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도부터 마련한 전시로, 매년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에 크게 기여하거나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어 향후 한국미술의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는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함으로써, 작가들에게는 창작의지를 북돋우고 관람객에게는 그간의 성과와 함께 새로운 미술을 향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09년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 화가 서용선은 인물, 풍경, 역사, 전쟁, 신화 등 다양한 범위에 이르는 주제들을 다루지만 특히 도시의 인간군상을 그려내는 연작들과 역사 속의 사건들을 시각화하는 역사화 연작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초반 일련의 소나무 회화 연작들로 알려지기 시작한 작가는 80년대 중반부터 역사화와 도시인 연작들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한국인의 상징체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구체적 소재를 통해 회화의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면서 명증한 평면의 공간을 재구성해냈던 서용선은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들 속에서 역사의 격랑과 그 속에 휩싸인 인간존재의 갈등을 밀도 있는 솜씨로 그려냈다. 역사의 시간에 대한 관심은 도시의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탄탄하게 구조화된 화면구성을 토대로 강렬한 색채와 질감을 통해 배회하는 도시인들의 부조리한 실존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 작품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들의 실존적 고통과, 팽창하는 도시의 공간적 압박감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을 반추하고 있다. 제각각의 편린으로 존재하는 체험들을 기억과 의식의 연속성을 통해 통합하면서, 작가는 비인간적인 도시와 역사의 질서를 위해 강요되는 기호체계를 거부하려는 무의식의 충동을 드러낸다. 서용선은 작품 속에서 밀도 있고 구축적인 평면과 시각을 향해 덤벼드는 듯한 색채, 그리고 도전적일 정도로 거친 질감의 표현을 통해 인간실존의 문제를 특유의 조형언어로 승화시킨다.
이렇듯 인상적인 작품들 속에서 수많은 다양한 인간의 열망들이 서로 부딪치며 교차하고 갈등을 빚어낸다. 작가는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집적한 지적활동의 결과물로서 자리한 예술작품 속에 깊은 사고과정을 농축시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아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역사를 거쳐 오면서, 그리고 환경에 맞닥뜨리면서 존재의 의미를 견지하려 고군분투해온 여러 인간 군상들의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인류사의 유장한 흐름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거대한 크기의 화면들을 장악하는 힘 속에 인간사의 고뇌와 아픔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깊이를 결여한 피상적인 유희가 난무하고 각광받는 현대미술의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주제에 관한 인문학적 연구와 성찰을 바탕으로 진중한 연마와 탐구를 통해 작품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서용선의 작가적 자세는 오늘날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으로서 많은 미술인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시류에 휩쓸리기 보다는 작가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을 견지하고 있는 서용선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함으로써, 미술관은 꾸준한 연마와 노력을 통해 거장의 문턱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성실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관람객들에게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