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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작가 특별전: 잊혀진 질곡의 유민사-신순남의 진혼곡

  • 2004-04-02 ~ 2004-10-15
  • 과천 제6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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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기증작가 특별전: 잊혀진 질곡의 유민사-신순남의 진혼곡

잊혀진 질곡의 유민사 - 신순남의 진혼곡(鎭魂曲)


한국인들이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첫 농업 이민을 떠난 것은 1863년이었으며, 1910년 일본의 조국 강점 후 이어진 항일 망명은 이민자 수 급증의 원인이 되었다. 1930년대 17만 명에 이른 한인들은 스탈린의 대숙청 당시 벌어진 '소수민족 분리 차별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척박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1937년 9월부터 두 달간 이루어진 강제 이주에서 연해주 지역의 한인 교사, 작가, 기자를 비롯한 지도급 지식인 2천 5백여 명은 카레이스키라는 이름으로 검거, 처형되었으며, 나머지 한인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까지 총 2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짐승처럼 화물칸에 실린 채 이동되었다. 3~4주에 걸친 이동 중 추위와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1만 1000여명이 숨졌다. 대부분 연약한 노인과 아이들이었으며, 시신들은 매장 할 틈도 없이 기차역 주변의 눈밭에 버려졌다.

중앙아시아의 황모지에 내팽개쳐진 유민들은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풍토병 등을 견디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황무지를 개척하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현재 러시아와 11개 독립국가에 거주하는 한인 후손들은 무려 50여 만 명에 이른다.


1928년 연해주에서​ 출생한 신순남(申順南)은 1937년 아홉 살의 나이에 할머니와 함께 이주 열차에 올라 참혹한 비극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였다. 1940년 우즈베키스탄으로 재 이주한 신순남 일가는 현재까지 우즈베키스탄에 머물고 있다. 신순남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육을 중시한 할머니의 열성으로 타쉬 켄트의 벤코프 미술학교와 아스트로브스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신순남은 사회주의 시절 정치적 탄압의 위험 속에서도 한민족 고통의 유민사(流民史)를 수 십 미터의 거대한 화폭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수난과 영광의 유민사 - 신순남》(1997.6.5-7.15)전에는 작가가 평생에 걸쳐 제작한 '한민족 유민사'의 거대한 기록이 소개되었으며, 수많은 관객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잊혀진 질곡의 유민사 - 신순남의 진혼곡(鎭魂曲)》전은 1997년 전시 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총 64점의 대표작 중 25점을 선별하여 마련된 전시이다. 전시 작품들은 크게 세 주제로 구분된다. 먼저 수난과 고통의 유민사에 대한 슬픔과 애도, 기원의 모습을 담은 <애도>(1980), <어머니의 슬픔>(1981)등과 같은 작품으로 무겁고 어두운 색채로 표현된 배경과 인물들을 통해 잊혀진 유민사의 미극을 표현하고 있다. 신순남은 또한 이러한 고통과 애환의 유민사 속에서도 민족의 부리를 잊지 않은 유민들의 희망과 기쁨을 묘사한다. <부채춤>(1982)과 <장미 빛 눈>(1985)은 밝고 화려한 색채를 통해 유민 생활 중의 기쁜 한 때를 묘사한 작품들이다. 마지막으로 <검은 태양에 대한 한국의 노래>(1988), <나의 신부>(1990)등의 작품은 러시아 절대주의와 칸딘스키 회화의 영향이 나타난 작품들로 추상적으로 단순화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질곡(姪梏)의 역사 속에서 잊혀진 유민의 삶과 이들의 희생에 대한 애도를 통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고통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현재 우리의 삶이 수많은 선조들의 고통과 희생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작가
    신순남
  • 작품수

전시인쇄물

IE/2000PM/0125
IE/2000PM/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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