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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열정 가득한 김윤신의 ‹내 영혼의 노래 2006-94›

전시정보

박혜성 학예사의 명화이야기
생명과 열정 가득한
김윤신의 ‹내 영혼의 노래 200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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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닿고자 하는 기원을 조각하고 그리다

첫째, 너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그것은 신이 우주 위에 드리운 그림자이다.
둘째, 무신론적 예술은 없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의 형상을 따라 창조함으로써 그를 드러낼 것이다.
셋째, 아름다움을 감각의 미끼로 주지 말고 정신의 자연스러운 양식으로 주어라.
넷째, 아름다움을 방종이나 허영을 위한 구실로 삼지 말고 신성한 훈련으로 삼으라.
다섯째, 시장에서 너의 작품을 찾지 말고 거기로 가져가지도 말라.
아름다움은 순결하며, 시장에 있는 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여섯째, 너의 가슴 속에서 너의 노래로 끌어 올려라. 그러면 너는 정화될 것이다.
일곱째, 너의 아름다움은 자비라 불릴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여덟째, 어미가 자식을 낳듯 네 심장의 피로 작품을 만들라.
아홉째, 아름다움은 마취의 아편이 아니라 행동을 불태우는 넉넉한 포도주가 되어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인간성을 잃는다면 예술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열째, 모든 창조물 가운데 겸허해야 한다. 너의 창조물은 너의 꿈보다 못하고
동시에 경이로운 신의 꿈인 자연보다도 못하기에.
_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예술가의 십계명›

라틴아메리카 최초(1945)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Gabriela Mistral, 1889-1957)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모성과 신앙의 언어로 인간과 자연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과 영혼의 구원을 노래했다. 시인 네루다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녀는 정치적인 이유로 조국(칠레)을 떠나 그녀가 예찬했던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국외자로 살았다. 조각가 김윤신(金允信, b.1935) 역시 인생의 절반을 조국을 떠나 지내면서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추구했는데, 그 바탕에는 위의 시에서 강조된 세상을 창조하신 이에 대한 경외와 겸손한 태도, 순간의 유행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의 지향, 단순한 영감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의 결과로서 창작, 그리고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예술 개념과 실천이 깔려 있다.

김윤신은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식민과 전쟁, 분단을 몸소 겪은 마지막 세대다. 중국 목단강에 정착한 아버지를 찾아 해방 직전 어린 나이에 홀로 국경을 넘었고, 1948년 어머니와 함께 밤새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월남했으며, 전쟁 중에는 군인이 된 오빠를 찾겠다고 서울 시내에 쌓인 시체들을 뒤집어가며 홀로 부산 피난길에 올랐다. 가난과 육체적 고통,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두려움과 고독 속에서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키운 세대. 미술 재료는 물론이요 한 끼 밥상조차 귀한데 문학과 예술에 대한 로망을 삭히지 않은 세대. 여기에 김윤신 특유의 도전 정신은 그녀로 하여금 혈혈단신으로 먼 이국 땅으로 건너가기를 주저하지 않고 구순이 되도록 손에서 전기톱을 내려놓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에서 주어진 재료로 무엇을 그리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윤신은 1955년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예술의 길에 발을 들였다. 작가는 미국 유학에서 막 돌아온 김정숙(1917-1991)이 동대학 교수로 오며 소개한 철 용접 조각의 세계를 접했고, 졸업 후에도 ‘원시적 야성미’를 내포한 반추상의 철 작업을 지속했다.

  • 김윤신, ‹예감› (1963) 사진: 작가 제공
    김윤신, ‹예감› (1963) 사진: 작가 제공
  • 파리 체재 시절 석고와 박으로 만든 작품과 함께 (1964) 사진: 작가 제공
    파리 체재 시절 석고와 박으로 만든 작품과 함께 (1964) 사진: 작가 제공

예술에 대한 열망은 프랑스 유학으로 이어졌다. 1964년 김윤신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 beaux-arts de Paris)에 입학했다. 조각 전공으로 시작했으나 담당교수가 교체되면서 석판화로 전공을 바꿨다. 지난 9월호 ‘소장품 이야기’에서 소개한 석난희가 같은 과 동기이자 룸메이트였다. 김윤신이 도불하던 해 동양미술학교(Académie de peinture orientale)를 세우고 파리 시민들에게 서예와 동양화를 가르치기 시작한 이응노(1904-1989)의 조카 이희세(홍익대 동양화과 졸업 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입학)와의 친분을 계기로 그녀는 이응노와 세대를 초월한 예술적 교류를 나눴다. 조각을 전공한 젊은 윤신은 동양화 거장에게 목조각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조각 재료로서 나무의 아름다움에 눈떴고, 이응노가 1962년 파게티 화랑(Galerie Facchetti)에서 처음 발표한 콜라주 작업을 보며 재료의 확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1969년 귀국 후 김윤신은 조각과 판화를 제작, 발표하면서 여러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1974년에는 김정숙, 윤영자, 이양자 등 선후배 여성 조각가들과 함께 한국여류조각회-창립전이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에서 열렸다-를 세우는 등 조각가로서, 교육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 무렵부터 작가는 잘라낸 폐목 토막을 쌓아 만든 ‹기원쌓기›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전통 목조건축 방식처럼 못을 사용하지 않고 조각을 끼워 맞추거나 쌓아 올린 형태는 미학적 개념에서의 조각보다는 장승이나 돌쌓기 등 민간신앙적 토템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 오빠가 행방불명된 후 엄마가 매일 새벽물을 떠놓고 무사귀환을 빌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를 쫓아가서 돌을 놓고 왔다”는 작가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나무를 쌓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 김윤신, ‹기원쌓기›, 1970년대, 폐목, 개인소장
    김윤신, ‹기원쌓기› (1970년대) 폐목, 개인소장

형제 같은 나무여,
......
열매를 주고, 목재를 주고,
향기로운 바람을 주고, 그늘을 주는 너여,
내 마음과 생각도
세상만큼 넓고 풍요로워지게 해다오.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나무에게 바치는 찬가› 중

쌓기(축적)를 통한 형태의 단순화에 중점을 둔 ‹기원 쌓기› 이후 -1970년대 말부터- 작가는 본인의 평생의 예술관을 집약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시리즈를 내놓았다. 목재 본연의 물성과 질감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인위(人爲)와 무위(無爲)가 공존하는 이 시리즈는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고,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는 작가 특유의 삶의 태도와 예술 과정을 반영한다. 이러한 김윤신에게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닌 자연과의 영적 매개이자 생명력 그 자체고, 조각은 미적 사물/대상이기 전에 삶이자 생(生)의 기원과의 대화다.

  • 김윤신, ‹합이합일(合二合一)› (1987) 나무, 42x40.3x3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윤신, ‹합이합일(合二合一)› (1987) 나무, 42x40.3x3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김윤신, ‹1988-91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8) 나무(알가로보), 23x50x50(x2)cm, 개인소장
    김윤신, ‹1988-91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8) 나무(알가로보), 23x50x50(x2)cm, 개인소장

나무에 대한 애정은 작가가 1984년 아르헨티나로 떠난 이후 각별해진다. 방학 때 여행차 방문한 아르헨티나는 지평선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착하고 나무가 울창한 나라였다. 케브라초, 알가로보, 팔로산토 등 남미의 강렬한 태양과 바람을 맞으며 자란 나무는 한국의 소나무나 참나무보다 단단하고 윤기 있으며 결이 사방에 있어 조각하는 맛이 달랐다. 작가는 단숨에 아르헨티나의 풍부한 자연과 다양한 문화에 매료되었고, 과감하게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렸다. 한편 김윤신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그리고 2000년대 초 멕시코와 브라질의 채석장에서 오닉스(줄무늬가 있는 석회암) 등 준보석의 돌을 깎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루기에 쉽지 않은 강인한 자연 재료와의 대면은 자아를 내려놓고-“이성적 판단에 얽매인 어떤 통제나 미학적 선입관 없이”- 더 큰 존재(절대자)와 만남으로 이끌었다.

  •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2-750› (2002) 준보석(쿠아르소), 39x35x33cm, 개인소장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2-750› (2002) 준보석(쿠아르소), 39x35x33cm, 개인소장
  •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0-8› (2020) 폐목에 아크릴, 64x23x20cm, 개인소장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0-8› (2020) 폐목에 아크릴, 64x23x20cm, 개인소장

김윤신은 1990년대 말부터 남미 자연과 문화예술에 깃든 특유의 에너지와 풍요로움을 표현하는데 화려한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평면 위에서의 추상 실험과 색채의 사용은 프랑스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귀국 후 오랫동안 자연 그대로의 색에 충실했던 작가는 조각에 원색을 입히거나 원색의 추상화를 제작하면서 다시 한번 변화를 꾀했다. 작가는 나이프로 물감을 긁어내 나무 조각의 질감과 유사한 효과를 내거나, 작은 나무조각에 물감을 묻혀 화면에 찍어 다채로운 표면을 만들어냈다. 짙은 코발트 블루와 배경의 붉은 색이 강렬한 보색 대비를 이루는 ‹영혼의 노래 2006-94›(2006)는 외부로 퍼져가는 선의 운동으로 리듬감이 두드러져 강렬한 내면의 에너지를 호출한다. 형태 이전의 에너지로서 영혼의 순수한 기쁨이 파장이 되어 작품을 보는 이에게까지 도달할 것만 같다. 새로 시작하는 2026년, ‘소장품 이야기’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하루하루가 ‹영혼의 노래›처럼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길 기원하며.

  • 김윤신, ‹예감› (1967) 70x50cm, 종이에 석판화, 작가 소장
    김윤신, ‹예감› (1967) 70x50cm, 종이에 석판화, 작가 소장
  • 김윤신, ‹내 영혼의 노래 2009-16› (2009) 캔버스에 유화 물감, 80x8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윤신, ‹내 영혼의 노래 2009-16› (2009) 캔버스에 유화 물감, 80x8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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