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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 소멸-화랑 내 술집 |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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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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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이강소 LEE Kangso
  • 작품명
    소멸-화랑 내 술집
  • 제작연도
    1973
  • 재료
    종이에 디지털크로모제닉프린트
  • 규격
    78.7×108.8×(10)
  • 부문
    사진
  • 관리번호
    08172
  • 전시상태

    비전시

이강소(李康昭, 1943‒)는 1965년에 회화를 졸업한 후, 회화, 판화, 조각, 설치, 사진, 도자기,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다. 1970년대에는 «신체제», «AG»(1969‒1975), «서울비엔날레»(1974), «에꼴드서울»(1975‒) 전시 등에 참여하며 전위미술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1974년부터 1979년까지 학연을 초월한 대규모 미술제인 대구현대미술제를 기획, 실험적인 한국현대미술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1975년에는 닭 퍼포먼스 ‹무제‒75031› 등으로 제9회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하여 국제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소멸‒화랑 내 술집›은 1973년 명동화랑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작가는 화랑 속에 술집에서 실제 사용하던 탁자와 의자를 그대로 갖다 놓고 선술집을 차려 일주일간 운영했고, 이렇게 화랑 안에 옮겨진 술집의 일상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되었다. 작가가 당시 무교동에서 주워온 낙지집 입간판을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에 화랑이 술집으로 업종을 변경한 것으로 착각한 관람객들이 되돌아갔다는 일화가 있으며, 극작가 오태석이 전시장에서 막걸리를 마신 후 “우리 연극은 끝났다.”고 평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오늘날 소위 ‘관계의 미학’에 기초를 두고 행해지는 작품들이 대거 출현하기 훨씬 전에 시도됐던 선구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