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국립현대미술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조덕현(1957- )의 <20세기의 추억>(1994)은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함에 따라 한국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극도로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려 놓은 작품이다. 캔버스 위에 단색의 콩테로 그려진 인물들의 표정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현재에 대한 체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품고 있다. 이 작품은 조덕현이 즐겨 사용하는 검은 상자와 이미지의 결합이라는 형식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입체적인 검은 상자의 중앙에 마치 스크린처럼 놓인 캔버스는 관객들로 하여금 작은 영화관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광(光)센서에 의해 캔버스 뒤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하는 빛으로 인하여 관객들은 그가 그려 놓은 드로잉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우리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부각시키려는 조덕현의 주제의식은 형형색색의 밑실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작은 한 올에서 시작된 다채로운 명주실의 뭉치들은 역사의 큰 흐름 앞에선 무기력하지만 개개인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