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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막간: 경계에 머무는 시선

  • 2025-07-11 ~ 2025-09-13
  • 서울 지하1층, MMCA영상관
  • 조회수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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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2025 막간: 경계에 머무는 시선
켈리 라이카트_쇼잉 업, 2022, 107분
켈리 라이카트_쇼잉 업, 2022, 107분
켈리 라이카트_퍼스트 카우, 2019, 122분
켈리 라이카트_퍼스트 카우, 2019, 122분
켈리 라이카트_믹의지름길, 2010, 104분
켈리 라이카트_믹의지름길, 2010, 104분
알리체 로르바케르_키메라, 2023, 131분
알리체 로르바케르_키메라, 2023, 131분
알리체 로르바케르_행복한 라짜로, 2018, 127분
알리체 로르바케르_행복한 라짜로, 2018, 127분
알리체 로르바케르_알레고리, 2024, 21분
알리체 로르바케르_알레고리, 2024, 21분
루크레시아 마르텔_자마, 2017, 115분
루크레시아 마르텔_자마, 2017, 115분
루크레시아 마르텔_늪, 2001, 103분
루크레시아 마르텔_늪, 2001, 103분
루크레시아 마르텔_북부 터미널, 2021, 37분
루크레시아 마르텔_북부 터미널, 2021, 37분

‘막간’은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 정규 프로그램 사이에 소개되어 관객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을 다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2025년에는 ‘경계에 머무는 시선’이라는 주제로 사회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인물과 공간, 그리고 그들의 감각과 정동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세 명의 여성 감독 켈리 라이카트, 알리체 로르바케르,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들은 리듬, 소리, 공간의 긴장감을 통해서 시적인 서사를 구축하며, 인물의 심리나 상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들이 놓인 환경과 정서적 풍경을 통해 시대적인 불안을 감각하도록 이끈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켈리 라이카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독립영화 감독으로, 미니멀한 연출과 정적인 쇼트를 통해 주변부 인물들의 고요한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라이카트의 영화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탐구하며, 말보다 여백과 침묵으로 서사를 이끌어낸다. 상영작 ‹쇼잉 업›은 예술가의 일상을 조명하지만, 치열한 창작의 고통이 아닌 사소한 일들로 골머리를 앓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예술가가 타인과의 관계와 창작을 방해하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고 '나타날 수(show up)' 있는지를 질문한다. ‹퍼스트 카우›는 19세기 초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섬세한 요리사 '쿠키'와 중국계 이민자 '킹 루' 사이의 진실한 우정을 그린다. 총과 폭력이 아닌 우정을 그리는 이 반(反)서부극은 역사 속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믹의 지름길›은 1845년 오레곤 트레일을 배경으로, 방향을 잃은 개척민들이 생존과 타자에 대한 신뢰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라이카트는 느린 호흡과 절제된 시선으로 권위, 젠더, 믿음의 문제를 광활한 사막의 풍경 속에 정교하게 새겨 넣는다.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이탈리아 출신의 감독으로 비선형적 서사와 해체된 시간성 속에서 신화와 현실이 교차하는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한다. 농촌이나 소외된 지역을 배경으로 공동체, 전통, 종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며,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가치와 감각을 환기시킨다. 로르바케르의 작품 중 ‹행복한 라짜로›는 계급적 착취를 은폐하고 있는 시골마을 인비올라타를 배경으로 사회적 부조리와 인간 존재의 순수성을 탐구한다. ‹키메라›는 에트루리아 시대의 무덤을 불법 도굴하는 아르투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유물을 통해 상실된 과거와 관계를 복원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그린다. 이 영화에서 유물은 단순한 고대의 물건이 아니라 기억과 시간을 담고 있는 매개로 기능한다. ‹알레고리›는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소년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며, 인식과 해방, 그리고 진리에 이르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영화감독 루크레시아 마르텔은 남미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개인과 권력, 계급, 젠더의 복합적 관계를 예리하게 탐구한다. 마르텔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소리, 시선, 공간의 감각적 배치를 통해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마르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자마›는 남미 식민지의 변방을 배경으로, 스페인 왕실의 치안판사인 주인공 '자마'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습을 통해 식민주의의 폭력성과 존재론적 불안을 묘사한다. 데뷔작인 ‹늪›은 무기력한 부르주아 대가족이 한여름의 불쾌한 습도와 침묵 속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그리며, 관객에게 불편함과 이질적인 감각을 유발하는 파격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마지막 상영작 ‹북부 터미널›은 팬데믹 시기에 마르텔이 고향 살타 지역으로 돌아가 촬영한 음악 다큐멘터리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노래하며 연결되는 모습을 포착한다.


«2025 막간: 경계에 머무는 시선»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와 스펙타클이 제공하지 못하는 감각의 시간을 제안한다. 쉽게 정의되는 의미보다는 다층적인 정서와 해석의 여백을 남기며, 관객 스스로 감응하고 머무는 경험을 유도한다. 모두가 열망하는 중심이 아니라, 낯설고도 조용한 가장자리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자리로 관객을 초대하고자 한다.

  • 작가
    켈리 라이카트, 알리체 로르바케르, 루크레시아 마르텔
  • 작품수
    9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