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첫 서양화가인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1886-1965)은 1915년에 일본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学校) 양화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우리나라에 서양화를 도입했다. 그는 중앙고등보통학교 등에서 미술교원으로 재직했으며,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西畵協會)'의 설립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는 일본에서 배운 서양의 외광파(外光派) 양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는데, 색채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인상주의적인 감각을 보인다. 그는 1930년대 이후 동양화가로 전향했다.
<자화상>은 1915년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그린 것으로, 현존하는 고희동의 자화상 세 점 중 한 작품이다. 그해 여름에 화실에서 부채를 부치며 쉬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자화상 속 고희동은 격식을 차리지 않았는데, 가슴을 풀어 헤친 자세라든가 일상적 모습의 사실적 묘사는 당시에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피부묘사에서 빛의 관계가 중시된 점과 난색과 한색의 보색(補色)대비 등에서 작가의 인상주의적인 감각이 드러난다. 이 작품은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 유화(油畵)이며, 국가등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