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락연(1898~1947)은 중국 한인작가로서 20세기 초 화가이면서 미술교육가, 그리고 항일운동가 등으로 알려진 작가이다. 2005년도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로부터 대통령 표창 대상자로 지정된 한락연은 민족주의자로 항일운동가, 정치가로 활동하면서도 1930년대에 프랑스 유학을 다녀와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혼용된 나름의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중국 거주 소수민족들의 생활상과 풍경들을 묘사하는 등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소박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20세기초 정적이고 전통성이 강한 중국에 운동성이 강한 새로운 화풍을 도입한 작가로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또한 1945년부터 1947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기까지 고고미술의 발굴과 보존에도 힘써 실크로드 길을 답사하면서 커쯔얼과 둔황 벽화의 많은 임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중국미술관과 교류를 맺으면서 그 동안 한락연의 유작 약 250여점 중 유족이 중국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135점 중 약 80여점과 유족으로부터 약 30여점을 대여하여 한락연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한락연은 중국 지린성(吉林城) 룽징(龍井)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1919년에 룽징에서 시작된 ‘3·13 항일시위’에서 태극기를 그려서 나누어 주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로 인한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를 거쳐 상해로 피신 가는 등 초기 고려공산당 활동에 참여하는 민족주의자였다. 이후로도 국제 반파시즘 투쟁과 항일 구국운동, 국공양당의 협력과 민족대동단결 그리고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는 예술을 무기로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실크로드 문화유적 답사와 발굴에도 참여하여 많은 모사작품을 남겼다. 그는 1920년대 최초 정규 미술대학인 상해미술전문학교 서양화과에서 2년간 수업을 받았으며, 1929년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루브르 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면서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과 더불어 그는 자연대상이나 소수민족들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해내려는 리얼리즘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결부시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념을 기초로 하는 작업세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한락연은 자신의 작품을 이상을 실현하는 혁명 투쟁과 밀접히 결합시켰고, 일찌기 반일 투쟁에 참가하였으며, 1923년에 중국 한인으로서는 최초로 공산당에 가입하고 그 후 중국과 유럽을 넘나들면서 세계 반파쇼투쟁을 위해 앞장서 싸운 작가이다. 1945년에는 문화재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후일 복원을 위한 자료로 돈황과 키질 벽화를 모사한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한락연전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항일운동의 정신을 되살리고,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조선민족 즉 한인(韓人)들의 애환과 삶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중국 한인작가들은 다른 타 소수민족보다 비교적 짧은 과정에서 이루어져 중국의 많은 다른 소수민족들과는 또 다른 특성 속에서 어렵게 살아오면서 나름의 문화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