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올해의 작가상 2024» 인터뷰 1편. 권하윤, 양정욱
«올해의 작가상 2024»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전시이다. 이번에도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해 인간의 내밀한 영역을 탐구하거나, 세계로 시선을 확장하며, 실재와 가상을 넘나드는 방법론을 통해 통념을 뒤집고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뮤클리는 2회에 걸쳐 작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먼저 만난 권하윤은 기억과 역사, 제의적 상징을 통해 인간 내면을 탐색하며,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독창적 세계를 작품 속에 담아낸다. 양정욱은 일상의 사물과 그 움직임을 통해 현대인의 감정과 경험을 조각으로 형상화하며,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낸다. 각자의 시선과 목소리로 풀어낸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해본다.
Q. «올해의 작가상 2024»는 구작과 신작을 함께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작품 사이를 연결해주는 키워드, 혹은 주제 의식 등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해의 작가상 2024» 권하윤 작가 전시 전경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두 작품을 연결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제 작품의 주요 키워드는 국경선, 이방인, 개인의 기억, 역사의 기록과 해석,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충돌 같은 것들입니다. 학생 때는 막연하게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멋진 주제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또 그래야 목적의식이 뚜렷해 보이니까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작가는 목적을 따라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종교적) 수행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 중요한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나중에는 각 작업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연결고리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사실은 여러 작업을 하고 나서야 주요 키워드를 발견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사실 «올해의 작가상 2024»에 참여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살다 보면 믿기 어려운 일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동료 작가들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고, 특히 가상현실이 현대미술의 표현 매체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어 저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다만 최종 작업에 담지 못하는 것들이 이따금 생각나기도 합니다. 리서치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인데, 대만의 일부 소수민족 언어에는 ‘점령’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는 그들의 생활방식과 사고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일본이 대만을 점령할 당시, 한족(漢族)이 소수민족과 일본인 사이의 통역을 맡았는데, ‘점령’이라는 말을 ‘공유’라고 오역하여 소수민족의 동의를 얻었다고 합니다.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부조리한 일들이 기록조차 되지 않은 채 세상 곳곳에서 일어났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Q. 가상현실을 통해 기억과 기록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계십니다. 이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 여러 매체 중 가상현실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시점과 그들의 경험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기억과 연결된 작업을 계속해왔는데, 가상현실이야말로 기억을 다루기에 적합한 매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상현실은 제 작업에서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하는 마법 같은 역할을 합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고, 더불어 시공간적·정치적 제한을 넘어서게 해주는 강력한 표현 수단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작업을 준비할 때는 주제와 매체를 신중하게 고려하며, 매번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려 노력합니다. 처음 가상현실로 작업하게 된 계기는 이전 작업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어요. 2014년에 완성한 ‘모델 빌리지’라는 작업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1950년대 북한이 선전 목적으로 만든 기정동이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관람객과 보여주기 위한 공간 사이, 즉 작품과의 거리나 관계가 차갑게 느껴질 수 있도록 흑백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러던 중, DMZ에서 근무했던 한 분과 인터뷰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당시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동안, 마치 제가 그곳에 함께 있는 듯한 감각을 느꼈어요. 그분의 감정을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공간을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결국 처음으로 가상현실을 통해 작업을 풀어내게 되었습니다.
가상현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타인의 시선이 나의 시선으로 전환되는 ‘경험의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은 공감으로 확장될 수 있고, 나와 상관없던 과거나 타인의 이야기가 관점의 전환을 통해 우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신작 ‹옥산의 수호자들›에서는 대만 부족장과 일본 인류학자의 이야기를 다루셨습니다. 가상의 공간과 현실, 역사와 기억이 얽힌 이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내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권하윤, ‹옥산의 수호자들›(2024)
상호작용 가상현실 설치, 컬러, 사운드, 3D 애니메이션, 가변크기.
여러 해 동안 아시아 식민지와 식민 후기 역사에 대한 작업을 해왔고, 이를 다룬 삼연작을 제작 중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옥산의 수호자들›은 대만 부눈족 부족장과 일본 인류학자 간의 이야기를 다룬 인터랙티브 가상현실 작품입니다. 관람객은 램프를 들고 그림자 연극을 찾아가는 참여형 설치로, 국가적 차원이 아닌 개인 간의 관계에서 적의를 되짚어보도록 했습니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저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어요. 학창 시절 일본 친구와의 대화에서 역사 인식의 차이를 느꼈고, 그 과정에서 일본인 친구에게 식민지 역사에 대한 사과를 받으면서 스스로의 작업 방식에 대해 반문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의 역사 교육 방식을 비판하며, 국가적 갈등을 넘어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어떤 가능성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대만 부족장과 일본 인류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우정이 제가 풀지 못한 숙제에 대한 하나의 답처럼 느껴졌어요. 소멸되기 쉬운 기억이기에 누군가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과 가능성이 존재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증거부족›에서는 이민자의 절박한 상황을 3D 애니메이션을 통해 시각적으로 풀어내셨고, ‹489년›에서는 DMZ라는 물리적 접근이 제한된 공간을 가상현실로 재구성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상현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역사적 사건이나 현실을 가상세계에서 어떻게 재구성하여 관객들이 경험을 하길 기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보여드리는 가상의 공간은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시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고증하려는 의도는 없고, 오히려 기존의 실사촬영으로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한계가 있다고 느껴 3D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3D 애니메이션과 가상현실은 현실을 닮았으면서도 비현실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판문점이나 DMZ 같은 실재하지만 초현실적인 장소들을 표현하기에 적합합니다. 또한, 타인의 기억 속 장소처럼 현실을 기반으로 한 상상의 풍경이나 닿을 수 없는 대상을 표현할 때에도 효과적이죠. 가상 공간은 현실적인 제약을 넘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역사나 기록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각자의 경험에 따라 고유한 시선을 가질 수 있죠. 아마 그래서 저는 늘 개인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관객들이 다양한 시선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해 봅니다.
“사람의 흔적이 남기는 것들에 대하여” 양정욱 작가
Q. «올해의 작가상 2024» 참여 소감과 함께, 작품 제작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해의 작가상 2024» 양정욱 작가 전시 전경
사실 제 작업들은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작업 속에는 언제나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심지어 거북이나 텃밭에서도 사람을 떠올립니다. 저는 살아가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뭔가를 해보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그들에게는 정성이 느껴지거든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느리더라도 같은 일상을 지나오며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들이 저에겐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번 신작을 준비하며 사람의 흔적이 남기는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문득, 작품도 텃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그 흔적에서 정성을 읽고 이해하며, 때로는 말 없는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내의 텃밭에서 그런 위로를 받은 것처럼요. 사실 이번 전시 참여를 망설였어요. 작업을 쉬었던 기간도 길었고, 작업실이 없어서 급하게 아내의 사무실에서 준비했거든요. 사무실은 문이 작아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또 과거의 가지고 있었던 작업의 유연함이나, 절박한 마음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오히려 신작 제작의 경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Q. 작가님께서는 움직이는 조각을 통해 일상의 한 장면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전달하십니다. 일상의 장면이 작품의 이야기로, 그 이야기가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구현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또한, 사물을 조각으로 변화시킬 때 전하고자 한 메시지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우리가 늘 어떤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존재하기까지, 그 자리에 서 있기까지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1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똑같이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속의 사람은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마음은 변하지 않을 수 없고, 우리는 다만 그 변화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애정 어린 마음을 가질 뿐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죠. 성실함과 게으름이 공존하는 것처럼요. 이처럼 마음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을 온전히 이야기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나의 마음에 따라 가만히 있는 사물도 좋았다가 싫어졌다가 하니까요. 그래서 진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그 사람의 일면만을 드러내게 되겠죠.
그래서 저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특정한 과정이나 순간을 다룹니다. 존재할 것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제가 좋아하는 상상을 담아보는 거죠. 해보고 또 해보는 사람들, 그리고 반복된 일을 할 때 생기는 작은 변화들이 저는 좋습니다. 사람의 반복 속에는 고난이 있는데, 고난의 그림자엔 희망이 있거든요. 제 작품 속 사람들은 어쩌면 문득 그런 그림자를 발견한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움직임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저 하나의 색깔 같은 거예요. 움직임에 따라 색이 다채로워지고, 사실 세상 모든 것은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저는 그것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표현하고 싶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행동이 되어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몇십 번 편지를 쓰며 글씨도 더 예뻐지고, 글에 기술이 생기게 되죠. 저의 작업은 결국 저와 제 주변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제 주변이 되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저 반갑고 즐거울 뿐이에요.
Q. ‹아는 사람의 모르는 밭에서›에서는 텃밭에서 얻은 위안을 작품으로 풀어내셨습니다. 물, 빛, 바람 같은 자연 요소와 아버지의 텃밭 이야기가 어떻게 작품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느낀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는 사람의 모르는 밭에서› 드로잉
양정욱, ‹아는 사람의 모르는 밭에서›(2024)
나무, 모터, 전구, 실, 철, 300x700x300cm.
텃밭의 흔적을 통해 사람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작업을 쉬는 동안 아내가 가꾸는 텃밭을 보며 지냈고, 자라는 아이를 돌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적절한 고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항상 즐겁고 편안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넘어져보고 참아보는 과정,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이가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우주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우리 모두가 긴 시간 속에서 ‘아이’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각자 다양한 고난을 겪으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니까요.
이야기 속 아버지는, 그렇게 보면 가장 오래된 ‘아이’입니다. 수많은 고난을 지나왔고, 그 흔적이 텃밭에 남아 있습니다. 그 텃밭에는 비와 바람, 햇빛의 흔적이 있고,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들과 함께 어떻게 지내왔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부재한 아버지의 흔적을 보며 아들은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저는 아내의 텃밭을 보면서 왜인지 아내가 거기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옆의 다른 사람들의 텃밭을 보아도 마찬가지였어요. 꼼꼼하게 가꾼 텃밭, 포기한 듯 보이는 텃밭, 그 안에 그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습니다. 애정이 담긴 모습들이 텃밭에 배어있었고, 저는 그것을 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자라는 싹과 그것을 다듬고 돕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큰 위안을 얻었어요. 세상의 모든 흔적들도 이런 게 아닐까요. 문득 제 작품도 그런 흔적의 모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Q. 작가님에게 균형이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기울었다가 복구되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균형의 개념이 작품에 어떻게 담겨 있고, 관람객들이 이 변화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무엇인가 해보고 또 해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마음은 늘 변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마음 자체를 볼 수는 없습니다. 미워하거나, 좋아하거나, 그리워하는 등 수많은 마음을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몸짓으로 알게 되죠. 바라보는 방향, 돌아오는 속도, 정지된 시간 등을 통해 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그게 장소이든, 사물이든, 생명이든, 사람이라면 우리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자주 보고 싶어 하죠.
하지만 좋아하는 것만으로 마음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나 자신을 돌보아야 외부의 것들을 더 잘 좋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순환이 바로 균형입니다. 균형은 끊임없이 변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모습이죠. 앞으로 나아가기에 바쁜 순간이 있다가도 문득 주변을 돌아보는 순간이 있고, 반대로 주변을 돌보다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시점은 다르죠. 어떤 사람은 하루에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은 큰 사건을 계기로 한참 후에나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건마다 시간도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때로 누군가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일 뿐이에요. 아주 느리게라도, 어느 순간 마음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빠르게 다시 원래의 마음을 찾아가기를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죠. 마음은 언제나 결론에 다다르지 않은 과정입니다, 끝나지 않은 여정 같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