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 대만 순회전 전경
포커스
한국서예, 대만을 사로잡다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 순회 전시
| summary |
전시명 |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 |
| 전시기간 |
2024.7.6.~10.21. |
| 장소 |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 형산서법예술관 |
| 오늘 기사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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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후 최초로 열리는 서예 단독 대만 순회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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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 대비 24점 신작 추가, 한국서예 비중 확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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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 손재형, 여초 김응현 등 거장의 대표작 포함 서예, 전각, 회화, 조각, 미디어아트 등 37명 90여 점 출품 |
2020년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가 이전보다 변화된 모습으로 대만에서 다시 한번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순회전은 한국 근현대 서예의 진수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예의 미학이 어떻게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이다. 특히 해방 이후 활발히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2000년대에 등장한 현대서예 및 디자인서예의 다양한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대만뿐 아니라 글로벌 관람객을 매료시킨 한국서예의 매력 속으로 함께 빠져들어 보자.
한국 근현대 서단의 흐름과 한국서예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조망하다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 대만 순회전 전경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를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7월 6일부터 10월 21일까지 순회 개최하고 있다. 지난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해 큰 호응을 받았던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는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서예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색하는 전시이다. 아울러, 서예와 다른 미술 장르와의 관계를 풀어내며 미술관에서 ‘서書’가 전시되는 의미를 전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순회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막했던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를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 관계자들이 온라인으로 접한 뒤 전시 초청을 제안하여 성사되었다. 이전까지 교류가 없었던 양 기관이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MMCA TV) 온라인 전시 영상을 통해 인연을 맺고 공동 주최 전시를 개최하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전시가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에 위치한 대만 유일의 서법(서예)관 ‘형산서법예술관’에서 개최되는 첫 대규모 한국서예전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서예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과 의미를 조망하고 한국 근현대 서예 대표작들을 대만에 최초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전시에서는 한국 1세대 근현대 서예가 10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통 서예에서 변화된 근대 이후 서예 문화의 양상을 살펴보고, 오늘날 현대미술의 흐름을 반영해 타 장르와 소통하고 융합하는 순수예술로서의 서예를 보여준다. 이어 서예가 회화나 조각 등 다른 장르에 미친 영향들을 살펴봄으로써 미술관에서 ‘서(書)’를 조명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서예가 또 다른 형태의 미술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디자인을 입은 서예의 다양한 확장 가능성과 일상에서의 서예 문화, 현대 사회 속의 문자에 주목한다. 여기에 기존 전시 대비 한글서예의 비중을 확대하여 24점을 새로 선보인다. 소전 손재형의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탁본›과 여초 김응현의 ‹광개토대왕비 임서› 등 한국의 역사와 함께 글씨를 대만에 소개하며 특히 한글서예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고자 했다. 다채로운 출품작 중 일부를 감상해 보자.
시대에 따라 다채롭게 변주되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 서(書)의 이야기
소전 손재형, ‹이충무공李忠武公 벽파진碧波津 전첩비戰捷碑 탁본›(1956)
종이에 먹, 370x115cm(x2), 370x57cm(x2), 동성갤러리 소장.
소전 손재형(1903~1981)은 20세기 한국 서단(書壇)을 대표하는 서예가다. 일제강점기에 쓰였던 서도(書道)라는 이름 대신 서예(書藝)를 주창하여 널리 쓰이게 했다. 한글과 한문서예에 두루 능했고, 다양한 조형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소전체’를 탄생시킨다. ‹이충무공李忠武公 벽파진碧波津 전첩비戰捷碑 탁본›은 충무공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기리고자 벽파진에 세운 비이다. 명량(울돌목)은 해남과 진도 사이의 좁은 바닷길이고, 벽파진은 울돌목 길목에 있는 진도의 나루터이다. 비문에 따르면, 충무공은 1597년 옥에서 풀려난 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남은 전선(戰船) 12척을 거둬 8월 29일 벽파진에 이르렀고, 이후 보름 동안 바닷목을 지켜 9월 7일에는 들어오는 왜적선 13척을 물리쳤다. 또한 9월 9일에도 들어오는 적선 2척을 쫓아냈으며, 9월 15일에는 조선 수군의 우수영이 있던 해남 쪽으로 진(陣)을 옮겨 이튿날 시작된 전투에서 적선 330척을 모조리 무찔렀다고 한다. 이어 진도 출신의 참전 군사 14명을 기리고, 뒤쪽에 대첩을 찬미하는 시조 아홉 구절을 더했다. 비는 진도 교직원과 학생을 비롯하여 군민과 전라남도 교원의 성금으로 1956년 11월 29일 세워졌다. 비문은 그해 8월 29일 노산(鷺山) 이은상(1903~1982)이 국한문으로 지은 것을 손재형이 썼다. 손재형은 중년부터 한자의 전예(篆隷) 필법을 응용한 한글 서체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 비문은 짜임과 획법에 변화가 많았던 그의 중년 한글 글씨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이다.
여초 김응현, ‹광개토대왕비 임서›(2003)
종이에 먹, 480x142cm(x4), 여초서예관 소장.
여초 김응현(1927~2007)은 서예평론이 없던 시절 한국서예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한 비평을 가함으로서 한국서예의 좌표 설정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는 국제서예교류활동을 통해 한국서예를 알리는데 힘썼으며, 조형연구만을 중시하는 서예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론과 실기를 병용하여 고법(古法)을 재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서예가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론과 실기의 동행을 강조했던 김응현의 서예론은 현시대의 서예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김응현은 한국의 고대비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으며 특히 광개토대왕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광개토대왕비 임서›는 김응현의 대표작이다. 광개토대왕비는 4면비로 높이가 6.39미터 1,775자로 되어있으며 크게 다듬지 않은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고구려의 세력과 위용을 살필 수 있는 비문이다. 글자는 질박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지만, 글자마다 세부적인 것을 장악하는 작가의 섬세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중봉을 기본으로 글자마다 필획의 굵기가 다르며, 펼치고 오므리는 신축의 변화가 자유자재하다. 광개토대왕비 서체 연구는 김응현의 서예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의 서예가들이 자국 서예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석 박원규, ‹공정公正›(2020)
종이에 먹, 250x12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하석 박원규(1947~)는 서예가인 강암 송성용 문하에서 서예를 수학했고, 대만에서 유학하여 독옹 이대목에게 전각을 배웠다. 또한 긍둔 송창, 월당 홍진표에게 한학을 사사했고, 지산 장재한에게 수학하였다. 1999년에는 서예 전문 잡지인 『까마』를 창간하여, 약 7년간 국내외 서예사와 서예가를 조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공정公正›은 서주시대 청동 제기(祭器)에 새겨진 ‘정(正)’자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대의 ‘정(正)’자는 윗부분 ‘한 일(一)’자에 해당하는 ‘입 구(口)’자 모양과 그 아래의 ‘그칠 지止’에 해당하는 두 발자국의 모양으로 서사되기도 했다. 하석은 이러한 고대 금문金文의 자형을 오늘날의 문자조형으로 재해석하여 서예의 회화적 요소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안상수, ‹한글 만다라›(1988)
실크프린트, 175x120cm, 개인 소장.
안상수(1952~)는 1985년 한글의 창제 원리에 근간한 서체 안상수체를 발표했으며, 2007년 구텐베르크 상을 수상하기도 한 한글 디자이너이다. 그의 서체는 1991년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에 기본 서체로 탑재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붓보다 펜을 사용하고, 펜보다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의 사용이 자연스러워지면서 활자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였다. 이에 다양한 폰트가 개발되면서 실용성과 예술성을 담보한 여러 서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활자 디자인을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라 부르는데, 이는 가독성을 높이거나 더 보기 좋게 디자인한 문자를 일컫는다. 서예가 문자예술의 한 형태라면 타이포그래피 역시 ‘활자화된 글씨’라는 측면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서예의 역할과 범주를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다. 이는 서예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며, ‹한글 만다라› 역시 서예의 지형을 넓히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 대만 순회전에 대해 “중국의 서법(書法), 일본의 서도(書道)와 달리 예술성을 중시한 한국서예(書藝)만의 독창성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는 전시”라며, “한국서예 대표작들과 함께 한국 역사와 한글서예의 아름다움과 우수성까지 해외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 대만 순회전에서 소개한 한국의 전통 서예가들은 각자의 경험과 성격을 반영하여 ‘자신만의 특색’을 서예 작품으로 표현했으며, 이들 작품은 ‘글씨가 곧 그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현대 서예가들은 문장의 내용이나 문자의 가독성보다는 서예적 이미지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 ‘읽는 서예’가 아닌 ‘보는 서예’에 집중해 작품을 선보였다. 시대를 넘나들며 모두를 아우르는 이번 전시가 국경을 넘어 많은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건네기를 바란다.
대만타오위엔시립미술관의 형산서법예술관은 대만의 최초이자 유일한 서법예술관이다. 2021년 개관 이후 국제 서예 교류 확대, 아시아 서(書) 예술의 개발과 부흥을 목표로 대만의 서예 연구와 교육의 기초를 확립하고, 지역 서예의 특성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서예 관련 특별전 및 비엔날레, 교육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며 큐레이션 워크샵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형산서법상’을 제정하여 서예 연구와 평론의 발전을 촉진, 장려하는 중이다. 형산서법예술관은 동아시아 서예의 간결함과 고요한 선(禪)을 표상하기 위해 지필묵연(紙筆墨硯)을 조경 설계의 주축으로 삼았다. 서법관의 건축은 ‘인장’을, 연못은 ‘벼루’를 의미한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건축 풍경으로도 유명하며, 2022년 대만 건축상 1등상, 2022년 글로벌 건축 우수상 금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