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산_조평휘》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현대미술사 연구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기획한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첫 전시로, 산수화분야의 원로작가 조평휘(趙平彙, 1932-)의 60년간의 작품세계를 조망해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조평휘는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전쟁을 피해
인천으로 내려온 후, 서울대학교 중등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1972)과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1913-2001)에게 동양화를 배웠다. 대학 졸업 후 그의 행보는 우리나라 화단의 변화와 궤적을 같이했다. 1950-1960년대 추상의 모색, 1970-1980년대 산수화의
유행 등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수화 붐의 열기가 식은
1990년대부터 그의 행보는 화단의 흐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자신의 산수화양식의 모색으로 나아간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정립되기 시작한 그의 산수화는 70대에 절정기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그는 장엄한 ‘운산산수’라고 하는 역동성에 방점을 찍은 독자적인 양식을 창출했다.
제1부
추상의 시대
1960년, 대학 졸업과 함께 국전을 떠난 그는 이후 15년간을 당시 한국화단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던 추상작업에 몰두하며 지필묵의 재료 실험과 새로운 표현기법의
시도를 통해 현대적인 조형성을 모색하였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 때 반드시 덧붙이는 ‘타블로에서의
문학성의 배제’는 형식주의추상회화의 강령이었으며, 이 시기부터 그의 화두로 각인되어 이후 현재까지의
의식적인 영역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그의 예술관이 되었다.
제2부
산수로의 회귀
1974년, 조평휘는 추상의 모색에서 전통산수화의 추구로
방향을 전환한다. 그에게 전통회화로 귀의하는 것은 포기 또는 시대착오로 느껴지는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동양화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서양적인 작업을 하면서 갈등을 느끼고 있었던 조평휘는 서양화를 뒤따라가는
것보다 전통에 대한 탐구에 깊이를 더하는 것에서 의의를 찾고 전통으로의 회귀라고 하는 시간의 역행을 단행한다.
전통산수로의 회귀는 끊임없는 사생과 스승이었던
청전의 산수화를 비롯한 전통 산수화에 대한 사숙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추상화가 순수한 조형성을 추구하며
화면의 마티에르에 주목하면서 화면자체에 한정되는 좁은 시야를 필요로 했다면, 자연은 그의 시야를 확장시켜주었고
그림을 대하는 그의 자세를 변화시켰다.
제3부
모태로서의 사생
1990년대 그의 양식의 정립이라는 성과의 배경에는 전통에 대한 사숙과 자연에 대한 탐구로서의 사생이라고
하는 두 개의 큰 축이 존재한다. 1975년 작품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드로잉까지 포함하는 30여권의 드로잉 북과 절첩, 그리고 파일로 보관되어 있던 소품의
산수화 작품들이 진열되는 이 공간에서는 온전히 그의 삶과 함께했던 드로잉 작품들을 통해 자연에 대한 그의 진솔한 자세와 끊임없는 탐구의 열정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그의 장엄한 대관산수들의 모태가 된다.
제4부
운산산수의 정립
(1) 운산양식
1990년대, 그의 나이
60대에 역동적인 필치와 강한 먹의 대비, 장엄한 스케일의 ‘운산산수’라고 부를 수 있는
그의 독특한 양식을 정립한다. 대관 산수를 통해서는 장엄한 스케일을,
그보다 작은 스케일의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준법에 얽매이지 않고 그가 추상실험을 통해 습득했던 자유롭고 호방한 필묵의 유희를 볼 수
있는 것이 운산산수의 다채로운 매력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는
우리나라 화단에서 지금은 신화처럼 남은 산수화의 전성시대였다. 이 시기 산수화로 귀의했던 조평휘의 차별점은
산수화의 침체기가 시작되는 1990년대부터가 그의 양식이 정립되는 전성기라는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50-1960년대 추상화 열풍이 지나간 것처럼 1970-1980년대
주목받았던 산수화 붐 또한 1990년대 이후로는 지나가는 열풍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상관없이 조평휘는 추상에서 얻은 조형훈련과 산수를 대하며 얻게 된 시야의 확장이라는 두
강점을 연마하여 역동적인 대관산수를 완성한다.
(2) 서사(Narrative)의 등장: 발전적 해체
“타블로(tableau)에서의
문학성의 배제”는 추상작업을 추구하던 시기부터 그의 회화관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산수화는 문학과 함께해온
장르다. 시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시가 되었던 산수화를
현대화 시키는 것은 단순히 준법과 구도를 현대화시키는 표현양식상의 문제가 아니다. 1990년대 표현영역에서의
현대화에 성공한 그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이미 내면적인 부분의 현대화에도 도전하고 있었다. 산수화에서
문학성이란, 결국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전개에 따라 몸으로 체험하도록
그림 안으로 초대하기 위한 장치들로 상징된다. 조평휘와 산과의 관계도 눈에서 몸으로. 타자로서의 산에서 이제는 그 안에서 거닐기를 원했던 전통적 의미의 산수로 그 관계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대둔산>(2009)작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봉우리를 연결하는 줄다리를 건너고 있는 등산객이 보이고, 거대한 암벽을 둘러싼 운무 아래에는 케이블카를 타는 곳이 그려져 있어 그림 안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설악산 옆에 대청호가 오고, 북한산의 뒷산으로 금강산이 나타나는
구조는 화면의 구성상 조형성을 위한 표현일 수 있으나 분단의 현실에서 또 다른 서사로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겪으며 일면 완성도 높았던 그의 화풍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추상화의 영향으로 전통산수화에서
문학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출발했던 조평휘는 자신이 정립한 양식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문학성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또 한 번 시간을 역행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발전적 해체를 겪고 있는 그는 현재도 자신의 예술세계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며
이 시대와 공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