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1904-1989)는 17세 무렵 서화가 송태회(宋泰會, 1872-1941)에게 사군자를 배우다가, 1922년 상경하여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서화를 익혔다. 30대 초반까지 사군자 전문 화가인 ‘죽사(竹史)’로 활동했으나,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쓰바야시 게이게쓰(松林桂月)에게 남화*를 배운 후 ‘고암(顧菴)’으로 호를 바꾸고 동양화가로 변모했다. 1950년대에는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도시풍경과 서민의 일상을 남화 본연의 사의(寫意)성과 필묵미를 탐구한 서체적 반추상으로 그려내며 동양화의 현대화를 모색했다. 1958년 프랑스로 이주한 이후에는 앵포르멜(informel)과 동양화를 절충한 수묵 추상과 콜라주(collage)로 화단에서 입지를 구축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겪은 후, 1969년 프랑스로 돌아와 문자 추상 작업을 본격화했다. 말년인 1980년대에는 문자 추상을 발전시킨 독자적인 '군상(群像)' 시리즈를 창출했다.
<기마>는 손에 창과 같은 무구(武具)를 들고 말을 탄 인물의 모습이 그려진 작품이다. 관모와 복식으로 보아 무관(武官)이 말을 타고 달리는 것, 혹은 전통 마상 무예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세부를 생략하고 마치 글씨를 쓰듯 대상을 몇 번의 붓질로 압축적으로 그려낸 점에서 형상을 갖춘 인물화이지만 서예적 문자 추상과도 성격적으로 이어진다.
*남화(南画)는 18-19세기 일본에서 유행한 회화 양식 중 하나로, 중국의 남종문인화 요소들을 독자적인 양식으로 재해석한 화풍이다.
**동백림(東伯林: 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8일에 중앙정보부가 화가 이응노, 작곡가 윤이상 등 예술인과 대학교수, 공무원 등 194명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간첩활동을 해왔다며 처벌한 사건이다. 이응노는 한국전쟁 때 소식이 끊긴 아들을 찾아 동베를린에 간 것으로 의심을 받고 이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다가 1969년 3월에 석방되었다. 2006년에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가 동백림 사건을 조사한 결과, 이 사건은 확대·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