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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초(玄艸) 이유태(李惟台, 1916-1999)는 1935년에 김은호에게 사사했고, 1938년부터 일본 도쿄 데이코쿠미술학교(帝国美術学校)에서 공부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네 차례 입선했으며,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1943)에서 총독상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1944)에서는 창덕궁상을 수상했다. 광복 후 한국화 화가 단체인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을 조직하고, 현대 한국화 단체인 백양회(白陽會)에서 활동했다. 1947년부터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이유태는 주로 인물화와 산수화를 그렸는데, 초기에는 일본 채색화풍을 따라 작품을 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부터는 주로 실경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산수화를 그렸다.
<인물일대(人物一對) - 화운(和韻)>은 <인물일대(人物一對) - 탐구(探究)>[KO-03892]와 한 쌍을 이루어 <인물일대(人物一對)>라는 제목으로,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1944)에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은 작품이다. 큰 피아노를 등지고 여인이 책 위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괸 채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실제 모델을 대상으로 하여 피아노, 서양식 탁자와 의자 등 근대식으로 꾸며진 방안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독서와 음악을 사랑하며 예술을 즐기는 듯한 근대 여성의 이상적인 미(美)를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