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은 지난 30여 년간 한국 현대미술사에 있어, 사진매체가 어떻게 현대미술의 언어와 조우하며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왔는지를 조망하는 전시이다.
한국 최초의 사진전은 1957년, 뉴욕 현대미술관 순회전인 ‹인간가족전(The Family of Man)›으로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에 대한 본질과 화합의 노력으로 기획된 이 전시는 국내 사진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한국에서는 리얼리즘에 근간한 다큐멘터리 사진과 저널리즘 사진이 주류를 이루었다. 본 전시는 한국미술에서 리얼리즘에 근거한 공적 이미지로 시작한 ‘사진’이라는 매체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작가의 표현수단과 심미적 언어로 기능하게 된 것에 주목하였다.
특히 1989년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중국의 천안문사건(6월),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11월), 소비에트 연방의 페레스토로이카(1990년 8월)가 불러온 냉전체제의 종식은 국제 사회의 가치관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한국사회는 1988년 올림픽 개최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를 통해 글로벌화의 급격한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작가들의 시선과 태도에 있어서 큰 변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이 전시는 당대의 사진가들과 현대미술 작가들이 글로벌 미술계에서, 미술의 언어로서 사진이라는 미디움을 어떻게 차용하고, 사용하며, 새로운 그들의 시각언어로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이다. 디지털 혁명을 경험한 세대가 지난 30년의 변화를 조망하고 앞으로 새로운 사진의 가능성을 마주한 시점에서, 이제 ‘사진가’가 미술가(artist)로 불리는 맥락을 주목하려 한다.
이지윤(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장)
CHAPTER 1. 실험의 시작
1989년은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었고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유학한 작가들이 귀국하여 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 독일 함부르크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돌아온 구본창이 기획한 ‹사진, 새시좌›전(1988)과 김장섭, 김승곤 등을 중심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일련의‹한국사진의 수평전›(1991, 1992, 1994)은 작가마다 각기 다른 특징과 태도가 드러나는 작품을 소개하며,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부는 사진 매체로 회화적 모노크롬 (pictorial monochrome)을 특징으로 하는 주명덕의 ‹잃어버린 풍경›으로 시작하여, 1983년 출발한 배병우의‹소나무›와 ‹오름›시리즈, 1987년에 발표된 민병헌의‹별거 아닌 풍경›등 작품의 소재가 작품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지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한편 사진 매체를 다양하게 사용하여 시도된 ‘메이킹 포토(making photography)’의 흐름과 사진의 표면적 이미지를 넘어선 추상적이고 비평적인 관점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CHAPTER 2. 개념적 미술(conceptual art)과 개념 사진(concept photography)
사진 매체에 대한 실험의 시작은 이미 1980년대 개념미술(conceptual art)작가들의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1980년‹현실과 발언›의 시작을 통한 성완경, 김용익부터, 민중예술계 작가들의 다다적이며 세태 풍자적인 포토 콜라쥬 작업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같은 개념사진의 맥락으로 처음 사진매체를 사용하고 본격적인 작품으로 발표한 작가는 성능경이다. 이번 전시에는 성능경의 첫 사진작업인‹S씨의 반평생›(1977)과 ‹S씨의 후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가 포함되며, 개념미술 1세대라 불리는 이승택이 1980년 초반에 시도한‹지구 위의 드로잉(Drawing on Earth)›을 대형 실사 출력한 사진작품도 처음 소개된다. 1989년 이후 이러한 개념적 접근은 잡지‹포럼A›를 중심으로 활동한 사회 의식적 및 비판적 경향의 작가들에 의해서 시도된다. 그들은 과거보다 비평적 개념이 강한 새로운 다큐멘터리적 태도로 다양한 퍼포먼스, 아카이브, 연구 프로젝트 작업을 소개하며 새로운 개념미술의 지평을 제시했다.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을 촬영한 노순택, 청계천 재개발을 둘러싼 많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제안을 한 플라잉시티(전용석), 미군이 주둔하는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동두천 기념사진›시리즈의 강용석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CHAPTER 3. 현대미술과 퍼포먼스, 그리고 사진
2000년 이후, 글로벌한 맥락에서의 전시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다양한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를 통하여 국제미술의 흐름 유입되고 작품의 현장 제작과 설치라는 맥락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미 서구에서 1970, 80년대를 통해서 시작된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사진 미디움은 본격적으로, 한국작가들의 작품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극적인 미장센 이미지를 만드는 ‘스테이징 포토’에서부터 개인 혹은 사회적 기억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바탕으로 추상적 개념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표현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일시적이거나 신체적 접근이 어려운 대지미술 등 작품사진기록을 위하여 사진이 차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진매체의 다양한 표현은 사진과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작을 열었다.
CHAPTER 4. 이미지 너머의 풍경: 상징. 반미학. 비평적 지평
디지털 혁명을 통한 사진기술의 일상화와 현대미술의 매체로서의 ‘사진’이 자리를 공고히 하면서, 작가들은 사진으로 만들어 지는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매체적 연구를 시도한다. 리얼리티에 근거한 이미지들은 리얼리티와는 대조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상징’을 만들며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상징으로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4부 ‘이미지 너머의 풍경’은 현재 현대미술계에서 ‘사진’을 매체로 하는 작가들이 시도하는 이미지의 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구축된 사실적 이미지들이 어떻게 전복되어, 반미학적(anti aesthetic)이면서, 초현실적인(surreal) 성격을 지닌 이미지로 확장되는지 보여준다.
참여작가
강용석 강홍구 고명근 고승욱 구본창 구성수 김대수 김상길 김수강 김수자 김아타 김옥선 김용익 김인숙 김장섭 노순택 니키 리 민병헌 박불똥 박영숙 박형근 방병상 변순철 배병우 배준성 배찬효 백승우 성능경 성완경 송영숙 신학철 양혜규 염중호 오인환 오형근 이갑철 이규철 이명호 이승택 이윤진 이정진 원성원 정동석 정연두 정희승 조습 주명덕 천경우 최재은 플라잉시티 한성필 황규태 KDK
사진특별전 ‹패션을 넘어서›
패션 사진은 사진가뿐 아니라 스타일리스트, 헤어 디자이너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세트 디자이너 등 여러 주체의 창조적 협업을 통해 탄생하며, ‘유행’과 ‘스타일’의 바로미터로서 시대에 따라 ‘새로움’을 찾아 변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패션을 넘어서› 전시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적극적으로 변화해온 한국 패션사진의 현주소와 정체성을 소개한다. 한국의 패션 사진은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여성지 전성시대를 지나 1990년대 중반 해외 라이선스 패션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엘르›, ‹마리끌레르›, ‹보그›, ‹바자›, ‹더블유›등 라이센스 패션지들이 차례로 국내로 들어오면서 해외 브랜드들이 물밀 듯 밀려들었고, 그 결과 어떤 도시나 특정 지역 스타일이 아닌, 범세계적 유행 스타일이 시차 없이 공유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잡지사에서 독립한 프리랜서 사진가들의 활발한 패션지 작업을 통해 본격적인 패션 사진의 시대가 펼쳐졌다. 최초의 한국 패션사진 기획전이 될 이번 전시는 한국 사회에 라이센스 패션지들이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의 패션 사진들 중 흥미로운 네 가지 주제에 집중했다.
한국의 문화, 미적 정체성을 찾아서
패션 사진 속에서 한국적인 미학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시도는 여러 사진가들과 매체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특히‹보그 코리아›는 ‘코리아니즘(Koreanism)’이란 표제 아래 한국적인 미감을 통해 영감을 줄 수 있는 실험적 비주얼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다른 라이센스 패션지들도 일련의 비슷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시도는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역설적으로 우리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의 일환이었다. 17~18세기 유럽 귀족들에게 유행했던 중국 문화에 대한 동경을 담은 ‘쉬누아즈리 (Chinoiserie)’나 인상주의에 영향을 준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인 ‘자포니즘 (Japonism)’처럼 한국의 미감이 글로벌한 미적 취향으로 승화되기를 꿈꾸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모드, 그 결정적 순간
패션 사진이 여러 주체들과의 협업에 의해 탄생된다고 하지만, 결국 패션 사진의 성패는
사진가의 감각과 재능에 달려 있다. 비교적 단순한 배경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더더욱 사진가의 감각에 의존한다. 사진가는 준비된 공간에서 빛의 각도와 세기, 카메라 앵글을 정하고, 옷의 특징이 드러나되 모델의 멋진 포즈와 매혹적인 표정을 이끌어낸다. ‘찰칵’ 하는 찰나의 순간, 패션사에 남을 사진이 될 수도, 한번 보고 잊혀질 사진이 될 수도 있다.
이야기를 담은 패션 사진
한 장의 패션 사진 속엔 많은 이야기들이 담길 수 있다. 이런 패션 이야기의 주요 재료는 ‘꽃과 계절’이다. 패션이 본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하기에 패션 사진 역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쉼 없이 변화한다. 활짝 핀 매화와 벚꽃나무 아래 아가씨들에게선 싱그러움이 넘치고, 여름날 연못가의 여인들에게선 모네의 그림처럼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넘친다.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계절 또한 한편의 연극 무대나 동화 같은 이미지를 선사한다.
패션 사진과 현대미술, 창조적 대화
패션과 예술은 서로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왔다. 정치 경제적 안정 위에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대된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미술관과 갤러리 등 문화시설이 확장됐고, 패션업계와 잡지업계 역시 성장세에 있었다. 음악과 패션, 영화와 패션에 이어, 패션과 현대미술간에도 적극적인 교류가 이뤄졌고, 당연히 패션 사진 속엔 현대미술이 즐겨 등장하거나 창조적인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이어졌다.
이명희
객원 큐레이터
두산매거진 편집고문 / 상무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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