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오픈 : 8.22 오후 2시
9.3(수)-9.4(목)
15:00‒16:00 아야카 나카마, ‹딸을 무대에 세우지 마세요›, 2025, 60분
16:00‒17:00 전환 / 휴식 (60분)
17:00‒17:30 김강연, ‹숨겨진 마을›, 2024, 30분
17:30‒18:00 전환 / 휴식 (30분)
18:00‒19:00 마사미츠 아라키, ‹Voice›, 2025, 60분
19:00‒19:30 전환 / 휴식 (30분)
19:30‒20:05 이민진, ‹수평선 옆에 (여전히)›, 2025, 35분
15:00‒16:00 Ayaka Nakama, Don't Put Your Daughter on the Stage, 2025, 60 min.
16:00‒17:00 Transition / Break (60 min.)
17:00‒17:30 Kim Kangyeon, Hidden Village, 2024, 30 min.
17:30‒18:00 Transition / Break (30 min.)
18:00‒19:00 Masamitsu Araki, Voice, 2025, 60 min.
19:00‒19:30 Transition / Break (30 min.)
19:30‒20:05 Lee Minjin, Next to the Horizon (still), 2025, 35 min.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쇼케이스 2025
2024년부터 시작한 다원예술 쇼케이스는 신진 작가 발굴과 국제교류를 목표로 계획 되었다. 이 쇼케이스는 다른 도시와 나라의 젊은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함 께 선보이며, 지역과 시간을 넘나드는 예술적 연결과 교류를 통해 다원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2024년,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Art Hub Copenhagen) 과 협력하여, 9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번째 쇼케이스가 열렸고 2025년 4월 아트 허브 코펜하겐에서 두 번째 쇼케이스를 선보였다. 2025-2026년에는 국립현대미술 관과 일본 교토 실험예술 축제(Kyoto Experiment)와 교류하여 쇼케이스를 진행한 다. 이 축제는 2010년부터 교토에서 시작된 공연 예술 축제로, 일본과 해외의 실험적 인 공연 예술을 선보이는 데 주력하며, 사회 속에서 새로운 대화와 가치를 탐구하고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5:00‒16:00 아야카 나카마, ‹딸을 무대에 세우지 마세요›, 2025, 60분
그들은 연습실 가장자리에서 기다린다. 딸을 지켜보는 어머니들의 무리는 그림자처럼 고요하다. 에드가 드가의 19세기 발레리나 초상화 속 에는 주변에 머무는 여성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들은 응원하러 온 것인가, 통제하러 온 것인가? ‘스테이지 마더’는 언제나 단순한 조력자 그 이상의 존재였다. 무대 위의 공연자와 관객을 이어주는 숨은 매개자다. 이번 솔로 공연에서 무용수 아야카 나카마 는 여러 세대의 춤추는 여성들에게 내재된 힘과 기대, 갈망의 잔향을 자신의 몸을 통해 끌어낸다. 그녀는 어머니와 딸 사이의 친밀하면서도 험난한 관계를 두고 질문한다. 어 린 시절부터 춤에 전념하는 소녀들에게 춤을 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누구 를 위한 춤인가?
아야카 나카마(1992년생, 일본 오이타현)는 일본 고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무용가 다. 미카 구로사와(Mika Kurosawa), 토시키 오카다(Toshiki Okada)(체루핏추 극 단), 콘택트 곤조(contact Gonzo) 등과 함께 작업했으며, 최근에는 사람과 장소의 기억에 의존한 폭넓은 리서치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17:00‒17:30 김강연, ‹숨겨진 마을›, 2024, 30분
동아시아에는 ‘조개’와 관련된 신화가 있다. 긴 시간을 깊은 바다에서 보낸 새는 조개의 형 상을 한 요괴 ‘신蜃’이 된다. ‘신’은 깊은 밤이 오면 그 입을 열고 기운을 토해내 수면 위로 거대한 누각을 만들어 내는데 이를 ‘신기루蜃氣樓’라고 부른다. 이 신화는 극장 (theater)의 환영적 속성과 맞물리며 극장의 은유인 동시에 극장 그 자체가 된다. 작 품이 상연되고 있는 극장의 내부는 특정한 공간을 점유하지 않은 채, 다른 공간의 은 유이자 그 자체로 환영을 품는 신체가 된다. 관객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극장의 지금-여기는 한때 새가 머물렀던 심해로, 텅 빈 조개의 속으로, 그리고 안 테나의 어두운 내부로 변모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감각에 의해 발생되는 오류들을 드러내며 감각체계 바깥의 다른 존재들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안개 속 신기루, 진동과 주파수로 변환된 언어의 주름, 도달할 수 없는 우주적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감각 너머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까?
김강연(1999년 인천 출생, 서울 활동)은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 등의 매체를 활용하여, 잊혀지거나 감각되지 않는 세계의 층위와 그 구조를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고있 다. 특히, 이러한 관심은 ‘극장’을 주요한 통로로 삼아 드러난다. 작가에게 극장은 단 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현실 위에 허구가 투사되고 명징한 세계 사이로 상상이 중첩되는 장(場)이다.
18:00‒19:00 마사미츠 아라키, ‹Voice›, 2025, 60분
‹Voice›: 이 작품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끝없는 대화를 위한 프롬프트 + (가장 최 근 프롬프트 생성일)”
작품의 대화 상대는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1973년 하버드대학 교에서 진행한 노턴 강연 「해답 없는 질문: 여섯 번의 하버드 강의」, 이 강연에서 그는 보편 문법을 추구하는 여섯 가지 음악적 주제를 탐구했다.
하나의 프롬프트로 도출된 초기 컨셉트는 다음과 같았다:
형식: 강의. 강의의 형태를 띠면서도 화자는 번스타인이 아니다. 구조는 번스타인의 실제 강연 기록을 바탕으로 하지만, 화자는 아마추어 혹은 노이즈 뮤지션이다. 음악에 대한 정규 지식은 전혀 없으나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는 사람. 그 불협화음이 작품의 핵심 주제가 된다.
‹Voice›는 목소리다: 음악가다. 레너드 번스타인. 마사미츠 아라키. 아마추어. 노이즈 아티스트. 민속. 생태. 인공지능. 그것은 시리즈이자 대화다.
이번 공연에서는 진행 중인 대화의 시작인 제1장 “음악적 음운론”을 시험작으로 선보인다.
마사미츠 아라키(1981년생, 일본 야마가타현 출생)은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 술가 겸 작곡가, 사운드 디자이너다. 그의 작업은 음악을 중심에 두면서도 음악의 경 계를 넘나들며, 유머러스한 접근을 통해 ‘듣기’의 창조성을 탐구하고 맥락과 효과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독창적인 해석과 과정을 통해 사운드 필드를 구성하며, 이를 연극 작품, 설치, 퍼포먼스, 투어, 음반 등 다양한 형식으로 선보인다.
19:30‒20:05 이민진, ‹수평선 옆에 (여전히)›, 2025, 35분
‹수평선 옆에 (여전히)›는 무용수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한 전작 ‹수평선 옆 에›(2024)의 연장선 위에 놓인 작업이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는 주체이자 객체이며, 미학적으로 보면 한 개인인 동시에 예술 작품의 일부로 존재한다. 그 경계 위에서 반 복적으로 흔들리며, 어느 한 쪽을 선택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니 고자 했던 양가적인 바람 속에서, 이 작품은 춤추는 몸이 표현의 책임, 재현의 기대, 정체성의 증명이라는 구조적 요청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다. 그러나 자유를 상상하는 몸은 때때로 더 강하게 기호화되고, 탈주를 시도할수록 정체성의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 역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경계 위에서 춤의 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기호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기호 위에 몸을 얹는 일. 그 안에서 춤으로 숨을 쉬는 방식을 제안한다. 수평선 옆에서, 여전히.
이민진(1995년 서울 출생, 서울 활동)은 춤을 추고, 목격하고, 만드는 공연예술가·무용가이다. 무용수의 수행성과 주체성에서 출발한 그의 예술 실천은, 춤을 단지 공연을 위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무대와 삶, 일상과 비일상, 중심과 주변을 가로지르는 감각 적 탐색의 매개로 삼는다. 안무라는 형식보다는 춤 그 자체의 생명력과 관계성에 주목 하며, 때로는 전혀 춤 같지 않은 것들로부터 춤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는 비가시적 이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감각들, 경계에 놓인 존재들에 몸을 기울이며, 익숙한 질서 와 언어 바깥의 움직임을 춤으로 호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