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방혜자, ‹울림›(2011)
캔버스, 펠트에 천연안료, 195x240cm, MMCA 이건희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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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시간과 광막한 공간을 담다, 방혜자 ‹울림›
텅 빈 충만의 빛을 그리다
마음을 비우고 우주의 심장을 향해 걸어갑니다
텅 빈 가운데 아무도, 아무 것도 없는 길은 마음 여는 길
어둠을 다 걷어내고 밝게 피어나는 시작의 길
세포 하나하나까지도 활짝 깨어나 새로 태어나는 길
마음을 그리며 갑니다 천지(天地)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갑니다
-방혜자
바람이 매섭게 부는 12월 밤, 하늘로 열린 창 아래 마음을 평안히 눕히고 고요하게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지만, 주어진 여건은 여의치 않다. 솔직히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고, 매듭지어야 할 일, 앞으로 해야 할 일, 한창 진행 중인 일과 관계, 돌봐야 할 가족과 지인, 정리해야 할 물건과 주변, 소유하고 싶은 물건과 경험 등으로 인한 염려와 후회, 불만, 욕심에 마음이 시끄러운 탓이다.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게 어려울 때, 바쁜 도시의 삶에서 균형이 필요할 때, 얼마 전 소천하신 수임(樹淋) 방혜자(方惠子, 1937~2022) 작가의 작품을 떠올린다. 그녀의 회화처럼 담담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그녀의 시와 수필을 함께 읽는다면 그 회화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푸른 창공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침묵 속에서 무리 지어 흐르는 듯 ‹울림›(2011)은 작가가 평생 천착했던 빛의 조화로움과 신비로움을 발산한다. “하늘이 열리고 태초의 빛이 솟아올라 모든 생명을 보듬어 안는 개벽의 순간”을 상상하며 그녀는 “아득한 태고에서부터 생명의 원천이 된 빛을 화면에 심고” 싶어했다. 그녀에게 빛은 망막에 부딪혀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시각 현상, 물질적 속성을 넘어 종교적, 정신적 의미를 지닌다. 아무리 사용해도 줄지 않는 빛은 누구에게나 대가 없이 주어지는 선물이자 이로써 인간은 모든 생명체와 만나게 된다. ‘빛의 화가’ 방혜자는 빛의 영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의 물성과 이를 다루는 여러 기법을 탐구했다. ‹울림›은 작가가 부직포를 부분적으로 구기고 접어서 천의 표면과 이면 양쪽에 천연 염료로 물들이고, 펴서 말린 뒤 그 위에 겹겹이 덧칠을 해 만든 말년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는 고려시대 불화에 사용된 기법으로 종이의 양면에 색을 칠하는 배채법과 유사하다. 색은 안료의 물성, 즉 마티에르를 과시하지 않으면서 화면에 밀도와 깊이를 부여하고, 영롱한 빛이 된다. 형태는 색에 용해되고, 빛과 색, 형태가 서로 교차하고 스며들어 화면은 빛으로 충만한 소우주로 새롭게 태어난다.
작가의 빛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아차산 밑 작은 마을에 위치한 외가댁에 놀러 갔을 때, 동네 작은 개울의 맑은 물속에 잠겨있는 자갈돌이 투명한 빛에 반짝이는 것에 사로잡혔다. “사람의 손으로 이 빛을 그릴 수 있을까?”, “빛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밖으로부터 오는 빛, 안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빛, 마음의 창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빛, 이 모든 빛은 어둠을 뚫고 서서히 열리면서 널리 퍼져나가 우주 만상을 비춘다.” 방혜자의 예술세계는 이렇게 빛에 대한 찬탄과 끈질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빛이 비치는 모든 생명체와 자연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모든 생명체가 “보이지 않는 빛의 숨결 속에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고 자아에 얽매였던 고삐가 풀어져 더 넓은 세계, 우주로 시선을 향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작디작은 인간의 마음이 그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우주와 만나게 되었다.
방혜자, ‹빛›(1965)
캔버스에 유화 물감, 100x8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방혜자, ‹지심(地心)›(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100x8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빛›(1965)은 방혜자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자마자 국비장학생 1호로 프랑스로 건너가(1961) 제작한 초기작 중 한 점이다. 추상, 특히 거친 마티에르를 특징으로 하는 앵포르멜에 대한 관심은 파리 유학 직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과 김병기가 운영하던 현대미술연구소 수학 시절 제작한 ‹지심(地心)›(1961)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경주 여행 후 석굴암의 인상을 그린 작품인데, 마치 렘브란트 회화처럼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비치는 빛이 느껴진다. ‹빛›은 이런 분위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색과 질감, 기법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거친 마티에르와 드리핑, 긁기, 나이프로 문질러 매끈한 표면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된 화면은 밝음과 어둠, 투명함과 불투명함, 무거움과 가벼움, 가득참과 텅빔, 움직임과 멈춤이 공존한다. 방혜자는 1963년 국립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해 프레스코 아틀리에에서 수학하며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익혔고, 벽화 외에도 판화, 이콘화,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배우면서 표현의 경계를 점점 확장해 나갔다.
방혜자, ‹햇님 나들이›(1977)
캔버스에 유화 물감, 종이, 콜라주, 51x51cm, MMCA 이건희컬렉션.
방혜자, ‹흐르는 빛›(1981)
캔버스, 종이에 유화 물감, 천연안료, 톱밥, 51x51cm, MMCA 이건희컬렉션.
방혜자는 1967년 인류학자 알렉상드르 기예모즈(Alexandre Guillemoz, 1941~2021)와 결혼하고, 이듬해 남편과 잠시 머물 예정으로 귀국했다가 의도치 않게 10년을 한국에 남게 되었다. '예술가들의 천국 같았던 60년대의 파리'를 경험했던 그녀는 본격적으로 한국의 전통문화로 시선을 돌렸다. 특히 1970년대 초부터 몰입한 한지의 물성에 대한 탐구로 작가는 빛과 우주의 신비로움, 다양함, 조화로움을 더욱 섬세하고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한지를 접고 구기고 다시 펼쳐 그 주름 위에 여러 차례 칠을 하면 캔버스나 다른 종이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깊고 다채로운 색이 배어났다. 또 한지를 사용한 콜라주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러한 실험은 1976년 파리로 돌아와서도 계속되었다. 단순한 선과 원으로 태양, 산, 물, 대지, 하늘 등 자연 풍광을 그려낸 ‹햇님 나들이›(1977)는 캔버스에 한지를 콜라주한 작품이다. 한편 어릴 적 개울 속에서 빛나는 조약돌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흐르는 빛›(1981)은 물감에 톱밥을 더해 질감을 다채롭게 살렸다. 오랫동안 작가를 후원했던 스위스 출신 미술비평가 피에르 쿠르티옹(Pierre Courthion, 1902~1988)은 그녀의 작품이 “자연에서 출발하여 모든 요소들을 관찰하여 종합된 형태로 만들어낸다. 사실적인 묘사는 없지만 자연의 기본적인 원소를 승화하여 표현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리고 시인이자 미술비평가 모리스 베나무(Maurice Benhamou, 1929-2019)는 방혜자를 화가이자 서예가로 간주하고, 그녀의 작품이 서예처럼 “여백이 내부에서부터 침식해 들어오고”, “형태가 의미를 비워버린다”고 평했다. 방혜자의 작업은 점점 더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형태의 무궁무진한 변형, 혼돈에 맞서 구축하는 의지, 세상의 신비를 영혼의 신비와 일치시키려는 의지'로 충만해진다.
방혜자, ‹우주의 빛›(2001)
부직포에 유화 물감, 205x24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방혜자, ‹우주의 춤›(2001)
펠트에 천연안료, 189x275cm, MMCA 이건희컬렉션.
미술의 역사가 쓰인 이래 ‘빛’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빛은 종교적, 형이상학적, 상징적으로 진리의 은유로서 끊임없이 탐구의 대상이었고, 근대과학이 발달한 이후 물리적, 자연적 물질로 인식되었으며, 이성의 은유가 되기도 했다. 방혜자에게 빛은 생명의 원천이자 우주의 시작과 끝-태초의 무(無) 또는 우주의 팽창-이며, 미물인 인간으로서 생명=자연=우주에 대한 찬탄이자 동시에 내면의 침묵을 찾아 떠나는 텅 빈 공간=마음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이렇게 존재와 비존재가 빛을 통해 서로 침투하며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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