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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과 변화의 흔적, 권영우의 ‹무제›

전시정보

박혜성 학예사의 명화이야기
무념(無念)의 반복적인 행위가 만들어낸 시간의 퇴적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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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_ 杜甫, ‹春夜喜雨›

좋은 비는 때를 알아
봄이 되면 만물을 발생하게 하고,
바람 따라 몰래 밤에 스며들어
소리없이 만물을 촉촉이 적신다.

_두보, ‹봄밤에 내린 기쁜 비› 중

화면 위아래로 두 개의 검은 덩어리가 중앙에 완만한 곡선의 여백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덩어리는 무수한 작은 검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마다 형태도 크기도 제각각인 점들은 서로 겹치거나 가깝게 닿아 있거나 흩어져 다양한 밀도를 형성하고 있다. 점들의 밀도는 화면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낮아져, 마치 입자가 퍼지며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밀도의 차이가 화면 전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주의를 기울여 화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점들이 수성 물감이나 먹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예리하게 찢겨진 부분으로 침투한 먹이 번진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1960년대 중반부터 동양화의 필수 요소인 필(筆)과 묵(墨)을 배제하고 종이로만 제작한 추상을 선보인 권영우(權寧禹, 1926-2013)의 ‹무제›(1988)는, 그가 1978년 갑작스레 건너간 프랑스에서 10여 년간 머무를 때 제작한 작품이다. 도불(渡佛) 후 작가는 예전과 달리 색을 도입했는데, 이 작품은 바탕인 종이의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까지 설채(設彩: 먹으로 바탕을 그린 다음 색을 칠함)하여 색의 효과가 특히 강렬하다.

권영우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한 것은 1946년 신설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면서였다. 함경남도 이원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시인 윤동주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북간도의 용정(龍井)에서 성장했다. 장춘(長春)에서 영화일에 종사하기도 했던 권영우는 해방 무렵 “흘러흘러 남으로 내려”왔다. 석고데생을 해본 적 없는 그는 데생 시험을 보지 않았던 동양화 전공(당시 제1회화과)을 선택했지만, “산수화나 화조화, 문인화 등을 외면했다.” “동양화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재래적인 비슷한 수법의 일”에 “어딘가 시대감각에 맞지 않은 진부함”을 느꼈다. 그는 동양화, 서양화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여기며 반골 기질을 품고 있으면서도 제2회부터 꾸준히 참여해 좋은 성적을 거둔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무대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갔다. 평론가로 활동하던 김병기(1916-2022)는 권영우가 “인습에서의 탈피를 위하여 노력하는 신선한 야성이 있다”고 호평했다.

  • 권영우, ‹화실별견› (1956) 종이에 먹, 색, 154 × 11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영우, ‹화실별견› (1956) 종이에 먹, 색, 154 × 11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권영우, ‹폭격이 있은 후› (1957) 종이에 먹, 146 × 18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영우, ‹폭격이 있은 후› (1957) 종이에 먹, 146 × 18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화실별견›은 제5회 국전에서 입선한 작품으로, 문틈으로 보이는 누드모델과 이를 그리는 화가(이젤을 사용하는 서양화가)를 소재로 한다. ‘별견(別見)’이라는 제목 그대로 대상을 보고 그리는 회화의 재현 과정을 드러내는 메타회화적인 이 작품은, 흥미롭게도 문에 가려 보이지 않아야 할 화가의 모습을 문과 중첩시켜 그림으로써, 즉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모호한 공간을 보여주고 당시 미술계의 큐비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한편 ‹폭격이 있은 후›는 먹의 농담과 동양화적 필선을 구사하면서도 근경, 원경, 중경의 서양화적 공간감을 내포해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지운다. 폭격 이후의 정적과 폐허의 풍경은 전쟁의 잔혹함을 더욱 강하게 전달하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는 제7회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 ‹바닷가의 환상›(1958,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에서 조개껍데기를 기이하도록 확대하여 단순하면서도 초현실적인 공간을 창출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양화에 대한 그의 본격적인 ‘별견(別見)’이 시작되었다. 1950년대 말 서양화단에서 시작한 앵포르멜(비정형 추상) 열기는 곧이어 동양화단에까지 번졌다. 특히 서세옥(1929-2020), 민경갑(1933-2018), 정탁영(1937-2012) 등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 작가들로 구성된 묵림회(墨林會) 일부 멤버를 중심으로 수묵추상을 통해 문인화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광복 이후 미술계에 부과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일제 잔재의 청산’과 ‘새로운 민족미술 수립’이었다. 동양화단에서는 가는 선조(線條)와 색채를 사용한 사실적인 묘사와 한적한 느낌(사비)이 특징적인 일본화와 다른 새로운 민족미술이 요구되었다. 이를 위해 1950년대 초부터 이응노(1904-1989), 김기창(1913-2001), 박래현(1920-1976) 등이 개별적으로 서구 모더니즘 양식을 수용해 실험하기 시작했고, 이후 청년작가들에 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추상 의지가 발현되었다. 추상이라는 서양미술을 수용하면서도 객관적인 묘사 또는 재현을 포기하고 주관과 개성을 표현하는 근대 서양의 추상미술 원리를 동양의 전통 문인화와 연결시킴으로써 전통의 현대화에 부합하고 이문화 수용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 권영우, ‹74-9› (1974) 패널에 한지, 160 × 12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영우, ‹74-9› (1974) 패널에 한지, 160 × 12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권영우, ‹무제› (1980) 종이, 163 × 1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영우, ‹무제› (1980) 종이, 163 × 1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권영우, ‹무제› (1980) 종이, 163 × 1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영우, ‹무제› (1980) 종이, 163 × 1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런데 권영우는 곧 이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추상을 수용하는 대신 독자적인 방식으로 동양화의 신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무채색의 바탕에 손으로 찢거나 가위로 오린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한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얇고 반투명한 한지는 풀칠해 여러층 겹칠 때마다 뉘앙스가 달라졌다. 1974년 제24회 국전에 출품된 ‹작품 74-9›는 젖은 상태의 화선지를 조심스레 밀어 올려 제작한 작품으로 “기름기라고는 없는 아주 소담한 맛”을 지니고 있다. 마치 농부가 밭갈이를 해놓은 듯 화면 위에 반복적으로 펼쳐진 황색의 불규칙한 띠가 무한의 시간을 품은 역사 이전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듬해 권영우는 -단색화가 대표적인 한국현대미술 운동으로 자리잡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 전시에 박서보(1931-2023), 서승원(b.1941), 이동엽(1946-2013), 허황(b. 1946) 등과 함께 초대되었다. 그가 다른 네 사람보다 연장자이고, 유일하게 서울대 출신 동양화가라는 점은 그의 독특한 위상을 다시금 생각게 만든다. 권영우는 서양화단에서 일군의 작가들이 함께 단색화 운동을 본격화하기 전부터 ‘금욕적인 색조’ ‘섬세한 표면 질감’, ‘반복적인 수행성’을 특징으로 하는 종이작업을 “그저 골방에 혼자 앉아 주물럭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촉각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된 것은 중앙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1978년 가족을 두고 프랑스로 건너간 무렵부터였다. 작가는 보다 적극적으로 종이를 긁고, 할퀴고, 찢고, 뚫어서 종이의 물성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마티에르를 과감하게 실험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종이로 구현할 수 있는 다채로운 질감을 통해 시각과 촉각의 경계를 허물고 보는 이의 신체적 감각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곧이어 작가는 한지 위에 먹이 아닌 불투명한 수성 물감인 과슈(guache)를 사용해 재료상의 동서양 구분 역시 허물었다. 뒷면에서 스며든 물감의 농담과 뚫린 구멍에서 흘러내리며 만들어진 선은 우연과 무위(無爲)의 과정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 권영우, ‹무제› (1985) 한지에 구아슈, 먹, 224 × 17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영우, ‹무제› (1985) 한지에 구아슈, 먹, 224 × 17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권영우, ‹무제› (1997) 패널에 부채, 한지, 콜라주, 223.3 × 169.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영우, ‹무제› (1997) 패널에 부채, 한지, 콜라주, 223.3 × 169.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가는 1989년 파리에서 돌아와 용인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귀국하자마자 호암갤러리에서 대규모 초대전을 열었고, 1998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었다. 노익장은 안주하는 대신 또 다른 실험에 몰입했다. 작가는 부채, 자동차 번호판, 페트병, 노끈, 나뭇가지, 골판지 등 다양한 기성 사물을 캔버스에 부착하고 그 위에 한지를 덮는 부조 작업을 선보였다. 권영우는 일상 사물의 기능적 의미를 탈락시키고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조형언어로 탈바꿈시킨 프랑스 누보레알리즘 작가들처럼 현실의 파편을 끌어들이면서도 현실을 증명하고 비판하는 대신 사물과의 대화를 통해 보다 근원적인 세상과 교감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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