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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세계에 질문을 던지다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정보

익숙한 세계에 질문을 던지다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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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명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 전시기간
    2026.6.19.-10.11
  •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1970-90년대 즈음 ‘시각’에서 ‘언어(개념)’로의 한국현대미술 개념적 전환 조명

  • 언어와 개념을 매개로 현실을 새롭게 사유한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 소개

  • 회화, 사진,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작품 140여 점 및 아카이브 전시


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지도를 본다. 지도 속에 정확한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도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결과물이 아니다. 무엇을 담고 무엇을 생략할지, 어디를 중심에 두고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수많은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해석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지도조차 누군가의 관점과 기준이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 온 것들 중에는 사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는 아무 의심 없이 믿어 온 개념들에 물음을 던지고, 새롭게 사유하는 과정을 고찰한다.

hash icon 보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기
  •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 전경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은 6월 19일부터 10월 11일까지 1990년대 전후 시작된 한국현대미술의 전환을 조명하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는 작품의 외형이나 물질적 결과보다 작가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중시하는 ‘개념미술’을 주제로 한다. 개념미술은 1960년대 중반 서구 미술계에 등장한 미술 경향으로, 말과 언어를 미술의 영역으로 호출하며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 장르이다. 이번 전시는 미술이 시각의 대상에서 언어와 사고의 대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현대미술의 개념적 전환을 28명의 작가와 14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한국의 개념미술은 물질성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작품을 순수한 언어 체계로 환원하기보다, 언어와 개념을 통한 사고와 재료 및 형태를 함께 다루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한국미술의 흐름에서 시각성과 물질성보다 사고(언어)와 개념을 중시하는 경향은 1960년대 말 이른바 실험미술의 맥락 속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에는 언어와 논리적 실험을 통해 미술의 본질과 존재를 묻는 작업이 이어졌으며, 1990년 전후에는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론이자 태도로서 ‘개념적 미술’과 ‘개념주의’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에서는 1970~90년대 한국미술의 개념적 전환을 조명한다. 나아가 글로벌 컨셉추얼리즘(Global Conceptualism)이라는 개념미술의 국제적 확산 속에서 한국 개념미술의 동시대성과 특수성을 살피고, 이를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사유하고자 했던 복합적인 시도로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전시 제목에는 한국 개념미술을 하나의 고정된 개념으로 묶기보다 작품마다 펼쳐지는 다양한 의미와 해석의 층위를 열어두려는 기획 의도를 담았다.

hash icon 몸짓은 어떻게 개념이 되는가
언어와 논리, 행위로 확장된 현대미술
  •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  전경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 전경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는 ‘언어·논리·행위’, ‘사물과 언어’, ‘지도와 측정’, ‘기호의 조정자들’이라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장 ‘언어·논리·행위’에서는 1970~90년대의 신체 행위와 언어, 논리를 결합해 어떻게 미술을 사유의 구조로 전환하고자 했는지를 살펴본다. 이건용, 김용민, 성능경, 윤진섭 등 Space&Time 조형미술학회 작가들은 우연성과 즉흥성을 배제한 채 반복적이고 자기 지시적인 행위를 탐구했다. 전시는 이들이 일상의 몸짓을 하나의 ‘사건(event)’으로 전환하며 세계에 대한 통찰에 이르고자 한 과정을 조명한다. 1976년 «이벤트 로지컬» 전에 출품되었던 이건용의 ‹장소의 논리›, 성능경의 ‹수축과 팽창›, 김용민의 ‹물걸레›를 소개하고, 김용민 아카이브를 최초로 공개한다. 또한, 윤진섭의 ‹어법› 일부와 김순기의 ‹시간과 공간 1975›, 1980년대 이교준의 퍼포먼스 사진 작업을 통해 신체와 언어, 시선의 관계를 실험했던 작가들의 작업도 선보인다.

  • 김순기, ‹아이스 비디오 콘서트: 비데 & 오› (1989) 설치, 가변크기, 작가 소장, 작가 제공
    김순기, ‹아이스 비디오 콘서트: 비데 & 오› (1989) 설치, 가변크기, 작가 소장, 작가 제공
  • 주재환, ‹내돈› (1998) 종이에 색연필, 106×78cm 개인 소장, 작가 제공
    주재환, ‹내돈› (1998) 종이에 색연필, 106×78cm
    개인 소장, 작가 제공
  • 김범, ‹지렁이 공포 게임› (1994) 종이에 연필과 성냥개비, 18.5×26.5cm 작가 소장, 작가 제공
    김범, ‹지렁이 공포 게임› (1994) 종이에 연필과 성냥개비, 18.5×26.5cm, 작가 소장, 작가 제공

두 번째 장 ‘사물과 언어’에서는 1970~90년대 한국 개념미술이 사물과 언어 사이의 불완전한 관계를 어떻게 드러냈는지, 나아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의미체계에 대해 어떻게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본다. 언어가 사물과 세계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흔든 안규철, 박이소, 김범, 우순옥, 정서영의 작업을 소개해 사물과 언어의 관계를 새롭게 조망한다. 안규철의 ‹무명 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 김범의 ‹지렁이 공포게임›, 정서영의 ‹전망대›, 박현기의 ‹무제› 등은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승택, 최병소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지워지고 해체된 언어’, 그리고 김순기의 ‹아이스 비디오 콘서트: 비데 & 오›, 주재환의 ‹내돈› 등에서 드러나는 ‘언어유희’는 기존 의미 체계를 전도하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현실 인식을 낯설게 만든다. 한편, 박이소, 코디최, 김홍석의 작업에서처럼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혼성의 언어는 번역의 오류와 의미의 비결정성을 노출시키고, 공성훈, 김소라, 이교준의 작업에 등장하는 불완전한 이름들은 언어가 결코 고정된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관계와 상황, 사용의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갱신됨을 암시한다. ‘사물과 언어’ 섹션의 작품들은 언어와 사물 사이의 틈, 번역과 오역, 소통의 실패를 통해 오히려 언어 바깥의 세계에 과감히 들어가 보기를 권유한다.

  • 김차섭, ‹바른 방향(삼부작)› (1988) 뷰카메라 필름 홀더에 유화 물감, 48x119cm, 유족 소장, 갤러리현대 제공
    김차섭, ‹바른 방향(삼부작)› (1988) 뷰카메라 필름 홀더에 유화 물감, 48x119cm, 유족 소장, 갤러리현대 제공
  •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 전경

세 번째, ‘지도와 측정’에서는 1970년대 이후 한국 개념미술이 세계를 질서화하는 표준 체계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어떻게 의심했는지를 살펴본다. 곽덕준, 김차섭, 박이소, 성능경, 오인환, 이건용 등은 지도와 좌표, 시계 등 세계를 이해하고 규정하는 체계를 해체하고 전도함으로써 세계를 객관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흔들었다. 성능경의 ‹세계전도(世界顚倒)›, 김차섭의 ‹바른 방향(삼부작)›, 박이소의 ‹드넓은 세상›, 곽덕준의 ‹3개의 계량기와 돌›, 오인환의 ‹만남의 시간› 등을 통해 지도와 측정, 시간 체계가 지닌 임의성과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더불어, 이건용의 ‹실내측정›을 비롯하여 박이소의 ‹무제(한 평(平))›은 길이와 평(平)과 같은 측정 단위가 절대적 기준이 아닌 신체와 감각,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작업은 표준 체계를 해체하고 전도하면서 ‘지도에도 없는 곳’과 ‘측정할 수 없는 세계’에 좀 더 다가가보기를 제안한다.

  • 오인환, ‹퍼스널 애드› (1996) 『The Village Voice』에 게재한 개인 광고, 28×36cm, 작가 소장, 작가 제공
    오인환, ‹퍼스널 애드› (1996) 『The Village Voice』에 게재한 개인 광고, 28x36cm (5), 작가 소장, 작가 제공

마지막 장 ‘기호의 조정자들’에서는 신문, 광고, 잡지, 통계 등 이미 존재하는 기호 체계를 재배열하고 편집하며 의미의 방향을 전환하는 개념적 작업들을 소개한다. 김용익, 김용철, 김소라, 김홍석, 성능경, 오인환, 윤동천, 조경숙, 주재환 등은 신문과 잡지, 또는 기존 작품의 일부를 인용해 문장을 지우거나 기호를 재배치함으로써 의미가 구성되는 방식을 역으로 드러내고, 그 이면에 작동하는 권위의 흔적을 은연중에 노출시키거나, 하나의 진실로 보였던 세계를 수많은 의미의 결로 다시 펼쳐 보인다. 또한, 김구림, 김차섭, 윤동천, 오인환과 같이, 미술계 내부를 벗어나 우편이나 광고와 같은 유통 시스템 자체에 직접 개입하며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갔던 개념미술의 흐름도 함께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을 새로운 맥락에 배치해 기호 간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김홍석의 작품들도 이 섹션에서 선보인다.

hash icon 개념미술, 더 깊이 들여다 보기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출품작에 얽힌 개념 문제를 나누는 ‘작가의 수업’이 전시 기간 동안 진행되며, 오는 8월 19일에는 알렉산더 알베로, 레이코 토미를 비롯한 국내외 개념미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제 심포지엄 ‘개념과 미술: 한국과 아시아의 맥락에서’도 예정되어 있다.

창조는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데서 시작된다. 익숙한 개념의 틈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는 또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마련한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가 한국 개념미술의 동시대적 의미를 조명해 보고, 그에 관한 담론을 한층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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