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시 인사말
«소멸의 시학 : 삭는 미술에 대하여»전을 찾아주신 여러분, 안녕하세요?
배우 봉태규입니다.
전시 관람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여러분께 질문 하나를 던져보려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명작이란 무엇인가요?
각자의 관점과 취향에 따라 명작의 정의는 달라질 테지만,
‘시간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뛰어난 작품에,
썩지 않는다는 뜻의 ‘불후’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불후의 명작이라고 부르곤 하죠.
위대한 작품들이 변함없는 상태로 보존돼서 대대로 전해지길 바라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늘 전시에서 만나게 될 작가와 작품들은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처음부터 변하고 사라지기로 마음먹은 작품들,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로 작정한 작품들이 이번 전시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에게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을 붙여봤는데요,
‘삭는다’라는 우리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죠.
썩는다, 낡아간다는 부정적인 뜻만 있는 게 아니라,
김치가 맛있게 삭았다고 할 때처럼 변화하고 발효해서 새로운 차원으로 향하는,
순환과 재생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우리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협력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과연 온전히 인간의 것일까요?
작품이 삭아 사라진 곳에서 풀이 자라고 바람이 불고 생명이 움직인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를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그 답을 찾는 여정을 함께 떠나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