작 영상에서 두 명의 무용수들은 두 개의 남자 드레스 셔츠가 함께 바느질 되어 꿰매진 레오닐슨의 유작 ‹라자로›(1993) 설치작업을 본 따 만들어진 의상을 입고 교감합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장례식 수의에 사용되는 삼베로 레오닐슨의 작업을 재현함으로써, 에이즈 대위기의 시기에 사망한 이들의 삶과 기억을 되새기고 지워진 역사적 유산에 대해 얘기하고자 했습니다. 작품에 쓰인 음악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트랜스젠더 음악가 KIRARA와 협업했습니다. 고추산의 ‹미지의 영토›에 사용되었던 음악 ‹미지의 영토›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이를 해체하고 퀴어(적) 미래를 함께 상상하며 새로운 사운드트랙을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Q. 전시실 벽면에 적힌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라는 문장은 영어, 한국어, 그리고 수어로 쓰여 있는데요. 이 ‘수어’의 특별한 디자인에 대한 소개와 벽면 앞 선인장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이강승,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2022) 이강승,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2022)
벽에 아크릴 페인트, 장소 특정적 설치.
줄리 톨렌티노, ‹흙 속의 아카이브›(2019~) 줄리 톨렌티노, ‹흙 속의 아카이브›(2019~)
하비 밀크가 길렀던 모체 선인장에서 번식한 선인장, 흙, 자갈, 캘리포니아 점토, 데릭 저먼의 정원과 탑골공원, 남산의 흙을 섞어 만든 화분(by 이강승), 약17x23.5x15cm.작가와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소장.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는 동명의 문장을 미국 수화 언어(American Sign Language), 영어, 한국어로 표현한 작업입니다. 이 문장은 미국의 시인 파멜라 스니드(Pamela Sneed, 1964~)가 1980~1990년대 에이즈 유행으로 다수 사망한 자신의 퀴어 친구들과 그들을 보살폈던 사람들을 이제는 누가 돌보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쓴 시의 일부를 차용한 것입니다. 이 작업의 텍스트 폰트는 에이즈로 사망한 중국계 미국 작가 마틴 웡(Martin Wong, 1946~1999)의 미국 수화 언어 알파벳을 바탕으로 제작했고, 전시 전반에 걸쳐 여러 작업 안에서 등장합니다.

벽화 옆에 놓인 선인장은 ‹흙 속의 아카이브›라는 작업이자 ‘하비’라는 별명을 가진 선인장입니다. 선인장 ‘하비’는 캘리포니아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된 게이 운동가이자 정치인 하비 밀크(Harvey Milk, 1930~1978)의 유산을 기리며 지켜온 동료 작가 줄리 톨렌티노(Julie Tolentino)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1978년 하비 밀크가 암살 당한 후 그의 전 애인이자 룸메이트는 그의 유품인 선인장 화분을 돌보며 여기서 자라난 선인장의 작은 줄기들을 잘라 친구들에게 나눠줌으로써 하비의 유산을 이었고, 약 40년 후 작가인 줄리 톨렌티노가 이를 이어 받았습니다.

저는 ‘하비’를 처음 만나게 된 2019년 이후 그 유산에서 뻗어나 자라난 식물들을 보살피고 하비 밀크의 유산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인 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비’를 나누고, 퀴어 커뮤니티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식물의 화분을 만드는 등 그 방식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의 세계에서 주요한 단어를 꼽자면 바로 ‘돌보다’인 것 같습니다. 전시 출품작에서 우리가 ‘돌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지, 또 작가님께서 ‘돌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누구도 섬처럼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퀴어 역사는 한국사 그리고 세계사의 일부이며, 우리가 경험한 상실과 억압 역시 국경과 대륙을 넘어서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의 역사 또한 언뜻 별개로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정체성, 질병, 이에 대한 억압과 탄압의 역사를 통해서 또 저와 같은 다음 세대의 퀴어들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업을 통해서 국가와 세대를 넘어선 연결들을 마주하고 고민하고 연대함으로써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연대의 시작이 ‘돌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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