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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한계를 깨다 «신상호: 무한변주»

전시정보

흙의 한계를 깨다 «신상호: 무한변주»

SUMMARY

  • 전시명
    «신상호: 무한변주»
  • 전시기간
    2025.11.27-2026.3.29
  •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POINT

  •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

  • 흙의 예술가 신상호의 60여 년 조형 실험과 도전의
    여정 조명

  • 전통 도자에서 조각, 회화, 건축 등 경계를 넘나드는
    도자 예술 작품 90여 점과 아카이브 70여 점 소개

‘도예 전시’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완만한 곡선과 순백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백자나 청자가 줄지어 놓인 풍경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이는 «신상호: 무한변주»는 그러한 전형을 넘어, 60여 년간 흙이라는 한 재료만을 탐구해 온
신상호의 무한한 예술 정신을 보여주면서, 도예의 익숙함을 깨고 새로움을 발견하게 한다.
전통 도자기에서 시작해 도자 조각, 건축 도자, 타일, 회화까지. 흙으로 구현 가능한 모든 형식이 펼쳐지는 이 다채롭고도 열정적인 도예의 세계에 노크해 보자.

60여 년간 이어진 변주, 신상호의 세계를 들여다보다

«신상호: 무한변주»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의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를 11월 27일부터 2026년 3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60여 년간 흙으로 보여준 작가의 조각적·회화적 창작 여정을 조명하면서 한국 현대 도예의 확장된 범주를 소개한다.

신상호(1947~)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사회와 미술의 변화에 호응한 작가다. 흙을 매체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으며, 다양한 도자 형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탁월한 기술력으로 한국 현대 도예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1960년대 경기도 이천에서 장작가마를 운영하며 전통 도예의 길에 들어선 이래로, 시대의 변화와 내면의 예술적 탐구심에 따라 도자의 경계를 확장하며 흙의 세계를 다채롭게 펼쳐왔다.

전시 제목인 «신상호: 무한변주»는 한국 도자의 전통적인 형식과 의미를 해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온 작가의 끊임없는 여정을 상징한다. 신상호는 민족적 가치가 강조되던 산업 고도화 시대에, 전통 도자를 제작하며 장인이자 산업 역군으로서의 정체성을 모색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도예의 전통적 규범을 과감히 넘어섰고, ‘도자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이후 21세기 다변화와 혼성의 시대를 맞아 ‘도자 설치’와 ‘건축 도자’ 작업을 통해 미술과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방적이고도 융합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오랜 시간 탐구해 온 흙을 전복적으로 사유하며 ‘도자 회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현대 도예의 지평을 확장할 뿐 아니라 예술가로서 자유주의적 태도와 실험정신을 통해 끊임없는 도전의 궤도를 그려왔다.

오랜 시간 작업해 온 만큼 신상호의 작품들은 때로는 전통적으로, 때로는 도전적으로, 때로는 실험적인 모습으로 변주된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만큼이나 다채롭고 역동적인 그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을까. 지금 바로 그 세계를 확인해 보자.

5부로 선보이는 거장의 여정
  • 신상호, 김기창, ‹백자청화조목문대호›(1980)
    신상호, 김기창, ‹백자청화조목문대호›(1980) 백자토, 청화, 철화, 60×46×46cm, 개인 소장
    1부 ‘흙, 물질에서 서사로’ 출품작
  • 신상호, ‹분청›(1990-1994)
    신상호, ‹분청›(1990-1994) 혼합토, 상감, 귀얄, 가변크기, 작가 소장
    1부 ‘흙, 물질에서 서사로’ 출품작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되며 신상호의 60여 년간 흙의 여정이 담긴 도자 90여 점과 아카이브 70여 점이 전시된다. 1부 ‘흙, 물질에서 서사로’에서는 신상호가 1960-1990년대에 작업한 전통 도자 세계를 조명한다. 신상호는 1965년 홍익대학교 공예학부에 입학한 해, 경기도 이천의 가마를 인수해 전통 도자기를 제작했다. 그는 전통을 재현의 대상이 아닌 현대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실험해야 할 개념으로 인식했으며, 국내 최초로 가스가마를 도입하고 정교한 디자인의 생활 식기 제작과 화가들과의 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도모했다. 1990년대 ‹분청› 연작에서는 신상호 특유의 전통 기법과 호방한 회화적 표현이 어우러진 원숙한 도예의 경지를 감상할 수 있다.

  • 신상호, ‹아프리카의 꿈-토템›(2000-2002)
    신상호, ‹아프리카의 꿈-토템›(2000-2002) 혼합토, 가변크기, 작가 소장
    2부 ‘도조의 시대’ 출품작
  • 신상호, ‹구조와 힘-이드›(2003)
    신상호, ‹구조와 힘-이드›(2003) 혼합토, 가변크기, 작가 소장
    2부 ‘도조의 시대’ 출품작

2부 ‘도조의 시대’에서는 1986년부터 선보인 신상호의 도자 조각, 도조(陶彫)를 선보인다. 1984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도자를 경험한 신상호는 조각과 회화적 요소가 결합된 예술의 조형성을 추구하며 ‹꿈› 연작을 발표했다. 한국 도예의 국제화를 위해 88 서울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자신의 작업장인 부곡도방에서 ‘국제도예워크숍’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아프리카 미술 전시를 경험한 뒤 타문화의 원시성에 매료돼 흙의 원초적 생명력과 구조적 힘을 형상화 한 ‹아프리카의 꿈› 연작을 제작하며 형태적 언어를 확립했다.

  • 신상호, ‹구운 그림-마스크›(2006)
    신상호, ‹구운 그림-마스크›(2006) 혼합토, 50×50×1×(16)cm, 작가 소장
    3부 ‘불의 회화’ 출품작
  • 신상호, ‹구운 그림-무제›(2006)
    신상호, ‹구운 그림-무제›(2006) 혼합토, 50×50×1×(5036)cm,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김해
    3부 ‘불의 회화’ 출품작

3부 ‘불의 회화’에서는 2001년 이후 선보인 신상호의 건축 도자의 실험성을 600여 장의 도자 타일과 건축 아카이브를 통해 조명한다. 그는 도자와 건축의 결합을 실험하며 도자 타일로 대형 외벽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이때 제작된 ‹구운 그림›은 흙 위에서 소성된 독특한 질감과 색채를 캔버스의 물감 표현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명칭이다. 50×50cm 크기의 도자 타일은 벽면의 표면을 감싸면서도 분리와 재설치가 가능한 유연한 탈착 체계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구조적 실험은 건축 외피로서 도자의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며, 그는 도자 타일 작업을 통해 도자의 회화적 색 표현의 범주를 확장하고 건축 자재로서 흙의 기능적 잠재력과 예술적 가능성을 새롭게 펼쳤다.

  • 신상호, ‹표면, 그 너머›(2010년대)
    신상호, ‹표면, 그 너머›(2010년대) 혼합토, 철제 창문, 118×81.5×6.5cm, 작가 소장
    4부 ‘사물과의 대화’ 출품작
  • 작가미상, ‹도구 컬렉션›(연도미상)
    작가미상, ‹도구 컬렉션›(연도미상) 스틸, 가변크기, 작가 소장
    4부 ‘사물과의 대화’ 출품작

4부 ‘사물과의 대화’에서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타문화의 옛 물건 수집과 이를 통한 창작활동을 보여준다. 컬렉터로도 잘 알려진 작가의 수집품을 작업장에 놓인 모습 그대로 전시실에 재현해, 작가의 영감이 발현되는 내밀한 순간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신상호는 아프리카 공예품을 비롯해 유럽에 수출된 중국 청화백자 등 서로 다른 문명과 시대의 사물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이에 영감을 받아 도자 오브제 및 도자와 수집품을 결합한 혼종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부산물›이나 ‹표면, 그 너머› 등의 연작은 사물과의 대화를 작업의 동력으로 삼으며 조형적 사유를 확장하는 작가의 상상력을 드러낸다.

  • 신상호, ‹생명수›(2017)
    신상호, ‹생명수›(2017) 혼합토, 알루미늄 패널, 244×122×3×(6)cm, 작가 소장
    5부 ‘흙의 끝, 흙의 시작’ 출품작
  • 신상호, ‹묵시록-청(靑), 회(灰)›(2025)
    신상호, ‹묵시록-청(靑), 회(灰)›(2025) 혼합토, 알루미늄 패널, 230×200×3×(4)cm, 작가 소장
    5부 ‘흙의 끝, 흙의 시작’ 출품작

마지막으로 5부 ‘흙의 끝, 흙의 시작’에서는 2017년부터 흙판을 금속 패널에 부착하고 다채로운 색을 입히는 도자 회화를 조명한다. ‘흙으로 그린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제작한 ‹생명수›와 ‹묵시록› 연작은 흙의 유기적 패턴과 중첩된 색의 층위가 한데 어우러져 도자의 물질적인 깊이를 평면 회화로 구성한다. 이는 공간에 울림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 관람객에게 가시적인 현실 너머 보이지 않는 피안을 응시하게 만드는 명상적 체험을 제시한다. 이러한 도자 회화는 1980년대 도조 작업 이후 꾸준히 이어진 ‘조각과 회화의 통합’이라는 그의 오랜 예술적 탐구의 귀결이다.

신상호의 다채로운 창작 세계를 보여주는 역동적인 전시인 만큼,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흙에서 태어난 상상동물›은 대표작인 ‹아프리카의 꿈›을 모티브로 참여자들이 상상의 동물을 직접 도자 조각으로 창작해 보는 활동이다. 참여자의 완성된 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전시돼 관람객과 공유될 예정이다. 오감을 적극 활용하며 또 다른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니, 관심이 생겼다면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자. 사전 예약은 필수다.

‘실험’과 ‘도전’이라는 단어는 예술가에게 낯설지 않지만, 신상호만큼 이 두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작가도 흔치 않을 것이다. 60여 년 동안 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여전히 흙을 처음 만지는 사람처럼 탐구하고, 빚고, 새로운 색과 형태를 실험하며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치지 않는 창작의 열정과 이를 통해 탄생하는 작품을 마주하고 싶다면, «신상호: 무한변주»를 놓치지 말자.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열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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