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재건4›는
삶과 이야기의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질문이 곧 영화적 서사를 만들어내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누군가의
삶에 일어나는 사건을 시간을 인식하는 존재인 인간의 의식과 행동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결과물처럼 여긴다면, 사건들의
집합체인 이야기 그 자체는 정의내릴 수 없는 미스터리로 다가온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도 이야기하기 위해
그 사건을 기억하는 순간 그 사건이 지닌 불완전성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행위에 대한 질문이
곧 영화적 서사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질 들뢰즈는 알랭 레네의 영화들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 즉 괴물 같고 혼란스러우며 창조적인 정신의 메커니즘에 대한 그의 관심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감정이란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순환하는 동시에 끝없이 변형되며 생각은 그것들에 부응하는 비선형적인 시간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알랭 레네의 영화는 평범한 삶의 이야기들이 일어나고 반복되는 정신의 메커니즘을
재현해왔고 그 정점에 ‹스모킹/노스모킹›이 있다. 현대 실존주의
철학의 초석을 세운 쇠렌 키르케고르가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익명의 저자를 가장해 글을 쓰면서 독자들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만을 읽으면서 독자 자신의 생각으로 바라보길 원했던 것처럼, 알랭 레네의 영화 또한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는 세계의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개체성이 진리라는 키르케고르의 생각처럼, 개체성이란 모든 사건발생의 열쇠이며 비극의 출발일 수도 있다.
난니 모레티는 자신이 아는 것만을 말하기 위해 거의 모든
영화에 자신이 직접 등장한다. ‹비앙카›(1984)의 수학교수
미켈레, ‹빨간 비둘기›(1989)의 공산당 국회 위원이자
수구선수인 미켈레, ‹미사는 끝났다›(1985)의 가톨릭
신부처럼 자신과 다른 인물을 연기할 때도, 또는 ‹좋은 꿈›(1981), ‹4월›(1998), ‹나의 즐거운 일기›(1993)에서처럼 영화감독의 모습으로 나올 때에도 언제나 난니 모레티 그 자신의 모습으로 보인다. ‹좋은 꿈›에서 영화감독인 자신의 모습을 자조적으로 바라보거나, ‹빨간
비둘기›에서 ‘왜 나는 너 또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나이어야 하는지’를
고통스럽게 절규하는 것처럼, 그의 영화는 이탈리아 사회, 정치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면서 개체로서 존재하는 자신의 모순을 직시하는 태도로 구성된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물은 시대적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사는 극적 상황에 놓인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담론의 형태를
띤다. 아이러니는 자연스럽게 희극(풍자)의 형태를 지니게 되는 것처럼, 언어와 사고의 행태를 지적하는 그의
영화는 그가 꿈꾸는 다음 영화에 대해 뜬금없이 말하거나 그의 머릿속에서 작업 중인 시나리오 속 장면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리석은 통념과 싸우는 자아의 도덕적 성장영화와 같은 난니 모레티의 영화는 순간의 선택에 따라 괴물이 될 수도
있는 인간의 나약한 부분들을 비판하지만 달콤한 패스트리를 좋아하고 신발 수집광이기도 한 모레티 자신의 가장 사적인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따라서 주관적 관점을 객관적 진실처럼 포장하는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자유의 언덕›(2014)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이 부재하는 동안 도착했던 모든 편지들 을 모아 읽다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바람에
편지지들이 흩어지면서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되어버린다. 이렇듯 그의 영화에서는 발생하는 일들의 시간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일들은 동시에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고 이야기는 이 가변성을
증명하는 것처럼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반복되어 진행된다. 알랭 레네의 ‹스모킹/노스모킹›이 양자택일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사건진행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면 홍상수의 영화는 인물들이 사건의
당사자이자 이야기하는 화자로서 이야기의 모호함을 전달한다. 난니 모레티가 첨예한 이탈리아 정치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 인물들의 담론 속에 통념의 문제들을 던져놓는다면, 홍상수는 인물들에게 부여될 수
있는 공적 의미의 역사성을 제거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그들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각자의 시간 속에 갇혀 있다. 인물들은 그들 정서 속에 내재 된 매우 불안하고 비논리적인 시간 속에서 순환한다.
이야기하는 방식도 인물의 욕망에 대한 해석도 전혀 다르지만 ‹이야기의 재건4›에서 상영될 세 감독의 영화들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인물의 행동과 생각에 따라 다르게 전개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세 감독의 고유한 방식들은 각자 인간의 욕망 또는 자아와 사회의 관계성에 대한 통찰의 결과물로 보인다.
※ 이야기의 재건4 상영시간표
※ MMCA 필름앤비디오 가정의 달 특별상영